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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네 기둥을 논하다: 자연의 제주, 연제와 제주의 자연, 제연, 그리고 제주인, 제인과 제주 문화, 제문"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제주를 바라보며 다시 묻게 되는 질문

제주를 마주하면 먼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이다.
“자연의 제주, 연제(然濟)인가? 제주의 자연, 제연(濟然)인가?”
오랜 시간 이 질문을 붙들고 생각해 보면, 둘은 분리된 개념이 아니다. 자연과 제주는 서로를 비추고 서로를 만들어 온 관계이다. 그리고 그 관계를 이어 온 존재는 바로 제주 사람, 곧 제인(濟人)과 제주 문화, 제문(濟文)이었다.
과거 인간은 자연 앞에서 겸손했다. 그러나 기술과 개발이 지배하는 시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기후위기와 생태 파괴, 무리한 관광개발과 난개발의 형태로 다시 우리 앞에 돌아오고 있다. 자연은 인간의 행동을 기억한다. 다만 조용히, 그리고 오래 기다릴 뿐이다.
지금 제주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자연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네 가지 힘의 원리와 제주를 움직이는 구조

필자는 오랜 시간 인간과 사회, 그리고 공간을 움직이는 원리를 고민해 왔다. 그 과정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네 가지 힘의 축을 정리한 바 있으며, 이 원리는 제주라는 공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유전인자(DNA)와 노력의 원리: 타고난 자연성과 만들어지는 제주성

인간에게 기질이 있듯 지역에도 기질이 존재한다.
제주인의 강인함과 포용의 생활 방식, 자연 앞에서의 겸손함, 그리고 바람·바다·돌과 함께 살아온 감각은 오랜 세월 축적된 문화적 DNA에 가깝다.
그러나 오늘의 제주에는 새로운 흐름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외부 이주민들이 쌓아가는 삶의 경험, 청년 세대의 새로운 감각, 변화하는 공동체 문화는 또 다른 제주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제주에서 살아본 사람은 안다. 이 섬은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품을 내어주지만, 자연의 속도를 무시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경고를 보낸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제주에서의 삶은 타고난 기질과 인간의 노력, 본성과 인내심 사이의 균형 위에서 지속된다.

둘째, 시장 기능과 정부 개입의 원리: 개발과 보존의 균형

제주의 역사는 늘 같은 질문을 반복해 왔다.
“얼마나 개발할 것인가?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가?”
행정은 규제를 통해 질서와 환경을 지키려 했고, 시장은 수요와 효율을 앞세워 확장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해답은 어느 한쪽의 극단에 있지 않다.
탐라의 역사와 제주 행정의 경험을 돌아보면, 제주에 필요한 방식은 통제 중심의 정책이 아니다. 속도를 조절하고 자율성을 높이며, 강한 규제보다 유연한 개입과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는 정책이 더 중요하다.
자연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의 개발, 삶의 질을 기준으로 하는 관광, 공동체가 수용할 수 있는 정책이 앞으로 제주가 선택해야 할 방향이다.

셋째, 효율성과 형평성의 원리:
지속 가능한 성장과 사회적 균형

정책은 사회정의와 형평성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의 정책은 결국 효율성과 결과 위에서 작동한다.
제주처럼 관광·환경·교통·경제·주민 정책이 동시에 움직이는 복합 공간에서는 효율성과 시너지 효과가 먼저 확보되어야 한다. 그 위에서 사회후생과 형평성의 원리가 작동할 때 정책의 지속 가능성도 높아진다.
순서가 뒤바뀌면 정책은 흔들리고 자원은 낭비된다.
따라서 제주가 지향해야 할 성장은 자연을 희생시키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지속 가능한 가치 생산과 삶의 질 향상을 함께 이루는 성장이어야 한다.

넷째, 운(運)과 지능의 원리:
인간의 기술과 자연의 질서

제주는 인간의 계산을 쉽게 넘어서는 공간이다.
태풍과 바람, 안개와 조류, 비워지는 바다와 다시 채워지는 바다는 인간의 계획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의 계획과 기술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위에는 보이지 않는 자연의 질서가 존재한다.
필자 역시 긴 삶의 시간을 돌아보며 깨달았다. 성공은 단지 지능과 노력만의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 운, 그리고 자연과 하늘이 허락한 조건이 함께 작용한 결과이다.
그래서 제주에서 가장 필요한 태도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겸손”이다.
겸손은 인간을 작게 만드는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힘이다.

맺음말
연제와 제연, 그리고 제인과 제문이 이어지는 길

제주가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핵심 가치는 분명하다.
“자연이 제주이고(연제), 제주는 자연이며(제연), 그 둘을 이어 온 힘은 제주인(제인)과 제주 문화(제문)이다.”
앞으로의 공존은 인간 사이의 협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자연과 인간의 상생, 환경과 사람의 파트너십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제주는 이미 그 실험이 시작된 살아 있는 교과서이다. 동시에 미래 사회를 미리 보여 주는 예고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다시 질문하고자 한다.
“당신은 연제와 제연, 그리고 제인과 제문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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