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구시(四實求是)와 도공칠덕(都公七德)을 실천한 1세대 도시계획가 고(故) 권태준 교수님의 업적과 유산"
국립도시건축박물관 개관 전:
삶을 짓다: 한국 도시건축 (1950–2010)의 준비에 즈음하여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사실구시와 도공칠덕을 온전히 실천한 1세대 도시계획가 고 권태준 교수님
‘사실구시(四實(事)求是)’의 도시계획 이론가이자 ‘도공칠덕(都公七德)’의 철학을 온전히 실천한 고 권태준 교수님을 회상하면, 필자는 언제나 한 문장이 먼저 떠오른다.
“도시계획을 생각하고, 쓰고, 가르치고, 실천하신 분.”
교수님은 사유(思)했고, 글과 제도로 실체를 만들었으며, 대학에서 제자를 길러 또 하나의 실체를 남겼고, 마지막으로 정책과 현장에서 그 사유를 실천하셨다.
그 네 가지 ‘실(實)’의 일치를 통해 진실을 추구한 분, 바로 사실구시의 도시계획가였다.
또한 그 삶 전체로 도시와 공공을 위해 일하는 이가 지녀야 할 일곱 덕목, 곧 필자가 이름 붙인 ‘도공칠덕(都公七德)’을 온전히 실천한 1세대 도시계획가이셨다.
아래 일곱 가지 덕목은 제자인 필자가 교수님의 삶을 되돌아보며 정리한 작은 헌사이다.
첫째 덕은 도시계획 교육을 연 개척자의 덕이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파도 속에 도시와 인프라를 급속히 만들어야 했지만, 전문 교육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 시절 교수님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 설치에 참여하셨고, 이후 환경대학원에서는 환경계획학과와 환경조경학과의 교육과정을 설계하며 이들 분야의 학문적 기반을 구축하셨다.
오늘 당연하게 여겨지는 도시·지역·환경계획 분야의 대학원 교육과 제도적 기반은 교수님의 설계와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둘째 덕은 절차를 중시한 상호적응적 계획이론가의 덕이다.
교수님에게 도시계획은 완성된 청사진이 아니라,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떻게 결정하는가”를 함께 포함하는 사회적 학습과 적응의 과정이었다. 미국에서 정립한 상호적응적 계획이론(Co- adaptive planning)은 이후 의사소통적 계획, 시민참여, 도시재생 거버넌스 등 오늘날의 계획 철학의 토대가 되었다.
그 핵심은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도시는 한 번 그려진 설계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고쳐 가는 살아 있는 과정이다.”
셋째 덕은 도시·지역·국토를 잇는 정책계획가의 덕이다.
교수님은 학문과 행정, 교육과 실무 사이를 잇는 다리였다.
국가 심의기구에서 국토정책,
수도권 계획, , 도시정비, 균형발전을 다루며, 도시계획을 기술이 아니라 정의와 정책의 문제로 바라보았다.
강의실·위원회·연구실을 오가며 학문과 실천을 하나의 축으로 묶은 것이 바로 이 덕목의 본질이었다.
넷째 덕은 사회·환경·경제정의를 추구한 개혁가의 덕이다.
도시계획은 단순한 개발 도구가 아니라, 시민의 삶과 권리를 보호하는 공공의 제도여야 한다는 신념은 교수님의 평생 철학이었다.
분배정의·환경정의·지속가능발전이라는 가치는 교수님이 사회운동과 정책자문, 그리고 저술을 통해 일관되게 주장한 시대정신이었다.
“도시는 정의와 생태를 품은 공동체여야 한다.”
다섯째 덕은 도시·국토·환경·사회·
대학 분야에 대한 기록과 사유를 남긴 저술가의 덕이다.
교수님의 수많은 저술은 단순한 교과서를 넘어 한국 도시화 시대를 사유한 기록이었다.
교수님의 글은 늘 질문했다.
“도시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여섯째 덕은 공공성과 윤리를 지킨 지식인의 덕이다.
교수님은 각종 위원회와 공직 자문 과정에서 원칙과 양심을 앞세웠다.
교수님은 전문가라면 지식에 앞서 책무성과 절제를 먼저 배워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
그 자세는 한국 도시계획계와 학문 공동체에 남은 귀한 유산이다.
일곱째 덕은 선비형 대학자로서의 품격이다.
교수님께서는 화려함보다 절제를, 명예보다 제자를, 편의보다 원칙을 선택했던 삶을 사셨다.
필자가 잊을 수 없는 호칭은 이 한마디다.
“인간 이성근.”
그 말씀 속에는
“학문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라”
는 조용한 가르침이 있었다.
오늘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
고 권태준 교수님의 삶은 전시 속 기록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도시와 공공을 위해 생각하고, 쓰고, 가르치고, 실천하고 있는가?”
“우리는 도시를 정의롭고 인간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일곱 가지 덕을 붙들고 있는가?”
도시가 복잡해지고 기술이 거대해질수록, 도시계획은 다시 인간·윤리·책임·정의의 문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제자인 필자는 이 질문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스승께서 남기신 가장 큰 유산을 이어 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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