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은층의 벗과 팔복(八福)에 대한 논의: 통(通)하는 사람, 함께 걷는 사람, 그리고 마음이 닿는 사람..."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자연과 신, 그리고 고은층의 벗에 대하여
인생의 봄과 여름이 지나고, 가을과 겨울이 오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관계의 정리기(整理期)’를 맞이한다. 젊은 날의 친구들은 흩어지고, 일로 얽힌 인연들은 사라지며, 남는 것은 마음이 통하는 몇 사람뿐이다.
이 시기의 인간관계를 우리는 ‘고은층(高恩層)의 벗’이라 부를 수 있다. 벗은 단순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나의 말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나누며, 삶의 방향을 함께 맞추는 존재다.
결국 고은층의 삶은 ‘누구와 함께하느냐’, 그리고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그 온도와 빛깔이 달라진다. 특히 신앙과 믿음의 뿌리를 가진 벗은 고은층의 영혼을 지탱하는 큰 기둥이 된다.
필자는 고은층이 지녀야 할 여덟 가지 복(福)을 벗의 유형으로 정리해 ‘팔복(八福)’이라 이름 붙였다. 그 마지막 복은 바로 신앙과 생명의 조화를 이루는 자연복(自然福), 곧 생명복(生命福)이다.
이 글에서는 팔복에 해당하는 벗의 유형과 그들이 주는 삶의 의미, 그리고 인복(人福)의 본질을 공유하고자 한다.
대화가 통(通)하는 벗은 말벗이다
고은층의 첫 번째 벗은 말벗, 즉 말이 통하는 사람이다.
말은 마음의 통로이며, 공감은 관계의 산소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호기심과 관심의 결이 맞을 때 관계는 오래간다.
“말이 통해야 마음이 통한다.”
말벗은 단순한 대화 상대가 아니라, 지적 정서적 파장을 공유하는 삶의 동반자다.
같은 주파수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인생 후반의 복(福)을 받은 존재다.
함께 걷는 벗은 길벗이다
두 번째 벗은 길벗이다.
길벗은 함께 길을 걷는 사람, 곧 삶의 동행자다.
고은층에게 길벗은 단순히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삶의 리듬과 속도를 함께 맞추는 존재다. 누군가는 새벽의 오름길을, 누군가는 해안의 산책로를, 또 누군가는 사계절의 농장길을 함께 걷는다.
그 길에서 나누는 침묵과 호흡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걸음의 방향이 같다는 것은 곧 인생의 방향이 같다는 뜻이다.
마음이 닿는 벗은 감정벗이다
세 번째 벗은 감정벗, 즉 묵언 속에서도 통하는 친구다.
말이 필요 없는 관계, 눈빛과 침묵만으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정(情)의 온도를 유지시켜 주며, 외로움과 불안을 덜어주는 인생의 등불이다.
감정 벗은 세월이 쌓여 만들어진다.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공유하며 ‘함께 울고 웃는 사람’으로 성숙해 간다.
고은층에게 감정 벗은 영혼의 쉼터이며,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사람이다.
배우고 가르치는 벗은 학(學) 벗이다
네 번째 벗은 배움의 벗, 즉 학 벗이다.
고은층의 삶은 여전히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다.
배움은 단순히 지식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지혜를 교환하며 정신을 젊게 유지하는 행위다. 한쪽은 동영상 편집을 가르치고, 다른 한쪽은 건강한 생활태도를 가르친다. 또 다른 이는 세상 돌아가는 상식을 알려준다. 이러한 주고받음 속에서 존중과 배려가 자란다.
학 벗은 “배움의 기쁨을 나누는 스승이자 제자”이며, 그 자체로 삶의 활력을 선물하는 관계다.
취향을 나누는 벗은 취미벗이다
다섯 번째 벗은 취미벗이다.
고은층에게 취미는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삶의 연장선이며, 그 취향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는 인생의 동반자다.
함께 사진을 찍고, 차를 마시며, 음악회나 전시를 찾는 일은 그 자체로 정신의 교류이자 삶의 문화다.
