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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나스 관리에서 배우는 사람 관리의 지혜: 팔방미인을 키우는 여덟 가지 성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글을 시작하며,
식물과 인간, 관리의 본질에서 만나다


식물과 인간은 생명의 양식에서 서로 다르지만, ‘잘 살리고 잘 살기 위한 관리’라는 점에서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필자는 근석농장에서 아마나스 하귤나무를 키우며, 아마나스의 관리 방식이 사람 관리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마나스는 탱자나무에 접을 붙여 키우는 하귤로, 본성을 다스리지 않으면 다시 탱자로 되돌아가는 속성을 지닌다. 해마다 적절한 전정과 주의깊은 관리 없이는 좋은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훈육과 성찰 없이 지나치면 자기중심과 이기심으로 흐르기 쉽다.

이 글은 아마나스의 여덟 가지 관리 방식을 통해 사람의 성장을 조화롭게 이끄는 방법을 살펴보고, 이를 다재다능한 인재, 즉 '팔방미인'으로 길러가는 통찰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잘라냄’과 ‘비움’은 성장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첫째, 아마나스는 죽은 가지부터 잘라낸다. 생명력 없는 가지는 살아 있는 줄기의 성장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 또한 불필요한 관계, 낡은 사고, 지나간 감정을 끊어내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둘째, 독불장군처럼 혼자 키 큰 가지는 제거한다. 이는 조화로운 생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독주하는 개인은 조직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지금은 구성원 간의 조화와 협력이 더욱 중요한 공유와 협업의 시대가 되었다.

셋째, 바람과 햇빛을 가로막는 가지도 제거한다. 이는 다른 열매의 성장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공동체 내 이기적인 행동이 타인과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반성하게 한다.

‘공생’은 세대와 가치를 아우르는 상생과 공존의 미덕이다

넷째, 아마나스는 열매와 꽃이 동시에 맺히는 특징을 지닌 하귤이다. 하나의 나무 안에  어제의 꽃인 열매가 달려 있고 내일의 열매가 될 꽃이 공존한다. 이는 고령자와 청년,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와 닮아 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공존의 태도가 요구된다.

다섯째, 아마나스는 꽃이 너무 많으면 열매가 작게 맺힌다. 스스로 균형을 조절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화려하고 말만 앞서는 사람은 깊이 있는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절제된 자세와 내실이 진정한 성숙을 이끈다.

‘구조’와 ‘역할’의 조화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의 힘이다

여섯째, 아마나스 나무의 구조에는 ‘3:3:3의 법칙’이 적용된다. 큰 기둥 세 개, 중간 줄기 세 개, 작은 가지 세 개로 균형 있게 형성된다. 이 구조에서 벗어난 가지는 밑둥까지 과감히 잘라내고, 절단면에 약을 바른다. 이러한 타원형 부채형 구조는 인간의 신체나 조직 체계에 비유할 수 있다.

일곱째, 열매는 큰 줄기가 아니라 작은 가지에서 열린다. 큰 줄기는 구조를 지탱하지만, 실제 결실은 작고 정교한 가지에서 맺힌다. 이는 국가나 사회의 발전도 소수 엘리트가 아닌 다수 시민의 참여와 역할분담, 그리고 책무성에 충실한 실천에서 비롯됨을 상기시킨다.

‘외형’보다 ‘내면’은 팔방미인의 충분조건이다

여덟째, 아마나스를 아는 사람들은 열매의 외형이 조금 미흡하더라도 그 가치를 신뢰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외형이 아니라 내실이기 때문이다. 사람 역시 외모나 말솜씨보다 내면의 진정성, 도덕성, 성실함이 점점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결국, 아마나스가 팔방미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 여덟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사람도 완벽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를 잘 관리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면 균형 잡힌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다. 훈육, 자기성찰, 배려, 절제, 그리고 내면의 깊이 같은 요소들이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팔방미인’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글을 마치며,
자연은 말없이 우리에게 가르친다

아마나스를 가꾸는 농부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가지를 치고 나무의 수형을 다듬는 데 온 정성을 쏟는다. 이러한 관리 방식은 단순한 과수 기술이 아니라 삶의 원리이자 사람을 성장시키는 지혜로 연결된다.
훈육과 자기 관리가 없는 사람은 원래의 본성으로 돌아가기 쉽고, 제어와 절제가 없는 삶은 타인의 성장을 방해한다. 자연은 말없이 우리에게 가르친다. 우리는 그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겸손과 성찰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역시 각자의 삶에서 열매를 맺고 또 다른 꽃을 피우며, 공존과 조화의 삶을 이루어갈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게 된 동기
필자는 제주 서귀포 혁신도시에 거
주한 지 3년째이며, 한림 금능 지역의 근석농장을 관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아마나스라는 하귤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비록 하귤나무 관리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퇴비를 주고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아마나스를 구매하러 온 한 부부로부터 아마나스 나무의 전지 방법과 관리 방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내용을 듣던 중, 문득 아마나스의 성장관리 방식이 사람의 성장관리 방식과 매우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된다.
식물의 생장은 자연의 법칙에 따르듯, 인간의 성장 또한 일정한 삶의 법칙과 관리의 원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자연법칙과 인간법칙이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참고자료
1) 팔방 미인
은 한국에서 여러 가지 일을 잘하고,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을 칭찬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주로 여성에게 사용되지만, 남성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 다재다능한 사람과  능력 있는 사람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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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의 편안한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편안함에 대한 소망은 삶의 궁극적 지향이다

누구나 인생의 여정을 걸으며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편안한 삶'일 것이다. 이 편안함은 단순한 육체적 안락이나 외적 안정만을 뜻하지 않는다. 내면의 평화, 원만한 관계, 일상의 균형, 사회적 안정 까지 포함하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생애 주기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고령층과 은퇴자층, 곧 '고은층(高恩層)'에게는 젊은 날의 치열함을 지나 이제는 삶을 정리하며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바람이 더욱 간절해진다.
이 글은 고은층에게 편안한 삶이란 어떤 모습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과 실천 방안은 무엇인지 몇 가지 범주로 나누어 논의하고 있다.

고은층에게 편안한 삶의 의미는
안식과 온유, 그리고 품격으로 채워지는 삶이다


편안한 삶이란 단지 고통이 없거나 외부 환경이 조용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현재의 삶에 감사할 수 있는 내면의 힘에서 비롯된다.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 안정을 포괄하는 다차원의 개념이다.
특히 고은층에게 편안함이란 ‘수고한 삶에 대한 보상’이자, 남은 생을 품격 있게 가꾸는 지혜로운 태도이며, 자신과 타인에게 주는 따뜻한 선물이다.

