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과 관계'의 개념정의에 기반하여 '어떻게 우리가 행복하고 보다더 의미있는 삶에 이를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우리는 긴 여정의 인생을 행복하고 보다더 의미있게 살아가려면 따뜻한 정을 나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따뜻한 정을 나누는 사람의 정의는 개인에 따라 다르나 대체로 가족과 벗, 그리고 이웃이다. 가족은 자연스런 생득적 또는 귀속적 지위로 갖는 것이나 벗과 이웃은 자신의 노력을 통한 성취적 지위로 얻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따뜻한 정을 나누는 사람을 가질 것인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의 관계'가 이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하였다. 우정과 관계는 동전의 앞뒤 면과 같다. 우정이 앞 면이라면 관계는 뒷면이다. 또한 우정이 정태적인 지위라면 관계는 동태적인 역할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유익함과 즐거움, 그리고 선과 덕의 세 가지 구성요소로 정의하였다. 따라서 우리가 상대방과 따뜻한 정을 나누려면 서로에게 유익함이 있어야 하고 서로에게 즐거움이 있어야 하며 그리고 선과 덕과 같은 지향가치의 공유와 공감이 필요하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관계'를 유익한 관계와 즐거운 관계, 그리고 공동의 선과 공의를 추구하는 관계의 세 가지 구성요소로 정의하였다. 따라서 따뜻한 정을 주고받으며 나누는 사람 즉, 우정을 주고받으며 나누는 사람이 되려면 관계가 좋아야 한다. 서로에게 유익하고 즐거운 관계가 되어야 하며, 그리고 공동의 선과 공의를 추구하고 공유하는 관계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관계는 사회적 선과 덕을 함께 추구하는 관계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긴 여정의 인생에서 생각과 마음과 정신 즉, 영혼을 공유하는 우정의 사람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일상에서 유익함과 즐거움을 주고받으며 나누는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 글을 맺으며 필자는 우리 모두에게 긴 여정의 인생과 매일매일 부닥치는 일상에서 따뜻한 정을 나누는 우정의 사람과 함께하면 행복하고 보다더 의미있는 삶에 이르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최근 우리 사회는 몇 가지 특징적인 메가트렌드가 자리잡고 있다. 젊은 세대는 커피가 대세이고 중장년 여성은 대중가요인 트롯이 대세이며 고령 세대는 파크 골프가 대세이다. 얼마 전 신문 기사에 지난 수년간 편의점보다 카페가 훨씬 많이 생겨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또한 최근에는 음악 부문에서 트롯이 팬덤 현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대부분의 고령 세대는 자신의 건강을 제일로 삼고 그 효과적인 대안으로 파크 골프 스포츠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앞의 두 가지는 민간 부문에서 자율적으로 일어났으나 파크 골프는 공공 부문의 역할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면 지금 파크 골프의 현실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공급이 수요를 못따르는 수초(需超) /수요초과 현상이다.
그간 지방정부가 파크 골프장 조성에 관심을 가졌으나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였다. 특히 전체 인구 대비 고령층 인구의 비중이 수도권보다 지방이 훨씬 높으나 지방정부는 고령층 인구 수요에 대응하는 파크 골프 조성을 위한 재정이 열악하여 공급에 한계가 있었다.
또한 그동안 파크 골프의 제도적 기반이 미비하여 민간부문의 참여가 없었던 것도 공급부족에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파크 골프가 법정 체육시설에 포함됨에 따라 향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중앙정부 차원의 파크 골프장 공급의 획기적 정책적 관심과 재정지원이 요구된다.
한편 최근 파크 골프가 고령층 인구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와 이에 대한 사회적 편익에 관한 연구로 사회적으로 공론화가 일어나고 있어 파크 골프 동호인에게는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이 글은 파크 골프가 고령층 인구의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한 필자의 경험과 생각을 정리한 단상이다. 파크 골프는 고령층의 전신운동에 적합한 고령층 친화 운동이다. 고령층 인구는 다른 세대와 달리 상대적으로 온몸을 사용하는 전신운동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글의 구성은 파크 골프가 우리의 신체구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 하에 신체의 상부구조와 몸통 부분, 그리고 사대 신체로 구분하여 소개하고 있다. 고령층 인구는 젊은 층 인구에 비해 대부분의 신체구조에서 기능이 떨어진다.
