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주 부석사의 가을: 부석(浮石)의 전설과 무량수전(無量壽殿)의 숨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가을에 부석으로 가는 길은 마음을 비우는 계절의 여정이다
가을은 인간의 마음을 비우고 본질로 돌아가게 하는 계절의 여정이다. 올해도 필자는 가족과 여동생 부부와 함께 영주 부석사를 찾았다. 소백산 자락의 단풍이 불타오르는 이때, 부석사의 가을은 유난히 고요하면서도 장엄하다.
돌길 위로 흩날리는 낙엽, 산사의 고요, 그 사이를 감도는 바람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을 마주한다.
부석사는 필자 가족이 유독 사랑하는 사찰이다. 여러 번 다시 찾은 이유는 단지 경관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전설과 상징, 건축과 자연, 인간과 신앙이 서로 겹쳐지는 깊은 사색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방문에서 필자는 다섯 장면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이들은 부석사의 정신을 압축한 보물이며, 한국 불교건축의 미학과 인간 신앙의 깊이를 함께 보여주는 상징의 자리였다.
떠 있는 돌의 부석(浮石)은 전설과 믿음의 근원이다
'부석사(浮石寺)'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떠 있는 돌(浮石)’에서 유래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의상대사(義湘大師)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하던 중국 여인 선묘(善妙)가 용으로 변해 대사의 귀국길을 도왔다고 한다. 그녀는 바다를 건너 한국까지 따라와 이곳 부석사 터에서 거대한 바위를 들어 올려 절 창건을 도왔다고 전해진다. 이 바위가 바로 ‘부석(浮石)’이며, 절의 이름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무량수전 아래에는 땅에 닿지 않은 듯 떠 있는 바위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 틈새에 공간을 보며 경탄한다. 그것은 단순한 지질현상이 아니라 신화와 현실의 경계이자,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 것'의 상징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道)가 그것들을 낳고, 덕(德)이 그것들을 길러주며, 형체가 그것들에 생겨나고, 기세가 그것들을 이루게 한다.”라고 했다. 또한
"청정경"에서 “큰 도는 형체가 없으며 천지를 생육하고, 큰 도는 이름이 없으며 만물을 길러낸다.”라고 했다.
부석의 존재는 바로 그 무형(無形)의 진리를 깨닫게 한다.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돌이 아니라, 떠 있는 마음을 상징한다.
무량수전(無量壽殿)은 비대칭 속의 조화 즉, 자연과 공존의 미학이다
부석사의 중심은 단연 무량수전이다. 676년 창건된 이래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지만, 현재의 건물은 고려 중기의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무량수(無量壽)’는 곧 아미타불을 의미하며, 한량없는 생명과 자비를 상징한다. 무량수전의 가장 큰 특징은 불상이 정면이 아닌 측면 배치에 있다는 점이다. 법당의 축이 약간 비껴 있어, 방문객이 정면에서 바라보면 불상이 약간 측면으로 마주한다.
이 비대칭의 조화는 인간 중심의 시각이 아닌, 자연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부석사의 건축은 인간의 욕망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오히려 바람과 햇살, 산세의 흐름에 순응하여 설계되었다.
법당 안에 서면 불상의 자비보다 먼저 산빛의 고요가 마음을 감싼다. 이가 곧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신앙'이며, 부석사가 천년을 견뎌온 이유가 된다.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세속과 성역이 만나는 마당이다
‘야단법석’의 어원은 법당에 자리가 부족해 바깥에 깐 자리에서 설법하던 데서 유래하였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이는 마당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무량수전 앞마당은 마치 그 옛 야단법석을 방불케 한다. 석등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 마당은 세속과 성역의 경계가 사라지는 공간이다. 신도와 탐방자, 구도자와 사진작가가 함께 서서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시선의 끝에는 모두 같은 ‘빛’이 있다.
필자는 비록 석등의 불빛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이는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마음을 밝히는 자비의 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노을이 기울며 석등 위에 마지막 햇살이 닿는 순간은 세속의 소음은 멎고 남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그 침묵은 설법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전통 기와 서까래 속의 불상은 숨은 미학의 발견이다
부석사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신비가 있다.
특정한 지점에서 바라보면, 부속 건물의 전통 기와와 서까래가 마치 불상의 형상처럼 보인다.
필자는 오래전 해설사의 안내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모습은 인간의 의도라기보다, 우연이 빚어낸 자연의 예술이라 할 만하다.
우리가 서까래를 불상의 윤곽으로 본다는 것은 곧 ‘공(空)’의 진리를 시각으로 체험하는 일이다.
공(空)이란 ‘없음’이 아니라 ‘고정되지 않음’을 뜻한다.
형태는 있으나 마음은 떠 있고, 보는 이는 그 안에서 무심(無心)의 미학을 깨닫는다.
필자는 그 장면 앞에서 한참 동안 무사유의 시간을 가졌다.
인간의 예술은 자연의 리듬과 만날 때, 그곳에서 비로소 '경이스러운 비대칭의 아름다움'이 완성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부석사에서 바라보는 소백산의 병풍은 자연이 만든 천연의 법당이다
무량수전 앞뜰에서 바라보는 소백산의 능선은 가히 천연의 병풍이다. 가을의 붉은 단풍과 산등성이의 곡선은 불교건축의 선과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부석사의 모든 건물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건축이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이 곧 법당이다.
소백산의 산빛은 불상의 미소를 닮았고, 바람은 목탁처럼 리듬을 울린다. 산은 스승이고, 바람은 경전이다.
이곳에 서면 인간의 시선이 낮아지고, 마음은 투명해진다.
부석사에서 배우는 것은 바로 “자연은 곧 도(道)”라는 깨달음이다.
공자는 “지자요수(智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했다.
지혜로운 이는 흐르는 물 속에서 도를 찾고, 어진 이는 산의 고요 속에서 마음을 닦는다. 부석사는 그 두 세계가 교차하는 자리다.
떠 있는 부석은 곧 깨어 있는 마음이다
부석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시간과 믿음이 떠 있는 공간이다.
의상대사의 화엄사상은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원융(圓融)의 세계를 의미한다.
부석사의 건축과 자연은 그 사상을 그대로 형상화한 결과이다.
가을의 부석사는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한다. 단풍은 떨어지고 바람은 지나가지만, 그 속에 머무는 마음은 더욱 충만하다.
떠 있는 돌처럼 흔들리지 않되, 공중의 돌처럼 자유롭다.
그것이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고은층의 마음이기도 하다.
떠 있는 부석은 곧 깨어 있는 마음이다. 세상의 무게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허공 속에서도 존재의 의미를 지키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자 인간 존재의 자세이다.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부석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르침은 결국 한 가지다.
“보이는 것은 돌이지만, 떠 있는 것은 마음이다.”
[부석사 가을 여정의 다섯 가지 요지]
• 서: 가을에 부석으로 가는 길은 마음을 비우는 계절의 여정이다.
• 1: 떠 있는 돌, 부석(浮石)은 전설과 믿음의 근원이다.
• 2: 무량수전은 비대칭 속의 조화이다.
• 3: 야단법석은 모두가 머무는 빛의 마당이다.
• 4: 서까래 속 불상은 숨은 미학과 우연의 깨달음이다.
• 5:소백산 병풍은 자연이 만든 법당이다.
• 결: 떠 있는 부석은 곧 깨어 있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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