취미 벗은 나와 감성의 주파수가 같은 사람, 삶의 속도와 리듬이 닮은 사람이다. 그와 함께할 때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마음은 젊어진다.
맛을 나누는 벗은 먹벗이다
여섯 번째 벗은 먹벗이다.
먹는 일은 단순한 생존 행위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따뜻한 언어다.
고은층에게 한 끼의 식사는 추억을 나누고 마음을 교류하는 시간이다. 좋은 음식을 함께 즐기며 “이 맛이 바로 인생의 맛이야.” 하고 웃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는 이미 당신의 인복(人福)이다.
먹벗은 입맛이 통하고, 맛의 기억을 함께 쌓는 사람이다. 같은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은 결국 삶의 감각이 닮았다는 뜻이다.
가치로 이어지는 가치 벗은 지향의 일치이다
일곱 번째 벗은 가치벗, 즉 인생관과 지향이 같은 사람이다.
돈보다 사람을, 경쟁보다 평화를, 소유보다 존재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런 벗은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편하고, 서로의 존재가 서로를 고양(高揚)시킨다. 고은층에게는 이제 ‘같이 늙어갈 벗’보다 ‘같이 성숙해갈 벗’이 필요하다. 그는 나의 인생 방향을 함께 조율해 주는 정신적 나침반이다.
자연과 신을 벗 삼는 삶은 생명벗이다
마지막 여덟 번째 벗은 신과 자연의 생명벗이다.
이 벗은 인간의 관계를 넘어, 존재 전체와의 관계를 의미한다.
하늘과 바다, 새와 바람, 풀과 나무의 교감 속에서 우리는 신의 존재를 느낀다. “자연은 신(神)이고, 신은 곧 자연이다.”
이 믿음 안에서 고은층은 자신을 낮추고 생명을 존중하며, 모든 존재와의 조화를 삶의 궁극적 가치로 삼는다.
자연의 빛과 바람, 새벽의 물소리 속에서 우리는 신의 언어를 듣는다. 그 순간 인간의 외로움은 사라지고, 영혼은 평화로 가득 찬다. 이러한 신앙적 자연관은 고은층에게 ‘삶의 믿음’을 되살리는 힘이다. 그 믿음은 종교의 형식을 넘어선 신앙의 본질이며, 자연 속에서 신의 숨결을 느끼는 삶 자체가 곧 천복(天福)이다.
인복(人福)은 고은층의 가장 큰 자산이다
고은층의 행복은 결국 사람과 신,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인복은 하늘의 뜻과 자연의 조화를 깨달은 사람에게 주어진다.
일곱 벗을 지닌 이는 천하의 대복(大福)을 얻은 사람이며,
여덟 벗, 곧 생명과 신앙의 벗을 더한 이는 천복(天福)을 완성한 사람이다. 다섯 내지 여섯 벗을 가진 사람은 넉넉한 중복(中福)이고, 셋 내지 네 벗을 가진 사람은 따뜻한 소복(小福)이며, 단 하나라도 진정한 벗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복된 인생이라 할 수 있다.
벗은 운(運)이 아니라 가꾸는 인연이며, 신앙은 운명(運命)을 바꾸는 힘이다. 고은층의 삶은 그 인연과 믿음을 이어가는 예술이다. 그 복은 결국 함께 살아가는 힘, 자연과 신과 더불어 사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오늘 하루, 한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자연의 빛을 바라보며 감사의 기도를 드려보자. 그 순간, 당신 안의 신은 미소 지으며 이렇게 속삭일 것이다.
“당신의 인복이 곧 신의 축복이다.”
[독자 한 줄 평]
이박사는 지나온 길목에
인복이란 손길이 곳곳에 향기(香내:니오이)를 남겨 놓아 기억길을 찾아가기 좋을 것이요.
博士は通りかかった道に
人福という手がいたるところに香り(ニオイ) を残しておいて記憶の道を探していくのが良いでしょう。/ 글돗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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