먼저 신체의 상부구조의 영향이다. 신체의 상부구조는 머리, 눈, 귀, 코, 입으로 얼굴 부분에 해당한다.
고령층 인구는 정년과 함께 두뇌활동이 줄어들고 두뇌기능도 저하된다. 따라서 일상에서 머리는 무겁고 띵하며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청정한 자연에서 파크 골프를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진다. 또한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느낌을 가진다.
대부분의 고령층 인구는 노안으로 일상에서 눈이 흐릿하고 침침하며 잘 보이지 않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녹색의 자연에서 파크 골프를 하고 나면 눈이 밝아지고 잘 보인다는 느낌을 갖는다.
고령층 인구가 공통으로 가지는 특징의 하나가 청력 저하이다. 일상에서 피곤하면 귀가 윙윙거리고 잘 안들리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자연에서 파크 골프를 하고 나면 또렷하게 잘 들린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우리는 일상에서 가끔 코가 막히고 미세먼지로 숨쉬기가 불편한 경험을 한다. 그러나 상큼한 자연에서 파크 골프를 하고 나면 코가 뚫리고 숨쉬기가 편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고령층 인구는 정년 이후 일을 하지 않아 먹는 것과 언어 사용이 줄어든다. 특히 1인 가구는 더욱 그러하다. 최근 우리도 1인 가구가 대폭 증가하고 있고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자연에서 신체적 운동과 동반자와 편하게 대화하면서 파크 골프를 하고 나면 입맛이 생기고 말하기가 쉬우며 소통이 자유롭다는 느낌을 갖는다.
다음은 신체의 중간구조인 몸통부분의 영향이다. 신체의 몸통은 외부인 가슴과 내부인 오장육부(五臟六腑)를 가리킨다.
고령층 인구는 한평생 살면서 희로애락을 다 겪은 세대이다. 사람마다 가슴에 응어리가 맺혀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일상에서 가끔 과거를 회상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울화통이 치미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파크 골프를 하고 나면 가슴이 열리고 시원한 기분이 들며 가슴이 펴진다는 느낌을 가진다.
옛날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고령층 인구는 오장육부가 썩어 문드러졌다"는 표현을 하였다. 우리는 일상에서 음식이 과하거나 신경쓰는 일이 생기면 속이 더부룩하고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또한 몸이 처지며 무겁다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파크 골프를 하고 나면 속이 편하고 순환이 잘 되며 활력이 생긴다는 느낌을 갖는다.
마지막은 사대(四大) 신체의 영향이다. 사대 신체는 팔과 다리를 가리킨다.
우리는 일상에서 무료하게 지내다 보면 어깨가 처지고 팔에 힘이 없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파크 골프를 하고 나면 어깨가 올라가고 팔에 힘이 생긴다는 느낌을 갖는다.
고령층 인구는 젊은이에 비해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고 일상에서 손이 저리고 손놀림이 둔하다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파크 골프를 하고 나면 손에 힘이 생기고 손놀림이 편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고령층의 인구는 일상에서 다리가 무겁고 힘이 없으며 근력이 빠지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파크 골프를 하면 다리가 굳건해지고 힘이 생기며 다리에 근력이 생긴다는 느낌을 갖는다.
고령층의 인구는 일상에서 걸음이 느리고 발이 저리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파크 골프를 하고 나면 발이 가볍고 걸음이 빨라진다는 느낌을 갖는다.
이상에서 파크 골프가 고령층 인구의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소개는 필자가 경험한 주관적 판단이지만 함께 즐기는 동호인들도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이 글을 마치면서 파크 골프가 고령층 인구의 건강에 여러 가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요약과 고령층 인구가 바라는 희망, 그리고 파크 골프정책의 제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 글의 요약이다. 첫째로 파크 골프는 고령층 인구에게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의 유지와 향상을 가져다 준다. 둘째로 파크 골프는 고령층 인구에게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의 조화와 균형으로 인지 능력의 유지와 향상에 도움을 준다. 셋째로 파크 골프는 고령층 인구에게 사대육신과 오장육부의 선순환시스템의 유지와 향상에 도움을 준다. 넷째로 파크 골프는 고령층 인구에게 사회적 소통과 관계십의 유지와 향상에 기여한다.
