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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3의 상징적 의미와 삶의 적용에 대한 논의”

이성근 영남대 교수



글을 시작하며,


이 글은 숫자 3이라는 상징적 구조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사유하고, 믿고, 스토리 텔링하며, 살아가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글의 내용은 삶을 드러내는 은유로서의 숫자 3에 대해 살펴본다

숫자는 흔히 수학적 연산이나 통계적 계산에 쓰이는 도구로 인식되지만, 그것은 숫자의 기능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수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경험을 구조화하며,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낸 심오한 상징 체계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숫자 3은 단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서양 고대 철학부터 동양 고전 사상에 이르기까지, 숫자 3은 반복과 완성, 조화와 균형, 시작과 끝의 중간 지점을 상징하는 핵심적 요소로 등장한다. 수많은 문화와 종교, 사상과 문학이 숫자 3을 중심으로 의미를 구조화 하였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세 개의 요소를 하나의 의미 있는 구조로 이해하고, 세 번의 반복을 통해 안정감과 완결성을 느낀다.
숫자 3은 단순한 수학의 수치를 넘어, 인생이라는 복잡한 삶의 서사와도 같다.


철학에서 숫자 3은 사유의 순환 구조를 나타낸다

철학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세계에 대한 깊은 탐구이자 해석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숫자 3은 사고의 순환 구조를 표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플라톤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를 ‘선(善)’, ‘진(眞)’, ‘미(美)’라는 세 개의 원리로 정리했다. 이 셋은 단순히 나열된 개념이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판단과 행위가 조화를 이루어야 할 지향점이다. 이와 비슷하게 헤겔은 인간의 역사와 사유의 발전 과정을 ‘정(Thesis) 반(Antithesis) 합(Synthesis)’이라는 변증법적 구조로 설명했다. 이는 갈등과 모순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의 통합과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는 사유 방식이다.
이러한 삼층 구조는 현대의 문제 해결 방식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 우리는 흔히 하나의 주장을 마주했을 때, 반대되는 관점을 떠올리고, 그 두 입장을 종합하여 더 깊은 이해를 도출한다. 이는 토론의 구조, 사고 확장의 과정, 심리적 자기 성찰의 흐름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동일하게 작용한다. 결국 숫자 3은 철학적 탐구를 ‘순환’시키고, 단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균형 있는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


종교에서 숫자 3은 영성과 구원의 질서를 형성한다

숫자 3은 인간의 영성과 구원에 대한 상징으로도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기독교에서의 ‘삼위일체’는 가장 핵심적인 교리 중 하나다. 성부(하나님), 성자(예수 그리스도), 성령은 각각 독립된 지위를 갖지만, 동시에 하나의 일체를 이룬다. 이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삼위로 설명되지만, 그 속에는 하나됨 속의 다양성과 통합의 원리가 담겨 있다.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숫자 3은 중요한 구조를 이룬다. 불(佛: 부처), 법(法: 진리), 승(僧: 공동체)을 의미하는 ‘삼보’는 수행자의 삶을 지탱하는 중심 축이다. 또한 모든 존재가 갖는 세 가지 본질인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설명하는 ‘삼법인’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통찰하게 한다.
힌두교에서는 창조의 신 브라흐마, 유지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의 삼신 체계가 우주의 순환을 상징한다. 태어나고, 살아가고, 사라지는 생명의 흐름은 이 세 신의 역할을 통해 구조화된다. 이러한 종교적 상징은 단순히 교리나 신화로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구원과 성장의 단계, 세계와의 관계를 질서로 작용한다. 결국 숫자 3은 인간의 존재를 영성의 흐름 속에 위치시키고 초월을 향해 구조적으로 안내한다.


문화에서 숫자 3은 우리 삶의 스토리 텔링의 리듬이자 구조로 사용된다

숫자 3은 우리 삶의 경험을 전달하고 감정을 공유하며 의미를 창조하는 스토리 텔링에 사용된다. 스토리 텔링 속에서도 숫자 3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고전 동화에서 ‘세 번의 기회’, ‘세 가지 시련’, ‘세 명의 인물’은 익숙한 패턴이다.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 "세 가지 소원," "세 형제 이야기"는 어린 시절 누구나 접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삼층 구조는 단순히 반복을 통해 기억에 남는 효과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긴장과 해소, 실패와 성공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서사의
기초이다.
현대 문학과 예술도 이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단테의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3부작으로 구성되며, "반지의 제왕"이나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도 세 편으로 나뉘어 한 세계관을 완성해간다. 음악의 화음도 기본적으로 3음(삼화음)이 조화를 이루며, 동양의 천(天) 지(地) 인(人)의 사상도 인간과 자연, 우주의 질서를 통합하는 삼층 구조를 따른다. 이러한 반복과 균형은 우리에게 심리적 안정과 미학적 만족을 제공한다. 숫자 3은 문화를 구성하는 리듬이자, 스토리 텔링을 완성하는 서사의 원리다.


숫자 3은 삶의 일상 속에 존재한다

숫자 3의 힘은 철학적 사유나 종교적 상징, 문화적 구조를 넘어,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설계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일상에서 흔히 숫자 3을 즐겨 사용한다. 상 중 하,  금 은 동, 1 2 3, 초순 중순 하순, 시작 중간 종료, 삼진아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삼시 세판(三時三判) 등 삼등분을 선호한다.
특히 현대인의 삶은 흔히 일, 가정, 여가의 세 가지 축으로 나뉜다.  이 중 하나라도 무너지면 삶 전체의 균형은 무너지고 만다. 또 하루의 시간은 아침, 낮, 저녁으로 나뉘며, 우리의 인생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축 위에 놓인다. 이처럼 숫자 3은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고, 우선순위를 설정하며, 자기 관리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혁신체제와 조직관리에서도 ‘계획(plan), 실행(do), 성과 및 피드백(see)’이라는 3단계 프로세스는 가장 효과적인 사회시스템과  순환 구조로 여겨진다. 개인적인 목표 설정에도 ‘목표 설정, 실천,  점검’이라는 삼층 구조는 자율적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숫자 3은 우리에게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는 사고 틀을 제공하고, 실천 가능한 전략을 만들어주는 삶의 도구가 된다. 무엇보다 숫자 3은 우리가 조화를 이룬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단순한 지혜이자 구조적 언어다.


글을 마치며,
숫자 3은 삶의 구조화와 통찰을 말해준다


우리의 삶은 혼돈과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가득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서 나름의 질서와 의미를 찾아내려 노력한다. 숫자 3은 그 질서를 시각화하고, 삶의 리듬을 구조화하는 데 탁월한 길잡이가 된다. 철학에서는 사유의 순환 구조로, 종교에서는 구원의 영성으로, 문화에서는 서사의 완성으로, 일상에서는 계획과 피드백의 원리로 작용하는 숫자 3은 단순한 수를 넘어선 통찰의 상징이다.
성공적인 삶이란 거창한 업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균형을 이루며, 지속 가능한 리듬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 첫 걸음은, 숫자 3이 가리키는 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데 있다. 숫자 3은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조율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심리적 나침반이며, 인생의 조화로운 설계를 위한 기준이 된다.


용어 해설
숫자 3은 우리 삶의 구조적 미학과 존재론적 함의를 통해,  복잡한 삶의 흐름을 명료하게 설계하고 조율할 수 있는 사유의 틀을 제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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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관계의 의미와 실천에 대한 논의"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글을 시작하며,

인간이라는 단어는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을 조합하여 만들어졌다. 이는 곧 사람이 홀로 존재할 수 없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변과의 거리를 좁히고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관계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거나 때로는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도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다섯 가지 요소 중 하나로 ‘관계’가 선정될 만큼, 관계는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글은 삶과 관계의 의미와 실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글의 주요 내용은 인간이 맺는 관계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신과의 관계, 둘째, 사람과의 관계, 셋째, 자연과의 관계이다. 각각의 관계가 인간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이를 어떻게 형성하고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첫째, 신과의 관계는 겸손의 가치이다.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다양한 종교를 믿으며 살아왔다. 어떤 이는 종교를 가지지 않기도 하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신과의 관계는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필자는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본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인간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존재이다. 따라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경외하는 마음과 겸손한 자세를 가진다. 겸손은 신앙뿐만 아니라 세상의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한 덕목이다. 교만은 관계를 망가뜨리는 요소이며,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겸손한 태도는 우리의 일상을 더욱 조화롭게 만든다. 신앙을 통해 겸손을 배우고 실천할 때, 우리의 인간관계 또한 긍정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둘째, 사람과의 관계는 존중과 배려의 실천이다.

