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이연(自然而然)의 질서와 제연(濟然)의 성찰: 근석농장에서 읽는 사회화된 자연의 방식"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며, 인간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제주의 자연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물음은 ‘자연은 어떻게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는 가’에 있다.
필자가 제시해 온 제연(濟然)의 관점은 바로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자연은 본래 스스로 질서를 지니고 움직이는 실체이다. 우리는 그 질서를 임의로 재편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 흐름을 읽고 절제된 조절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근석농장의 「자연이연 풍경」은 자연의 자율성과 인간의 개입 사이의 긴장과 조화를 시적 언어로 압축한 하나의 ‘제연적 텍스트’라 할 수 있다.
부재 속에서도 유지되는 자연의 질서: 제연 이전의 연제(然濟)의 기반
“근석농장 주인장 / 발길 뜸해지고 / 동백은 떨어지고 / 하귤은 넘어지며”라는 장면은 인간 관리의 상황을 전제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조절의 부재를 곧 무질서로 인식하지만, 이 장면은 오히려 그 반대를 드러낸다. 떨어지고 넘어지는 현상은 붕괴가 아니라 자연의 순환 과정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질서이다. 이는 외부 개입 없이 작동하는 자연의 자기 조직적 질서, 곧 연제(然濟)의 상태를 보여준다. 1)
제연은 이러한 연제를 전제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다. 즉, 제연은 자연을 새롭게 조직하는 개념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자연 질서 위에서 인간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개념이다.
무질서 속의 질서: ‘자연이연’의 제연적 해석
“그럼에도 / 동백은 열매 맺고 / 하귤은 노래지며 / 모두가 자연이연”이라는 구절에서 제시되는 ‘자연이연(自然而然)’은 이 글의 핵심 개념이다. 자연이연은 인위적 개입 없이 사물들이 스스로 그러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동아시아 사상에서 자연의 본질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자리해 왔다. 2)
겉으로는 흩어지고 무질서해 보이는 현상도 자연 내부에서는 고유한 질서로 작동한다. 인간적 시각에서 ‘정돈’과 ‘조절’은 자연의 질서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제연의 관점에서 자연이연은 단순한 방임이 아니라 ‘사회화된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따라서 인간은 개입 이전에 자연의 고유한 질서를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회복과 순환의 다이내믹스: 자연은 스스로 균형을 만들어간다
“흩어지고 / 기울고 / 다시 일어서며 / 제 질서로 살아간다”는 표현은 자연의 자기 회복 능력을 드러낸다. 자연은 외부의 설계 없이도 균형을 회복하는 다이내믹스를 내포한다. 이러한 현상은 생태계의 항상성(homeostasis)과 자기 조직성(self-organization)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3)
제주의 자연환경 역시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강한 바람과 척박한 토양 속에서도 식생은 유지되고, 무너진 돌담은 다시 쌓이며, 생태계는 끊임없이 재조정된다. 제연은 이러한 자연의 회복 가능성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절제의 윤리’로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귀환과 자연의 반응: 관계의 회복과 공존의 리듬
“주인장 왔다고 / 동백과 하귤 / 모두 기뻐하며 / 온통 야단법석”이라는 장면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이 아닌 상호작용의 구조임을 보여준다. 자연은 인간 없이도 존재하지만, 인간이 돌아왔을 때 또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
여기서의 ‘야단법석’은 혼란이 아니라 관계의 재구성이다. 자연과 인간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의존과 공생을 확인하는 관계로 나타난다. 이는 제연이 지향하는 관계성의 핵심이다. 즉, 인간은 자연의 외부자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서 그 리듬에 참여하는 존재이다.
기쁨마저 자연의 이치로 흐른다: 제연의 궁극적 의미
“그 또한 억지가 아닌 자연이연 / 기쁨마저 제 이치로 흐른다”는 구절은 자연의 질서가 감정의 차원까지 확장됨을 보여준다. 자연은 상처뿐 아니라 기쁨 역시 자신의 질서 속에서 생성한다.
이는 인간 사회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위적으로 구성된 질서는 지속되기 어렵지만, 자연의 흐름에 기반한 질서는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 제연은 바로 이러한 지속가능성의 철학이며, 자연의 질서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삶의 방식이다.
맺음말
자연이연에서 제연으로, 그리고 지속가능성의 길로
근석농장의 풍경은 단순한 농장의 일상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금 사유하게 하는 하나의 철학적 장면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그 질서를 존중할 때 비로소 조화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제연은 자연을 통제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것은 과잉 개입이 아닌 절제, 지배가 아닌 공존, 인위가 아닌 자연스러움의 철학이다.
결국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고, 인간은 그것을 거스르지 않을 때 가장 인간다워진다.
자연이연(自然而然)의 개념 해설 및 출처
‘자연이연(自然而然)’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으로, 외부의 인위적 작용 없이 사물이나 현상이 본래의 상태로 존재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동아시아 사상, 특히 도가(道家) 철학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노자의 『도덕경』에서는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이라 하여, 궁극적으로 모든 질서는 ‘자연(自然)’에 따른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자연은 단순한 자연환경이 아니라, 인위적 조작이 배제된 ‘그대로의 존재 방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연이연은 방임이나 무질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질서에 의해 작동하는 존재 방식이다. 이는 현대적으로는 생태계의 자기 조직성, 복원력(resilience), 지속가능성 개념과도 연결된다.
주
1) Ilya Prigogine, Order out of Chaos, Bantam Books, 1984.
2) 노자, 『도덕경』, 제25장.
Fritjof Capra, The Web of Life, Anchor Books, 1996.
3) 노자, 『도덕경』, 제25장 “道法自然”.
참고문헌
1) 노자, 『도덕경』.
2) 이성근, 『제주사색』(연제·제연·제인·제문·제도 시리즈,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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