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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제주와 텃밭에서 배우는 생명의 지혜: 조류와 곤충이 전해주는 삶의 성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텃밭은 작은 생명의 교실이다

필자는 서귀포 생활 4년째로, 한림 금능에 텃밭농사를 하고 있다. 지난 시간 동안 경험한 바에 따르면, 제주의 텃밭은 단순히 채소와 과일을 기르는 땅만이 아니라, 다양한 생명체가 얽혀 살아가는 작은 생태 교실이라는 사실이다. 그간의 농사 속에서 필자는 자연의 지혜와 생명이 존재하는 방식, 그리고 그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꿩은 옥수수의 밑동를 베어 쓰러뜨리며 먹는 도구적 지혜를 보여주었고, 닭은 본능적으로 지렁이와 지네를 구분해 생존 전략을 실행하였다. 지네는 먹이를 움켜쥐고 집착하다가 결국 좌절하였으며, 근석농장의 작은 연못에서는 백로와 물고기들이 인내심의 경쟁을 펼쳤다. 또한 가끔 텃밭에서는 뱀과의 조우가 놀람과 성찰의 순간을 안겨주고, 토양 속 작은 벌레들은 위기 앞에서 삼십육계를 몸소 실천하였다.
공자는 말하였다.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배우되 성찰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이다. 텃밭에서 마주하는 생명들의 행위는 바로 배우고 생각하며 성찰하게 만드는 교본이다.
이 글은 근석농장의 텃밭 이야기들을 여섯 가지 범주로 나누어 공유하고자 한다.

첫째, 꿩이 가르쳐준 사회적 학습이다

첫해 옥수수 농사에서 꿩은 줄기를 밑동부터 잘라 쓰러뜨린 뒤 열매를 먹었다. 이는 본능을 넘어선 도구적 사고(an instrumental thingking)에 가까웠다. 이어 수박 농사에서는 첫해에 무관심하던 꿩이 둘째 해에는 구멍을 내어 차례로 맛을 본 뒤 단맛을 학습해 지속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습은 꿩이 단순한 본능적 존재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배우고 행동을 수정하는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의 주체임을 보여준다. 성경 잠언은 말한다. “지혜로운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잠언 1:5). 꿩의 행동은 바로 지혜롭게 듣고 배우는 태도와 닮아 있다.
속담에도 “경험은 최고의 스승이다”라는 말이 있다. 필자가 옥수수와 수박 농사를 포기했지만, 꿩을 통해 ‘혁신적 사고와 학습과 적응의 힘’이라는 더 큰 교훈을 얻었다.

둘째, 닭의 본능적 분별력이다

텃밭의 닭은 매일 알을 낳으며 기쁨을 주었다. 그러나 먹잇감을 대하는 태도에서 더 큰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지렁이는 곧장 삼켜버렸지만, 지네는 여러 차례 쪼아 기절시킨 후에야 먹었다. DNA에 새겨진 생존의 본능으로 ‘위험한 먹이’를 분별하고 절차를 밟는 것이다.
이 모습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처럼 “탁월함은 습관에서 비롯된다”는 진리를 떠올리게 한다. 성경 또한 “모든 것을 분별하되, 선한 것을 굳게 잡으라”(데살로니가전서 5:21) 라고 가르친다. 닭의 본능은 단순한 생존 본능이 아니라, 인간에게 ‘분별력과 신중함의 미덕’을 일깨워 주는 상징이었다.

셋째, 연못 위의 백로와 물고기의
인내심 경쟁이다


근석농장에는 용천수가 솟아나는 작은 연못이 있다. 그곳에는 몇 종의 물고기가 살고, 인근의 백로는 연못가에 조용히 서서 물 위를 주시한다. 물고기를 낚아채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는 백로의 모습과, 위협을 감지하고 정중동(靜中動)하는 물고기의 태도는 그 자체로 인내심의 경쟁이다.
필자가 신기하여 가까이 다가가면, 백로는 나의 존재 때문에 인내심을 접고 날아가 버린다. 자연 속 인내는 결국 외부 요인에 의해 깨지기도 한다. 이는 인간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인내란 고립된 행위만이 아니라, 상황과 관계 속에서 지켜질 수도, 무너질 수도 있는 역동적 덕목이라는 사실이다.