인간관계는 가족, 친구, 이웃, 직장 동료, 그리고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까지 매우 다양하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먼저, 자신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절제와 조절이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갈등을 일으키기 쉽다. 내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건강한 인간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존중과 배려가 필수적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진정한 관계를 맺기 어렵고, 배려심이 부족하면 관계는 일방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사회성’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단순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을 지키고 공정과 상식을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는 결코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없으며, 조절과 절제하는 태도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자 역시 때때로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해 무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관계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곧 바른 관계의 비결이다.


셋째, 자연과의 관계는 공존과 공생의 실천이다.

우리는 집, 지역사회, 국가, 나아가 지구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 각종 규범과 법률이 우리의 사회를 지탱하듯,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질서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자연과의 관계는 더욱 중요해졌다. 기후위기와 지구온난화는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존과 공생의 가치가 필수적이다. 필자는 과거 대구경북연구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지구를 살리는 65+ 실천방법(2013)"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단순한 환경관리 활동이 아니라, 자연과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었다.

환경관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실천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사는 터전을 미래 세대에게 건강한 모습으로 물려주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


글을 마치며,

삶에서 관계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인간에게 관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신과의 관계에서는 겸손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존중과 배려가 필수적이며, 자신과의 관계에서는 조절과 절제의 태도가 필요하다.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공존과 공생을 실천해야 한다.

필자는 현재 고은층(고령층과 은퇴자)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시기에는 신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지며,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특히 부부 관계, 가족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가 핵심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오기도 하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관계는 언제든 회복할 수 있으며,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 고은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작은 실천이라도 꾸준히 이어나간다면, 후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은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이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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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의 말이 만드는 삶의 힘: Edifying의 의미와 긍정적 영향에 대한 논의^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글을 시작하며,


사람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진심 어린 칭찬과 격려의 말은 한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갖는다. 이러한 언어적 격려를 'edifying'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칭찬을 넘어 상대방의 인격과 내면을 성장시키고 고양하는 말과 행동을 의미한다. 필자는 칠십여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족과 지인들로부터 받은 여러 'edifying'한 말을 통해 삶의 방향성을 찾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이 글은 격려의 말이 만드는 삶의 힘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글의 주요 내용은 'edifying'의 의미와 긍정적 영향이다.


하나는 존재의 특별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어머니께서는 필자가 태어나기 전, 신비스러운 꿈을 꾸었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단순한 태몽을 넘어 "너는 특별한 존재다"라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또한, 우리  집에서 일한 안씨 아저씨께서 "판지는 다른 애들과 달라"라고 하셨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말들은 어린 시절부터 필자가 스스로를 남다른 존재로 인식하게 했고, 자기 존중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사람은 누구나 고유한 존재이며, 그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 자신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둘은 내면의 힘을 북돋아 주는 말이다.

A는 "신영씨는 우리와 달랐잖아요"라고 말했다. 이 말은 필자가 평범함을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표현이었다. 또한, B의 "동주씨는 발걸음을 내딛는데 힘이 실려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로 필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확고한 의지와 결단력을 칭찬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노력을 과소평가하거나 불안감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주변에서 우리의 강점을 인정해주는 말을 해준다면, 그것은 곧 자기 확신으로 이어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셋은 올바름을 강조하는 말이다.

C는 "성근씨는 걸음이 바르다"고 말했다. 이 말은 단순히 신체적인 걸음걸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가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가 바르고 정직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D가 "선생님은 풍기는 인상이 다르다"고 말한 것은 필자의 인격과 태도가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삶에서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주변에서 인정해줄 때, 그것은 도덕적 확신을 강화시키고 더욱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


마지막은 'edifying'한 말의 중요성과 긍정적 영향이다.

이처럼 'edifying'한 말들은 단순한 칭찬을 넘어 개인의 자아 형성과 삶의 방향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어릴 때부터 듣는 긍정적인 말들은 평생 동안 자아 존중감과 삶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칭찬과 격려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가 가진 가치를 빛나게 만든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글을 마치며,

우리는 종종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는 말을 건넸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작은 한마디의 격려가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말을 건네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다. 칭찬과 인정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필자는 평생 교수로 재직하면서 제자들, 친척들, 그리고 지인들의 부탁으로 종종 주례를 맡아왔다. 이 과정에서 필자의 주례사는 두 가지 버전이 있었고, 그 중 하나는 ‘BEST’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B는 Blessing(축복), E는 Edifying(격려), S는 Sharing(협업), 그리고 T는 Touch(정신적·육체적 스킨십)을 의미한다. 이 네 가지 개념이 주례사의 핵심 내용이다.

결혼은 서로에게 축복이며, 결혼 생활은 서로에 대한 격려와 협업, 그리고 정신적·육체적 스킨십이 필요충분조건임을 강조해왔다.

필자는 이 중에서도 ‘Edifying’(격려)의 개념이 결혼 생활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 속에서 그 의미와 중요성, 그리고 영향을 잘 이해하고 적절하게 실천하며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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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정 속의 변화와 인연의 가치에 대한 논의"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글을 시작하며,

인생은 끊임없는 변화와 만남의 연속이다. 태어나서 삶을 마감하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다양한 인연을 맺는다. 어떤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와 삶의 방향을 바꾸고, 어떤 만남은 우리의 기억 속 깊이 남아 삶의 일부가 된다. 때로는 뜻밖의 만남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결국, 변화와 인연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글은 긴 여정 속의 변화와 인연의 가치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화 속에서 성장과 기회가
찾아온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변화는 여러 형태로 찾아온다. 어린 시절의 학업과 성장, 직장과 사회생활, 사랑과 가족 형성, 그리고 직업적 전환과 위기 극복 등, 우리는 수많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적응하며 성장한다. 변화는 때로는 두렵고 불안하게 다가오지만, 그 속에는 항상 새로운 배움과 도약의 기회가 존재한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변화가 찾아올 때, 우리는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이야기처럼, 환경과 만남은 개인의 삶과 성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인생을 결정짓는 데는 반드시 소중한 인연들의 힘이 작용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인연은 다양하다. 멘토와 스승은 우리의 방향을 잡아주고, 친구와 동료는 삶의 여정을 함께 걸으며 정서적 지지를 제공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며, 경쟁자와 도전 상대는 우리를 더욱 강인하게 만든다. 때로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주어진 조언이 우리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공자는 “군자는 학문으로 벗을 만나고, 벗의 선한 점을 본받아 자신의 인(仁)을 더한다.”라고 말했다. 좋은 인연은 단순한 교류가 아니라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이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으며, 따라서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배우는 태도가 중요하다.


변화 속에서 인연을 지속하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그러나 모든 인연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관계는 강렬했지만 짧게 끝나고, 어떤 관계는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깊은 의미를 더해 간다. 때로는 사소한 오해나 갈등으로 관계가 멀어지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소원해지는 경우도 있다. 인연이란 억지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성장을 도울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깊어진다.
좋은 만남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가치관과 태도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변화 속에서도 인연을 지켜나가려면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지와 진심이 중요하다.


글을 맺으며,

긴 여정 속의
변화와 만남은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는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하게 만드는 학습태도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변화와 만남은 불가피한 요소이다. 어떤 변화 속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필요하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욱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
변화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변화 속에서 만나는 인연들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그러면 우리는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연을 어떻게 가꾸어나갈 것인가?
필자의 생각은 우리 스스로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하게 만드는 학습태도(learning attitude)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인생의 긴 여정은 사회학습과정(social learing process)이 된다. 이러한 여러 사회학습(social learing)과 상호 및 집단 학습과정(mutual & collective learning process)을 통해 맺는 소중한 인연들이 우리의 삶을 더욱 활력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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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부부는 삶의 근본이 되는 두 축이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를 꼽으라면 단연코 집과 부부일 것이다. 집은 우리의 삶을 담는 그릇이고, 부부는 삶을 함께 빚어가는 존재다. 이 둘은 단순한 공간과 관계를 넘어, 삶의 안정과 행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렇다면, 집과 부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기능을 살펴보자.


집은 삶의 근본이 되는 공간이다

집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보자.

