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합리적 사고가 여는 AI시대 인간사회의 미래"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왜 지금 초합리성이 중요한가? AI시대에 인간 지성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AI기술이 가져온 변화는 단순한 기술혁신이 아니라 인간 지성의 구조적 전환이다. 계산과 속도, 그리고정확성의 영역에서는 이미 인간은 알고리즘과 기계와 경쟁하기 어렵고, GPT·딥러닝·생성형 AI는 논리적 추론과 언어 패턴과 인식, 전통적 문제 해결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고 있다. 하이데거가 “기술은 세계를 드러내는 방식”(Heidegger, 1954)이라 했지만, 동시에 기술이 세계를 단선화하고 계산 가능한 체계로 환원하는 순간에 인간적 판단의 핵심은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그 핵심이 바로 초합리성(trans-rationality)이다. 초합리성은 단순히 비합리성이나 감정적 직관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논리를 넘어서는 더 큰 논리, 계산을 넘어선 판단의 지평, 데이터 바깥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종합적 철학적 가치지향적 지성이다.
아마르티아 센이 ‘가치 기반 합리성(value rationality)’이라고 부른 판단의 깊이(Sen, 2009), 토플러가 제3물결 이후의 ‘초(超)사회’를 예견하며 기술을 넘어선 새로운 인간질서를 전망했던 논의, 그리고 필자가 최근 강조해온 ‘초인류사회’, ‘초(超) 감수성’, ‘AI시대 여섯 인간형’의 개념 모두가 초합리적 지성과 긴밀히 연결된다.
초연결과 초복합, 그리고 초속도로 대표되는 현대는 단일한 사고로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 세계이며, 인간은 알고리즘적 합리성(rationality)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사고 모델을 결합한 초합리적 판단을 통해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기술이 넘지 못하는 인간의 경계, 그것이 바로 초합리성의 여섯 가지 형태로 드러난다.
초합리적 사고의 여섯 가지 유형과 AI시대의 의미
통합적 사고는 복합세계를 하나의 ‘전체’로 보는 시선이다
통합적 사고는 사회·기술·문화·윤리·생태 등 서로 분리된 영역을 하나의 구조적 전체로 결합하여 이해하는 능력이다. 이는 AI가 제공하는 분석결과들을 의미 지도로 엮어내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는 지성이다.
현대 도시정책처럼 경제·환경·공동체·문화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하는 영역에서 통합적 사고는 단선적 분석을 넘어서 전체 구조를 조망하게 한다. 드러커가 “복잡성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문제 정의”라고 강조한 통찰(Drucker, 1999)은 바로 통합적 사고의 본질이다.
AI는 계산된 요소를 분해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다시 의미 체계로 통합할 수 있다. 이 능력이 AI시대의 첫 번째 초합리성이다.
맥락적 사고는 같은 사실도 다르게 읽어내는 인간의 감수성이다
맥락적 사고는 동일한 사실도 시간·장소·관계·문화·세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음을 이해하는 지성이다. 이는 AI가 가장 어려워하는 영역이다.
한국 사회의 정책 갈등, 조직 내 의사소통, 지역적 정체성 문제는 모두 맥락 의존적이다. 같은 말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같은 정책도 세대와 지역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니콜라스 카가 “기술이 깊은 읽기 능력을 약화시킨다”고 경고한 이유(Carr, 2010)는 바로 이 ‘암묵적 맥락 해석’이 인간만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AI 시대일수록 맥락을 읽어내는 능력, 곧 상황판단적 지혜는 더욱 중요한 가치로 부상한다.
가치기반 사고는 “무엇이 옳은가?”를 먼저 묻는 인간의 판단이다
가치기반 사고는 효율·속도·경제보다 정의와 존엄, 그리고 공동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인간의 판단방식이다.
예컨대 도시개발에서 경제적 편익이 크더라도 생태계 파괴가 우려된다면, 인간은 비용을 감수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동화된 알고리즘은 이러한 가치를 고려하지 못한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합리성과 센의 정의론이 말하듯, 인간 사회의 합리성은 언제나 가치 중심적이다.
