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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나무가 가르쳐준 세상살이의 이치: 파치의 교훈"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제주 감귤밭에서 만난 ‘파치’의 의미

제주 감귤 농가에서는 흠이 있거나 상품성이 떨어지는 귤을 ‘파치(破치)1)’라고 부른다. 일전에
감귤 농사를 짓는 지인의  밭에서 현장을 경험하며 알게 된 ‘파치’는 단순히 못생기거나 작고 상처 난 귤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전체 품질과 신뢰를 해칠 수 있는 작은 흠을 제거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주에서는 지름이 49㎜ 미만이거나 70㎜ 이상이거나, 외형상 흠이 있는 감귤은 관련 기준에 따라 유통이 제한되므로 농부들은 수확 전 이를 솎아낸다. 파치는 대개 맛에는 이상이 없지만 상품의 신뢰성과 밭 전체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제거되며, 농부들은 “파치를 그대로 두면 전체 값어치가 내려간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경험은 적은 결점 하나도 전체의 신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감귤밭의 파치가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감귤의 파치와 다른 과수의 유사 사례

파치가 발생하는 원인은 태풍·폭염·강풍과 같은 기상 요인, 영양 불균형, 병충해, 생리장애, 그리고 전정 부족 등 다양한 요소에서 비롯되며, 이는 감귤뿐 아니라 사과의 흠과, 포도의 얼룩과 알 터짐, 배의 착색 불균형처럼 다른 과수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과실의 종류와 흠결의 이름은 다르지만, 작은 흠이 전체 상품성과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농부들이 수확 과정에서 이런 흠과를 꾸준히 제거하는 이유는 완벽한 외형을 추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품질을 유지하고 신뢰를 지켜내기 위한 책임 있는 관리 때문이다. 자연은 항상 같은 방식으로 교훈을 준다. 작은 문제를 외면하면 결국 전체가 훼손된다.

세상살이 속의 ‘파치 인간형’

파치는 자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에도 존재하며, 이는 외형이 아니라 태도·인성·책임의 부족으로 나타난다. 공동체의 흐름을 깨뜨리는 무책임한 사람, 욕심과 부정으로 신뢰를 훼손하는 행동, 타인을 무심하게 상처 주는 말, 기본 윤리와 염치를 잃은 태도는 사회를 병들게 하는 ‘사회적 파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타인의 결함을 지적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안에 숨어 사는 파치를 먼저 알아내고 털어내는 일이다. 감귤농부가 파치를 찾아 솎아내듯, 인간도 자기 성찰을 통해 부족함을 다듬을 때 비로소 인격의 품격을 세울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이 공동체의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 된다.

파치의 교훈과 삶의 해결 지혜

파치를 솎아내는 일은 단순한 농작업을 넘어 삶의 경영을 나타낸다. 작은 결함이 공동체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듯, 문제를 방치할수록 부패는 자라난다. 그러므로 문제는 작을 때 다루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예방이며, 이는 외부시선이 아니라 스스로의 양심에 기반한 자정 능력과 맞닿아 있다. 공자가 말한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따른다(德不孤 必有隣)”는 가르침은, 내면이 바로 선 사람과 공동체에는 자연스럽게 신뢰와 관계가 모인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감귤에서 파치가 영양 불균형과 환경 스트레스로 발생하듯, 인간도 일과 쉼, 욕심과 절제, 물질과 정신의 균형을 잃으면 삶의 품격이 흔들리기 때문에 균형은 인격을 지탱하는 중심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 안의 파치를 털어내며 살아가자

결국 파치는 제거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성찰을 요청하는 질문이며 경고음이다. 감귤나무는 말없이 묻는다.
“당신의 삶에는 어떤 파치가 살아 있는가?”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작은 결점이라도 하나씩 털어낼 때,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가꾸는 농부로 성장하고, 삶의 품격은 이러한 꾸준한 성찰과 자기 관리 속에서 서서히 익어 간다. 감귤나무는 말없이 알려준다. 좋은 결실은 우연히 얻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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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치’는 원래 ‘깨어지거나 흠이 나서 못 쓰게 된 물건’을 뜻하는 고유어이며, 여기서는 뜻을 설명하기 위해 破(깨뜨릴 파)에 ‘치’를 붙인 비공식 한자 표기(破치)를 사용하였다.

[요약]
이 글은 제주 감귤밭에서 경험한 파치를 통해 작은 흠결이 전체 품질과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삶의 원리를 성찰한 칼럼이다. 과수에서 결점과를 제거해 전체 품질을 지키듯, 인간 사회에서도 무책임·탐욕·윤리의 결여 등은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회적 파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타인의 결함이 아니라 자기 안의 파치를 스스로 알아내고 털어내는 자기 성찰이며, 이것이 삶의 품격을 지키고 공동체 신뢰를 세우는 길이다. 공자의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의 가르침처럼 내면이 바로 선 사람에게 신뢰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사진. 제주 한림 금능 근석농장에서 농사 중인 이성근 농부. 2025.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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