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칙과 기준이 만드는 삶의 품격: 마지막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마지막 회의장으로 가는 길에서
오늘 나는 한 특례시 도시계획위원회의 마지막 회의를 주재하러 간다. 전문성과 인품을 겸비한 후배 교수의 추천으로 맡게 된 위원장직을 연임까지 포함하여 수행하고 이제 그 소임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회의장으로 향하는 길에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내 삶을 관통해 온 몇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원칙’과 ‘기준’이다.
교수로 살아온 38년 동안, 그리고 연구기관장과 학교법인 이사장, 각종 정부위원회와 도시계획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나는 나름대로의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지키려고 노력해 왔다. 물론 늘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부족했고, 때로는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원칙과 기준이 있었기에 삶의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도시계획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민원인들에게 가장 자주 했던 말이 있다.
“나는 안 되는 일을 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되는 일을 안 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위원들에게 심의안을 충분히 설명하고 질문에 성실히 답변하면 됩니다.”
이 말 속에는 공정성과 책임성이라는 나의 원칙이 담겨 있다.
원칙과 기준은 왜 필요한가?
원칙은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 규범이며, 기준은 판단과 행동의 잣대이다. 원칙이 방향이라면 기준은 측정도구이다. 원칙이 북극성이라면 기준은 나침반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사람들이 더욱 원칙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법은 평지여수(平之如水)”라고 하였다. 물이 높은 곳과 낮은 곳을 가리지 않고 평평하게 흐르듯 법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법 위에 사람 없고 법 아래 사람 없다는 말 역시 같은 맥락이다.
민주주의 또한 원칙 위에 세워진 제도이다. 입법부는 법을 만들고, 사법부는 법을 해석하며, 행정부는 법을 집행한다. 삼권분립이라는 원칙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흔들리게 된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원칙 없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기준 없는 사람은 선택의 순간마다 방황한다. 결국 원칙은 삶의 중심축이고 기준은 행동의 방향타인 셈이다.
작은 원칙이 인생을 만든다
역사를 돌아보면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건국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Benjamin Franklin은 절제, 침묵, 질서, 결단, 검소, 근면, 성실, 정의, 중용, 청결, 침착, 순결, 겸손 등 13가지 생활원칙을 정해 평생 실천하려 노력했다.
또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Lyndon B. Johnson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아홉 가지 원칙을 제시하였다. 상대의 이름을 기억하고,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며, 축하와 위로를 아끼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원칙이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어떤 기업은 ‘정직과 의리’라는 단 두 단어를 사훈으로 삼고 있다.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구성원 모두가 그 원칙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도둑의 세계에도 원칙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국 춘추시대의 대도(大盜) 도척은 부하들에게 성(聖), 용(勇), 의(義), 지(智), 인(仁)의 다섯 가지를 강조하였다. 물론 그 목적은 잘못되었지만, 그 이야기조차도 원칙 없는 조직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화 "더 트랜스포터"의 주인공 역시 세 가지 원칙을 지킨다. 계약 조건을 변경하지 말 것, 거래는 익명으로 할 것, 포장을 열지 말 것. 비록 영화 속 인물이지만 원칙이 사람의 행동을 얼마나 강하게 통제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필자가 지켜온 원칙과 기준
돌이켜보면 나 역시 직분과 역할에 따라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살아왔다.
교수 시절에는 호학형(好學型), 자조형(自助型), 후생형(厚生型), 탐구형(探究型) 교수를 지향하였다. 배움을 좋아하고, 스스로 노력하며, 학생을 사랑하고,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교수가 되고자 했다.
학생지도에서는 “한 번은 우연이고 두 번은 습관이 된다”는 말을 중요하게 여겼다. 잘못된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결국 인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연구활동에서는 연구실적, 사회평판, 연구비 확보라는 세 가지 기준을 두었다. 세 가지 중 하나도 충족되지 않는 연구는 가급적 참여하지 않으려 했다.
사회활동에서는 수분정도(守分正道), 즉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바른 길을 걷고자 했으며, 외유내강(外柔內剛)과 심지강건(心志强健)을 삶의 태도로 삼았다.
정년 이후에는 건강제일, 가정우선, 내공충실, 소확행(小確幸)을 삶의 새로운 기준으로 설정하였다.
대경연구원장 시절에는 연구역량 강화와 성과평가의 객관화를 원칙으로 삼았고, 학교법인 이사장 시절에는 학원 이익 우선, 민주적 의사결정, 그리고 개인의 명예를 지키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리고 도시계획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는 세 가지 원칙을 늘 강조하였다.
첫째, 지역을 이롭게 할 것.
둘째, 심도 있게 심의할 것.
셋째, 회의는 즐겁게 할 것.
좋은 도시계획은 지역의 미래를 만드는 일이고, 좋은 심의는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며, 좋은 회의문화는 합리적 결정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원칙은 신뢰를 만들고 기준은 결단을 만든다
원칙과 기준을 가진 사람은 삶의 방향이 분명하다. 따라서 선택의 순간에 흔들림이 적다.
원칙은 일관성을 만들고, 일관성은 신뢰를 만든다. 신뢰는 결국 개인의 평판이 되고 조직의 경쟁력이 된다.
원칙과 기준은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예측 가능성은 안정성을 가져오고, 안정성은 생산성을 높인다. 또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행동의 기준을 제공함으로써 갈등을 줄이고 협력을 촉진한다.
공자는 “군자는 의(義)를 생각하고 소인은 이(利)를 생각한다”고 하였다. 눈앞의 이익보다 옳음을 먼저 생각할 때 공동체는 건강해진다.
성경도 같은 가르침을 전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언 3:5)
삶의 기준이 분명할 때 사람은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중심을 지킬 수 있다.
맺음말
가장 아쉬운 한 가지
그러나 돌아보면 내 삶에도 아쉬움은 있다.
사회생활과 직업생활에서는 비교적 분명한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가정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부부관계와 자녀양육, 가족 간의 소통과 여가생활에 있어서는 체계적인 원칙을 세우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인생의 회한은 성공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더 소중한 것을 충분히 돌보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마지막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를 마치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원칙과 기준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삶의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작은 나침반이다.
개인에게는 소신 있는 삶을, 가정에는 화목을, 조직에는 신뢰를, 사회에는 질서를, 국가에는 발전을 가져다주는 힘이 바로 원칙과 기준이다.
후회 없는 삶을 원한다면 누구나 자신만의 원칙과 기준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인생의 품격은 결국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어떤 원칙을 지키며 살았는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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