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심은 흔들림을 넘어선다: "킹스 스피치"로 읽는 고은층의 도전과 신서귀포인의 길"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사색은 걷는 삶에서 시작된다: 걷는 시간 속에서 만난 영화 한 편
필자는 제주에서는 자연 속을 걸으며 사색을 이어간다. 대구에서는 헬스장에서 걷기 운동을 하며 명화, 특히 고전영화를 통해 또 다른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오늘은 영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를 보며 걸었다. 말 더듬이라는 개인적 한계를 지닌 한 왕이 시대적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해 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오래전 지도교수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와 필자가 직접 겪은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그 순간 문득 깨닫게 되었다. 사색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경험과 기억이 서로를 비추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인간의 성장 또한 거창한 변화보다 작은 극복의 반복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결핍을 넘어선 인간의 서사:
“킹스 스피치”가 보여준 진정성의 힘
영화 킹스 스피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1930년대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한다. 형의 퇴위 이후 왕위에 오른 조지 6세는 심각한 말 더듬 증세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국민을 하나로 묶어야 하는 역사적 책임을 떠안게 된다.
당시 라디오 연설은 단순한 의사 전달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의 방향과 국민의 심리를 움직이는 상징적 행위였다. 그의 한마디는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고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지 6세는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를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은 단순한 치료 관계를 넘어 인간적 신뢰에 기반한 동반자 관계로 발전한다. 로그는 권위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그는 친구처럼 다가가 왕의 심리적 장벽을 허물었다. 반복 훈련과 내면의 상처를 직면하는 과정을 통해 왕은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간다.
마침내 1939년 전쟁 선포 연설에서 그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국민에게 다가간다. 그 장면은 단순한 연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징적 순간으로 남는다.
리더십과 소통이 남긴 교훈:
완벽함보다 책임 있는 태도
이 영화는 리더십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한다. 리더는 완벽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책임 있게 감당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특히 지도자의 말은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묶는 공공적 자산이며, 위기 상황일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정책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커뮤니케이션은 하나의 제도적 장치로 작동한다. 국가적 위기에서 지도자의 메시지는 국민의 심리적 안정과 사회 통합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는 전문가와 지도자의 관계가 수평적일 때 문제 해결의 효과가 높아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간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신뢰가 결국 제도와 성과를 만들어내는 토대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결국 인간은 혼자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신뢰는 그 관계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
진심은 유창함을 넘어선다:
준비된 태도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완벽한 말이 아니라 진심 어린 말이 세상을 움직인다.”
이 문장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라 할 수 있다. 말이 유창하지 않아도, 표현이 다소 서툴더라도,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와 관련해 오래전 들었던 한 일화가 떠오른다. 미국 유학이 드물던 시절, 한 한국인 유학생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생 대표 연설을 맡게 되었다. 그는 영어 실력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연설문 전체를 꼼꼼히 준비했고, 연설 내내 원고를 충실히 읽어 내려갔다. 고개를 숙인 채 읽는 모습은 다소 어색해 보였지만, 연설이 끝나자 청중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큰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그 박수는 유창함에 대한 찬사가 아니었다. 성실함과 진정성에 대한 공감이었다.
필자 역시 젊은 시절 강단에 처음 섰을 때 이 일화를 떠올리며 강의에 임했던 기억이 있다. 준비된 말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의 표현이며, 그 태도는 결국 사람의 마음에 전달된다.
세계 학술현장에서 만난 진정성:
능력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
국제 학술행사에서의 경험 또한 같은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중국 난징에서 열린 세계과학기술도시연합(WTA) 회의에서는 전문 통역자가 아님에도 필자의 발표를 돕기 위해 끝까지 질문을 이어가며 정확성을 높이려 했던 중국 사관학교 교수의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일 공동 국토·도시계획학회에서는 일본 학자가 발표 전날 미리 찾아와 내용을 세밀하게 확인하는 모습을 보며 준비의 중요성을 다시 느꼈다.
또 스웨덴 웁살라 회의에서는 영어가 능통한 캐나다 발표자가 오히려 준비한 원고를 또박또박 읽으며 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청중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는 능력보다 태도가 더 중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사실을 말해 준다. 진정성은 국적과 언어를 넘어 통하는 보편적 가치이며, 인간을 연결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점이다.
작은 극복의 반복이 삶을 만든다:
필자의 삶 속 도전과 자기 교정
필자 또한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고등학교 시절 웅변대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태권도 도장에서 자신감을 기르려 노력했다.
대학 교수로 국제 학술행사에 참여할 때에는 외국어 강사의 도움을 받아 발표문을 준비했다. 녹음 파일을 반복해서 들으며 연습했고, 발표문마다 쉼표와 강세 표시를 직접 적어 넣으며 읽기를 반복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작은 도전과 반복적인 자기 교정이 오랜 시간 축적된 결과였다. 인간의 성장은 한 번의 도약이 아니라 지속적인 수정과 훈련 속에서 이루어진다.
고은층 신서귀포인의 삶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배움은 나이와 함께 멈추지 않는다
필자가 고은층 신서귀포인으로 살아가는 삶 또한 이러한 연속선 위에 있다.
서귀포 노인복지관 스마트폰 활용반에 참여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려 노력한 것도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티스토리 블로그를 운영하고, 글을 쓰며 사진을 편집해 공유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서귀포에서 시작한 파크골프 역시 마찬가지이다. 강정체육공원에서 기본을 익히고, 칠십리와 강창학 파크골프장에서 반복적으로 자세를 교정하며 실력을 다듬고 있다. 이는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자신을 계속 단련하고 유지하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고은층 신서귀포인의 관점에서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끝없이 형성되어 가는 존재이다. 따라서 고은층의 삶은 쇠퇴의 시간이 아니라 또 다른 성장의 국면이라 할 수 있다.
용기와 그릿(GRIT)이 인간을 움직인다: 포기하지 않는 태도의 힘
인생의 성취는 단순히 지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용기와 끈기, 그리고 회복력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앤절라 더크워스가 말한 ‘그릿(GRIT)’은 실패와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힘을 의미한다.
말 더듬을 극복한 왕의 이야기, 준비된 연설로 감동을 준 유학생, 국제 학술현장에서 만난 학자들의 태도, 그리고 필자의 삶 속 작은 도전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다시 시도하는 용기이며, 포기하지 않는 태도이다.
또한 인간은 타인의 격려와 지지 속에서 더 큰 힘을 얻는다. 결국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존재이다.
맺음말
흔들리되 멈추지 않는 삶:
완벽함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과 지속성
영화 킹스 스피치는 한 왕의 이야기를 넘어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보편적 서사이다. 이 영화는 완벽함보다 진정성, 능력보다 태도,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필자의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소심함을 극복하려는 시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배움의 과정은 모두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흔들리되 멈추지 않는 삶’이다.
특히 고은층 신서귀포인으로 살아가는 길은 완성의 길이 아니라 형성의 길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가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간다.
결국 삶을 움직이는 것은 완벽한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또한 완벽한 조건이 아니라 도전하려는 태도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오늘도 우리를 다음 걸음으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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