"어디 어디 해도 집처럼 좋은 곳은 없다"는 말처럼,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녹아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이 표현은 “There’s no place like home”이라는 영어 속담에서 유래하였으며, 특히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도로시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표현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집은 다섯 가지 기능을 가진다.

하나의 집은 울타리다.
집은 외부 세계와의 경계를 형성하며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비, 바람, 추위, 더위, 범죄 등으로부터 안전을 지켜주며, 우리의 물리적·정신적 울타리가 된다.

둘의 집은 거처다.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자, 일상의 터전이다. 우리가 먹고, 자고, 생활하는 모든 순간이 담겨 있으며, 가정이라는 사회의 최소 단위가 형성되는 장소다.

셋의 집은 프라이버시 공간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개인적인 공간을 제공한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역이다.

넷의 집은 안식처다.
육체적, 정신적 회복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바쁜 일상을 마치고 돌아와 쉴 수 있는 공간이며,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 치유의 장소다.

다섯의 집은 사회·심리적 공간이다.
가족과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곳이다.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소통하며, 정서적인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부부는 삶을 함께하는 최고의 동반자이다

부부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보자.

"누가 뭐래도 부부만큼 좋은 사람은 없다"라는 말처럼, 부부는 단순한 관계를 넘어 삶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지탱해 주는 존재다. 동양에서는 “백년해로(百年偕老)”라는 말로 평생을 함께하는 부부의 가치를 강조해왔으며, 서양에서는 성경 창세기 2장 24절에서 "둘이 한 몸이 되리라"는 구절을 통해 부부 관계의 신성함을 나타내고 있다. 결국, 부부는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가장 든든한 파트너다.

부부는 다섯 가지 기능을 가진다.

부부의 1은 상호 신뢰자다.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존재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관계 속에서 안정적인 정서적 기반을 제공하며,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부부의 2는 상호 동행자다.
부부는 단순한 사랑의 관계를 넘어, 인생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다. 일상의 크고 작은 순간을 함께 나누며,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는 존재다.

부부의 3은 공동 생산자다.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를 함께
운영하는 협업자다. 경제적 분담부터 가사 노동, 자녀 양육까지 함께 책임지며, 삶을 함께 만들어 나간다.

부부의 4는 상호 학습자다.
서로에게서 배우고, 서로를 가르치며 성장한다. 부부는 서로의 거울이 되어, 함께 배우고 함께 발전해 나가는 관계다.

부부의 5는 상호 의존자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는 존재다. 기쁠 때 함께 웃고, 힘들 때 서로 기대며, 인생의 굴곡을 함께 헤쳐 나가는 파트너다.


집과 부부는 삶의 중심이 되는 두 개의 축이다

집이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돌아갈 곳이자,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며,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장소다. 마찬가지로, 부부란 단순한 동거인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신뢰와 사랑 속에서 함께 성장해가는 인생의 동반자다.
집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불안정해지고, 부부가 없다면 삶은 외롭고 공허해진다. 결국, 집과 부부는 서로를 보완하며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우리는 집에서 안정을 찾고, 부부 관계에서 사랑과 신뢰를 쌓으며, 인생을 더욱 깊이 있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집처럼 좋은 곳은 없고, 부부만큼 좋은 사람도 없다." 필자는 집을 소중히 여기고, 부부 관계를 아끼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의 핵심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쓰게된 동기

최근 필자는 신제주인으로서 서귀포 혁신도시에 거주한 지 3년이 되었다. 이곳에서 멋지게 살아가는 고령의 선배 교수인 이 교수님 부부와 중등 교사로 정년한 장년의 이 선생님 부부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나와 같은 마음으로 집을 오가는 신 대표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오늘은 신 대표가 청주 집으로 간 날이며, 내일은 필자가 대구 집으로 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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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근 교수와의 인연을 그리며"
 

김원배 前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1977년 필자가 환경대학원을 마치고 당시 민관식 선생님이 운영하시던 「아세아정책연구원」에 근무하던 때다. 첫 인상은 역시 시골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 이 교수는 꾸밈없는 소박한 인간성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권태준 교수님께서 이 교수를 “인간 이성근”으로 부르시지 않았나 싶다. 어찌 보면 세상 인심이 점점 각박해지고 인격을 갖춘 사람이 드물어진 요즘, 인간답다는 것은 최소한의 예와 도를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본다.

「아세아정책연구원」 시절 월급날이 되면, 이 교수 및 홍갑선 박사와 더불어 젊은 혈기에 같이 술도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가끔은 당시 과제 책임자이셨고, 홍 박사나 이 교수, 그리고 필자의 연을 맺어주신 권태준 교수님 댁에까지 가서 밤늦도록 사모님께 폐를 끼친 기억은 아직도 뚜렷하다.

이후 이교수와 필자는 서로 다른 길을 갔지만, 마음 속에 끈은 여전히 이어져 필자가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근무 시 이 교수 내외의 방문을 맞아 함께 하와이에서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더 가깝게는 필자가 「국토연구원」에 근무할 당시 부부 동반으로 청도 운문사에 다녀 온 기억도 새롭다. 특히 이 교수의 권 교수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여, 권 교수님과 필자를 조금은 억지스럽게 경주 세미나에 초청하고 멋진 시간을 베푼 바 있다. 세미나 주제는 아마도 '황룡사 복원'과 관련한 것이 아닌가 싶은 데, 뒷풀이도 자못 기억에 남는다. 권 교수님, 이 교수, 그리고 필자 세 사람이 노래방에서 지낸 시간은 황룡사 복원보다는 ‘신라의 달밤’에 더 어울린 것 같다. 물론 그 때나 지금이나 불국사의 종은 울리지만, 이 교수나 필자나 듣는 가슴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다름을 다름 아니게 한결같이 받아들이고 계신 권태준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가르침은 아마도 이 교수나 필자 모두에게 남은 인생의 등불이 되리라 믿는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속에 같이 있음으로 해서, 해 기운 저녁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떠올린다. 학교를 떠난 이 교수에게 도연명(陶淵明)의 시 한 구절 보내고자 한다.

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가
멀리 남산을 보게 되었네
산 기운은 저물녘이 되어 아름다운데
나는 새들이 더불어 돌아간다

 

필자 소개

김원배 박사는 부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공학사)와 환경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 그리고 미국 하바드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위스콘신대학교에서 도시및지역계획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하와이대학교 동서문화센터 교수와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정년하였다. 정년 이후 중앙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다 정년퇴임과 함께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하고 있다.



*****
"그 때, 아정연 시대를 돌아보다"
 

박서호 한남대 도시 · 부동산학부 명예교수

 

“인간 이성근” 이 별명을 누가 붙였을까? 선생님께서
“인간 이성근은 말이야"하고 이렇게 소개하셨다.
우리는 ‘아정연’에서 만났다. ‘아정연’은 재단법인 중산육영회 부설 「아세아정책연구원」이다. 내가 아정연에 1978년 8월 8일에 들어가서 1979년 9월에 나왔다.

나의 아정연 시대. 나는 이 아정연 시대를 그리워한다. 아정연의 3층에 올라가면 복도 가운데 기둥에 이런 액자가 걸려있었다. “나는 5.16 때 무엇을 했나? 그 밑에는 고시를 공부한 시험과목이 적혀있었다.”  삶을 새롭게 보게 하는 글귀로 멋있게 여겼다.

나는 해군 중위로 제대하고 선생님을 찾아뵙고 몸을 맡길 때, 선생님께서 이끄시는 연구사업의 연구원보로 삼아주셨다. 이 자리는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난 홍갑선, 이양원 님의 뒤를 이은 자리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니는 인간 이성근과 한표환, 건국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니는 박종필님들은 이미 연구조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이성근씨’, ‘박서호씨’ 하고 지냈다.

이 연구사업은 ‘서울특별시의 주택 및 쓰레기 처리문제와 그 해결방안에 관한 연구’이었다.
이 연구사업에서 나와 연구조원들은 두 가지 일을 했다. 하나는 주거실태조사와 쓰레기 배출량 및 성분조사이다. 주거실태조사는 1978년 11월 1일부터 10일까지 50여 문항의 설문지를 가지고 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하였다. 네 사람이 16개 지역을 나누어 아침에 나갔다가 낮 늦게 돌아왔다. 조사된 가구 수는 모두 1,268가구로 일반단독주택지역 821가구, 아파트지역 349가구, 불량주택지역 98가구이다. 이 날 조사하고 돌아온 늦은 낮에는 어울려, 저녁을 먹고, 2차로 술을 마시면서 하루의 무용담을 나누곤 하였다.