궁극적으로 파크 골프는 고령층 인구에게 조화와 균형 있는 삶, 건강을 우선하는 행복한 삶, 유유자적하는 황혼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대안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고령층 인구의 희망이자 필자의 희망이다. 고령층 인구의 희망은 여타 세대와 함께 웰빙이다. 다만 고령층 인구는 웰에이징과 웰다잉을 목표로 삼는다. 고령층 인구가 희망하는 웰에이징은 건강하게 사는 것이고, 웰다잉은 아프지 않고 수명연장하지 않으며 정든 세상을 편하고 아름답게 떠나가는 것이다.
마지막은 고령층 인구를 위한 파크 골프 정책의 제언이다. 필자는 파크 골프 정책이 고령층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수십 가지 복지정책의 종합정책(meta policy)이라고 믿는다. 고령층 인구가 즐기는 파크 골프는 고령층 인구에게 일석이조(一石二鳥) 효과가 아니라 일석백조(一石百鳥) 효과가 나타나는 전무후무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고령층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복지정책 가운데 파크 골프장 건설과 관련한 정책에 특별한 관심과 정책의 최우선순위화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이 글은 포도나무의 성경적 의미와 내가 삼 년여 팔공산 전원생활에서 이색체험한 포도열매의 성질에 대한 경험담이다. 특별히 '포도열매가 지닌 수용하고 포용하는 성질'에 대한 소개이다.'
나는 대학 정년 이년을 앞두고 팔공산 덕곡동에 반전세로 전원생활을 시작하였다. 대지가 이백여 평이라 마당에 빈터가 많아 이삼십여 평의 텃밭을 만들어 여러 종류의 채소를 심고 길러 직접 채취하여 먹고 여분의 채소는 집사람을 통해 지인들과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 그래도 여유공간이 많아 유실수 몇 그루를 심기로 하였다. 나는 무엇을 심을까를 생각하다가 성경에 나오는 '포도나무'를 떠올리고 우선 이를 심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나는 교육부 파견으로 순복음 교단의 순총학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라 나름 의미가 있을 거로 생각하였다.
먼저 '포도나무'의 성경적 의미에 대해 보자. 성경 속의 '포도나무와 포도열매'는 "요한복음 15:1-11"에 잘 나타나 있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이처럼 '포도나무와 포도열매'는 신앙생활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신앙생활의 핵심을 설명하며,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 참된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포도나무와 포도열매는 성경적으로 의미가 크고 여러 성경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성스러운 나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내가 팔공산 전원생활에서 이색체험한 '포도열매가 지닌 성질'에 대한 경험의 소개이다. 나는 세들어 사는 전원주택에다 경산 진량의 묘목 특구 시장에서 5년 된 재래종의 네 그루 포도나무를 구입하여 집 대문 가까이에 두 그루와 현관문 입구 쪽에 두 그루를 심었다.
나는 성경 속의 포도나무와 포도열매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집 김 회장의 포도나무 재배 지도를 받으면서 포도열매가 풍성하게 달리도록 열성으로 관리를 하였다.
나는 팔공산의 전원생활에서 매일 이른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마당 텃밭에 기르는 채소를 채취하여 믹서기에 넣어 즙으로 만들어 마시고 동네 지인 두 사람과 산행길에 나서는 일상의 아침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믹서기에 여러 종류의 채소와 과일을 넣고 믹서하면 믹서기에 찌꺼기가 달라붙어 세척에 애를 먹는다.
한 해가 지난 후에는 포도열매가 달리면서 이를 채취하여 믹서기에다 텃밭에서 키우는 여러 종류의 채소와 함께 믹서하여 즙으로 만들어 즐겨 마셨다. 이때 우연히 포도가 들어간 믹서기와 그렇지않은 믹서기가 확연히 다름을 발견하게 되었다. 전자는 믹서기에 찌꺼기가 없이 깨끗하였고 후자는 그 반대였다.
나는 그때 포도는 여러 채소와 과일을 흡수하는 성질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였다. 또한 포도는 우리 인체내에 여러 찌꺼기들을 흡수하고 배출하는 성질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그래서 팔공산 전원생활에서 믹서기를 사용할 때면 반드시 포도를 넣는 버릇이 생겼다.
이 버릇은 지금 서귀포의 유유자적하는 생활에서도 실천하고 있다. 채소와 과일은 내가 관리하는 텃밭에서 조달한다. 다만 텃밭에 포도나무가 없으므로 마트에서 포도 쥬스를 사거나 포도를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훨씬 속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덩달아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 같아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보고 있다.