고은층의 일상에서 요구되는
편안한 삶은 다섯 가지이다

첫째는 편안한 가정이다.
말이 통하고 온기가 흐르는 가족,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오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부 관계는 편안한 삶의 중심이 된다. 가정은 감정의 안식처이자 정서의 중심지이다.
둘째는 편안한 인간관계이다.
경쟁, 비교, 갈등에서 자유로운 관계는 고은층의 품위를 더욱 빛나게 한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는 마음에 평안을 준다.
셋째는 편안한 만남이다.
미리 약속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말이 통하고 침묵조차 어색하지 않은 관계는 진정한 편안함의 원천이 된다. 소수라도 깊은 신뢰와 이해가 있는 만남이 중요하다. 특별히 필자는 333 원칙을 선호한다. 배움, 놀이, 여가에 세 사람이 좋다는 말이다.
넷째는 편안한 삶터이다.
자연과 가까이 있고, 이웃과 적당히 연결되며, 소음과 복잡함으로부터 거리를 둔 환경은 몸과 마음을 조용히 감싸준다. 특히 생활 공간이 줄어드는 고은층에게 삶터의 질은 삶의 질 그 자체다.
다섯째는 편안한 일과 역할이다.
은퇴 이후에도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작지만 선한 영향을  지속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은 자존감을 지키는 보람이자 내면의 안정을 가져오는 일터가 된다.

삶의 지혜 속에 담긴 편안함의 보편적 가치는 말과 믿음이 기본이다

편안함은 인류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가치이며, 다양한 말과 지혜 속에 그 정신이 전해진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은 말씨와 태도가 관계의 평안을 만든다는 뜻이다.
한자성어 "유유자적(悠悠自適)"은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마음 편히 지내는 상태나 태도를 의미한다. 유의어로 "유연자적"이 있다.
공자는 “편안함은 도리에 따를 때에야 비로소 얻어진다”고 하였고, 에픽테토스는 “진정한 평온은 외부가 아닌 내면의 질서로부터 온다”고 하였다.
성경 마태복음 11:28의 말씀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위로와 평안의 근원이 신앙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러면 고은층에게 요구되는 편안한 삶의 조건과 실천 과제는 무엇일까?

하나는 삶의 결과를 받아들임으로써 편안함을 갖는 것이다. 편안한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 속에서 다듬어진 삶의 태도, 정리된 관계, 그리고 깊은 사유에서 비롯된다.
둘은 덜어내고 비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질, 과거, 사람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마음은 가벼워지고, 평안이 찾아온다.
셋은 관계를 정리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오해와 갈등을 정리하고, 진심 어린 사과와 화해를 통해 관계를 재구성하는 일은 중요한 실천이다.
넷은 일상의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취미, 신앙생활은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든든한 기반이 된다.
다섯은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필요가 있다. 일을 떠난 후에도 봉사와 배움, 나눔을 통해 존재의 가치를 다시 찾을 수 있다.
여섯은 감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부족함보다는 주어진 것에 감사할 때, 삶은 덜 지치고 더욱 풍요로워진다.

고은층에게 편안한 삶은 스스로의 선택이며, 태도의 결실이다

고은층이 바라는 편안한 삶은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향하는 가치와 자존감을 유지하고, 다양한 관계를 조절하며, 일상의 균형을 이루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편안한 사람’이 되어 서로에게 쉼이 되고, 자신에게도 따뜻한 동반자가 되어야 할 때다. 고요히 흘러가는 황혼의 삶 속에서, 편안함이야말로 가장 귀하고 복된 선물임을 잊지 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편안한 사람들과의 차담, 그 따뜻한 인연"

필자는 ‘333 원칙’을 좋아한다. 배움, 놀이, 여가의 순간마다 세 사람의 만남이 가장 좋다는 의미이다. 서귀포 혁신도시에서 거주한 지 어느덧 3년째, 그간 ‘서귀삼연(西貴三然)’과 ‘신서귀삼연(新西貴三然)’이라 부르는 인연들을 통해 소중한 만남이 이어져 왔다. 특별한 약속 없이, 시간이 나면 그저 전화 한 통으로 차 한 잔을 나누는 사이. 신기하게도 매번 누군가에게 전화하면 언제나 시간이 맞고, 자연스럽게 셋이 모이게 된다.

이 인연은 무던하고도 따뜻하며, 편안한 사람들과 나누는 차담의 시간은 어느새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어제도 그러했다. 평소처럼 자연스레 모인 자리에서, 필자는 문득 한 분께 이렇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은 참 편안한 분이십니다.” 그 순간, 마음속 깊이 감동이 일었고,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

늘 변함없이 따뜻한 자리를 함께해 주는 두 분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편안한 차담의 시간이 앞으로도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참고자료
1) "안거위사(安居危思)"는 편안할 때도 위험한 상황을 생각하라는 뜻으로, 춘추시대 진나라와 초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시대에 위강이 도공에게 건의하면서 유래되었다. 위강은 도공이 정나라로부터 받은 예물을 사양하며 "평안할 때 위험을 생각하고, 안정할 때 변동을 생각하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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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高恩層)의 삶을 위한
오월의 기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오늘, 최고의 날로

신록이 짙어가는 오월,

우리 고은층에게
오늘 하루를 최고의 선물로 여기게 하소서

받은 은혜를 깊이 감사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게 하소서

스스로를 존귀히 여기고,
복된 삶의 향기를 피워내게 하소서


성경구절과 명언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오늘은 어제 죽은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다."
"Today is the tomorrow that the dead were dreaming of yesterday." 또는
"Today is the tomorrow many died wishing they could see."

이 말은 종종 애널리스 스콧(Annaliese Scott) 또는 알릴 루이스(Ali Larter) 등의 이름과 연결되어 인터넷에 퍼져 있으나, 신뢰할 만한 출처나 문헌에서 이 문구의 정확한 원저자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익명 명언(anonymous quote)**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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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에 담긴 일상  속 이야기: 오리, 소, 돼지, 닭, 양, 개에 얽힌 전통 이야기와 현대적 의미를 중심으로"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글을 시작하며

고기는 단순한 음식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오랜 세월 동안 인류는 고기를 먹는 방식, 고기를 대하는 태도 속에서 삶과 문화를 담아왔다. 나라별로, 지역별로, 때로는 가정마다 고기에 얽힌 이야기는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대체로 ‘좋아하는 고기’, ‘기피하는 고기’, ‘금기하는 고기’에 대한 인식은 사회의 가치관과 음식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건강과 윤리, 환경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전해 내려오는 고기에 관한 이야기들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최근 제자들과 이실연 파크골프 모임을 마친 후 들른 오리고기 식당에서, 나는 다시금 이러한 문화적 함의를 떠올리게 되었다. 김 의장이 들려준 다음과 같은 말이 인상 깊었다.

