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에서 길을 묻다: 신서귀포인의 삶과 인생 항해의 의미"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바다 앞에 서다, 항해라는 사유의 시작
항해라는 말은 필자에게 오래전부터 사유의 대상이었다. 바다를 건너는 물리적 이동을 넘어, 삶의 방향과 의미를 묻는 은유로서 항해는 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서귀포에서의 삶은 이러한 생각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매일 눈앞에 펼쳐지는 태평양의 수평선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길과 방향을 묻는 거대한 질문이었다.
고사에 이르기를 “관해난수(觀海難水)”라 하였다. 큰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쉽게 논하지 않듯, 넓은 세계를 경험한 사람일수록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서귀포의 바다는 필자에게 바로 그런 존재였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일깨워주었다. 동시에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도 중대한 과제인지를 조용히 일러주고 있었다.
항해와 인생, 망망대해를 건너는 존재
인생은 항해와 같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여정이며, 그 사이에는 수많은 파도와 바람,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존재한다. “잔잔한 바다는 결코 숙련된 뱃사공을 만들지 못한다”는 영국 속담처럼, 인간은 평온이 아니라 시련 속에서 성장한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처럼, 인간은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항해에서 선위(船位)를 잃으면 방향을 잃듯이, 인생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지 못하면 길을 잃게 된다. 이는 곧 ‘자기 인식’의 문제이며,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기본 조건이다.
맹자는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하였다.
이 가운데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 앙불계어천 부부작어인(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은 항해하는 인간이 가져야 할 윤리적 나침반과도 같다. 바다 위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나침반이 필요하듯, 인간은 양심과 도덕이라는 내면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
항구와 쉼, 정박의 의미
항해는 끊임없는 전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항구에 정박하여 쉬고, 수선하며,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한다. 항구는 단순한 정지가 아니라, 다음 항해를 위한 준비의 공간이다.
필자에게 서귀포의 삶은 하나의 항구였다. 대학에서의 긴 학문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곳은,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길을 준비하는 ‘사색의 항구’였다.
공자는 말한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기쁨처럼, 항해의 여정 속에서도 배움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또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인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뜻으로, 독서의 중요성과 바른말을 해야 한다는 경계의 글이다. 이 말은, 항해하는 인간이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해야 함을 일깨운다.
항구는 단순한 쉼이 아니라, 다시 떠나기 위한 준비이며, 자기 성찰의 공간이다.
항해의 위험, 갈등과 위기의 바다
항해에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 바람과 파도, 해류와 폭풍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닥쳐온다. 이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제주 서귀포의 강정항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나타난 갈등은, 하나의 항해가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와 충돌을 동반하는지를 보여준다. 항구는 평화의 공간이면서도 동시에 갈등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의 군사적 긴장은 세계 항로의 불안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다는 연결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충돌의 공간이기도 하다.
성경에 나오는 “잠잠하라, 고요하라”(마가복음 4:39)는 예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신 장면이다. 이는 외부의 풍랑을 넘어 인간 내면의 혼란과 두려움까지도 가라앉히는 존재의 평정을 상징한다.
결국 항해의 본질은 위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다.
항해의 기억, 학창 시절과 첫 시작(詩作)의 경험
항해라는 주제는 필자의 기억 속에서도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다. 학창 시절, 진해 군항제 글짓기 대회에 학생대표로 참가하며 학생들을 인솔했던 경험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당시 시제는 ‘항해(航海)’였고, 그때 쓴 시는 이후 학교 시화전에 출품되었다. 그것은 필자의 첫 시작이자, 동시에 마지막 시작으로 남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벚꽃이 흩날리는 항구의 풍경 속에서 느꼈던 감정은,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의 ‘삶의 출항’과도 같았다. 그때의 경험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항해의 출발점에서 느꼈던 설렘과 긴장을 상징한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진정한 항해는 새로운 땅을 찾는 데 있지 않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얻는 데 있다."
그 시절의 경험은 새로운 세계를 보는 눈을 열어 주었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항해의 철학, 학해무변과 고은층의 삶
필자는 이제 ‘고은층(高恩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고은이 아니라, 삶의 깊이를 더해가는 단계이다. 이 시기에도 여전히 항해는 계속된다.
“학해무변(學海無邊)”이라는 말처럼, 배움의 바다는 끝이 없다. 항해가 끝이 없듯이, 학문과 사색 또한 끝이 없다.
또한 “자강불식(自強不息)”의 정신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훈육하고자 한다.
인생의 마지막 항구가 언제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이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직전에 좌초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끝내 도달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도달 여부가 아니라, 항해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성경은 말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요한복음 14:1)
항해하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이 아니라 신뢰이며, 두려움이 아니라 방향이다.
신서귀포인, 항해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제주, 특히 서귀포는 항해의 공간이다. 이곳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화하는 사람들의 삶이 교차하는 장소이다.
신제주인, 신서귀포인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항해하는 존재이다. 이들은 각자의 삶의 방향을 찾아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다.
“창해일속(滄海一粟)이라 하듯, 인간은 거대한 세계 속에 떠 있는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작은 존재가 자신의 방향을 가지고 항해할 때, 삶은 의미를 갖는다.
결국 인간은 항해하는 존재이며, 그 항해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맺음말
목적지보다 중요한 것은 항해이다
인생의 항해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배우고, 견디며,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서귀포의 바다를 바라보며, 무사히 항해를 마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동시에 항해의 끝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방향과 태도임을 깨닫는다.
“시작이 반이다(始作半)”라는 말처럼, 인생의 항해는 오늘의 선택과 실천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하루의 결단이 쌓여, 마침내 우리의 삶이라는 항로를 완성해 가고 있다.
참고자료
• 맹자, 『맹자』
• 공자, 『논어』
• 성경, 출애굽기 14:21 / 마가복음 4:39 / 요한복음 14:1
•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 항해 개념 자료
• 항해 관련 속담 및 격언 자료
• 프루스트, 워즈워스 등 서양 명언 자료







'함께 살아가는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생사색/ 노란 꽃이 일러준 세 가지 사색: 산수유, 산수(山水), 그리고 수유(雖柔)의 길 (0) | 2026.03.24 |
|---|---|
| 인507 신서귀포인 고은층의 초심과 삶, 제인(濟人)의 성찰 (0) | 2026.03.23 |
| 인406 덕의 향기(德香): 보이지 않지만 오래 남는 삶의 방식 (0) | 2026.03.19 |
| 문305 단산에서 만난 추사: 유배의 산에서 문화의 길이 되다 (0) | 2026.03.17 |
| 도209 제주 화순 유람선 탐방길: 지극히 낮은 곳에서 지극히 높은 곳을 바라보다 (5) | 2026.03.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