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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과 고은층의 삶: 서귀포에서 만난 다섯 인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고은층의 삶에서 시절인연(時節因緣)의 의미를 찾다

시절인연이란 ‘때와 인연의 조화’를 뜻한다. 불가에서는 모든 존재가 독립적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과 인연에 따라 발생한다고 본다. 성경에서도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도서 3:1)라 말한다.  
그러면 현대사회에서 고은층의 시절인연은 어떠한가? 필자의 생각은 인생이란 특정한 순간과 만남 속에서 방향을 잡아가며, 고은층의 삶 역시 이러한 시절인연 속에서 성숙한다고 본다. 따라서 정년 이후의 삶은 단순한 여생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과 배움으로 열리는 제2의 황금기가 된다.  

거처의 인연은 서귀포 혁신도시이다

삶의 터전은 곧 새로운 인연의 출발점이다. 필자가 팔공산과 대구를 거쳐 제주로 이주했을 때, 학부 제자의 도움으로 서귀포 혁신도시에 정착할 수 있었다. 
서귀포 혁신도시는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에 따라 조성된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당시 필자는 국토교통부 혁신도시위원회 위원으로서 혁신도시 마스터플랜 심의를 맡았으며, 상당수 혁신도시  마스타플랜은 심의위원장으로 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혁신도시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여 혁신도시와 깊은 인연을 이어왔다.

사람의 인연은 서귀삼연(西歸三緣)의 만남이다

이주 초기 필자가 자주 찾은 곳은 서귀포 치유의 숲이었다. 그곳에서 현 선생과 김 선생을 차례로 만나며 ‘서귀삼연’이라는 인연이 맺어졌다. 우리는 숲과 오름, 한라산을 함께 오르며 제주의 사계절을 누렸고, 방어와 자리돔의 축제에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공유했다. 이는 공자의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焉)”라는 가르침을 실천한 셈이다. 서로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며 단순한 취미의 동행을 넘어 일상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배움의 인연은 서귀복연(西歸福緣)이다

정년 이후 연구실과 캠퍼스를 떠난 아쉬움을 메워 준 곳이 서귀포 노인복지관이었다. 이곳에서 스마트폰과 컴퓨터 활용을 배우며 시대의 흐름에 적응했고, 동시에 새로운 선린들을 만났다. 맹 선생님은 영상 편집의 달인이었고, 박 선생님은 울금을 나누며 정을 전했으며, 무량 선생은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안내해 주었다. 이는 “배우기를 그치지 말라(學而不厭, 誨人不倦)”는 공자의 가르침과 맞닿는다. 나이 들어서도 배우고 나누는 삶이야말로 고은층의 활력과 자존을 지켜주는 길이다.

놀이의 인연은 파코골프의 신서귀삼연(新西歸三緣)이다

인생에서 놀이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건강과 우정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20세기 문화철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 1938)"에서 인간을 '놀이하는 존재'로 규정하면서 문화와 문명의 본질이 놀이 속에서 삶은 풍요로워지고 공동체는 더욱 단단해진다고 하였다.
산행 이후 필자는 파크골프에 입문했다. 처음에는 대구에서 이주한 팔순의 이 교수님 부부와 함께했으나 놀이 시간과 장소의 차이로 신 대표와 이 선생과 함께 ‘신서귀삼연’을 이루었다. 우리는 각자의 타법에 ‘달관, 정석, 매화’라는 이름을 붙이며 놀이 속에서도 개성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서귀삼연의 김 선생도 파크골프에 입문해 즐거움이 더욱 커졌다. 이는 고은층의 여가가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닌, 제2의 우정과 건강을 만드는 창조적 행위임을 보여준다.

장소의 인연은 길과 숲, 카페와 도서관이다

장소 또한 인연을 품는다. 서귀포에서 경험한 길과 숲, 카페와 도서관은 삶을 다채롭게 물들였다. 법환포구 해안길과 올레 7코스의 산책은 일상의 활력을 주었고, 치유의 숲 편백나무 숲과 근석농장의 농사일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 되었다. 소정방폭포에서의 물맞이는 자연의 힘을 체감하며 삶의 균형을 되찾게 했다. 또한 벙커하우스, 빈50, 하라케케 같은 카페는 사색과 만남의 장이 되었고, 아파트 거실의 글쓰기와 삼매봉 도서관의 독서는 정신농사를 짓는 작업이었다. “사람이 장소를 만들고, 장소는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이들 장소와의 인연은 자기 성찰과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시절인연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시절인연은 우연처럼 다가오지만, 결국은 스스로 빚어내는 것이다. 바른 태도, 성실한 습관, 상호 배려와 존중, 규칙 준수와 진실성은 좋은 인연의 충분조건이 된다. 반대로 서로 간의 이질성이 클 때는 과감히 인연을 거두어야 한다. 성경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고린도전서 10:23)라고 말씀한다. 인연 역시 분별과 지혜 속에서 선택해야 한다.
고은층은 결실의 시기이자 새로운 씨앗을 뿌리는 시기다. 고은층이 맺는 시절인연은 단순한 우정이 아니라 건강과 배움, 놀이와 성찰, 그리고 영적 성숙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백세시대에 품격 있는 삶을 여는 열쇠다.

사진1 대구대 이 교수님 부부와 서귀포 소재 개인 정원 탐방, 사진2 서귀삼연과 안덕계곡, 사진3,4 서귀복연의 중문 씨엘호텔 정원과 비자림 인근의 동화나라, 사진5 파크골프 입문 초기 칠십리 파크골프장, 사진6,7 신서귀삼연의 파크골프, 사진8 올레7코스의 데크길, 사진9 국립 송당목장의  숲길, 사진10,11 서귀포 황우지와 외돌개, 사진12 영실 산행, 사진13 근석농장의 자연농사, 사진14 서귀포 치유의 숲의 편백수림과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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