"오리고기는 제 돈 주고 사 먹고, 소고기는 사주면 먹고, 돼지고기는 사줘도 안 먹는다. 돼지고기는 먹고 싶으면 따라가야 하고, 잘 먹어야 본전을 친다."

언뜻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 표현에는 고기 종류에 따른 선호도, 건강에 대한 인식, 그리고 사회적 관계까지 아우르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전통적으로 고기에 얽힌 이야기를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음식에 담긴 문화적 의미는 물론, 오늘날 식생활에 대한 지혜도 함께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리고기는 제 돈 주고 사먹는 귀한 보양식이다

오리고기는 예로부터 건강식으로 여겨져 왔다. 한방에서는 오리를 ‘천연 보약’으로 칭하며, 기혈을 보충하고, 체내 열을 내려주며, 독소를 해독하는 효능이 있다고 믿어왔다. 여름철 복날에 삼계탕 대신 오리백숙을 찾는 전통은 무더위에 지친 기운을 보충하려는 지혜의 발로였다.
"제 돈 주고 사 먹는다"는 표현은 오리고기의 건강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가격대가 다소 높은 편이지만, 그만큼 건강을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기꺼이 지갑을 열게 하는 귀한 음식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소고기는 사주면 고맙게 먹는 귀한 대접 음식이다

소고기는 전통적으로 가장 귀한 고기로 인식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소가 농경 사회의 필수 가축이었던 탓에 도축이 엄격히 제한되었고, 이에 따라 소고기는 명절이나 잔치 같은 특별한 날에만 맛볼 수 있었다.
"사주면 먹는다"는 말은, 스스로는 부담스러워 선뜻 사먹지 못하지만, 누군가 대접해 준다면 감사히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표현한다. 오늘날에도 소고기는 '한우'라는 이름만으로도 여전히 ‘귀한 대접’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돼지고기는 사줘도 꺼린다

돼지고기는 서민들의 일상 식탁을 책임져 온 가장 대중적인 고기였다. 그러나 위생 관리가 지금처럼 철저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돼지고기의 특유한 누린내나 지방 함량 때문에 기피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줘도 안 먹는다"는 표현은 다소 과장된 풍자지만, 돼지고기에 대한 미묘한 거리감을 드러낸다. 또한 이슬람교와 유대교를 비롯한 일부 종교권에서는 돼지고기를 부정한 음식으로 간주하여 철저히 금기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에는 품질 관리와 다양한 조리법의 발달로 삼겹살, 목살, 갈비살 등 부위별로 인기가 높아지면서, 돼지고기는 대중적인 고기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닭고기는 병을 이겨내는 영양식이다

닭고기는 예로부터 ‘약식’으로 여겨졌다. 병약한 이들이 회복을 위해 먹는 삼계탕이나 백숙이 그 대표적인 예다. 닭은 소에 비해 사육과 도축이 간편하고, 경제성도 뛰어나 농가에서도 쉽게 길러 소비할 수 있었다.
"아픈 사람에게 닭을 끓여 먹인다"는 속담은, 닭고기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치유와 회복을 돕는 음식으로 인식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삼복더위에 닭을 먹는 '복달임' 풍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양고기는 지역에 따라 귀하거나 꺼려한다

양고기는 지역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고기다. 중동, 중앙아시아, 몽골, 뉴질랜드 등에서는 양고기가 단백질 공급의 주요원이자 귀한 대접 음식으로 여겨진다. 이들 지역에서는 양의 번식력과 적응력을 높이 평가하고, 종교적 의례나 축제에도 양고기를 사용한다.
반면 동아시아 문화권,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는 양고기의 특유한 냄새 때문에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최근에는 냄새를 줄인 양고기 품종과 다양한 요리법이 보급되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수요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개고기는 문화에 따라 성찬이거나 금기시 한다

개고기에 대한 인식은 나라와 문화에 따라 가장 첨예하게 갈린다. 한국, 베트남,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개고기를 보신(補身) 음식으로 여겨 여름철에 먹는 풍습이 있었다. 개는 충성심과 용기를 상징하는 동물로, 몸에 좋은 기운을 준다고 믿기도 했다.
그러나 서구권을 중심으로 반려동물 문화가 확산되면서, 개를 식용하는 행위는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현재 한국에서도 개고기 식용 문화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으며, 법적 규제와 사회적 인식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음식문화는 시대와 가치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고기에 담긴 일상 속 이야기와 음식문화의 재정립

이처럼 고기 음식에는 단순한 맛이나 영양을 넘어서는 문화적 맥락과 삶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오리는 건강의 상징으로, 소는 귀한 대접으로, 돼지는 일상의 친근함과 동시에 미묘한 거리감으로, 닭은 치유와 보살핌의 상징으로, 양은 지역에 따라 귀함과 기피를 동시에 안은 존재로, 개는 문화적 경계선을 드러내는 존재로 자리해왔다.
현대사회는 건강, 환경, 윤리라는 새로운 기준 위에서 음식문화가 재정립되고 있다. 지나친 육식은 지양하고, 적정 섭취와 균형 잡힌 식생활이 권장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전해지는 고기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를 제공한다.
어떤 고기를 선택하든, 어떤 음식을 입에 넣든, 그 속에는 수백 년을 이어온 인간의 삶, 생존의 지혜, 그리고 문화적 축적이 깃들어 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 바로 그것이야말로 건강하고 품격 있는 식생활을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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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의 자질과 품격을 묻는다
'깐죽거림'과 '깐죽이'의 정치행태"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토론장의 품격이 대선의 품격이다

최근 대선정국에서 일부 후보들이 토론 과정에서 보여준 '깐죽거림'과 '깐죽이'식의 언행이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질문의 내용이나 태도, 답변 과정에서 비아냥과 깔보는 듯한 태도가 드러나면서, 과연 이들이 국가 최고 통치권자로서 국민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대선 후보는 단순히 정책만을 경쟁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을 향한 태도와 품격을 검증받는 무대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깐죽'이라는 표현의 의미와 어원, 정치적 맥락에서의 부적절성, 그리고 대선 후보로서 품격과 자질의 중요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깐죽거림'과 '깐죽이'의 의미와 어원, 그리고 문제의식

'깐죽거림'은 남을 은근히 건드리거나 귀찮게 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속어로, '까다롭게 구는' 또는 '시비를 거는'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다. '깐죽이'는 여기에 쓸데없이 깐죽거리는 태도를 반복하는 사람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원래 일상 언어에서 농담이나 핀잔의 의미로 쓰이기도 했으나, 공식 정치 토론의 장에서는 결코 가벼이 다룰 수 없는 표현이다. 공적 토론에서 깐죽거림은 논리적 비판이나 품격 있는 질문과는 거리가 멀며, 상대를 조롱하거나 깎아내리려는 태도로 읽히기 쉽다. 결국 이는 토론 문화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정치 불신을 심화시킨다.

