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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꿩과 배추가 전해 준 사색"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텃밭에 심어둔 무와 어린 배추에 대한 농심(農心)에서 글을 시작하다

서귀포에서 떠나 매달 셋째 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포항회의와 집안일로 대구에 머문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나갔다. 대구에서의 일상은 그 자체로 가족과 만나는 따뜻한 시간이면서도, 미뤄둔 여러 일들이 겹겹이 쌓여 마음을 분주하게 했다. 좋은 날씨 덕에 그동안 밀린 바깥일들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머릿속 한 구석에는 바로 한림 근석농장의 텃밭에 심어둔 무와 어린 배추의 안부였다.
농사는 늘 인간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씨를 뿌리고 모종을 내리꽂는 순간부터, 그것은 자연의 품에 맡겨진다. 햇살과 바람, 비와 구름, 그리고 땅속 벌레와 하늘의 새까지 모두가 내 농사의 동반자이자 변수가 된다.

꿩과 배추의 예상치 못한 동거의  
소식을 접하다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결국 필자의 서투른 농사일을 도와주는 양 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돌아온 대답은 허탈하면서도 어딘가 웃음을 자아내는 소식이었다.
“교수님, 월동배추는 다 꿩이 잡수셨습니다. 어린 배추가 워낙 단맛이 나서요.”
그 말에 잠시 멍해졌다. 모종을 사다 심은 어린 배추가 겨우  땅에 뿌리를 내려 어린잎을 키우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것이 꿩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다른 채소들은 어째 무사한데, 배추만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추석을 쇠고 돌아오면 다시 모종을 심고, 싹이 나지 않은 밭에는 새 씨를 뿌려야 한다는 현실적인 제언도 함께 전해졌다.
지난번 옥수수 농사에 이어 이번 배추까지 꿩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자연 앞에서 인간의 계산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농심은 강경과 극단, 그리고 공존의 세 갈래길이다

소식을 들은 나는 문득 여러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첫째, 강경하게 “방을 빼라”는 식으로 소리칠 것인가? 이는 일명 ‘트럼프식 해법’이다.
둘째, 극단적으로 꿩들을 몰아내거나 ‘골로 보낼’ 방법을 찾을 것인가?
셋째, 아니면 그저 모른 척하고 다른 채소로 바꿀 것인가?
필자의 생각은 첫째와 둘째 사이를 오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셋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예전에 팔공산 김 회장이 텃밭에서 벌레를 잡는 나를 보며, “왜 그렇게 수고하십니까? 형님도 먹고 벌레도 먹고, 서로 나눠 먹으면 좋을 텐데요.”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은 모른 척하고 참아내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것이 곧 공생의 방식이다. 학문적 용어로 표현하면 ‘소극적 조정(negative coordination)’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대구에 머물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방도를 찾고 있다. 꿩과의 관계는 단순한 해충 방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어떤 태도와 방식으로 공존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인의 조언은 공생의 지혜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서귀복연의 한 지인은 웃음 섞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꿩 입맛에 맞았나 봅니다. '보시' 잘 하셨습니다. 저도 예전에 텃밭에서 새들과 전쟁을 벌였는데 결국 ‘조정’으로 합의봤습니다. 그래, 나눠먹자 하고 행동했지요. 날개 달린 녀석들과는 이길 수 없습니다. 교수님 성품으로는 골로 보내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차라리 갈라먹고 공생하십시오.”
그 메시지를 읽으며 나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깊은 지혜가 담겨 있었다. 나눠먹는다는 것이야말로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독점적 소유와 생태적 공유의 경계이다

텃밭에서 벌어진 꿩과 배추의 사건은 단순히 수확의 손실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묻는 본질적 사건이다.
꿩의 입장에서 보면 배추는 생존을 위한 단순한 먹거리이다.
농부의 입장에서 보면 배추는 땀과 정성의 결실이다.
본질적 시선에서 보면, 양자는 모두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본능적 투쟁이다.

결국 문제는 ‘소유’와 ‘공유’의 경계에서 비롯된다. 농부는 땅을 경작하며 소유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자연은 그 모든 것을 공유의 영역으로 돌려놓는다. 꿩에게 배추를 빼앗긴 사건은 나에게 “과연 이 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전통의 지혜와 나눔의 도리는
생명의 선순환이다


고전은 늘 우리에게 길을 보여준다. 옛사람들은 “천지는 만물을 낳되,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쓰라고 준 것”이라 했다. 성경 또한 말한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아니하되,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신다.” (마태복음 6:26)
내가 애써 심은 배추를 꿩이 먹어버렸다는 사실은 인간적 시각에서는 손실일 수 있다. 그러나 신앙적, 본질적 시각에서 본다면 그것은 나눔의 또 다른 모습이다. 내가 심은 배추로 꿩도 살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생명의 선순환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나눔은 자연과 생물, 그리고  사람 모두에게 보편적  가치이다

모레는 가족과 함께 서울 작은 딸 집에 간다. 작은 딸은 지방에서 서울로 직장을 옮겨 아직 새로운 환경에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이번 추석은 가족 모두가 작은 힘을 보태어 작은 딸의 새로운 공간적응을 응원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친척과 지인을 만나고, 명절을 쇤 후 대구에 잠시 머문 뒤 서귀포로 돌아갈 예정이다.
텃밭에서 꿩과 배추를 두고 고민한 문제는 곧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이어진다. 가족이란 서로의 삶을 나누고 보듬으며 함께 살아가는 울타리다. 나눔은 비단 꿩과 배추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필요한 지혜다.

농부의 하루는 사색과 선택, 그리고 나눔의 지혜로 채워지고, 내일은 새로운 자연의 언어로 이어진다

오늘 하루는 농부의 손길과 꿩의 발자국이 교차한 날이었다. 배추 한 포기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다시 묻게 된 날이기도 했다. 텃밭은 단순히 채소를 기르는 땅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배우는 교실이다.
나는 오늘 꿩에게 빼앗긴 배추를 손실로 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자연이 나에게 던져준 메시지이고 ‘나눔과 공생의 본질’을 깨우쳐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농부의 하루는 씨앗과 수확으로만 기록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색과 선택, 그리고 나눔의 지혜로 채워진다. 오늘은 꿩과 배추가 내게 삶의 본질을 가르쳐 준 하루였고, 내일은 또 다른 자연의 언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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