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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여정에서 힘든 일 가운데 하나가 인간관계이다. 인간관계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인간관계는 생득적/ 귀속적(ascrived)인 것도 있고 성취적(achieved)인 것도 있다. 필자는 평생 교수직에 종사하며 관계 지향적(relation oriented)인 삶보다 과업 지향적(task oriented)인 삶을 살아왔다. 따라서 인간관계에서 비교적 선택적이었고 자유로웠다.
그러나 정년 이후는 사정이 달라졌다. 거처와 이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 남북조시대 송계야라는 고위관리가 정년 이후를 대비해 자신이 살집을 보러 다녔는데서 생겨난 거필택린(居必擇隣)이 있다. 여기에 취필유덕(就必有德)과 교필택우(交必擇友)가 더해진다. 이는 인생살이에서 선린과 후덕과 현우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의미를 갖는다.

필자는 정년을 앞두고 삼년 간 대구 팔공산 자락에서 좋은 이웃 두 사람을 만나 셋이서 선린관계로 지내다 아쉽게도 코로나19  이전에 대구집으로 내려왔다. 정년 이후에는 동네에서 가까이 사는 교수직을 지낸 두 사람과 대학원에서 논문지도한 동년배 한 사람과 함께 선린관계를 지내오고 있다.
최근에는 용기를 내어 새로운 거처로 제주 서귀포 혁신도시에 왔다. 여기에서 우연하게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숲해설사로 일하는 제주토박이 주민(현 선생님)과 평생 중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일과 다양한 교육행정(교육장, 장학관, 학교장 등)을 지낸 제주살이 9개월 차의 교육동업자(김 선생님)를 만났다.

이 글은 제주살이 초보자가 새로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느낀 점에 기반하여 쓴 글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좋은 만남과 선린관계의 기회를 기대한다.





우리의 일생은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들과 관계하면서 살아간다. 개인에 따라 삶의 방식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과업 지향적이고 어떤 사람은 관계 지향적이다. 이들 삶의 방식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과 저런 사람 등 다양하다.
현실에서 우리의 만남은 우연일 수도 있고 의도적일 수도 있다.
어쨋든 우리의 삶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관계해야 하는가?
이 글은 우리의 기나긴 인생 여정에서 만나고 관계하면 좋은 세 가지 유형의 사람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첫째는 답을 주는 정확한 사람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힌다. 또한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긴다.

기원전 3세기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학자들이 표현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했으나 지금은 인생도 길다. 또한 16세기부터 17세기에 걸친 잉글랜드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주장한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격언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스스로 아는 것에 한계가 많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격언인 "너 자신을 알라"고 했으나 우리는 진정한 나를 모르고 살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평소 멘토와 멘티 관계로 지내는 사람이 있으면 바람직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평소 답을 주고 받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것 보다 여러 가지 긍정적 효과가 많다. 개인적으로 답을 주는 경우는 재능을 기부하는 것이고, 답을 받는 경우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지혜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답을 주는 정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필자의 생각은 '박학다식한 사람, 견문이 넓은 사람,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평소 답을 주고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네트워크와 사회적 자본이 강한 사람이 되는 길이다.


둘째는 가까이하면 득되고 이로운 사람이다.
공자는 "논어" 제16편 계씨에서 익자삼우(益者三友)로 정직한 사람, 신의있는 사람, 박학다식한 사람을 들었다.
여기에 성실한 사람을 들기도 한다. 명심보감에는 "소복은 유근이요, 대복은 재천"이라 했다. 그만큼 인생에서 부지런함과 근면함과 성실함은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에게도 이롭다.

미국의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묘비에는 "남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이, 여기 잠들다"로 쓰여있다. 또한 "여기, 나보다 현명한 사람을 주위에 모으는 기술을 알고 있던 한 사람이 잠들다"로 쓰여있다.

그러면 현대사회에서 이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필자의 생각은 '0부지런하고 솔선수범하는 사람, 자신의 창의와 행동으로 성공한 사람,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여유가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깊다. 필자는 가까이하면 득되고 이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하는 것을 지향하면 자신의 삶의 질에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셋째는 만나면 편안한 사람이다.
공자는 제자 자로가 이상을 물었을때 이렇게 답했다. "늙은이로 하여금 편안하게 하고, 벗들로 하여금 믿게 하고, 젊은이로 하여금 고맙게/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이익사회이고 기능적 사회이며 경쟁사회이다. 이런 사회는 편안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또한 편안한 사람이 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불안하고 삭막하다.

일반적으로 편안한 사람은 '느낌(feel)이 좋은 사람'이다. 느낌이 좋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집처럼 가정처럼 푸근하고 안정감을 얻는다는 말이다. 최근에 우리는 느낌에 대한 얘기를 많이 접한다. 특히 젊은 남녀관계에서 '느낌이 좋다 안좋다'로 상대방을 평가한다. 따라서 느낌은 감성의 범주에 포함된다. 또한 현대인이 가져야 할 세 가지 역량의 하나인 인본역량에 해당한다.

또한 편안한 사람은 쉬운 사람이다. 쉬운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자유로운 의사 소통이 가능하고 평안을 주는 사람이다. 쉬운 사람을 만나면 즐겁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논리도 없고 형식도 없으며 그저 자연스럽고 휴식이 된다. 생각이 자유롭고 마음이 열리며 가슴이 뻥 뚫린다. 몸은 가는 대로 자세가 취해진다.

그러면 현대사회에서 편안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
공정하고 상식적이며 믿음주는 사람, 세상을 바로 보는 긍정적인 사람, 따뜻하고 온유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드물게 만나는 편안한 사람은 그 사람의 기나긴 인생 여정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편안한 사람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편안한 사람을 만나려면 먼저 스스로가 편안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 간의 관계는 상대적이고 내가 편안한 사람을 바라면 상대방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편안한 사람의 가치지향이 중요하다.


이 글을 마치면서 우리가 만나면 좋은 사람의 세 가지 유형을 요약하고 새삼 새겨본다.

첫째는 답을 주는 정확한 사람이다.
둘째는 가까이하면 득되고 이로운 사람이다.
셋째는 만나면 편안한 사람이다.

사진/ 이성근. 제주 절물 자연휴양림. 2022.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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