대선후보 토론에서 '깐죽거림'이 갖는 위험성

대선 후보는 개인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위치에 있다. 그들이 토론장에서 보여주는 언행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지표가 된다. 깐죽거리거나 비아냥대는 태도는 질문자의 품위는 물론, 토론을 듣는 국민에 대한 무례로 직결된다. 토론은 상대를 눌러 이기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 앞에서 국정운영의 방향성과 철학을 진지하게 설명하고 검증받는 과정이다. 깐죽거림은 이 과정의 신뢰를 훼손하고, 결국 정치 전체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독이 된다.

'깐죽거림'과 '깜냥'은 자질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최근 후보들 간의 설전에서 깐죽거림과 진정한 논리적 검증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깐죽거림은 비판이 아니다. 비판은 상대를 향한 논리적 질문과 대안을 수반하지만, 깐죽거림은 단순한 조롱일 뿐이다. 또한, 자신의 능력, 즉 깜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를 깔보는 언행을 서슴지 않는 것은 스스로 자질을 드러내는 꼴이다. 깜냥을 갖춘 사람은 겸손과 진중함을 보이며, 깜냥이 부족한 사람은 깐죽거림으로 허세를 부리기 쉽다. 유권자는 이 점을 날카롭게 구분해야 한다.

대선 후보의 질문과 답변하는 태도와  품격은 국민을 향한 존중의 시험대가 된다

질문과 답변은 단순한 지식의 교환이 아니라 태도와 품격의 시험이다. 질문의 수준은 후보자의 통찰력과 문제의식, 국가 비전의 깊이를 보여준다. 또한, 상대 후보의 질문을 대하는 태도는 곧 국민의 목소리를 대하는 태도와 후보의 품격으로 직결된다. 깐죽거림이나 깐죽이는 결국 "나는 당신들을 가볍게 본다"는 무의식적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최고 통치권자는 국민을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깊이 듣고 성실히 응답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토론장에서의 언행은 작은 듯 보이나, 그 사람의 국정철학과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 수준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깐죽이가 아니라 통찰력의 리더를 선택해야 한다

깐죽거림이 난무하는 대선 토론은 결코 건강한 정치문화가 아니다. 우리는 깐죽거리는 '깐죽이'를 뽑으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통찰과 국민을 향한 존중을 품은 리더를 뽑아야 한다. 깐죽거림이 아닌 비전으로, 깜냥 없는 조롱이 아닌 품격 있는 논리로 국가를 이끌 후보를 찾아야 한다. 이번 대선은 단순히 권력을 맡기는 행위가 아니다. 우리의 삶과 미래를 맡길 사람을 선택하는, 품격과 지혜의 결정이 되어야 한다.


요약

대선 후보의 자질과 품격을 묻는다
깐죽거림'과 '깐죽이'의 정치행태

최근 대선 토론 과정에서 일부 후보들이 '깐죽거림'과 '깐죽이'의 언행을 보이며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깐죽거림'은 원래 농담조의 일상 표현이지만, 공적 토론장에서의 깐죽거림은 논리적 비판이 아닌 조롱과 무례로 받아들여져 정치 불신을 심화시킨다. 대선 후보는 개인이 아니라 국민 대표로서의 품격을 검증받는 자리인 만큼, 토론 태도는 곧 국정철학과 국민 존중의 수준을 드러낸다. 진정한 리더는 깐죽거림이 아닌 통찰과 진중함으로 국민과 소통해야 하며, 유권자는 깐죽이가 아닌 비전과 품격을 갖춘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이번 대선은 단순한 권력 교체가 아닌, 우리의 미래를 맡길 품격 있는 리더를 선택하는 지혜로운 선거가 되어야 한다.

하나. 토론장의 품격이 대선의 품격이다.
"대선 토론은 정책 경쟁을 넘어 국민에 대한 존중과 품격을 검증하는 무대다."
둘. '깐죽거림'과 '깐죽이'의 의미와 위험성
"깐죽거림은 논리도 비판도 아니다. 그것은 정치 불신을 키우는 독이다."
셋. 대선 후보의 토론 태도가 국정철학을 드러낸다.
"토론장에서의 무례는 곧 국정운영에서의 무책임을 예고한다."
넷. 깐죽거림이 아닌 논리, 깐죽이 아닌 깜냥을 보라.
"깐죽거림으로 허세를 부리는 자가 아니라, 깜냥과 품격으로 답하는 자를 선택하라."
다섯. 깐죽이가 아닌 통찰력 있는 리더를 선택해야 한다.
"깐죽거림이 아닌 비전으로, 깐죽이가 아닌 품격으로 국가를 이끌 리더를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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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층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와 실천 덕목으로 ‘고은구덕에 대한 논의"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고은층의 삶, 어떤 품격으로 완성할 것인가?