쓰레기 배출량 및 성분조사는 1978년 12월 8일과 9일에 8개 지역에서 아침에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차량을 타고 쓰레기 수거 가구를 확인하고, 쓰레기 처분장인 구의동과 난지도에 가서 쓰레기 분리하는 넝마주이의 도움으로 성분별로 분류한 다음 그것의 무게를 쟀다. 난지도에서 쓰레기를 모아 두었는데 쓰레기를 고르는 포클레인이 와서 우리가 모아둔 것을 모르고 그냥 헤집으려고 하자 우리는 쓰레기 더미 위에 벌렁 누우면서 포클레인을 막았던 일이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날 우리는 쓰레기 성분별로 분리하고 무게를 재준 넝마주이들과 어울려 난지도 쓰레기 장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일주일에 한 차례씩은 선생님께서 우리를 데리고 청계천 철판 등심구이 집에서 등심과 손수 가져오신 오비(OB)에서 나온 마주앙 포도주로 우리를 고급스럽게 채워주셨다. 이 때 선생님께서 당신의 풍부한 양(洋)의 동서(東西), 시(時)의 고금(古 今)의 이야기를 하시기도 하시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스개와 함께 호탈하게 웃어가시면서 우리를 북돋우셨다.

선생님을 보내드리고 나면 2차는 우리끼리 간다. 선생님이 계실 때는 인간 이성근은 조용하고, 주로 내가 선생님의 맞장구를 친다. 그러다가 2차에 가면 이때 인간 이성근의 판이 벌어지면서 그의 아름다운 본색이 들어난다. 내가 말한 그의 본색이란 세 가지나 된다.

하나는 말투이다.
“인간 이성근에게는 영락없는 선생님의 말투가 나온다”는 것이다. 인간 이성근이가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과 얼마나 가깝게 여겼으면 그랬을까? 그가 대학원 생활을 쭉 이야기할 때면 선생님의 말투가 튀어나온다. 듣기 좋다. 대학원 공부이야기를 할 때는 선생님의 말투뿐 아니라 따지는 솜씨도 선생님의 안목으로 날카롭다. “어허 영락없는 선생님의 ‘애제자구나”라고 생각하곤 했다.

다른 하나는 입담이다.
그의 입에서 술자리 중간쯤 가면 취기가 오르니 더 젊은 날의 씩씩한 이야기 무용담이 나온다. 인생역전 같은 그리운 이야기들이 경상도 사투리로 술술 풀린다. 우리는 웃고 웃다가 어지간하면 자리를 뜬다.

하나 더 나온다. 막판에 인간 이성근의 ‘인간’이 나온다. 인간 이성근은 우리가 헤어질 때 나의 손을 잡고 “박형! 잘 가시오. 내일 봅시다!!!” 한다. 이때 그의 손은 따뜻하다. 겨울밤, 어두운 밤, 술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고 헤어질 때 그의 따뜻한 손으로 인간 이성근의 따스함이 나온다. 이렇게 1978년 가을, 그리고 겨울을 보냈다.
이래서 인간 이성근이 생각 날 때면 심호택 시인 쓴 ‘봉구’라는 시가 생각이 난다.

봉구

심호택

자네를 생각하면  
마음의 형제라는 게 있거니 싶다

중략

우리 착한 봉구!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봐라, 저 애는 성내는 법이 없느니라

부디 본받거라

그 쓸쓸하던 산야
찬바람 속에 우리들의 가오리연이 치솟던 생애의 절정이던
그 때를

(출처 : 심호택, 1992, 『하늘밥도둑』, 창비시선 109 ; 142-143쪽.)


‘봉구’라는 시의 ‘봉구’와 ‘인간 이성근’이가 닮은 것이 있어서라기보다 세 연의 글 때문이다.

“자네를 생각하면”
“우리 착한 봉구!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찬바람 속에 우리들의 가오리연이 치솟던 생애의 절정이던 그 때를“

위 시연에 이렇게 끼워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를 생각하면”
“인간 이성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찬바람 속에 우리들의 서울시 주택가와 구의동,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과 신당동, 청계천 돌던 생애의 절정이던 그 때를” 


필자 소개
박서호 교수는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지질학과(이학사)ㆍ도시계획학  석사ㆍ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한남대학교 도시 · 부동산학부 에서 평생 교수로 재직하였고, 지금은 명예교수이다. 정년후 목사로 목회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삶과 관계의 의미와 실천에 대한 논의"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인간이라는 단어는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을 조합하여 만들어졌다. 이는 곧 사람이 홀로 존재할 수 없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변과의 거리를 좁히고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관계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거나 때로는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도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다섯 가지 요소 중 하나로 ‘관계’가 선정될 만큼, 관계는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글에서는 인간이 맺는 관계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신과의 관계, 둘째, 사람과의 관계, 셋째, 자연과의 관계이다. 각각의 관계가 인간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이를 어떻게 형성하고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첫째, 신과의 관계는 겸손의 가치이다.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다양한 종교를 신봉해 왔다. 어떤 이는 종교를 가지지 않기도 하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신과의 관계는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필자는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본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인간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존재이다. 따라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경외하는 마음과 겸손한 자세를 가진다. 겸손은 신앙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의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한 덕목이다. 교만은 관계를 망가뜨리는 요소이며,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겸손한 태도는 우리의 일상을 더욱 조화롭게 만든다. 신앙을 통해 겸손을 배우고 실천할 때, 우리의 인간관계 또한 긍정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둘째, 사람과의 관계는 존중과 배려의 실천이다.
인간관계는 가족, 친구, 이웃, 직장 동료, 그리고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까지 매우 다양하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먼저, 자신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절제와 조절이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갈등을 일으키기 쉽다. 내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건강한 인간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존중과 배려가 필수적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진정한 관계를 맺기 어렵고, 배려심이 부족하면 관계는 일방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사회성’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단순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을 지키고 공정과 상식을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는 결코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없으며, 조절과 절제하는 태도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자 역시 때때로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해 무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관계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곧 바른 관계의 비결이다.

셋째, 자연과의 관계는 공존과 공생의 실천이다.
우리는 집, 지역사회, 국가, 나아가 지구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 각종 규범과 법률이 우리의 사회를 지탱하듯,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질서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자연과의 관계는 더욱 중요해졌다.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는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존과 공생의 가치가 필수적이다. 필자는 과거 대구경북연구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지구를 살리는 65+ 실천방법(2013)"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실천하려고  하였다. 이는 단순한 환경관리 활동이 아니라, 자연과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었다.

환경관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실천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사는 터전을 미래 세대에게 건강한 모습으로 물려주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


글을 마치며,

삶에서 관계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인간에게 관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신과의 관계에서는 겸손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존중과 배려가 필수적이며,
자신과의 관계에서는 조절과 절제의 태도가 필요하다.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공존과 공생을 실천해야 한다.

필자는 현재 고은층(고령층과 은퇴자)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시기에는 신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지며,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특히 부부 관계, 가족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가 핵심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오기도 하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관계는 언제든 회복할 수 있으며,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 고은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작은 실천이라도 꾸준히 이어나간다면, 후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이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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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게 된 배경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에는 세 분의 글이 깊은 영향을 미쳤다.

첫째, 백도현 목사님의 글이다.
백 목사님은 “사람은 책이나 말로 배우기보다 인간관계를 통해 진정한 지혜를 배운다.”라고 말씀하셨다. 나 또한 교수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관계 속에서 배우고 성장해 왔다. 백 목사님과의 교류를 통해 신앙과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었으며, 이 글을 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둘째, 김원배 선배의 글이다.
김 선배는 과거를 회상하며, 필자가 “꾸밈없는 소박한 인간성을 갖춘 사람”이었다고 언급하였다. 김 선배는 권태준 교수님께서 나를 “인간 이성근”이라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오늘날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인간다운 인격을 갖춘 사람이 드물어지는 현실에서, ‘인간답다’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를 아는 것이라는 김 선배의 말이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이 글을 통해, 관계의 본질과 인간다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고자 했다.

셋째, 박서호 선배의 글이다.
박 선배는 나와의 마지막 만남을 회고하며, 헤어질 때마다 내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 “박 형! 잘 가시오. 내일 봅시다!”라고 인사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의 따뜻한 손길에서 ‘인간 이성근’의 온정을 느꼈다고 하였다. 이 말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인간관계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게 했다.

