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사색 속에 남은 일반 대학원생들과의 추억은 사제동행과 교학상장의 길이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일반 대학원생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회상하다
나는 38년 동안 영남대 교수직에 몸담으며 수많은 일반 대학원생(이하 대학원생)들과 인연을 맺었다.
나는 재직기간 동안 대학원 행정학 박사 21명, 박사과정 수료 9명, 행정학 석사 21명, 석사과정 수료 4명을 지도하였다.
나와 동행한 대학원생들은 다양한 분야의 전공과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공공의 가치를 지향하는 직업을 찾거나 이미 이들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나는 동행하는 대학원생들의 숫자가 많아짐에 따라, ‘영남대 지역개발연구회’라는 논문연구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였다. 지금은 이 연구회의 회원이 수십 명에 이른다.
이 글은 필자의 인생사색 속에 남은 대학원생들과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학원은 학부와 달리 개별 대학원생은 지도교수를 선정하고 학위논문을 작성해야 학위취득과 졸업장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개인차는 있지만 대학원생과 지도교수는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 필자는 이를 두고 대학원의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는 사제동행과 교학상장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지도에 임하였다.
필자에게 대학원생과의 만남은 강의실에서의 만남도 소중했지만,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석·박사 과정에서 함께 논문을 준비하며 보냈던 고단하면서도 빛나는 시간들이었다. 그 속에는 성취의 기쁨도 있었고, 중도에 그친 아쉬움도 있었다. 정년을 맞은 지 어느덧 칠년여가 흐른 지금, 문득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알렉산더 스미스 의 “추억이란 인간의 진정한 재산이다”라는 말처럼, 그날의 이야기는 나를 지탱해준 또 하나의 기둥이었다.
매주 토요일 이른 아침 논문연구는 교학상장의 추억이다
매주 토요일 이른 아침, 집 근처 카페 문이 열리자마자 나와 대학원생들이 모였다. 전업 조교가 집사를 맡고, 참여 대학원생들은 철에 따라 삶은 고구마와 감자를 돌아가며 준비해왔다. 따뜻한 차와 함께 간편한 아침을 나눈 후, 나는 짧게 강의를 하고 대학원생들이 각자 준비한 논문 발표를 이어갔다. 발표 순서는 정해져 있었지만 필요에 따라 순서를 조정할 수 있었고, 서로 배려하며 이어갔던 시간이었다. 아침 8시에 시작하고 오전 11시에 마치는 규칙을 반드시 지키도록 하였다.
그 모임에 꾸준히 참석한 이들은 결국 논문을 완성했고, 학위를 받았다. “쇠는 뜨거울 때 두드려야 한다”는 속담처럼, 학문은 순간의 열정을 놓치지 않고 이어갈 때 꽃을 피운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대학원생들만이 아니라 내게도 배움의 자리였다.
함께 만든 책 출판은 사제동행의 또 다른 성취이다
나는 매주 토요일 이른 아침의 집단논문연구모임에 이어 대학원생들과 집단학습의 일환으로 공통분모가 많고 시사성 있는 전공 관련 서적을 공동 집필하는데도 중점을 두었다. 녹색성장과 지역경영,
기후변화와 녹색성장,
녹색경영론, 최신 지역개발론, 현대 부동산의 이해, 한국의 지방재정 등의 책들이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내가 책의 주제 선정과 목차를 구성하고, 출판기획과 출판사를 섭외하였다. 대학원생들은 목차를 나누어 원고 집필을 맡았으며, 초고가 작성되면 발표와 토론을 통해 다듬어갔다. 책이 완성되면, 그 이름 아래에 나와 함께 제자들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졌다.
책을 쓰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길에서 학생들은 글쓰기의 힘을 익혔고, 나는 협업의 가치를 다시금 확인했다. “여럿이 힘을 합하면 성을 쌓는다(衆志成城)”는 고사처럼,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성취였다.
사제동행에서 나름 견지한 원칙과 자세이다
나는 대학원생들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한 학기에 두 번 이상은 사용금지가 원칙이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듯,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습관”이 된다. 학문은 성실함과 자기 절제 위에 세워지는 법이다. 작은 태도의 반복이 결국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나름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직은 학문과 사람됨의
근본이다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이다. 학문은 발견의 논리(the logic of discovery)를
따라야 하고, 발견의 논리는 정당화의 논리(the logic of justfication)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두 가지 활동에서 모든 연구자에게 정직이 요구된다.
사람 사는 세상은 때로는 서로 속고 속이며 굴러간다. 그러나 대학의 연구자 만큼은 예외여야 한다. 성경에도 “거짓을 버리고 각각 참된 것을 말하라”(에베소서 4:25)고 하였다.
나는 대학원생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 각자는 인간적으로 훌륭한 장점과 잘못된 단점을 함께 가진다. 그러나 학문만큼은 정직이 최우선의 가치이다. 거짓으로 꾸미는 연구는 결국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이는 가혹한 말 같지만, 그만큼 연구자의 정직은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었다.
유학생들과의 작은 에피소드이다
하나는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단호한 경고이다
한 남자 유학생은 여러 차례 결강을 거듭했다. 변명은 늘 다양했지만, 사실은 거짓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에게 사유서를 쓰게 하고 단호히 경고했다. 하지만 결코 미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교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나쁜 습관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교육은 벌주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사람 자체는 존중하는 것이 교육자의 자세임을 다시금 확인한 순간이었다.
둘은 외국인 여학생이 보여준 새로운 시각이다
또 다른 외국인 여학생은 대학 부설 농장 텃밭에서 내게 특별한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남자 대학원생과 텃밭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서 물을 길어다 기르는 채소에 물을 주느라 힘들었는데, 그녀는 농장 주변에 있는 호스를 찾아 수도에 연결해 단숨에 물을 줄 수 있도록 했다. 그 단순한 발상의 전환이 모든 수고를 덜어주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다른 시각이 새로운 길을 연다.” 다양성이 곧 창의성의 뿌리였던 것이다. 그녀의 행동은 학문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정해진 틀에만 갇히지 않고, 낯선 시각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새로운 연구의 길이 열리는 법이다.
대학원의 지도교수와 대학원생과의 관계는 사제동행과 교학상장의 길이다
돌아보면 대학원은 내게도 또 하나의 학교였다. 나는 가르쳤지만 동시에 배웠다. “가르치는 자는 두 번 배운다”는 라틴 격언이 있다. 대학원생들과 함께한 시간이 바로 그 증거였다.
정년 후 시간이 흘러도 그날의 추억은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여전히 따뜻하다. 학문은 지식을 쌓는 일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나의 지난 삶을 돌아볼 때, 가장 값진 보람은 지식보다도 제자들과 함께 웃고 함께 머리를 맞댔던 순간에 있었다.
“교육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나는 그 믿음으로 살았다. 이제는 그 믿음을 기록으로 남겨, 또 다른 세대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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