“노인은 도서관이자 살아 있는 보물이다.”
이 말은 시대와 문화를 넘어선 인류의 공통된 깨달음이다. 아프리카 속담에는 “노인 한 명이 죽으면 하나의 도서관이 불타는 것과 같다”고 전하고, 중국에는 “집에 노인이 있으면 보물을 가진 것과 같다(家有一老 如有一寶)”는 격언이 전해온다. 서양 역시 “An old man in a house is a living treasure”라 하며, 노인을 지혜의 상징으로 여긴다.
김열규 교수는 "노년의  즐거움"에서 “노인은 가족의 역사책이며 공동체의 산 기록자”라 했다. 이는 단순한 연령을 넘어선 삶의 깊이와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평가이다. 고령층을 어떻게 대우하는가는 곧 사회의 성숙도와 품격을 드러내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오늘날 기대수명의 연장으로 인생은 제3막으로 진입하였고, 고령층과 은퇴자층 즉 ‘고은층’은 더 이상 소극적 존재가 아닌, 품격과 지혜로 공동체를 이끄는 사회적 자산이다.
이 글은 고은층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와 실천 덕목으로 ‘고은구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고은 1덕은 말의 품격이다. 존중과 공감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말은 곧 인격이며, 언어는 관계의 씨앗이다. 심리학자 마셜 로젠버그는 ‘비폭력 대화(NVC)’에서 “말이 공동체를 살릴 수도, 해칠 수도 있다”고 했다. 고은층의 격려 한 마디, 다정한 칭찬은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된다. 존중과 공감의 언어는 품격 있는 인간관계의 시작이자 끝이다.

고은 2덕은 회복하는 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잃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회복탄력성(resilience) 이론에서 회복 능력은 훈련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고, 걷고, 나누는 태도는 고은층의 삶을 더욱 깊고 단단하게 만든다. 그 용기는 다음 세대에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가 된다.

고은 3덕은 감성의 품격이다. 공감과 이해, 눈물과 가슴으로 품는다.

나이가 들수록 중요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다. 대니얼 골먼은 감성지능(EQ)이 인간관계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고은층이 보여주는 공감과 이해, 그리고 눈물은 공동체를 따뜻하게 품는 바탕이 된다. 필자는 눈물이 많은 편이다. 이런 나를 보고 후배 여성은 "눈물 없는 남자와는
데이트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라고 하였다. 어쨌든 감성의 품격은 삶의 울림을 만드는 힘이다.

고은 4덕은 자작의 태도이다. 스스로 삶을 설계하고 실천한다.

알버트 반두라의 자기효능감(self-efficacy) 이론은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삶의 질에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고은층에게 자작은 경제적 독립만이 아니라 정서적 사회적 주체로서 기능함을 의미한다. 필자가 정의하는 자작의 개념요소인 자조, 자립, 자영의 삶은 고은층의 품격을 받치는 기둥이다.

고은 5덕은 배움의 지속이다. 탐구하는 고은층은 활력이 있다.

OECD는 "노년의 학습 참여가 고립과 우울을 줄이고, 사회적 연대감을 높인다’'"고 분석하였다.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배움을 지속하며 자연과 문화와 역사를 탐방하는 고은층은 지혜의 전도사이자, 지식의 유기체가 된다. 무엇보다 고은층의 배움은 활력을 가져다준다.

고은 6덕은 나눔의 실천이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자산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상징자본’이라 설명하였다. 고은층이 가진 시간, 경험, 지혜는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사회적 자산이다. 봉사, 조언, 격려를 통해 고은층은 ‘공공 자산’으로 기능해야 한다. 나눔은 실천할 때 품격이 높아진다.

고은 7덕은 겸손과 배려이다. 관계의 깊이를 더하는 기본이다.

임마누엘 칸트는 타인을 ‘목적 그 자체’로 대할 것을 강조하였다. 고은층이 보여주는 양보, 경청, 인내는 세대 간 소통을 부드럽게 하고, 공동체의 갈등을 완화한다. 겸손은 단순한 덕목이 아니라, 품격 있는 관계를 위한 삶의 기본이다.

고은 8덕은 예의와 도덕이다. 일상의 삶으로 가르친다.

역할 이론은 ‘삶으로 가르치는 것이 가장 강력한 교육’이라 말한다. 고은층은 행동하는 교육자이다. 절제된 몸가짐, 정중한 인사, 도덕적 선택은 후세대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도덕 나침반이 된다. 고은층의 품격은 ‘행동하는 교과서’이다.

고은 9덕은 공공선과 사회후생의 선한 영향력이다. 사회적 덕성으로 삶을 완성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폴리스적 존재”라 했다. 고은층의 진정한 품격은 개인의 완성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기여에서 빛난다. 은퇴 후에도 봉사, 멘토링, 지역활동에 참여하는 고은층은 사회의 귀감이며,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핵심 주체가 된다.

고은층의 덕은 아름다운 유산이며, 품격 있는 인생의 완성이다.

아홉 가지 고은구덕은 단지 이상적 담론이 아닌, 일상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태도이다. 고은층은 인생의 끝자락이 아니라 성숙의 절정에서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창출할 수 있는 주체이다.
점잖게 나이 들고, 덕으로 빛나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고은층이 이 시대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며, 품격 있는 인생의 완성이다.


참고자료
1) 비폭력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는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그 말 뒤에 있는 그 사람의 느낌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듣게 해 주는 대화 방법이다.
2)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원래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을 뜻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시련이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즉, 마치 오뚝이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말한다. 
3) 골먼의 감성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은 자기 인식, 자기 조절, 동기 부여, 공감, 그리고 사회적 기술이라는 5가지 영역으로 구성된다. 이 영역들은 개인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관리하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효과적으로 관계를 맺고 협력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의미한다. 
4) 심리학에서 자기효능감(自己效能感, self-efficacy)은 어떤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이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앨버트 밴듀라(Albert Bandura)가 제시한 개념이다.
5) 피에르 부르디외는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상징적 자본'으로 보았다. 부르디외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경제적 자본, 문화적 자본, 사회적 자본, 그리고 상징적 자본으로 분류했다. 이 중에서 상징적 자본(symbolic capital)은 특정 자본을 통해 사회적 인정을 얻게 되었을 때 기능하는 자본을 의미한다. 노인의 지혜와 경험은 문화적 자본의 한 형태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때 상징적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다. 
6) '폴리스적 존재'는 인간을 자연적으로 정치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존재, 즉 정치적 동물로 보는 관점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폴리스적 동물'(politikon zōon)이라고 칭하며, 이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고 참여하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7) 고은층에 대한 추천 도서
김열규. "노년의 즐거움: 은퇴 후 30년 그 가슴 뛰는 삶의 시작." 비아북. 2009.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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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통찰력 · 판단력 · 실천력의 역량과 ABCD의 기본 덕성"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전 대구경북연구원장



위기의 시대, 다시 대통령을 뽑는다

2025년 6월, 우리는 다시금 대통령을 선출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3년 전, 필자는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판실의 역량과 ABCD의 기본 덕성을 갖춘 대통령을 바란다”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지도자에 요구되는 요건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의 기대는 아쉽게도 실현되지 못하고 불행하게도 미완성으로 끝났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비상 상황에서 21대 대통령 선거가 조기에 치러지는 지금, 우리는 더 절박하게 국가와 국민을 위한 리더십을 기대하게 되었다.
지금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위기의 국가를 안정시키고 다음 세대로 이끌 지도자를 선출해야 할 싯점이다. 안으로는 사회적 분열과 경제적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고, 밖으로는 미·중 간 전략경쟁 격화, 2기 트럼프 정부의 출범에 따른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회귀, 북한의 핵무력 공식화와 도발 지속이라는 외교·안보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복합위기 속에서 유권자의 한 표는 그 무엇보다도 무겁고 중요하다.