이러한 세 분의 말씀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관계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되었다. 관계는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우리 삶의 근본을 이루는 요소이며, 그 속에서 배움과 성장, 그리고 따뜻한 나눔이 이루어진다. 이 글은 바로 그러한 관계의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성찰을 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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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새로운 출발: 이성근 교수님의 은퇴를 축하하며"

백도현 굳윌교회 담임목사



신영(信咏) 이성근 교수님께서 영남대학교에서 38년간 교수로 헌신하시고, 이제 명예로운 은퇴를 맞이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교수님께서 뿌린 학문의 씨앗들이 한국 각지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흐뭇한 마음이 드실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임을 믿습니다. 오늘 이 순간이 있기까지 교수님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은퇴란 단순히 직임에서 물러나 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마치 자동차의 타이어를 교체하고 더 힘차게 달리는 ‘Retire’라는 의미처럼, 교수님께서는 이제 더욱 자유롭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교수님께서는 칼럼과 강연, 그리고 집필을 통해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하시며, 혼돈 속에서 질서를 정립하는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사역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계신 교수님을 제 인생에서 만나 함께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음은 저에게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더욱 감사드립니다.

은퇴 후의 삶은 단순한 직임의 연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더욱 충만하게 누릴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는 학문과 사역에 헌신하시느라 개인적, 가정적 삶을 많이 희생하셨습니다. 이제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시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값지게 여기며, 삶의 참된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교수님과 함께 읽고 싶은 시가 있습니다.

"지금 하십시오"

지금 하십시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낄지도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곁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거든 지금 웃어 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는 피고 마음이 설렐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작자 미상, 최효섭 목사 설교집에서 옮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맺어진 귀한 인연

벌써 교수님과 가족을 알게 된 지 35년이 되었군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며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85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계시던 시절, 교수님과 가족이 함께 샴페인 어바나 한인장로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한 가족이 된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변함없는 교제를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구 굳윌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며 신앙의 길을 동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순간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믿습니다.

사람은 책이나 말로 배우기보다 인간관계를 통해 진정한 지혜를 배운다고 합니다. 저는 교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귀한 배움을 얻었습니다.

첫째, 준비성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예배 시간에 성경 봉독이나 기도를 맡으시면 미리 정성스럽게 준비하시고, 여러 번 읽어 뜻을 정확히 전달하시려는 노력을 기울이십니다. 저는 이러한 모습에서 교수님께서 강의와 연구도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하셨을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관용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언제나 미소로 사람을 대하시고, 남을 좋게 평가하고, 이해하며 용서하는 넓은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예배 후 지역사회 문제에 대한 강연을 요청드렸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강연이 진행되려던 순간 한 교인이 이를 반대하며 방해하였고, 저는 매우 난처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습니다"라며 유연하게 받아들이셨고, 오히려 그 교인에게 다가가 미소로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관용이야말로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셋째, 메모의 습관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언제나 필기도구를 소지하시고, 중요한 내용을 꼼꼼히 기록하시는 습관을 가지고 계십니다. 특히 설교 시간에도 메모하시고, 이후 조용한 시간에 내용을 다시 확인하며 깊이 묵상하시는 모습을 보며, 교수님의 학문적 깊이가 이러한 철저한 기록과 성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사역을 위한 기도

현재 교수님께서는 순복음교회 신학교인 순총학원의 이사장직을 맡고 계십니다. 순복음교회가 신학교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교육부가 교수님을 관선 이사장으로 임명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교수님께서 이 역할을 잘 감당하셔서 순복음교회가 평화를 이루고, 신학교가 바른 길로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사역은 단순히 한 교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전체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님, 이성근 교수님께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이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성근 교수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앞으로도 같은 순례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리타이어 후에도 더욱 힘차게 사역하시기를 바라며, 인생의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름답게 달려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동역자로서, 사랑과 존경을 담아


필자 소개
백도현 목사님은 경상북도 경주 출신으로, 계명대학교 철학과(문학사)를 졸업하셨습니다. 이후 제일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시다가, 신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아이오와주의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여 학위를 받은 후, 시카고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하셨으며, 미국 여러 대학 도시에서 한인교회 목회자로 헌신하셨습니다.

마이애미 한인교회를 마지막으로 미국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은퇴하신 후, 귀국하여 경상북도 예천군에 위치한 농촌교회에서 다시 목회 활동을 이어가셨습니다. 이후 대구로 나오셔서 대구굿윌선교회를 설립하여 섬기시다가, 병환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백도현 목사님의 믿음으로 걸어온 길과 사랑으로 남긴 흔적을 기리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한 사람의 삶이 그가 남긴 사랑과 헌신의 깊이로 기억된다면, 백 목사님은 참으로 빛나는 흔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백 목사님은 평생을 신앙과 사랑으로 살아오신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셨습니다.
이 글은 백 목사님이 믿음으로 걸어온 길과 사랑으로 남긴 흔적을 기리고자 쓴  글입니다.


하나는 오직 믿음으로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29)


군대에서도, 사역에서도, 모든 일에 하나님을 가장 먼저 찾으셨던 목사님이셨습니다.
사격장에서조차 "하나님께서 맞혀주실 줄 믿습니다"라며 기도하셨던 그분의 모습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참된 신앙인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둘은 변함없는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은 섬김으로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브리서 13:8)


백 목사님은 겉으로 꾸미지 않고,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한결같이 사역하셨습니다. 가식 없는 목회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신뢰를 주셨습니다.

셋은 포용하는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성도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겸손함으로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리와 화평의 판단을 베풀고" (스가랴 8:16)


성도들의 말을 수용하고, 기도의 인도를 집사들에게도 맡기시고,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겸허히 인정하는 포용적 참여적 목회를 실천하셨습니다. 한 번은 목사님께 나의 기도평을 물으니, "좋은 기도라며 목사가 하는 기도평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넷은 굿윌(Good Will)의 정신을 지닌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선한 뜻과 의지를 따라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9)

평생 선한 뜻과 의지로 목회하시고, 자신의 삶 또한 하나님께 드리셨던 분이셨습니다. 오직 선한 길을 걸으며, 성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남기셨습니다.

다섯은 동심을 간직한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순수한 믿음과 진실한 삶으로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태복음 18:4)


얼굴과 말과 행동은 진실되고 순수했습니다. 세상의 때에 물들지 않고, 어린아이 같은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목사님이셨습니다.

여섯은 배려를 실천한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성도를 먼저 생각한 사랑의 실천으로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4)


자동차 주차 하나에도 배려가 묻어나고, 성도들이 더 편안하게 예배드릴 수 있도록 작은 것까지도 신경 쓰셨던 섬김의 종이셨습니다.

일곱은 민주적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의 교회를 세우는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는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데살로니가후서 1:3)

목회자의 권위보다 공동체의 조화를 중시하며, 성도와 집사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의 기도도 소중히 여기셨던 목사님이셨습니다.

여덟은 평생을 하나님께 드린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쉼 없이 사역하다 하나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디모데후서 4:7)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역을 멈추지 않으셨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충성되게 달려가신 목사님이셨습니다.


백 목사님은 믿음과 사랑, 섬김과 겸손으로 한평생을 하나님께 바친 참된 목회자이셨습니다.

이제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며, 남겨진 우리에게 목사님의 발자취를 따를 귀한 본을 남기셨습니다.


용어 설명
1) 순전과 순진의 차이
순전은 온전하고 섞이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말이고, 순진은 마음이 꾸밈이 없고 순박한 성격을 뜻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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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이고 기획력이 강한 이성근 교수"

최용호 경북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이성근 교수는 한국의 지역발전과 지역경제 분야에서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이다.
나는 1980년대부터 30년 이상 그와 함께 연구하며 협력할 기회를 가졌다.