이 글은 우리가 긴 여정의 인생에서 행하고 살아야 할 다섯 가지의 길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필자는 이를 '인생의 오행지도(五行之道)'로 이름 지었다. 이 글의 기본 전제는 순자의 "유효편"에 나오는 "보는 것은 아는 것만 못하고, 아는 것은 행하는 것만 못하다."와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에 두고 있다. 필자는 우리 인생도 알고 행하며 좋아하고 즐기면서 살아가는 즉, 지행호락생(知行好樂生)하면 보다 진취적이고 긍정적이며 활기차고 보람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
요한계시록 22:13 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가 나온다. 나는 이 성경구절을 좋아한다. 우리 모두의 인생길은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하셨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알파와 오메가'의 개념을 차용하여 우리의 인생여정을 연결시켜 사용하였다. 우리의 인생여정도 처음과 마지막이 중요하다. 그러나 필자는 인생의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믿는다. 여기에는 필자의 전공이 계획이론이고 그 가운데 과정형 계획이론을 중요하게 연구해 왔기 때문이다. 또한 칠십여 평생을 살다보니 경험적으로 인생은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고 무엇보다 인생의 과정관리 즉, 인생경영이 나의 인생을 결정지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과정을 포함시켜 인생 오행지도의 개념화를 하였다. 인생의 오행지도는 처음과 마침에다 과정이 포함되고 이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지향가치(orientation), 신념(belief)과 의지(intention), 협업(collaboration), 공유(sharing ), 궁극적 목표(ultimate goals)인 마침(destination) 이고, 이를 결합하면 오행지도 'OICSD'가 된다. 여기서는 오행지도를 차례대로 논의해 보기로 한다.
1행은 '지향가치(orientation)를 가지고 살자' 이다.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였으나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거꾸로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고 하였다. 어쨋든 지금은 인간의 기대수명이 백세를 훌쩍 뛰어넘는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송나라 주신중(朱新中)은 문하생들에게 "세시오계(歲時五計)'를 세워 실천하여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는 사람이 태어나서 일생에 생계(生計), 신계(身計), 가계(家計), 노계(老計), 사계(死計)의 다섯 가지 계획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여기에다 '재계(財計)'를 보태어 인생 육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인간은 각자 지향하는 가치가 다르다. 필자는 인생 육계마다 우리 스스로 가치 지향을 세우고 살아가면 목적하는 삶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2행은 "신념(belief)과 의지(intention)를 가지고 살자"이다. 신념은 굳게 믿는 마음이고 의지는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다. 독일의 시인 괴퇴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신념을 가져야 하고 일의 성취를 위해서는 인내와 실천 의지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면 신념과 실천 의지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신념과 의지는 성실한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성실은 정성스럽고 참되며 열과 성을 다하는 마음이다. 성격이나 행동이 바르고 어떤 일을 하면서 온 힘을 다하는 마음이다. "중용"에서 성실을 얻는 데는 다섯 가지 덕목이 요구된다고 하였다. "널리 배우는 것, 자세히 묻는 것,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것, 분명하게 판별하는 것, 독실하게 행하는 것"이다. 벤자민 플랭클린은 "백권의 책에 쓰인 말보다 한 가지 성실한 마음이 사람을 움직인다"고 하였다. 필자는 인생에서 신념이 확고하고 의지가 굳건하며 성실한 태도를 가지면 무릇 무서울 것이 없고 못 이룰 일이 없다고 믿는다.
3행은 "협업(collaboration)으로 일하며 살자" 이다. 협업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동체 사회의 유효한 덕목이다. 협업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독특한 문화가 전제된다. 우리 각자가 규칙준수와 솔선수범하고 정보공유와 상호존중하면 자연스레 협업이 일어난다. 사회구성원 각자에게 이들 네 가지 요소가 잘 작동될 때 협업의 시너지효과는 극대화된다. 개인적으로는 생산적 인간이 되고, 사회적으로는 사회공진화와 사회적 자본의 형성이 확대된다. 따라서 개인이 가지는 협업역량은 곧 개인의 경쟁력이 되고 조직의 협업역량은 조직의 경쟁력이 된다.