2025년,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복합 위기와 복잡계 사회

지금은 여러 사회문제가 얽히고설켜있는 카오스 상황의 복잡계 사회이다. 필자는 이를 여러 사회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히고설켜있는 초불확실성 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면 우리의 복잡계 사회는 어떠한지 알아보자.

하나는 이제 북한이 더 이상 ‘비핵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023년 말, 북한은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기하였고, 전략핵과 전술핵의 병행 전략을 지속하며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둘은 미국이 2기 트럼프 정부의 출범으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우선의 보호무역과 동맹의 무게 중심을 흔들고 있다.
셋은 중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국제질서 도전에 나서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는 무력충돌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넷은 국가적으로 저출생과 지방소멸이 ‘국가 공동체 해체’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젊은 세대는 기회의 위기에 놓여있고, 고은층 세대는 일상의 위기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복합 위기의 실체 앞에서 대통령은 더 이상 ‘관리자’가 아니라, 역사적 결단과 미래 설계를 동시에 이끌 국가전략가여야 한다.

우리가 당면한 시급한 국정과제

지금의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국정철학과 전략은 단기적 임기응변보다 중장기적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삶이 걸린 당면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다.

하나는 국가안보의 대전환이다. 국가안보는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생존문제이다. 북핵의 실체화에 대응하는 자체 핵보유의 논의를 포함한 한미동맹의 재정비, 전략자산의 상시 배치, 사이버 · 우주 ·AI 안보체계의 구축이 절실하다.
둘은 산업과 일자리의 혁신이다. 산업과 일자리는 국민이 일하고 먹고사는 문제이다. 이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이니다. 역대 정부에서 노력했고 지금도 그리고 내일도 중요한 과제이다. 미래의 산업과 일자리는 디지털 전환, AI · 반도체 · 바이오·그린에너지 중심의 국가 신산업 생태계의 혁신이 시급하다.
셋은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의 글로컬 차원의 대응이다. 원전과 신재생의 조절,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을 위한 국가 전략체계의 재구조화가 요구된다.
넷은 지방소멸과 인구위기의 극복이다. 교육 · 의료 · 복지의 지역균형화, 청년유인형 지방분권  자립적 지역발전 모델의 설정과 실천이 절실하다.
다섯은 사회통합과 국민 신뢰의  회복이다. 갈등조정 중심의 사회협약기구의  설치ㆍ운영, 무엇보다 정치와  권력기관의 개혁이 필요하다.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 역량은  통찰력과 판단력, 그리고 실천력 즉 '통판실'의 역량이다

이러한 국정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 역량은 여전히 변함없고 유효하다.
하나는 통찰력(Insight)이다.
이는 미래를 꿰뚫는 선견과 복잡계 사회의 본질을 꿰차는 능력이다.
둘은 판단력(Judgment)이다. 이는 성장과 발전, 조화와 균형 그리고 시대정신에 맞는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역량이다.
셋은 실천력(Execution)이다. 이는 불필요한 갈등을 조정하고 국민과의 신뢰 속에 때를 놓치지  않으며 과감히 추진하는 실행의 힘을 말한다.

이러한 역량은 외교안보, 경제, 사회, 행정 등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기반으로 하되, 무엇보다 ‘국민을 위한’ 방향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필자는 이를 국어의 첫머리 글자를 따낸 '통판실'과 영어의 첫머리 글자를 따낸 'IJE /이제' 역량과 리더십이라 부른다. 특별히 필자는 'IJE/ 이제'를 제발 좀 과거를 떠나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리더십과 역량을 갖춘 대통령이 선출되기를 바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ABCD의 기본 덕성

대통령 역량만으로는 하나가 부족하다.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 걷는 도덕적 리더여야 하며, 필자는 다음 네 가지 ABCD 덕성을 지난번 글에 이어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하나는 A로 Authenticity(진정성과 정직성)이다. 대통령은 공적 삶의 전 과정에서 일관되고 신뢰받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둘은 B로 Belief System(확고한 신념체계)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헌법적 가치에 대한 흔들림 없는 원칙을 가지고 지켜야 한다.
셋은 C로 Communication(소통력과 공감성)이다. 대통령은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는 언어와 행동의 지도력을 솔선수범해야 한다.
넷은 D로 Duty & Mission(책임의식과 사명의식)을 지녀야 한다. 공적 책무에 대한 무한 책임과 헌신이 요구된다.

오로지 유권자의 합리적이고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대통령을 선택하는가이다. 유권자의 선택은 그저 한 표가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운명과 방향성을 정하는 정치행동이다.
유권자는 이제 포장된 이미지보다 진짜 역량과 도덕성을 보아야 한다. 분열을 조장하는 선동보다, 통합을 이끄는 품격 있는 언어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국민은 ‘정치인’이 아닌 ‘국가의 미래를 설계할 리더’를 뽑아야 하며, 합리적 투표를 통해 이 나라의 미래 100년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필자는 지금의 '좌불안석"과 같은  대한민국을 '포공의 구덕'처럼 앞으로 선출될 21대  대통령이 풀어주기를 바란다. 그 첫걸음은 우리 일반 유권자들의 투표로부터 시작된다. '이제' 좀 그만 하고,
2025년 6월, 새로운 시작을 기대한다

우리 모두  "21대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통찰력 · 판단력 · 실천력의 역량과 ABCD의 기본 덕성"을 기억하고 기억하며 투표에 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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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라지와 철면피형 인간을 걷어내자: 뽑지 말아야 할 인간형과 뽑아야 할 대통령의 자질”

이성근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대선은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다

