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한 사람의 결단, 한 도시의 길이 되다: 강창학과 제주 사람 ‘제인(濟人)’의 의미"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한 사람’을 통해 제주 사람의 길을 읽다

공간은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는다. 공간은 그것을 만든 사람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귀포의 강창학경기장은 단순한 체육시설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선택과 결단이 만들어낸 삶의 구조로 읽힌다.1)
필자는 지난 4년여 동안 서귀포 혁신도시에 거주하며 이 공간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 차례 경험하였다.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지나치는 경유지로, 다음에는 마라톤 코스를 따라 걷는 산책의 공간으로, 최근에는 파크골프를 즐기는 일상의 장소로 만났다. 이러한 반복된 경험은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 공간은 누구에 의해, 어떤 뜻으로 만들어졌는가?”라는 물음이었다.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사유의 방향을 ‘공간’에서 ‘사람’으로 옮겨 놓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주사색』 제3권의 핵심 개념인 ‘제인(濟人)’이 등장한다. 제인은 자연과 사회, 공동체와 문화를 연결하며 책임과 윤리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인간형이다.2)  강창학 선생은 이러한 제인의 전형적 사례로 읽힐 수 있다.

만남의 축적: 공간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다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공간 경험은 단순한 이용을 넘어 사유의 계기를 만든다. 강창학경기장은 처음에는 단지 넓은 운동시설로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구조와 기능,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이 새로운 질문을 낳았다. “왜 이처럼 큰 공공 공간이 이곳에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이 질문은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놓는다. 걷는 길은 더 이상 단순한 이동의 통로가 아니다. 운동장을 둘러싼 트랙과 야구장, 축구장, 파크골프장에 이르기까지 이곳은 공동체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반복된 경험 속에서 공간은 ‘사용되는 장소’에서 ‘이해되어야 할 구조’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 구조의 중심에는 언제나 한 사람의 선택과 결단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제주 사람 강창학: 한 개인의 선택과 공동체 윤리

강창학 선생은 단순한 개인을 넘어 ‘제주 사람’이라는 인간형을 상징하는 존재로 읽힌다. 그는 자신의 토지를 지역사회에 기부함으로써 개인의 자산을 공동체의 자산으로 전환하였다.3)  이는 단순한 기부를 넘어 삶의 철학이 실천된 사례이다.
제주에서 토지는 단순한 재산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기반이며 세대를 이어온 삶의 터전이다. 그러한 토지를 공동체에 내어놓는다는 것은 경제적 판단을 넘어선 윤리적 결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축적’의 논리를 ‘환원’의 논리로 바꾸는 행위이다.
제인(濟人)의 관점에서 인간은 자연과 사회를 연결하는 존재이다. 강창학 선생의 선택은 바로 이 연결의 역할을 보여준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얻은 것을 다시 사회로 돌려보냄으로써 개인과 공동체, 자연과 인간 사이의 순환 구조를 완성하였다.

연제에서 제연으로: 자연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

제주의 자연은 결코 풍요롭지만은 않았다. 화산섬이라는 지질적 특성은 토양을 거칠게 만들고 물의 확보를 어렵게 하였다. 이러한 조건은 농업과 정착을 제한하는 환경으로 작용해 왔다. 이는 인간의 개입 이전 상태인 ‘연제(然濟)’의 자연 질서로 이해할 수 있다.4)
그러나 제주 사람들은 자연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돌을 쌓아 밭을 만들고 길을 내며 자연을 삶의 공간으로 전환하였다. 이것이 바로 ‘제연(濟然)’이다.5)
강창학 선생의 토지 기부는 이러한 전환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개인의 소유였던 땅은 공공의 공간으로 바뀌었고, 자연은 단순히 보존되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삶 속에서 기능하는 공간으로 재구성되었다.
이 과정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일이다. 즉 연제의 자연이 제연의 질서로 재편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제연에서 제문으로: 생활 속 문화가 된 공간

강창학경기장은 이제 단순한 체육시설을 넘어 지역사회의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걷고 운동하며 일상의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반복된 경험은 기억의 축적을 만들고, 그 기억은 다시 문화로 전환된다.
『제주사색』의 개념으로 보면 이는 ‘제문(濟文)’의 단계이다. 제문은 기억과 의미가 쌓여 형성되는 문화적 질서를 뜻한다.6)
오늘날 이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운동의 장소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함께하는 쉼의 공간이며, 또 다른 이들에게는 공동체 축제가 열리는 무대이다. 다양한 삶의 경험이 중첩되면서 공간은 문화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제도로의 확장: 공공정책과 지속가능성의 길

이 공간은 개인의 기부에서 출발하였지만, 오늘날에는 공공정책 속에서 운영되는 제도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전국체육대회와 같은 대형 행사를 준비하며 시설은 지속적으로 정비되고 있으며, 공공체육 인프라로서의 기능도 강화되고 있다.7)
이 과정은 ‘제도(濟道)’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제도는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삶의 경로를 설계하는 구조이다. 개인의 결단이 공공정책으로 연결되고, 그 정책이 다시 미래 세대의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한때 개인의 땅이었던 이 공간은 이제 수많은 시민의 삶을 지탱하는 공공의 기반이 되었다. 이는 ‘상전벽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제인(濟人)의 유산: 강창학 선생이 남긴 질문

강창학 선생의 선택은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왜 인간은 자신의 것을 공동체를 위해 내어놓는가?”라는 물음이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공동체 속에서 의미를 형성한다. 이러한 존재 방식 속에서 ‘나의 것’은 결국 ‘우리의 것’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제주 사람의 삶은 이러한 확장의 논리를 잘 보여준다. 척박한 자연 속에서 형성된 상부상조의 문화와 공동체 윤리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강창학 선생의 기부는 이러한 제주 사람의 삶의 방식이 현대적으로 구현된 사례라 할 수 있다.

맺음말
사람이 만든 길, 제주가 되는 공간

제주는 자연이 만든 섬이지만 동시에 사람이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연제의 자연 위에 제연의 질서가 형성되고, 그 위에서 제인의 삶이 펼쳐지며, 다시 제문의 문화로 확장되고, 제도의 구조로 정착된다.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강창학 선생이라는 한 사람의 선택은 단순한 기부를 넘어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 그 길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결국 제주를 만드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선택이 곧 제주라는 공간의 미래를 결정한다.


1) 서귀포시, 「강창학 종합경기장 및 체육공원 조성 자료」.
2) 이성근, 『제주사색』 제3권 「제인(濟人)」 개념 정리 원고.
3) 제주향토사 자료집, 「강창학 인물사 및 기부 기록」.
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자연환경과 생활문화 자료』.
5) 이성근, 『제주사색』 제2권 『제연(濟然)』 원고.
6) 이성근, 『제주사색』 제4권 『제문(濟文)』 구상 원고.
7) 제주특별자치도체육회, 「전국체육대회 준비 및 체육시설 운영 자료」.

참고자료
ㆍ제주특별자치도, 『제주 체육시설 현황 및 정책자료』
ㆍ서귀포시, 「강창학 종합경기장 및 체육공원 조성 자료」
ㆍ제주특별자치도체육회, 「전국체육대회 준비 관련 자료」
ㆍ제주향토사 자료집, 「강창학 인물사 및 기부 기록」
ㆍ문화체육관광부, 『지역 체육공원 조성 정책 사례』
ㆍ한국지방행정연구원, 『공공시설 기부채납과 지역발전』
ㆍ제주일보·한라일보 등 언론자료
ㆍ제주특별자치도 공식 홈페이지 및 공공데이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