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유자작의 삶, 서포작주의 길: 구기자(九冀自)와 구기자(九棄自)로 읽는 서귀포의 고은층 제인(濟人)"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서귀포에서 ‘사람’을 다시 묻다
제주의 공간은 자연에서 시작되지만, 그 의미는 결국 그 위에 서 있는 사람의 선택과 실천을 통해 형성된다. 필자는 서귀포에서 사 년여를 머물며 일상의 흐름 속에서 삶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은 단순한 체류가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고 삶의 방식을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서포작주(西浦作主)’라는 개념을 설정하였다. 이는 고사성어 ‘수처작주(隨處作主)’를 차용한 것으로, 어느 곳에 있든지 그곳에서 주인이 되어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귀포라는 장소는 고은층으로 살아가는 필자에게 더 이상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삶을 실험하고 성찰하는 장이 되었다. 그 속에서 필자는 스스로의 삶을 ‘구기자(九冀自)’와 ‘구기자(九棄自)’라는 두 축으로 정리하게 되었다.
이 글은 그 사 년 여의 시간을 통해 형성된 삶의 방식, 곧 제주 사람 ‘제인(濟人)’의 한 유형을 기록한 것이다.
유유자작의 삶: 과정·상태·태도의 통합적 의미
필자가 서귀포에서 경험한 삶은 한마디로 ‘유유자작(悠悠自作)’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여유나 한가로움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유자작은 스스로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동시에 그 과정이 만들어내는 상태이며, 그 상태를 지탱하는 태도이다.
유유자적이 외부의 간섭 없이 평온하게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한다면, 유연자적은 마음의 평온과 태도의 여유를 강조한다. 그러나 유유자작은 이 둘을 넘어선다. 그것은 자연 속에서 스스로 삶을 구성해 나가는 적극적인 과정이며, 바로 이 점에서 ‘제인’의 형성과 연결된다.
제주에서의 삶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유유자작은 그 과정의 이름이며, 제인은 그 과정의 결과이다.
서포작주: 장소 속에서 주인이 되는 삶의 철학
수처작주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인이 되라는 가르침이다. 필자는 이를 서귀포라는 구체적 공간 속에서 ‘서포작주’로 재해석하였다.
서포작주는 단순한 생활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장소에 종속되지 않고, 오히려 그 장소를 삶의 장으로 전환하는 능동적 태도이다. 서귀포에서의 삶은 자연, 사람, 시간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중심을 세우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삶의 기준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이동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전환은 곧 ‘제인’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제인은 환경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환경 속에서 자신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구기자(九冀自): 스스로 지향한 아홉 가지 자유
서포작주의 삶은 먼저 ‘구기자(九冀自)’, 즉 스스로 지향한 아홉 가지 자유로 나타난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자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자유, 먹고 싶은 것만 먹는 자유는 감각의 해방이다.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마음이 가는 대로 따르는 자유는 존재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자유는 시간과 관계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또한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는 자유는 삶을 다시 ‘움직임’으로 되돌린다.
이러한 자유들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중심을 외부의 요구에서 내부의 욕구로 전환하는 과정이며,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된다.
구기자(九棄自): 스스로 줄이고 버리는 아홉 가지 구속
그러나 자유는 절제와 함께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필자는 서포작주의 또 다른 축으로 ‘구기자(九棄自)’, 곧 스스로 줄이고 버리는 아홉 가지 구속을 설정하였다.
말을 줄이고, 먹는 것을 절제하며, 욕심과 기대를 덜어내는 일은 삶을 단순화하는 과정이다. 소비와 목표, 소유와 성취를 줄이는 것은 외부 기준에 의존해 온 삶의 구조를 해체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필자는, 수정과 개조가 어려운 습관과 태도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을 중요한 항목으로 본다. 필자에게 말수를 줄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이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고착된 삶의 방식은 스스로를 가두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절제는 결핍이 아니라 선택이다. 그것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한 경쟁에서 벗어나, 덜 가지면서도 더 깊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결국 구기자(九棄自)는 자유에 이르는 조건이며, 삶을 가볍게 하고 본질에 집중하게 만드는 하나의 구조이다.
자유와 절제의 균형: 고은층 ‘제인’의 형성 원리
구기자(九冀自)와 구기자(九棄自)는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둘은 하나의 구조를 이룬다. 자유는 확장(divergence)이고, 절제는 수렴(convergence)이다. 확장과 수렴이 균형을 이룰 때 삶은 비로소 안정된 형태를 갖는다.
필자가 서귀포에서 체득한 삶의 방식은 바로 이 균형의 구조였다. 이와 같은 자유를 통해 삶을 넓히고, 절제를 통해 삶을 깊게 만드는 과정 속에서 점차 자연스러운 ‘고은층’으로 나아가고 있다.
고은층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태도의 깊이이다. 그것은 많이 경험한 결과가 아니라,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리하느냐의 문제이다.
이러한 점에서 구기자의 삶은 개인적 실천을 넘어 제주 사람 ‘제인’의 하나의 전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맺음말
서귀포에서 얻은 삶의 결, 그리고 제인의 길
서귀포에서의 사 년은 필자에게 하나의 결론을 남겼다. 삶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과정이며, 그 과정 속에서 비로소 본질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서포작주의 삶은 특정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에서든 적용될 수 있는 삶의 태도이며,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를 회복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구기자(九冀自)와 구기자(九棄自)는 그 구체적인 실천의 형태이다. 이 두 축이 만들어내는 균형은 곧 제주 사람 ‘제인’의 문화적 기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
결국 삶은 환경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그 선택의 반복이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이 형식으로 축적될 때 우리는 그것을 문화라 부른다.
서귀포에서의 시간은 바로 그러한 고은층 문화의 시작점이었다.
참고자료
• 수처작주(隨處作主)의 개념과 불교적 유래: 임제 선사 어록 및 관련 해설 자료
• 유유자작·유유자적·유연자적 개념 비교: 한자성어 사전 및 동양철학 개념 정리 자료
• 제주 생활문화 및 인간형 관련 연구: 제주학연구센터, 『제주인의 삶과 문화』
• 삶의 단순화와 절제에 관한 이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Walden)』
• 장소성과 인간 형성에 관한 이론: 이푸 투안(Yi-Fu Tuan), 『공간과 장소(Space and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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