다가오는 6월 대선은 단순히 정당이나 이념을 고르는 정치 행위가 아니다. 이는 곧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인간’을 선택하는 결정적 순간이다. 지금 우리 앞에는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책임을 회피하고, 본질 없는 처세로 무장한 인물들이 넘쳐난다. 어떤 이들은 이름값과 화려한 포장으로 유권자를 현혹하고, 또 어떤 이들은 과거의 낡은 정치술을 그대로 답습하며 중심에 서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꾸라지형’, ‘꼬라지형’, ‘철면피·후흑형’ 인간을 가려내고, 정직과 의리, 책임과 겸손, 그리고  미래 비전을 갖춘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꾸라지형 인간’은 언변 뒤에 숨은 무책임의 얼굴이다

‘꾸라지’란 미꾸라지를 빗댄 말로, 언변은 능하되 책임에는 미숙한 인간형을 가리킨다. 이들은 위기를 말솜씨로 덮고, 불리하면 해석을 바꾸거나 논점을 비틀며 빠져나간다.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법꾸라지’라는 별명도 이들에게서 비롯된다.
그러나 우리는 언변보다 진실을, 회피보다 책임을 감당하는 용기를 원한다. 국민은 위기 때 사라지는 지도자가 아니라, 함께 위기를 돌파할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꼬라지형 인간’은 자기 위치를 모르는 과잉의 인물이다

‘꼬라지’는 보기에 거슬리는 태도나 처신을 뜻한다. 자격도 준비도 없는 이들이 과도한 허세와 공세로 중심에 서려 한다면, 국민은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고 현실감 없이 떠드는 이들의 외양과 언행은 비호감 그 자체다.
진정한 권력은 품격 있는 겸손과 내실 있는 경험 위에서 발휘되어야 한다. 꼬라지형 인물은 사회적 신뢰를 해치고, 공동체를 소모시킨다.

‘철면피·후흑형 인간’은 위선과 음흉함의 결합체이다

‘철면피형’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 ‘후흑형’은 겉으로는 온화하지만 속으로는 음흉하고 이기적인 전략가를 뜻한다. 이 둘이 결합된 지도자는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우고, 위기의 순간마다 책임을 회피하며 타인을 도구화한다.
이러한 지도자는 국민을 분열시키고, 공동체를 파편화한다. 위기 때 책임지지 않는 지도자, 유권자를 기만하는 인물은 국가의 내일을 설계할 자격이 없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대통령의 다섯 가지 자질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자질을 갖춘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자질1은 정직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며, 사실을 기반으로 소통하는 인물이다.

자질2는 의리이다.
관계와 신념을 끝까지 지키며,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인물이다.

자질3은 책임이다.
결정에 따른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고, 실패를 남 탓하지 않는 인물이다.

자질4는 겸손이다.
권력의 무게를 알고, 국민을 섬길 자세를 갖춘 인물이다.

자질5는 미래 지향성이다.
당장의 인기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바탕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 다섯 가지는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의 핵심 덕목이다.

우리의 미래는 유권자의 손에 달려 있다


이제 선택은 국민의 눈과 귀, 그리고 손에 달려 있다. 이념과 진영을 넘어, ‘삶’과 ‘품성’, ‘위기상황의 대처 능력’으로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꾸라지와 꼬라지, 철면피와 후흑형  인간을 권력에서 멀리해야 한다.
진정한 변화는 깨어 있는 선택에서 시작된다. 정직한 눈, 통찰의 귀, 그리고 현명한 손으로 투표용지를 채울 때, 대한민국의 미래가 새롭게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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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파크골프장/ 서파장에서  만난 신서귀삼연(新西貴三然)의 이야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서파장에서 만난 신서귀삼연

필자는 대학교수로 정년을 마치고, 지금은 고은층(고령층과 은퇴자 )으로서 제주 서귀포 혁신도시에서 삼 년째 살고 있는 자칭 ‘신서귀포인’이다. 삼 년 가운데 첫 이 년은 서귀삼연의 김 선생과 함께 제주의 산을 비롯한 자연을 즐겼고, 최근 일 년은 강창학과 칠십리의 서귀포 파크골프장, 즉 ‘서파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 두 곳에서 두 명의 특별한 골퍼를 만나게 되었고, 필자는 ‘신서귀삼연(新西貴然)’으로  이름 지었다. 이는 ‘서귀포에서 자연스럽게 만난 세 사람의 귀한 인연’을 뜻한다. 우리는 서파장에서 건강, 우정, 공동체 가치를 함께 나누는 관계이다.

강창학과 칠십리 파크 골프장/ 강 칠 파장이 가져온 고은층의 정원

서귀포 강창학과 칠십리 파장은 단순한 파장이 아니다. 이곳은 자연을 벗 삼고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휴식처이며, 우정과 이야기가 있는 고은층의 정원이다. 그 안에서 우리 신서귀삼연은 서로에게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주고, 나눔과 배려의 가치를 채워준다. 매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약속 시간에 만나 손에 클럽을 쥐지만, 사실 그것은 우정을 이어가는 매개일 뿐이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어온 삶의 경험을 두 파장에서 공유하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묵묵히 걸어가는 선한 이웃이 된다.

사람의 향기를 품은 신 대표의 결단과 선의의 삶

예천 출신의 신 대표는 오랜 세월 청주에 살다가 서귀포로 이주하고, 여전히  청주를 오가며 생활하는 말 그대로 ‘신서귀인’이다. 사업가이자 전문 기술자로 일하다 회사를 직원들에게 넘기고 은퇴한 후,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봉사와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매번 무언가를 나눠주고, 내가 알게 모르게 사진을 찍어 전하는 인정  많은 사람이다.
파크골프에서도 그의 성품은 나타난다. 필자가 이름 지은 ‘달관타법’이라 불리는 그의 스윙은 성적보다 분위기, 기술보다 관계에 무게를 둔다. 특별히 퍼팅은 일품이다. 동시에 불의에 단호히 맞서는 행동은 ‘공적인 민간인’의 품격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조절된 리듬의 미학을 지닌 김천의 이 선생

구미에서 체육교사로 정년을 마친 이 선생은 김천 출신으로, 현재는 서귀포 법환포구에서 가족과 함께 아름다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도서관에서의 독서, 제주의 자연 탐방, 주일 예배, 파크골프 훈육 등 규칙적인 루틴 속에서 그는 신념과 조율된 삶의 리듬이 지닌 미학을 실천한다. 특히 이 선생은 가족, 건강, 신앙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며, 그의 일상은 고은층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필자는 그의 파크골프 플레이를 지켜보며 ‘정석타법’이라 이름 붙였다. 모든 동작이 원리와 훈육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말하기보다는 경청하는 태도를 지녀,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깊이 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 그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삼도 경계인’처럼 어느 한 지역에 구속되지 않으면서도, 어디서든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덕성을 지닌 인물이다.