넷째, 지네의 집착과 본능적 회귀이다

습한 텃밭 고랑에서 먹이를 문 지네를 발견했다. 위협을 느낀 지네는 먹이를 버리고 달아났다가 다시 돌아와 먹이를 찾았다. 그러나 필자가 땅을 치자 혼비백산하여 사라졌다. 그 모습은 집착과 욕망의 덫을 보여주었다.
노자는 “지족자부(知足者富), 강지자유(强志者有)”라 했다. 족함을 아는 자가 부유하고, 뜻이 강한 자가 자유롭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네는 만족을 알지 못하고 집착하다 결국 위기를 맞이했다.
이는 인간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잠언은 “사람이 탐심으로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리리라”(잠언 15:27) 라고 경고한다. 욕망과 자비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나 성찰을 요구받는다.

다섯째, 텃밭에서 만난 뱀과의 불편한 동거이다

제주의 자연에는 뱀도 흔히 있다. 가끔 텃밭 일을 하다 보면 뱀과 맞닥뜨린다. 필자도 놀라고, 뱀도 놀란다. 한 번은 뱀이 황급히 지나가기에 흙을 삽으로 떠 던지자, 뱀이 멈춰 서서 나를 째려보았다. 마치 “왜 이래요?” 하고 원망하는 듯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서로 불편하다면 부딪히지 않고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말이다. 세상의 인심도 그러하다. 불필요한 갈등보다는 서로 거리를 두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더 큰 지혜다.

여섯째, 토양 속 작은 벌레들의 도망 철학이다

텃밭의 작은 벌레들은 하나같이 위기 앞에서 도망을 택했다. 이는 곧 “삼십육계 주위상(三十六計走爲上)”, 불리할 때는 일단 물러남이 최선이라는 지혜의 생생한 실천이었다. 약자의 생존 전략은 바로 ‘도망’이었다.
맹자의 사상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지혜로운 자는 때를 알고, 용감한 자는 그 자리를 지킨다. 이는 맹자의 “知其不可而爲之者, 仁也”라는 구절을 바탕으로 재해석한 뜻이다. 또한 성경 전도서 3장도 말한다.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를 선택할 때가 있다.” 곧 모든 일에는 물러설 때가 있고 맞설 때가 있음을 일깨운다. 작은 벌레들은 우리에게 물러섬이 결코 비겁함이 아니라 더 큰 생존과 지혜의 전략일 수 있음을 알려준다.

자연은 곧 삶의 거울이다

텃밭에서 마주한 꿩, 닭, 백로와 물고기, 지네, 뱀, 작은 벌레들의 행동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삶의 교훈이었다. 꿩은 혁신적 사고와 학습과 적응의 힘을, 닭은 본능 속 분별력을, 백로와 물고기는 인내심의 의미를, 지네는 집착의 한계를, 뱀은 갈등 회피의 지혜를, 작은 벌레들은 물러섬의 생존 전략을 알려주었다.
성경 욥기는 말한다.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너를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네게 말하리라”(욥기 12:7). 제주의 작은 텃밭은 농사의 현장을 넘어, 고은층으로 살아가는 필자에게 생명의 철학과 성찰의 거울을 제공하고 있다.
인생 또한 자연과 다르지 않다. 배우고, 분별하고, 인내하며, 집착을 경계하고,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며, 때로는 물러서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생존의 길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사진 1,2,3,4,5,6 한림 근석농장의 이모저모, 사진 7,8 농부 이성근의 농사와 수확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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