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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연 사람, 사람을 잇는 길:
제주 올레를 통해 본 ‘제인(濟人)’ 고 서명숙 이사장의 인간형"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ㆍ행정학박사


서문
길은 사람의 삶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길은 단순한 이동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선택과 실천이 반복되며 축적된 삶의 흔적이다. 사람들이 걷고 머물며 기억을 쌓아가는 과정 속에서 길은 하나의 문화와 관계의 구조가 된다. 이런 점에서 길은 자연 그대로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을 읽고 이어내며 형성한 해석의 결과이다. 동시에 길은 그 길을 만든 사람의 철학과 인간형을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형식이기도 하다.1)
제주 올레길은 이러한 길의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마을길과 돌담길, 바닷길을 발견하고 이어낸 결과였다.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의 사유와 실천은 지역사회의 문화 구조로 확장되었다.
이 글은 제주올레 창시자인 고 서명숙 이사장을 제주 사람 ‘제인(濟人)’의 현대적 전형으로 읽고자 한다. 제인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관계를 통해 삶을 완성하는 인간형이다. 고 서명숙 이사장의 삶은 이러한 제인의 특성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녀가 남긴 것은 단순한 도보길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방식이 사회적 구조로 전환된 하나의 문화적 유산이었다.

제주 올레의 탄생과 고 서명숙 이사장의 삶

고 서명숙 이사장은 1957년 서귀포에서 태어나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정치부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약 20여 년 동안 사회와 시대를 해석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그는 외부 세계를 분석하는 삶에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삶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그 계기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2)
약 800km에 이르는 순례길을 걸으며 그는 치유와 성찰의 시간을 경험하였다. 하지만 그 경험은 단순한 개인적 감동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그 길에서 얻은 깨달음을 고향 제주에서 실천하고자 했다. 이후 2007년 제주올레를 창설하였고, 현재 27개 코스 약 437km에 이르는 길을 완성하였다.3)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길의 창조’보다 ‘길의 발견’이라는 인식이었다. 그는 이미 존재하던 마을길과 해안길, 밭담길을 연결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는 자연의 제주인 연제(然濟), 인간이 관계 맺는 자연인 제연(濟然), 제주 사람인 제인(濟人), 그리고 제주 문화인 제문(濟文)이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되는 과정이었다.

창의형 인간:
자연·문화·사람을 연결하는 창조성의 실천

고 서명숙 이사장의 첫 번째 인간형은 창의형 인간이다.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성의 핵심 요소를 기술(Technology), 재능(Talent), 관용(Tolerance)으로 설명하였다.4) 고 서명숙 이사장은 이러한 개념을 제주적 맥락 속에서 실천적으로 구현하였다. 그는 제주의 자연환경을 하나의 자원으로 읽었고, 지역 공동체의 다양성을 문화적 자산으로 전환하였다. 또한 제주 사람들을 단순한 주민이 아니라 길을 함께 만드는 참여자로 바라보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연제–제연–제인–제문의 흐름을 하나의 실천 체계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관계의 공간이 되었고, 문화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활 방식으로 재해석되었다.
그 중심에는 ‘길’이라는 형식이 있었다. 길은 자연과 사람, 문화를 연결하는 접점이었다. 그의 창의성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새롭게 연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었다.

학습형 인간:
벤치마킹과 재구성의 능력

두 번째 인간형은 학습형 인간이다.
학습형 인간의 핵심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선택과 재구성에 있다. 벤치마킹은 다른 사례의 강점을 분석하고, 그것을 자신의 환경에 맞게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고 서명숙 이사장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이러한 학습 과정을 경험하였다. 그는 단순히 길을 걷는 데 머물지 않았다. 길이 형성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길이 사람들에게 주는 치유와 공동체의 의미를 깊이 관찰하였다.
그리고 그 경험을 제주라는 공간에 맞게 재구성하였다. 그는 “길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하였다.5) 이 인식은 학습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학습은 외부 경험을 자기 삶의 구조 속으로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제주 올레는 바로 그러한 학습과 재구성의 산물이었다.