철학자가 말하는 우정의 개념과 신서귀삼연이 실천하는 삶

공자는 "논어"에서 정직, 신의, 지식을 갖춘 벗을 ‘유익한 친구’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유익함, 즐거움, 그리고 선의 공유라는 세 가지 요소로 정의하였다. 신서귀삼연은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한다. 서로의 존재는 건강이라는 유익함을 넘어, 삶의 즐거움이 되고, 서로의 태도와 실천은 덕과 선의 공유를 가능케 한다. 우리 세 사람은 정년 이후의 삶을 ‘무위(無爲)’가 아닌 ‘유의미한 우정’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고은층으로서 신서귀삼연이 말하는 인생의 지혜

우리 신서귀삼연의 세 사람은 단순히 파장에서 공을 굴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우리들은 삶의 또 다른 계절에서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워야 하는가’를 함께 묻고, 답해가는 관계이다. 건강을 챙기고, 소소한 배려를 주고받으며, 때로는 웃음과 침묵으로 일상을 채운다. 누군가는 ‘은퇴 후 무엇을 할까’ 고민하지만, 우리들은 ‘누구와 어떻게 살아갈까’를 실천 중이다. 우리 신서귀삼연은 말한다. "삶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진정한 우정은 함께 걷는 길에서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에게 배움의 존재가 되어주는 것이다."

서파장에서 피어난 신서귀삼연의 인연은 현재 진행형이다

서귀포의 바람은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고요하다. 서파장의 잔디 위를 스치는 바람처럼, 고은층의 일상도 그렇게 지나간다. 그러나 우리 신서귀삼연은 그 바람 속에서 ‘즐기며 의미있는 일상'을 살아가고자 한다.  인생의 가을, 누구와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가? 우리 신서귀삼연은 그 물음에 스스로  살아있는 해답을 우리 스스로의 일상에서 함께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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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파크골프장에서 피어나는 고은층의 품격과 선린:
자조, 배려, 공동체의식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일상"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서귀포 혁신도시 거주



파크골프장에서 발견한 자조(自助)의 정신

서귀포 파크골프장인 강창학 파크 골프장과 칠십리 파크 골프장, 일명 ‘서파장’은 단순한 운동의 공간을 넘어 고은층(고령층과 은퇴자 인구)들이 일상 속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실천하는 삶의 무대이다. 특히 강창학 파장은 홀마다 지정된 클럽회원들이 자율적으로 잡초 제거와 코스를 관리한다. 이는 서구형 공공서비스 생산방식, 즉 시민참여에 기반한 자조적 관리 사례와 닮아 있다.
특히 각 클럽 회장의 솔선수범은 회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 자발적인 협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공급 대비 수요가 초과된 파크골프 특성상 각 홀마다 대기시간이 길다. 그러나 이 대기 시간은 원망이나 불만이 아닌, 잡초 제거와 환경 정비라는 또 다른 참여의 시간으로 전환된다. 일반 골프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은층의 젠틀맨십과 자긍심이 살아있는 장면이다.

사탕 한 알’에 담긴 따뜻한 나눔

강창학과 칠십리 파장을 오가며 자주 만나는 한 여성 골퍼는 늘 사탕을 넉넉히 준비해와 동반자나 대기자에게 나누어준다. 아는 사람이든 처음 보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가 내미는 사탕에는 ‘나눔과 배려’라는 무형의 정이 담겨 있다. 그늘집 하나 없는 파장에서 이 사탕은 단순한 당분 보충을 넘어,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가뭄 속 단비’로 다가온다.
필자는 사탕을 받으며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라며 감사의 인사말을 반복하여 일관되게 건넨다. 또한 나는사탕이 단지 입에 단 것이 아니라 마음도 따뜻하게 만든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여성 분의 이러한 나눔은 보여주기식이 아닌 체화된 습관이다. 배려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서 습관처럼 피어난다.

사탕 껍질을 줍는 또 다른 손길

며칠 전, 서울에서 서귀포로 이주한 지인이 보여준 장면은 또 다른 감동을 안겨주었다. 칠십리 파장에서 먹고 버려진 사탕 껍질을 한 움큼 주워 모은 지인은 그것을 조용히 내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환경 의식이 있는 사람도 있고, 아직도 없는 사람도 같이 살아가고 있네요.”
깨끗한 환경은 제도가 아닌 의식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무심한 손길 뒤에는 또 다른 누군가의 조용한 보이지 않는 손이 치우고 있다.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런 보이지 않는 균형과 공존의 실천에서 비롯된다.

바닷가에서 마주한 또 하나의 선행

서파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법환포구를 서귀삼연의 현 선생과 산책하던 중, 우리는 바닷가에서 한 어머니가 초등학생 자녀 둘과 함께 쓰레기를 줍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동행하던 현 선생은 어린 학생이 기특하다며 만 원권 한 장을 건넸지만, 사양하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건넸다.
자녀와 함께 자발적으로 환경 정화에 나선 어머니의 뒷모습과, 그 행동을 자연스럽게 따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날 바다보다 더 깊고 맑은 울림을 남겼다. 진정한 교육은 말이 아닌 행동에서 비롯되고, 아름다운 사회는 그 행동의 연쇄에서 피어난다.

고은층은 스스로 묵묵히 삶을 가꾸고 어른의 품격을 지켜나간다

서귀포 파크골프장에서 고은층은  오늘도 스스로 파장을 가꾸고, 사탕을 나누며, 쓰레기를 주워 환경을 지켜나가고 있다. 수요초과로 인한 과밀 상황 속에서도 인내와 관용을 잃지 않으며, 공동체의 질서를 만들어 간다. 고은층은 단순히 운동을 즐기는 이들이 아니라, 삶을 존엄하게 살아내는 실천적 주체이다.
이들은 보여주기식이 아닌,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진정한 위대함을 만들어낸다. 말없이 묵묵히, 그러나 확고하게, 우리의 공동체를 지탱하는 ‘의지의 어른들’이다.

글을 마치며,
고은층의 삶은 동행이고, 실천이다


서파장의 일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가와는 다르다. 여기에는 ‘함께’라는 가치를 몸소 실천하는 고은층의 삶과 철학이 있다. 특별히 서파장에서는 자조와 나눔, 배려와 의식, 그리고 실천이 묻어나고 있다.
서귀포의 파크골프장 곧 서파장은 그저 그런 운동장이 아니라, 고은층의 삶의 교실이고, 공동체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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