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래로 어머니의 삶을 깨우는 사람: 서귀포 서호동 현 선생과 제주 사람 제인의 품격"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 행정학박사
서문
사람을 통해 제주를 배우다
필자는 제주에 정착한 이후 종종 생각한다. 제주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풍광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한라산도 아름답지만, 그 산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때 비로소 제주가 보인다.
그래서 필자는 제주에서 만난 특별한 사람들을 기록하며 ‘제주 사람 제인(濟人)’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사람은 서귀포 혁신도시에 인접한 서호동의 토박이 현 선생이다. 그는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숲해설사로 일하고 있으며, 가족과 함께 두 곳의 감귤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평범한 제주 사람이다. 필자가 제주에 와서 처음 만난 귀인 가운데 한 사람이며, 지금도 차를 마시며 삶을 나누는 ‘서귀삼연’의 소중한 벗이기도 하다.
그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필자는 제주 사람 특유의 따뜻한 정과 깊은 효심, 그리고 삶의 어려움을 긍정으로 바꾸어 가는 지혜를 발견하게 되었다.
서호동에서 태어나 서호동을 지키는 사람
현 선생은 서귀포 서호동에서 태어나 평생을 한곳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산을 좋아하고 노래를 좋아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즐긴다. 무엇보다 서귀포 예찬론자이다. 또한 지역 행사와 봉사활동에도 꾸준히 참여하면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노래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서귀포의 각종 축제와 노래자랑에 참여하기도 하고, 경로당과 노인복지시설, 경로잔치 등에서 노래 봉사를 하며 어르신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한다. 그에게 노래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사람을 기쁘게 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나눔의 도구이다.
필자가 보기에 현 선생은 화려한 경력이나 특별한 명성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재능을 가족과 이웃을 위해 기꺼이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서귀포가 길러낸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제주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아흔 넘은 어머니와 함께 부르는 인생의 노래
현 선생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아흔을 넘긴 노모를 모시는 일상이다.
현재 그는 90대 초반의 어머니를 모시고 생활하고 있다. 장남으로서 돌봄의 책임을 맡고 있으며, 형제자매들도 함께 힘을 보태고 있다. 특히 여동생들은 교대로 어머니를 돌보며 가족 돌봄을 분담하고 있다.
어머니는 고령으로 인해 거동이 다소 불편하고 가벼운 치매 증상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식욕은 비교적 좋은 편이며 갈비탕을 좋아하고, 주간보호시설도 이용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돌봄의 부담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 선생은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하였다. 그는 어머니를 돌보는 시간을 노래와 춤의 시간으로 바꾸었다.
최근에는 집 마당에 음악을 틀어 놓고 어머니와 함께 노래를 듣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즐거움이었지만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면 어머니는 몸을 부드럽게 흔들었고, 흥겨운 노래가 나오면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음악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고 움직임이 살아났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몸과 마음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필자는 현 선생이 보내 준 동영상을 보면서 음악이 가진 놀라운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노래가 약이 되고 춤이 치료가 되다
현 선생이 음악치료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실천하는 모습은 음악치료의 원리와 매우 닮아 있다.
음악치료는 음악을 활용하여 신체적·정서적·인지적 기능을 향상하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증진하는 치료적 접근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첫째, 음악은 우울감과 불안을 감소시키고 정서적 안정을 돕는다. 익숙한 노래를 들으면 과거의 좋은 기억이 떠오르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젊은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는 삶의 추억을 되살리는 통로가 된다.
둘째, 음악은 기억력과 인지 기능을 자극한다. 치매 환자들이 가족의 이름은 잊어도 젊은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의 가사는 기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음악은 뇌의 여러 영역을 동시에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셋째, 음악은 신체 기능 유지에 도움을 준다. 리듬에 맞추어 손뼉을 치고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관절 운동과 근육 활동이 이루어진다. 특히 춤은 균형감각과 보행 능력 유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넷째, 음악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순간 사람들은 감정을 공유하게 되고, 고립감은 줄어들며 삶의 의욕은 높아진다.
현 선생은 이러한 전문 이론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이 약보다 먼저 함께 웃고 함께 노래하는 시간임을 알고 있었고, 사랑으로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효도는 돌봄을 넘어 함께 즐기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부모를 모시고 함께 사는 것만으로 효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현 선생의 모습을 보며 효도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였다. 효도란 부모와 함께 웃는 것이고, 부모와 함께 즐기는 것이다. 부모가 살아 있는 오늘을 행복하게 만들어 드리는 것이다.
현 선생은 어머니를 돌보면서 자신의 장기인 노래를 활용하고 있다. 노래를 통해 어머니와 더욱 가까운 시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며 웃고, 아들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노래한다. 그 모습은 마치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들을 품어 주었던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놓은 듯하다.
사랑은 주고받으며 순환한다. 부모가 자녀를 품어 주는 내리사랑의 시간이 있었다면, 자녀가 부모를 품어 드리는 치사랑의 시간도 있어야 한다. 현 선생은 바로 그 사랑의 순환을 조용히 실천하고 있다.
제주 사람 제인이 남기는 삶의 가르침
필자는 현 선생을 보며 제주 사람들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였다.
제주 사람들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화려하게 드러내기보다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한다. 가족을 돌보고 이웃을 챙기며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삶을 살아간다.
현 선생 역시 그러한 제주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산을 좋아하고 노래를 좋아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아흔이 넘은 어머니와 노래하고 춤추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의 삶은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전한다. 삶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이며 살아 있는 가르침이 된다. 어쩌면 우리는 그를 통해 효도의 의미와 행복의 조건을 다시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맺음말
노래가 있는 곳에 삶이 젊어진다
고은층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건강일 수도 있고 경제적 안정일 수도 있으며 좋은 인간관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위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삶의 즐거움이다.
즐거움이 없는 건강은 오래가기 어렵고, 기쁨이 없는 장수는 행복하기 어렵다.
현 선생은 노래를 통해 그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아흔이 넘은 어머니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 속에는 의학 교과서보다 더 깊은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음악은 몸을 움직이고, 기억을 깨우며, 마음을 치유하고,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특히 고은층의 삶은 더욱 그러하다. 나이가 들수록 약보다 웃음이 필요하고, 치료보다 관계가 필요하며, 돌봄보다 함께 즐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노래 한 곡이 하루를 살리고, 춤 한 번이 삶의 의욕을 되살릴 수 있다.
어쩌면 진정한 효도란 부모의 남은 시간을 단순히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더욱 즐겁고 의미 있게 만들어 드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행복은 거창한 선물이나 특별한 행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함께 노래하고 함께 웃으며 하루를 나누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자라난다.
필자는 서귀포 서호동의 현 선생을 통해 제주 사람 특유의 따뜻한 품성과 깊은 효심을 보았고, 동시에 노래가 사람을 살리고 삶을 밝히는 힘을 다시 확인하였다. 이것이 바로 제주 사람 제인(濟人)이 보여 주는 아름다운 삶의 품격이며, 고은층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행복의 지혜일 것이다.
참고문헌
김군자·최병철·권혜경·김수지. (2018). "음악치료학". 서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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