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
삼라만상을 움직이는 네 가지 축에 대한 단상"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세상과 삶을 설명하는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
세상은 단순한 논리로 움직이지 않는다. 우주와 사회, 그리고 개인의 삶은 서로 얽혀 있다. 그 관계 속에서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이 함께 작동한다. 그리고 그 힘은 결국 우리가 선택한 태도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며 다시 우리의 삶으로 되돌아온다.
칠십 평생을 교수로 살아오며, 필자는 이 원리를 오랫동안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그것이 네 가지 개념적 축으로 정리될 수 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글은 그 깨달음의 내용을 공유하고자 하는 조용한 기록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잠시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린도후서 4:18)
하나, 유전인자(DNA)와 노력은 타고남과 길러짐의 균형이다.
사람의 성장은 타고난 유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도 없다. 유전과 노력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며, 인간의 가능성은 이 두 축이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열린다.
38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며 필자가 얻은 결론은 명확하다.
“없는 것을 억지로 만들려 하기보다, 이미 갖춘 강점을 발견해 확장하는 것이 훨씬 빠르다.”
재능을 아는 일은 출발이고, 그것을 다듬는 일은 과정이며, 성장은 두 힘의 균형 속에서 이루어진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 시니라.”
(잠언 16:9)
둘, 시장 기능과 정부 개입은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는 손이다.
시장은 스스로 조정되는 힘을 갖고 있지만 언제나 완전하지는 않다. 반대로 정부 개입 또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역개발정책과 국가균형발전을 연구하며 필자가 확인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정부는 시장을 대체하거나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균형을 유도하고 정렬하는 조정자여야 한다.”
지나친 개입은 기능을 왜곡하고 행정적 비용을 증가시키며 정책 실패를 낳는다. 오히려 넛지(Nudge)와 같은 부드러운 개입이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정하나 여호와께서 그의 걸음을 정하시느니라.” (시편 37:23)
셋, 효율성과 형평성은 순서가 있는 정의이다.
형평성은 중요한 가치이나, 현실에서 작동하는 첫 번째 원리는 언제나 효율성이다.
정책과 자원 배분에서 형평이 효율보다 앞설 경우, 의도는 좋을지라도 실행은 무너지고 재정은 낭비되며 정책은 실패한다. 그러므로 사회가 지향해야 할 원칙은 다음과 같다.
“먼저 질서를 세우고, 그 위에 형평을 얹는 정렬이다.”
형평은 경쟁과 성장 이후에 다듬는 가치이며, 출발점에서 효율성과 충돌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적당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린도전서 14:40)
넷, 운(運)의 힘과 지능(知)의 힘은 겸손이 완성하는 구조이다.
오늘의 문명은 인간이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 그러나 자연과 우주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방식으로 질서를 유지하며, 그 속에서 인간은 결국 유한한 존재로 머문다.
노력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달라질 때, 우리는 비로소 운(運)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그 인정은 패배가 아니라 겸손과 감사의 시작이다.
“사람이 스스로 높아지면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12)
공존과 상생은 사람과 자연, 그리고 우주의 협업이다
오랫동안 인간은 자연보다 우월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기후 위기와 생태적 붕괴라는 현실 앞에 서 있다.
앞으로의 시대가 요구하는 태도는 지배가 아니라 공존과 상생, 그리고 협업이다. 그 협업은 더 이상 인간끼리만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우주 질서까지 확장된 관계이다.
우리는 결국 네 가지 변수, 즉 유전과 노력, 시장과 정부, 효율과 형평, 운과 지능이 만들어내는 순환 속에 살고 있다. 그 질서를 이해하고 조정할 줄 아는 사람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린도전서 16:14)
균형 위에 서는 삶을 살아가자
삶은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이 함께 이끌어가는 여정이다. 그 힘의 균형을 이해하고 겸손한 태도로 조율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지혜의 시작이며 성찰의 완성이다.
이 글은 단순한 결론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작은 길잡이요 소박한 고백이다.



사진. 이성근. 위 사진 1,2,3 칠곡 가산 민간 수목원 황톳길 전경. 2025. 12. 6.





사진. 이성근. 위 사진 4,5,6,7 칠곡 가산 수피아 파크골프장과 주변 전경. 2025.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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