브릿지형 인간:
관계와 확장의 구조를 만든 사람

세 번째 인간형은 브릿지형 인간이다. 고 서명숙 이사장은 자연과 사람, 그리고 문화를 ‘길’이라는 매개를 통해 연결하였다. 이 연결은 단순한 물리적 연결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었다. 마을과 마을이 이어지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며,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흐름 속에서 연결되었다.
또한 그는 제주를 국내외와 연결하였다. 제주 올레는 전국 둘레길 조성에 영향을 주었으며, 일본과 몽골 등 해외 지역과도 연계되었다.6) 이는 지역적 실천이 세계적 네트워크로 확장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제주올레 재단의 설립은 개인의 실천을 제도적 구조로 확장한 중요한 계기였다. 길은 더 이상 일회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공공 시스템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점진·환류형 인간: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삶의 구조

네 번째 인간형은 점진·환류형 인간이다.
점진주의는 부분의 개선이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고 서명숙 이사장은 제주 올레를 한 번에 완성하지 않았다. 하나의 코스를 만들고, 운영하며, 문제를 수정하고, 다시 확장하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이 과정에서 환류(feedback)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이용자의 경험과 지역사회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며 길을 조정하였다. 그 결과 제주 올레는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구조가 되었다.
이는 제인형 인간의 중요한 특징과도 연결된다. 제인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고, 완성보다 지속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제주 올레는 바로 이러한 과정 중심의 실천이 축적된 결과였다.

후생형 인간:
공공성과 공동체를 확장한 삶

다섯 번째 인간형은 후생형 인간이다.
고 서명숙 이사장은 제주 올레를 개인적 성취로 남기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사회적 가치로 확장하였다. 올레길은 국민 건강 증진과 지역경제 활성화, 공동체 회복에 기여하는 공공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클린올레’ 환경 캠페인과 주민 참여형 프로그램은 길을 단순한 관광 자원이 아니라 공동체 플랫폼으로 전환시켰다. 여성과 청소년, 이주민까지 포용하는 다양한 참여 모델 역시 이러한 공공성의 확장을 보여준다.7)
그의 삶의 방향은 결국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데 있었다. 길은 단순한 관광 콘텐츠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삶의 구조를 실천하는 장치였다.

제인(濟人)의 종합적 인간형:
고 서명숙 이사장의 인간학적 의미

고 서명숙 이사장의 인간형은 하나의 범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창의형 인간이면서 학습형 인간이었고, 동시에 브릿지형 인간이며 점진·환류형 인간, 후생형 인간이었다.
그는 단순히 길을 만든 사람이 아니었다. 삶의 방식을 제안한 사람이었다. 그의 길은 단순한 이동 경로가 아니라 자연과 관계 맺고, 사람과 연결되며, 자신을 성찰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제주 사람 ‘제인’의 현대적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제인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며 관계 속에서 자신을 완성하는 존재이다. 고 서명숙 이사장의 삶은 그 정의를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맺음말
사람이 남긴 길, 길이 남긴 문화

고 서명숙 이사장이 남긴 것은 단순한 도보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이며 삶의 철학이다. 제주 올레는 자연에서 출발하여 문화로 확장되고, 다시 공동체와 제도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길을 만들며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그 길은 누구를 위한 길인가.
결국 길은 사람의 삶이 남긴 흔적이다. 사람은 자신이 걸어온 길과 자신이 남긴 길로 기억된다.


1) Gaston Bachelard, *The Poetics of Space*, Beacon Press, 1964.
2) 서명숙,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북하우스, 2010.
3) 제주올레 공식 연혁 자료.
4) Richard Florida,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 Basic Books, 2002.
5) 서명숙,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 북하우스, 2008.
6) 제주올레 재단 국제교류 자료 및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정책 자료.
7) 제주올레 재단 환경 캠페인 및 주민 참여 프로그램 자료.

참고자료
ㆍRichard Florida, *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 Basic Books, 2002.
ㆍGaston Bachelard, *The Poetics of Space*, Beacon Press, 1964.
ㆍ서명숙,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 북하우스, 2008.
ㆍ서명숙,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북하우스, 2010.
ㆍ제주올레 공식 홈페이지 및 연혁 자료.
ㆍ문화체육관광부, 관광진흥 유공 및 한국관광의 별 자료.
ㆍ제주특별자치도 관광 및 올레길 정책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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