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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자연에서 만난 유혹의 기술과 삶의 지혜"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글을 쓰게 된 동기

제주의 자연에서 만나고 생각한 것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유혹의 기술’1)이다. 서귀포 생활 4년 차를 맞아 산과 오름, 숲과 바다를 두루 다니며 접한 제주의 자연 속에서, 필자는 여러 차례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 특히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본 과거 사약의 재료로 쓰였다는 자생식물 '천남성'2)을 보았을 때였다. 그 자태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본성은 치명적인 독성을 품고 있다.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이 식물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유혹의 기술’을 지니고 있다. 이 경험은 필자의 전공 분야인 계획이론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합리적 계획기술에서 조정·협상의 기술을 거쳐 이제는 유혹과 매력의 기술이 강조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과 정책이라도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끌어내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제주에서 만난 새삼스런 깨달음이었다.

유혹의 기술의 의미와 양면성

유혹이란 단순히 달콤한 매혹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선과 악, 유익과 해악의 양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정직과 창의, 정도(正道) 속에서 발휘되는 유혹의 기술은 사람을 이롭게 하고 사회 발전을 이끌 수 있다. 그러나 거짓과 기만, 위선으로 사용되면 사회적 해악을 낳는다. 화려한 언변과 겉치레로 사람을 속여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결국 유혹의 기술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해치기도 하는 양날의 칼이다.

생물 세계에 나타난 유혹의 기술

유혹의 기술은 인간 사회만이 아니라 생물의 세계에도 널리 퍼져 있다. 제주 산지의 자생식물 중에는 화려한 꽃빛으로 곤충을 불러들이면서도 치명적인 독을 지닌 경우가 있다. 독버섯은 매혹적인 색채로 사람의 눈길을 끌지만, 그 속은 위험하다. 반면 향기로 곤충을 유인해 수분을 돕고 인간에게도 유익을 주는 식물도 있다. 동물 역시 유혹을 활용한다. 바다에서는 어부가 미끼와 그물을 이용해 물고기를 유혹하듯, 생존을 위한 전략 속에도 유혹이 자리한다. 결국 자연은 유혹의 기술을 통해 경쟁과 공존을 동시에 이루어내며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제주 자연이 일깨워 준 교훈

필자가 접한 사약의 재료 '천남성' 식물은 겉모습의 화려함과 속성의 독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이는 곧 사람 사회의 이중성과도 닮아 있다. 겉으로는 친절과 감언이설로 다가오지만, 속은 흉악한 사람도 있다. 반대로 겉과 속이 모두 아름다워 만나는 이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과 장소도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기운이 좋은 곳이 있는가 하면, 불길한 기운을 가진 장소도 존재한다. 이렇듯 제주의 자연은 유혹의 기술이 가진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주며, 삶의 분별력을 일깨워 준다.

유혹의 기술 시대에 요구되는 역량

오늘날은 합리적 기술에서 조정·협상의 기술을 지나, 유혹과 매력의 기술이 강조되는 시대다. 각종 정책과 지역개발,기업활동과 개인생활에도 모두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내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개인에게는 매력을 키우는 표현력, 신뢰를 주는 태도, 창의적 기획 능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타인의 유혹을 분별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와 자기 관리 능력도 요구된다. 올바른 유혹을 좇고 그릇된 유혹을 경계하는 힘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필수적이다.

제주에서 만난 삶의 지혜

유혹의 기술은 자연 속에도, 사람 사이에도, 정책과 계획의 현장에도 존재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 기술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올바른 방식으로 활용하면 사람과 사회를 이롭게 하지만, 잘못 쓰면 해악을 낳는다. 따라서 우리는 합리성과 협상력을 넘어, ‘올바른 유혹의 기술’을 다루는 지혜와 품성을 길러야 한다. 동시에 눈앞의 화려함에 매혹되지 않고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제주에서 만나고 생각한 삶의 중요한 교훈이다.


참고자료
1)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의 "유혹의 기술(The Art of Seduction)"
미국의 저술가 로버트 그린은 인간 심리와 권력, 전략을 주제로 집필해 온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유혹의 기술(The Art of Seduction, 2001)"은 그가 인간 심리의 은밀한 영역을 탐구한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단순히 매혹적인 사람이 되는 법을 넘어 유혹을 하나의 전략적 기술로 바라보고 그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책은 먼저 세이렌, 레이크, 아이디얼 러버, 댄디, 차머, 스타 등 아홉 가지 유혹자의 전형을 제시하면서 각 유형의 매력과 전략, 약점을 분석하고 있다. 이어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욕망을 자극하는 단계에서부터 쾌락과 혼란을 창출하고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며, 마침내 상대가 쉽게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드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유혹의 과정을 스물네 가지 전략으로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유혹이 특정 소수의 타고난 매력이 아니라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기술임을 강조하며, 외모나 지위보다 심리적 전략과 타이밍, 긴장감, 환상, 미스터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유혹자의 시각뿐 아니라 피유혹자의 욕망과 약점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인간관계 속에서 유혹이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유혹을 단순한 사랑의 기법이 아니라 인간 사회 전반에 작용하는 심리적·전략적 힘으로 이해하도록 이끌며, 동시에 유혹의 매혹성과 위험성을 함께 성찰하게 만든다.
2) 제주 자생 독초 천남성(Arisaema amurense)
천남성(天南星)은 천남성과(Araceae)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으로, 제주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남부 지역의 산야에 자생하는 대표적인 독초 가운데 하나이다. 봄철 숲속 그늘에서 자라는 천남성은 독특한 불염포(佛焰苞, 화포)를 펼쳐 마치 뱀이 혀를 내미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뱀무’라고도 불린다. 뿌리줄기와 열매에는 칼슘 옥살레이트 결정과 독성 알칼로이드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섭취 시 구강과 인후의 심한 작열감, 호흡 곤란,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중독을 일으킨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독성이 왕명으로 내리는 사약(賜藥)의 주요 재료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특히 제주 지역에서 손쉽게 채취할 수 있는 독초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당시 사약은 주로 승정원이나 의금부에서 조제하여 정치적 반역이나 중죄인의 처벌에 사용되었는데, 천남성은 그 가운데에서도 빠른 독성과 확보 용이성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편, 천남성은 극소량을 정제하여 한약재로 쓰이기도 했다. ‘반하(半夏)’라는 이름으로 가공된 천남성 덩이줄기는 구토 억제나 가래 제거 등에 활용되었으나, 이는 철저한 독성 제거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천남성은 약과 독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 식물로, 조선의 법문화와 의약 전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사진 1,2,3,4는 제주의 자연에서 자생하는 천남성이다. 사진 1,2는 서귀포 치유의 숲 해설사이자 서귀삼연의 현문헌 선생, 사진 3,4는 서복삼연의 무량 선생이 보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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