4행은 "소유로부터 자유하고 공유(sharing)를 생활화 하자"이다. 공유는 각종 재화와 용역 등을 소유하는 대신 임대 등의 방식으로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소비자의 의식은 소유에서 접속을 통해 단기 대여, 임대, 회원제와 같은 공유형태를 선호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를 공유경제라 부른다. 따라서 지금은 공유사회이자 공유시대가 대세이다. 그러나 협력적 공유사회로 확대되는 데는 자기중심적 의식에서 공감의식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사회적 신뢰는 공감의 토대 위에서 형성되고 공감은 긍정적 마인드에 기반한 감정으로 친밀성과 상호존중,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공유사회에는 협업심이 기본이고 협업역량이 인생의 성공요인이 된다.
5행은 "긴 여정의 인생에서 매 순간 마무리와 마침(destination)을 잘 하자"이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ultimate goals)는 행복한 삶과 더욱더 의미있는 삶이다. 세계가치조사에서 행복의 5대 요소는 일, 소득, 건강, 가정, 관계로 나타났다. 삶에서 일과 소득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청년세대는 일과 소득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기피한다. 이는 지금껏 경험하지 않은 저출생율과 지역소멸로 이어지고 국가기반을 뒤흔들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는 1인 가구 증가로 사회인프라도 일대 변혁을 요구받고 있다. 1인 가구의 지배적 사회는 새로운 가족 개념과 개인의 건강,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도 새로운 적응과 정책적 관심이 요구된다. 최근 행복 개념에 더해 '보다 의미있는 삶'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의미있는 삶의 네 가지 요소는 목적있는 삶, 사회적 유대감, 정신적 심리적 초월감, 자신의 삶에 대한 지속적인 재구조화와 재설계이며 이를 이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긴 여정의 인생은 환류와 수정, 그리고 회복력으로 지향하는 가치에 재도전하고 성취하며 점진적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길이다.
필자는 인생의 오행지도가 상선약수(上善 若水)처럼 우리가 행하면 좋은 다섯 가지 바람직한 실천덕목이 된다고 믿는다. 이 글을 마치면서 인생의 오행지도를 요약한다. 1행은 "지향가치(orientation)를 가지고 살자"이다. 2행은 "신념(belief)과 의지(intention)를 가지고 살자"이다. 3행은 "협업(collaboration)으로 일하며 살자"이다. 4행은 "소유로부터 자유하고 공유(sharing)를 생활화 하자"이다. 5행은 "긴 여정의 인생에서 매 순간 마무리와 마침(destination)을 잘 하자"이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은 중국 5경의 하나인 「예기」의 '학기'에 나오는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공자의 「논어」'자한'편의 후생가외(後生可畏)와 「서경」'열명'의 '하'편에 나오는 "가르치는 것은 배움의 반"이라는 효학반(斅學半)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한다"는 교학상장과 "가르치는 것은 배움의 반이"라는 효학반은 나에게 적합한 말이다. 나의 교수직은 가르치면서 배우고 함께 성장한 교학상장이었다. 따라서 나의 교수인생은 가르침과 배움의 여정이었다.
나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을 마치고 ‘80년 3월 모교인 영남대학(행정학과 졸업)에 전임강사 대우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 내 나이가 서른이었다. 멋모르던 풋내기 교수이었다. 그리고 2018년 2월 정년에 이르기까지 38년간 영남대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나의 교수인생은 크게 두 기간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80년대로 이 시기에 나의 교수생활은 교수이자 위기지학(爲己之學) 내지 훈육(discipline)의 여정이었다. 85년에는 문교부 국비 해외파견교수로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연구교수를 지냈고, 귀국해서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였다. 또한 91년에는 문교부 국내교류교수로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논문연구를 한 진덕수업(進德修業)의 여정이었다. 다른 하나는 위기지학과 진덕수업 이후의 위인지학( 爲人之學)의 여정이었다. 이 기간은 정년에 이르기까지 "배움에 힘써 맡은 소임을 다한다"는 근학무실(勤學務實)과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학해무변(學海無邊), 그리고 "사회를 이롭게 두텁게 한다"는 후생치용(厚生致用)의 여정이었다.
내가 처음 발령받은 학과는「지역사회개발학과」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지방비 장학생(새마을 장학금)으로 졸업과 함께 지방직 7급으로 특채되어 자신들의 고향인 시·군에 근무하게 되어 있었다. 우리 학과는 1977년 신설학과로 대학원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학부생들과 어울리는 기회가 많았다. 당시 나는 미혼으로 학과의 각종 행사에 학생들과 곧잘 어울려 운동/ 씨름도 하고 뒷풀이 행사에도 동참하였다.