AI가 편향된 판단을 내릴 때 이를 비판적으로 되묻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책적 손실을 감수하는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 바로 초합리적 지성의 핵심 요소이다.
통찰적 사고는 보이지 않는 구조를 읽어내는 직관의 지성이다
통찰적 사고는 데이터의 표면을 넘어, 문제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는 경험·사유·현장 감각·축적된 지식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인간 고유의 지성이다.
AI는 과거의 패턴을 일반화할 수 있지만, 패턴의 의미를 스스로 해석하지 못한다. 반면 인간은 전체 맥락을 직감적으로 연결하여 핵심을 빠르게 찾아낸다.
복잡한 갈등 상황에서 단번에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 학문과 실천의 현장에서 훈련된 분별력은 AI가 가질 수 없는 비범한 사고이며 초합리성의 중요한 형태다.
관계적 사고는 감정과 신뢰, 그리고 소통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인간의 능력이다
관계적 사고는 사실보다 관계와 감정, 그리고 신뢰를 중심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능력이다.
AI 시대일수록 조직과 도시, 그리고 공동체를 움직이는 힘은 효율이 아니라 신뢰이며, 시민과 공직자 간의 소통이 정책의 성패를 가른다. 필자가 개발한 LIKE 모델 중 Listening(경청)과 Kindness(친절)는 바로 관계적 사고의 실제적 구현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관계의 온기와 공동체의 신뢰는 알고리즘으로 계산할 수 없다. 관계적 사고는 AI시대 인간의 사회적 힘을 구성하는 필수 지성이다.
초월적 사고는 기존 질서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미래의 지성이다
초월적 사고는 현재의 규범과 질서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과 미래 구조를 상상하고 설계하는 능력이다.
이는 철학적 사유, 미래학적 통찰, 예술적 상상력이 결합된 고차원적 사고이며, “가능성의 지평을 넓히는 능력”(Kelly, 2016)이다.
초인류사회와 초복합사회, 초연결도시는 기존 질서 내에서 개선하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는 사고를 요구한다.
AI는 미래를 상상하지 못한다. 인간만이 제3의 공간을 열고 문명적 새로운 길을 그릴 수 있다.
초합리적 사고가 요구하는 인간의 미래는 AI시대 여섯 인간형과 연결된다
필자가 제안한 ‘AI시대 여섯 인간형’ 즉, 콘텐츠형, 구성형, 시스템형, 창의형, 협력형, 윤리형 인간은 초합리적 사고의 여섯 유형과 구조적으로 대응된다.
통합적 사고는 복잡한 세계를 구조적·전체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갖춘 시스템형 인간으로 이어지며,
맥락적 사고는 상황과 관계의 흐름을 읽어 문제를 재구성하는 구성형 인간으로 연결된다.
가치기반 사고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옳음’의 기준을 판단하는 윤리형 인간을 형성하고,
통찰적 사고는 데이터 밖의 패턴을 상상하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창의형 인간을 만든다.
또한 관계적 사고는 신뢰와 공동체적 소통을 기반으로 관계를 설계하는 협력형 인간을 이끌어 내고,
초월적 사고는 기존 질서를 넘어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고 콘텐츠를 창조하는 콘텐츠형·창조형 인간으로 확장된다.
이런 구조적 연결 속에서 초합리성은 AI가 넘을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지적 자원이자, 인간이 초인류사회로 진화하는 데 필요한 지성의 지도가 된다.
초합리성이 AI시대 인간의 존엄을 지킨다
AI는 인간 사고의 일부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세계를 계산 가능한 구조로 단순화한다. 그러나 인간은 세계를 맥락과 가치, 관계와 통찰, 미래의 상상을 통해 이해한다.
초합리적 사고는 인간다움의 마지막 지적 영역이며, 초연결과 초복합사회에서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을 지켜내는 핵심 역량이다. 기술이 인간을 확장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초합리성을 통해 더욱 성숙하고 깊은 지성을 발휘해야 한다.
AI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깊이이며, 그 중심에 초합리성이 있다.



사진. 강파장에서 바라본 서귀포 앞바다와 신서귀삼연의 파골 대기모습. 2025.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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