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빽’이 다섯 개다: 나를 세우는 내면의 힘에 대한 논의"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인생은 길고 복잡한 여정이다
인생의 길은 결코 정돈된 질서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구나 좋은 시절만을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오해와 시련, 그리고 억울함 속에서 자신을 시험하는 시간이 더 많다.
살다 보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를 받기도 하고, 그것이 삶의 정돈된 질서를 흔들어 놓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놀라거나 당황하고, 때로는 마음 깊이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의 지혜는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드러난다. 많은 지인들이 충고를 구하고 조언을 요청하지만, 결국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안다.”는 단순한 자각이야말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의 시작이다.
필자는 칠십 평생의 긴 여정의 삶 속에서 다섯 가지 ‘빽’을 떠올리며 살아왔다. 흔히 ‘빽’이라 하면 세속적인 인맥이나 권력의 배경을 의미하지만, 필자가 말하는 다섯 빽은 그와는 다르다. 세상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를 바로 세우게 해주는, 내면의 굳건한 지지자들이다.
이 글은 ‘나는 빽이 다섯 개다’라는 말속에 담긴 나를 세우는 내면의 힘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첫 번째 빽은 나 자신이다. 정직한 삶은 내면의 중추이다.
인생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정직하게 살아온 세월은 어떤 오해나 비난에도 나를 세우는 내면의 중추이다. 정직한 삶은 겉으로는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가장 멀리 가는 길이다.
철학자 칸트에게 정직은 단순한 덕목이 아니라, 도덕적 법적 의무의 근본이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심과 양심을 따라 살아간다면, 언젠가 세상은 그 진정성을 알아본다.
삶의 최종 평가자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필자는 늘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오늘도 내 양심에 떳떳한가?”
이 물음이야말로 첫 번째 빽,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지키는 힘이다.
두 번째 빽은 가정이다. 가정은 나를 지켜주는 신뢰의 울타리이다.
가정은 인생의 중심을 잡아주는 균형추이자, 태풍 속의 안전한 항구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돌아올 때, 나를 믿어주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는다.
가정의 신뢰는 말이 아니라 조용한 일상의 배려 속에서 자란다. 아침의 따뜻한 인사, 하루의 수고를 함께 나누는 대화, 서로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가 내면의 평화를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된다.
가정이 흔들리면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해도 마음이 불안하다. 반대로, 가정이 나를 믿어준다면 세상의 어떤 비바람도 두렵지 않다.
가정은 믿음의 공동체이며, 두 번째 빽은 바로 그 믿음이다.
세 번째 빽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늘 내 안에 계신 분이시다.
살다 보면 인간의 한계를 절감할 때가 많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받지 못하고, 아무리 설명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필자는 조용히 기도한다.
“하나님, 다 보고 계시지요? 제 진심을 아시지요?”
신앙은 피난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중심을 지키는 힘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는 믿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위로다.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상심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도 희망을 품게 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길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가 그의 길을 정하시느니라.” (잠언 20:24)
인생의 길이 내 뜻과 다르게 흘러가더라도, 그 끝에는 분명한 뜻이 있다.
필자의 세 번째 빽은 바로 그 뜻을 신뢰하는 신앙이다.
네 번째 빽은 부모님의 가르침이다. 부모님의 가르침은 내면의 나침반이다.
부모님이 생전에 보여주신 말과 행동은 여전히 필자의 마음 한켠에 살아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들려주신 말씀, 삶으로 보여주신 태도는 시간이 흘러도 판단의 기준이 되고 행동의 준거가 된다.
부모님은 늘 말씀하셨다.
“정직하라. 성실하라. 남에게 심하게 대하지 말라.”
이 단순한 말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다. 사람은 결국 자기 뿌리로부터 힘을 얻는다.
부모님은 나를 세상에 낳아주신 존재일 뿐 아니라, 내 영혼의 뿌리를 심어주신 분이다.
그 가르침이 있기에 필자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다.
네 번째 빽은 혈연을 넘어선 정신적 유산, 부모님의 삶에서 이어받은 도덕적 힘이다.
다섯 번째 빽은 사회정의다. 사회정의는 결국에 하나로 모이게 하는 진리의 힘이다.
때로 세상이 불공정하게 보일 때가 있다. 진실은 묻히고, 정의는 더디게 움직이는 듯하다.
그러나 역사와 사회의 긴 흐름 속에서 보면, 결국 정의는 살아 있다.
정의는 일시적으로 보이지 않아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진리는 잠시 밀릴 수 있으나,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분노보다 믿음을 택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결국은 바른 길로 수렴된다는 믿음이 다섯 번째 빽이다.
이 믿음이 있기에 필자는 여전히 세상을 희망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세상이 필자를 흔들 때, 필자는 사회정의의 힘으로 다시 중심을 잡는다.
다섯 개의 빽은 나를 지탱하는 다섯 기둥이다.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지지 속에 있다.
나 자신, 가정, 하나님, 부모님의 가르침, 그리고 사회정의라는 다섯 빽은 외부의 권력이나 인맥이 아닌, 내면의 신뢰와 도덕적 힘이다.
이 다섯 가지가 굳건히 설 때 우리는 세상의 오해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가족에게 믿음을 주며, 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부모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으며, 사회정의의 편에 서는 것이 진정한 ‘우리 모두의 인생에서 든든한 빽’이다.
오늘도 필자는 다섯 빽을 가슴에 품고 다짐한다.
“나는 빽이 다섯 개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 주눅 들지 말고 힘차게 살자.”
[독자평]
1)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가족에게 믿음을 주며, 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부모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으며, 사회정의의 편에 서는 것이 진정한 ‘우리 모두의 인생에서 든든한 빽’.
이 부분에 밑줄 치면서, 모두가 그리 산다면 사바세상은 샹그릴라 되련만요./ 서귀복연의 무량 선생
2) 오라버니의 글을 읽으며 깊이 공감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빽’이라는 말에 마음이 크게 울렸습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우리 삶을 움직이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지요. 또한 주님께서 “보이지 않는 나를 믿는 것보다 보이는 부모를 섬기라”고 하신 말씀처럼, 오라버니는 살아계실 때 부모님께 정성껏 편지를 드리고 효도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 따뜻한 기억이 글 속에서도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신앙과 효심이 함께 녹아 있는 글,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진심의 칼럼이었습니다./ 동생 수근 권사
3) 인간은 숱한 빽 그라운드를 이용하고 싶어 한다. 5개의 빽 중에 자신을 사랑하는 믿음이 제일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네요./ 글돗 선생
4) “저는 오로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내 인생 네비게이션" 중에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상치 선생
[참고자료]
1) 사바세계와 샹그릴라
'사바세계'는 고통과 고뇌를 참고 견뎌야 하는' 우리 현실 세계를 말하며, '샹그릴라(Shangri-La)'는 실제 지명이 아니라 영국 작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1933)"에서 처음 등장한 지상낙원 또는 이상향(理想鄕)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바세계는 번뇌와 윤회, 그리고 각종 고통이 있는 곳인 반면, 샹그릴라는 평화롭고 영원한 젊음이 있는 이상적인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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