우리는 함께 「21세기 대구·경북의 지역발전」(1991), 「21세기 대구발전을 위한 전략적 과제」(1993) 등의 공동 연구를 수행했다.
또한 대구시와 경북도의 발전계획, 시·군의 장기 발전계획 수립에도 여러 차례 참여하며 지역발전에 기여했다. 전공 분야가 비슷했지만 학교가 달랐기에 협업할 기회가 더욱 많았다. 각종 위원회, 토론회, 세미나, 심포지엄, 포럼 등에서 우리는 자주 함께 발표하거나 토론에 나섰다. 대구뿐만 아니라 서울, 포항, 구미 등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열린 행사에도 함께 참여했으며, 자료 수집을 위해 일본 출장을 다녀온 적도 있었다. 당시 대구경북연구원의 이춘근 박사가 동행했고, 관서 지방에서는 이 교수의 제자인 윤칠석 박사(현 경북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가 안내를 맡아주어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교수는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난 학자다.
영남대학교 지역개발학과 교수로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고, 그의 제자들은 대구·경북 지역의 주요 기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교수의 지역개발 이론과 비전은 실제 행정에 반영되었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이 다시 그의 연구로 피드백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창의적 기획력과 철저한 실행력이다.
어떤 과제가 주어지면 먼저 목표를 명확히 설정한 뒤, 관련된 제반 여건을 면밀히 분석하고 실현 가능한 방법과 단계를 구체화한다.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추진 전략을 수립하며, 창의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의 이러한 능력은 대구경북연구원 원장 재임 시 더욱 빛을 발했다. 당시 그는 연구원의 업무를 혁신하고,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는 데 집중했다. 또한 안민포럼의 상임대표로서 정책의 전문성, 균형성, 네트워크, 혁신성을 강조하며 국가와 지역의 정책 혁신을 선도했다.

그는 중앙정부의 지역개발 정책 수립과 집행, 평가 과정에도 깊이 관여한 학자다.
대통령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 (사)한국지역개발학회 회장, (사)대한지방자치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도 지방분권과 지역의 균형발전을 핵심 가치로 삼았다. 그는 항상 지역의 내발적 발전을 강조하며, 중앙의 논리가 아닌 지역의 논리에 충실한 정책을 지지해왔다.

이 교수가 어느새 정년을 맞았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여전히 활발한 연구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년 후에도 그의 연구가 더욱 왕성해지고,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지난 30여 년간 그와 함께 연구하고 협력했던 시간들은 매우 의미 있었으며, 진정 행복한 경험이었다.
그의 헌신과 열정이 앞으로도 지역발전의 새로운 길을 여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필자 소개
최용호 교수님은 경북 의성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사를, 경북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와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셨다. 이후 언론사 논설위원과 대구은행(현 iM뱅크) 조사부를 거쳐 경북대학교 경제학과(경제통상학부) 교수로 평생 재직하셨다. 또한 (사)산학연구원을 설립하여 원장과 이사장을 역임하셨다.

"융합형 학자, 최용호 교수님을  그리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최 교수님을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교수님의 겸손하고도 온화한 태도에 먼저 감탄할 것이다.

그러나 교수님과 깊이 대화를 나눠 보면, 교수님은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읽고,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진정한 ‘융합형 학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교수님의 삶은 단순한 직업적 성공을 넘어 학문, 실무, 사회적 역할, 그리고 인간적인 품성을 모두 조화롭게 엮어낸 하나의 거대한 융합의 과정이었다.


학문적 융합으로 지식의 경계를 넘어선 학자이다

최 교수님의 학문적 여정은 단순히 한 분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지식을 확장하고 융합하는 과정이었다. 정치학을 전공한 후 경제학과 지역경제학으로 연구 영역을 넓힌 교수님은, 사회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는 융합적 사고를 지닌 학자로 성장했다. 교수님에게 학문이란 단순한 연구 대상이 아니라,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였다.

최 교수님은 실사구시의 자세로 이론과 현실의 융합을 실천한 학자이다.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시작하여 대구은행(현 iM뱅크) 조사부에서 경제분석을 수행하고, 대학에서 지역경제 강의를 이어간 교수님의 경력은 학문과 실무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교수님은 이론이 현실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신념 아래, 연구실에서 고민한 경제이론을 실제 지역경제 정책에 적용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최 교수님은 공간적 융합으로 지역문제 해결에 통찰력이 뛰어난 학자이다. 교수님은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성장하며, 농도적 생활을 두루 경험했다. 이러한 배경은 교수님에게 다양한 환경과 문화 속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교수님이 지역경제 발전을 연구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가치와 품성, 그리고  태도의 융합으로 수많은 성취를 이룬 학자이다

최 교수님의 가르침과 연구에는 항상 포용과 공존의 가치가 담겨 있었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를 융합하는 교수님은 단순한 학문적 연구를 넘어 실질적인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교수님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님은 품성의 융합으로 수많은 성취를 이룬 학자이다. 교수님은 많은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논문 지도와 심사를 맡을 때도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지식의 권위자가 아닌 동반자로서 함께 고민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교수님은  학자로서의 성취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품성까지도 균형을 이루며, 후학들에게 진정한 배움의 의미를 전하는 역할을 했다.

최 교수님은 태도의 융합으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균형잡힌 학자이다. 교수님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전통과 현대의 모순과 갈등을 조화롭고 균형되게 하나로 융합하여 엮어내는 능력이었다. 교수님은 학자로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하면서도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이러한 균형 잡힌 태도는 교수님이 다양한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소통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주었다.


사회적 융합으로 공익과 정의를 실천한 학자이다

최 교수님은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사회적 가치로 연결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교수님은 '(사) 산학연구원'을 창립하여 산업, 대학, 경영, 기술, 금융을 하나로 묶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학문이 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길을 개척했다. 또한, 이들 연구원을 통해 영·호남 교류와 지역 간 화합을 도모하며, 학자이자 실천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최 교수님은 젊은 시절부터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대구 2·28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며 공의와 신념을 실천한 교수님의 모습은 학문과 현실을 연결하는 학자로서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사회적 불의에 맞서되, 조화롭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교수님의 태도는 건강한 민주사회의 기반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평생학습으로 변화에 적응하는  학자이다

최 교수님은 정년 이전이나 이후에도 한결같이 배움을 멈추지 않는 학자이다. 이른 새벽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천을 산책하고, 경북대 어학당에서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였다. 정년 이후에도 동양 고전과 한학을 탐독하며 지적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고, 시대적 흐름을 읽는 통찰력을 키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글을 마치며,

최 교수님의 삶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가치와 경험을 융합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한 여정이었다. 교수님은 학문과 실무, 도시와 농촌, 전통과 현대, 개인과 공동체라는 서로 다른 요소들을 조화롭게 연결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융합형 학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교수님은 지식인이면서 실천가였고, 학자이면서도 교육자였으며, 이론과 현실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교수님의 삶과 철학은 후학들에게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융합을 실천하는 길을 제시하였다. 교수님의 발자취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비추는 하나의 등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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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근, 그와 나는 영원한 멘토이자 멘티다"

김관용 前 경상북도 지사
현 대한민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멘토(mentor)와 멘티(mentee)

‘멘토’라는 단어는 그리스 신화 속 오디세우스의 친구 멘토르(Mentor)에서 유래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여 20년간 귀향하지 못하는 동안, 멘토르는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보살피며 가르쳤다. 이로 인해 ‘멘토’는 ‘현명하고 성실한 조언자’ 또는 ‘스승’을 의미하게 되었고, ‘멘티’는 그러한 멘토에게 가르침이나 조언을 받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멘토와 멘티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도 하고, 조직 안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성근 교수와 나의 관계는 단순한 공식적 멘토와 멘티 관계가 아니었다. 우리는 지역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멘토이자 멘티가 되었다.

나는 25년간 지방자치 현장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이성근 교수는 더할 나위 없는 멘토였다. 현실 행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이론적 토대가 필요했는데, 그때마다 그의 조언과 제언은 큰 힘이 되었다. 동시에 나 역시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에 치우치지 않도록 돕는 멘토 역할을 했다.

그의 학문적 명성은 따로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특히 지역개발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학자다. 나는 그가 대학에 재직하던 시절부터 늘 그를 찾았다. 구미시장 재임 당시에는 시정자문을 맡겼고, 경상북도지사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제시한 조언들은 특히 지역균형발전과 새마을운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도권 집중이 가져오는 폐해를 누구보다 깊이 연구해 온 그는, 국토균형발전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또한 새마을운동의 가치를 확고히 신념으로 삼고, 그 영향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데 앞장섰다.


대구경북연구원의 수장으로서

2010년, 나는 그를 대구·경북 최고의 싱크탱크인 대구경북연구원 원장으로 영입했다. 당시 경상북도지사였던 나는 이사장 직을 맡고 있었기에, 대구시장을 설득해 그의 임명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의 높은 학문적 역량을 보다 가까이에서 활용하고 싶었고, 그 선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가 원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대구경북연구원은 내실을 더욱 단단히 다졌다. 연구 분위기가 달라졌고,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 성과를 냈다. 특히 그의 연구는 단순한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에 적용될 수 있도록 했다. 비록 연구원 내 노조 설립 등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지금도 그는 가장 열정적으로 일한 원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정치적 도전 속에서도 함께한 길

2017년 3월, 대한민국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그로 인해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나는 당시 자유한국당의 대선 경선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많은 사람이 만류했다. 승산이 뻔한 싸움인데 굳이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우려도 컸다. 그러나 이성근 교수는 달랐다. 그는 대구와 경북의 자존심을 지키고, 보수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내가 반드시 나서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경선 과정에서도 정책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국민의 마음을 온전히 얻지는 못했지만, 지방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켰고, 대구와 경북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조언은 매우 정확했고, 나 또한 후회 없는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함께한 길, 미래를 향한 디딤돌

이제 그는 현역에서 물러나 원로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우리의 인연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그와 나는 여러 면에서 닮았다. 내가 25년간 지방자치 현장을 지켜온 것처럼, 그는 학자로서 지역을 떠나지 않고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나는 자치분권과 국토균형발전을 행정가와 정치가로서 주창해 왔다면, 그는 이를 철저히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며 대한민국의 균형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한 시대를 같은 방향에서 바라보며, 같은 길을 걸어온 우리

우리가 함께 걸어온 발자취는 반드시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필자 소개
김관용 지사님은 영남대학교 경제학과(경제학사), 동대학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 금오공대ㆍ 계명대ㆍ 안동대 ㆍ몽고ㆍ인도네시아 등 대학에서 여러 분야의 명예 박사학위를 받으셨다.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1971)하여 민선 이전 까지 여러 중앙 부처에서 고위 공직자로 활동하셨다. 민선 출범과 함께 민선 구미시장(3선)과 경상북도 지사(3선), 그리고 대한민국 시 ㆍ도 지사협의회 회장을 역임하셨다. 지금은 대한민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맡고 계신다.



"김관용 지사님과의 인연을 돌아보며, 김 지사님의 리더십을 말하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나의 인생에서 김관용 지사님과 인연을 맺은 것은 크나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김 지사님은 나에게 어떤 사람인가? 김 지사님은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라는 "회상록"에서 나를 멘토이자 멘티의 관계로 덕담의 글을 써 주셨다. 그러나 나에게 김 지사님은 고교계명의 스승이자 나를 이끈 은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김 지사님은 어떤 사람인가?  목표성취형, 외유내강형, 그리고 사회후생형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여전히 국가 원로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김관용 지사님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글을 시작하며,

이 글은 김관용 지사님과의 인연을 돌아보며, 김 지사님의 리더십을 소개하고 있다.
글의 순서는 김 지사님의 경북도지사 선거 출마와 정책 자문의 인연, 도지사 당선 이후 도정 참여 기회 확대, 대구경북연구원의 원장 추천과 기회, 대선 출마와 정책학습 및 자문과 대선 자료집 작성,  그리고 6선의 24년간 지방 선출직으로 구미시장과 경북도지사를 지낸 김관용 지사님의 리더십이다.


먼저 김관용 지사님과의 인연에 대해 보자

인생을 살다 보면 우연한 기회로 만남이 이루어지고, 때로는 부탁을 하거나 받게 되는 일이 생긴다. 그 부탁이 성사되기도 하고, 불가피하게 실패할 때도 있지만, 이러한 일들은 결국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관용 지사님과의 인연도 그러했다.

김 지사님과의 첫 인연은 구미시장 재직 시절, 지방 혁신 평가 및 정책 자문을 통해 시작되었다. 몇 차례의 공식적인 만남이 이어지며 보통의 관계를 유지하던 중, 어느 날 김 지사님으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려고 합니다. 정책 자문을 부탁드립니다."

이 전화 한 통이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었다.


다음은
경북도지사 당선과 도정 참여의 기회이다

김 지사님은 당내 경선을 힘겹게 통과한 후, 본선에서는 비교적 무난하게 승리하며 경북도지사에 당선되었다. 이후 인수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나는 위원장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도지사 취임과 함께 '새경북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부위원장 겸 기획분과위원장을 맡았고, 도청 이전 추진위원을 비롯해 여러 도정 현안에 깊이 관여할 기회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도지사 정책자문관으로 활동하였다.


다음은 대구경북연구원장과 주요 연구사업, 그리고 대선 후보 경북 정책 자문단장의 에피소드이다

지방자치 시대가 개막되면서 전국 시·도는 지방연구원을 설립하고 운영하기 시작했다. 대구와 경북은 공동으로 대구경북연구원(이하 대경연)을 설립하여 지역개발 정책 연구의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했다.

마침 대경연 원장 자리가 비게 되었고, 김 지사님의 추천으로 연구원장에 취임하게 되었다.

연구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경북새마을세계화재단, 경북농민사관학교, 경북행복재단의 설립 타당성 연구 등을 수행하며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지사님은 대경연의 연구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고, 지역발전과 연계된 여러 협의체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에게 발언 기회를 보장해 주셨다.

그러나 연구원장으로서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도 제기되었다. 김 지사님이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경북 정책자문단장을 맡도록 추천했고, 나 역시 이에 합류하며 자문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에서는 특정 정당 편향성을 문제 삼아 공개 질의서를 보내왔고, 지역 언론에서도 논란이 되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대선과 정책 자문, 그리고 다섯 번의 전화가 특히 기억된다

대경연 원장직을 마치고 학교로 복귀한 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가 발생하며 조기 대선이 치러지게 되었다.
그때 김 지사님은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 나는 정책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정책 학습과 자문을 수행했고, 대선 자료집 작성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서울 방송 토론이 있을 때마다 김 지사님과 전화로 의견을 나누며 정책 방향을 조율했다.

김 지사님과의 인연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다섯 번의 전화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나는 도지사 출마와 정책 자문의 요청이다.
둘은 대구경북연구원장직에 대한 의사 타진이다.
셋은 대선 출마와 정책 자문의 논의이다.
넷은 퇴임 후 사회적 역할과 활동 방향의 논의이다.
다섯은 대선 윤 후보 경북선대본부장 시절 정책 공약에 대한  전화이다.


이 다섯 번의 전화는 단순한 대화를 넘어, 김 지사님의 정치적 신념과 정책 철학을 공유하는 중요한 순간들이었다.


다음은 김관용 지사님의 리더십과 업적에 대한 소개이다

김 지사님은 24년간 구미시장 3선, 경북도지사 3선이라는 지방 정치의 역사를 써 내려왔다. 김 지사님의 리더십을 여덟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는 시장경제에 충실한 신산업 개척주의자이다.
해외 기업 유치로 지역경제 활력과 일자리 창출에 성과가 많았다. 이는 3선 구미시장의 경험에서 나온 소신이자 철학이 바탕이 되었다.

둘째는 점진적 사회개혁과 개선주의자이다.
대표적으로 영농후계자의 양성을 위한 농민사관학교의 설립과 운영에서 많은 성과를 내었다. 이는 농업과 농촌의 미래를 내다본 혜안의 정책사업이었다.

셋째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뢰하고 경청과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적 리더십이다.
특히 신도청 이전지 결정과 신도시 건설, 그리고 도청이전이었다. 도청유치를 희망하는 다수 지역의 이해를 큰 갈등없이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치밀한 정책설계와 가치중립적 입장을 견지한 것이 가능하게 하였다.

넷째는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용주의자이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와 동북아자치단체연합 등 전임 이의근 지사 시절의 도정을 계승 유지 발전하였다. 역대정부와 대부분의 지자체장들은 전임 정부와 지자체장들이 추진한 사업을 부정하고 깡그리 무시하였으나 김 지사님은 달랐다. 좋은 정책사업은 계승발전시키고 나쁜 정책사업은 수정보완하였다.

다섯째는 민선 6선 경험의 현장중심의 실사구시자이다.
구미시장 3선과 경북 도지사 3선 총 6선 24년의 지방적 리더십이다.
이는 새마을의 세계화재단과 경북 행복재단의 설립과 운영에서 알 수 있다. 전자는 경북도의 브랜드인 새마을 운동의 세계화사업이고, 후자는 국민행복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도민의 건강과 복지를 전담하는 정책사업이었다.

여섯째는 화합과 사회통합의 리더십이다.
경북 도청이전과 4대강 사업 등에서 분열과 갈등보다 대화와 타협, 그리고 합의형성을 통해 설득과 인내로 당초 목적을 성취하는 외유내강형의 리더쉽을 발휘하였다.

일곱째는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지향하는 글로컬 시대의 지도자이다.
외교와 안보, 그리고 세계화에도 적극적이었다. 특히 독도 영토분쟁, 신재생 에너지, 세계물포럼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여덟째는 조정과 협력에 강한 협업주의자이다.
대한민국 시ㆍ 도지사협의체의 운영과 같은 국가와 광역, 광역과 기초의 조정과 협력에 기여하였다.


새로운 길로 민주평통 수석 부의장에 취임하다

대선 이후, 김 지사님은 새로운 역할을 맡아 민주평통 수석 부의장으로 취임했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국운 융성과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 글을 마치며,
김관용 지사님의 민주평통 수석 부의장으로서의 성공적인 역할 수행과 건강한 삶을 기원한다. 김 지사님의 오랜 지방 정치 경험이 국가 발전과 국민 통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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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과 근면, 그리고 정직한 사람, 이성근 교수"

이문조 영남대 명예교수ㆍ 정치외교학과



이성근 교수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성실, 근면, 정직이다. 같은 대학에서 30년을 함께하며 느낀 그의 인상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나는 정년퇴직 후 13년이 지났고, 그도 지난해 정년을 맞이했다. 교수로서, 직장 선배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친구로서 함께한 시간 속에서 그는 언제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약속을 철저히 지키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었다. 자기 연구와 강의에 몰두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가진 지식을 활용해 지역사회와 정부의 자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관변 폴리페서가 아니었다. 공적인 활동에 참여하면서도 특정 이익집단의 영향에 휘둘리지 않았으며, 자신의 학문적 양심을 지켜왔다. 이러한 점이 내가 그를 더욱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의 언행은 언제나 일치했고, 만약 약속을 지키지 못할 상황이라면 반드시 미리 양해를 구하는 신사다운 면모를 보였다.

학자로서의 연구와 사회적 기여

이 교수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학문적 탐구를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왔다. 그의 전공 분야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도시와 지역개발, 지역경제와 사회발전, 지방재정과 공공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해외의 사례를 연구하고, 관계 학회 및 정부와 협력하며 세계 곳곳을 직접 탐방하는 등 학문과 실무를 함께 아우르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삶을 개척해왔다. 그는 언제나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한국에서 독보적인 학문적 경지를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가정과 신앙 속에서 쌓아온 가치관

이 교수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 중 하나는 신앙이다. 그는 정직하고 근면한 태도로 삶을 살아왔으며, 때때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참고 견디는 힘을 발휘했다. 이러한 인내와 용기는 신앙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는 가정적으로도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의 아내는 경북대학교 간호대학 학장을 역임한 학자로서, 부부는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해왔다. 또한, 매주 일요일 가족과 함께 교회에 가며 신앙을 기반으로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왔다.

새로운 도전과 백세 시대의 역할

정년을 맞이한 지금, 그는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 갈고닦은 능력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야말로 학자로서의 궁극적인 역할이 아닐까.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70세에 첫 책을 쓰기 시작해 90세까지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베르디가 80세에 오페라를 창작했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교수 역시 여전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열려 있다.

나는 이 교수와 골프를 함께한 시절을 기억한다. 그는 빠르게 실력을 향상시켰지만, 연구와 업무로 인해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는 못했다. 이제는 건강도 관리하면서 백세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역할을 찾기를 바란다.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과 환경 문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식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대기오염, 수질오염,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연구와 정책적 대안이 필수적이다. 모든 사람이 조금씩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이 모일 것이다.
호주는 아델라이드를 첨단 정보통신 신도시로 개발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 역시 생태환경과 도시개발을 조화롭게 이루어나가야 하며, 이 교수와 같은 학문적 전문성과 실무 경험을 갖춘 인재들이 이를 이끌어주기를 기대한다.

이교수의 정년 이후가 기대된다

"대붕(大鵬)은 한 번 지상에서 떠나면 하늘에서 6개월을 머문다"는 말이 있다. 이제 이 교수가 쌓아온 학문과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더욱 큰 도움을 주길 바란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젊은 세대가 살아갈 길을 닦아주는 것이야말로, 지식인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건강을 유지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발걸음을 계속해 주기를 기대한다.


필자 소개
이문조 교수님은 경북대 철학과(문학사), 서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정치학과(정치학 박사)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평생 교수를 지내셨고, 재직중에 정치행정대학장을 역임하셨다.  



"이문조 교수님을 기리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이문조 교수님께서는 학문과 교육, 그리고 인격적 품격을 겸비하신 학자로 평생을 살아오셨습니다.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경북대학교 철학과에서 문학사를 취득하셨으며, 이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를,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탄탄한 학문적 기반을 바탕으로 영남대학교에서 평생을 재직하시며 정치행정대학장 등을 역임하시며 학문과 후학 양성에 헌신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근대 한국의 명망가 집안 출신으로, 부친이신 이효상 국회의장님, 장인이신 코오롱그룹 창업자 이동찬 회장님, 그리고 형님이신 경북대학교 철학과 이문호 교수님과 대구 가톨릭 이문희 대주교님 등 가족 모두가 사회 각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해오셨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교수님께서는 자존감과 안정감을 바탕으로 균형 잡힌 사고를 가지셨으며,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 속에서도 신념에 따라 강인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저와 이 교수님은 같은 정치행정대학에 몸담으며 학문적, 인간적으로도 많은 교류를 나누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전공서적을 다독하는 습관이 있으셨고, 연구 중 궁금한 점이 생기면 저를 찾아 질문하시곤 했습니다. 저는 아는 바를 소상히 설명해 드렸고, 교수님께서는 이를 통해 저를 박학다식한 사람으로 보셨던 것 같습니다. 사람 간의 좋은 인연은 이런 작은 순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특히 정치외교학과 관련 문제로 제가 학장보로서 회의를 주재했을 때, 교수님께서는 제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로 회의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저를 합리주의자로 판단하셨던 것 같습니다. 반면, 다른 특별한 인연이 있는 교수님께서는 제 결정에 실망하며 서운함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교수님께서는 인간관계에서 항상 먼저 공사(公私)를 구분한 후, 상대방의 입장을 경청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셨으며, 그런 점에서 저와 성향이 닮아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 대학 총장 선거에 출마하셨을 때,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는 국책사업 선정 준비를 담당하는 본부 보직의 테크노파크 추진기획단장을 맡고 있어 선거에 개입하기 어려운 입장이었습니다. 이를 솔직히 말씀드리자 교수님께서는 제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 주셨고, 저를 나름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후 일부 사람들로부터  제가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고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후 저는 교수님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하였고 역시 교수님으로부터 골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골프 연습장에서 교수님께 지도도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교수님께서는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친분을 바탕으로 사모님께서 대구에 오실 때면 제 가족과 함께 두 가족이 종종 식사 자리를 갖기도 했습니다.

정년퇴임 후 교수님께서는 그간 대리인에게 맡겨둔 두 개의 회사를 직접 경영하시다가, 어느날 제한테 이런 전화를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팔공산 사업장에서 지하수를 개발하려 하셨으나, 동화사 측에서 지하수맥이 끊길까 우려하며 반대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이에 과학적 접근을 통해 문제가 없다는 전문가 의견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듣고, 한국농어촌공사 경북본부의 지하수 담당자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이를 통해 해결 방안을 찾으셨고, 저의 도움에 깊이 감사해하셨습니다.

정년 이후 상당 기간 이렇게 직접 회사를 경영하시다가 자녀에게 경영을 맡기시고 서울로 거처를 옮기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지가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대구로 내려오셔서 미뤄둔 집필 활동을 시작하시고, 동료 교수님들과 가끔 골프를 하시며 지내신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러던 중, 교수님이 저에  대한 글을 써 주신 회상록을 전달해 드리려 저와 통화한 것이 마지막 대화가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이문조 교수님,
학자로서, 교육자로서, 그리고 인간적으로도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교수님의 깊은 지혜와 따뜻한 인품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삼가  이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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