나는 대학원에서 경험한 대로 연구실에 조교를 두었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와 함께한 학부생들로는 정상균(79), 윤세하(81), 양병선 등이 있고 논문지도로 여러 학생들과 교류를 빈번하게 가졌던 추억이 있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당시에 매년 교육부(당시 문교부) 장관 주최 전국 대학생 현상논문발표대회가 개최되었다. 나는 80년부터 수년간 학부생을 지도하여 우수한 논문상을 수상토록 하였다. 당시에 지도한 학부생들로는 하순옥(78), 이구석(78), 민인기(79), 윤영란(79), 김재선(79), 김해경(80), 정연재(87) 등 여러 학생들이 생각난다. 가끔은 상경대 학생들도 논문지도를 받으러 오곤 하였다.
한편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81년부터 학과의 지방비 장학생제도는 없어지고, 일반학과로의 전환과 함께 교육과정과 학생진로에 일대 전환기를 맞기도 하였다. ’88년에는 학제개편에 따라 정치행정대학 지역개발학과로 단대 소속과 학과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 이후에도 정부의 대학정책에 따라 정행학부, 행정학부, 지역 및 복지행정학과, 글로벌 새마을학과 등으로 수차례 학과개편이 더 있었다. 또한 단과대학 소속도 정치행정대학에서 사회과학대학, 그리고 지금은 글로벌 인재대학으로 바뀌었다.
나의 교수 인생을 돌아보면 나는 8, 90년대 학번의 학부생들과 동행이 많았다. 이들 학번의 지방비 장학생들은 졸업 후 경북과 대구의 시·군에 근무하게 되어 평생동안 나와 교분이 지속되었고 이들의 정년 또한 대부분 나와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나는 지난 교수인생에서 세 가지의 프리미엄을 가졌었다. 이들 프리미엄은 나를 지탱해온 의미이자 자부심이었다. 하나는 대학원에서 만난 고교계명의 지도교수님이고, 둘은 자유스러운 학풍의 영남대 교수로 일한 것이며, 셋은 지역개발학과 교수로 지낸 일이다. 이들 프리미엄은 나에게 온전한 교수활동과 폭넓은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특히 8, 90년대 학부생들과의 교학상장의 만남은 나에게 크나큰 자산이자 행복의 원천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출신학교에서 우수한 인재들이었고 모두가 순박하고 인성이 좋았다. 나는 오랫동안 교류하고 만남을 지속한 졸업생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지난 2021년에 나온「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의 '교학상장'편은 학부생들과의 만남의 글이다. 여기서는 연구실에서 수년간 동행한 학부생, 문교부 전국대학생 논문발표대회에 논문지도한 학부생, 결혼주례를 선 학부생, 그리고 일반 학부 졸업생들의 글을 받아 실었다.
이 글을 마치면서 이들이 보내준 교학상장의 인연에 대한 제목을 소개하고 작지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성근 교수님께┃정상균 이성근 교수님과의 추억┃윤세하 이성근 교수님과 함께 천마 비상의 꿈과 힘을┃이구석 교수님의 첫 수업┃하순옥 멘토와 멘티로서 거듭된 인연┃민인기 君師父一體를 생각하면서┃윤영란 이성근 교수님과 나의 대학생활┃김재선 대구은행 현상공모논문의 경험┃정연재 멋진 총각 교수 이성근┃고윤환 「지역계획론」 강의에 대한 소회┃김정일 교수님의 깐깐한 지도로 논문작성 자신감 얻어┃서원 영원한 우리 선생님┃이원열 내가 뵌 존경하며 자랑스러운 이성근 교수님┃임성재 도청 도시계획 위원 및 산업단지 심의 위원 재직시 만남┃권기섭 형님같고, 친구같던 교수님!┃변화원 답장┃손애보 교수님, 수고많으셨습니다┃신은숙 문경 오미자 사업의 제안┃윤남식 자네는 야구를 참 잘했잖아┃강철구 은사님의 은퇴 회상록 집필 요청 전화┃고수현 친구같은 주례 선생님┃김한수 4년동안 처음이자 마지막 받은 ‘S’학점┃신준호 기억력이 뛰어난 교수님┃신태경 민들레 홀씨┃윤칠석 중국 난징 WTA에서의 만남┃이점식 지방행정의 선구자, 지방자치 가이드┃이주환 교수님의 제자 사랑┃정덕수 학창시절 롤모델 ‘이성근 교수님’┃최상룡 교수님 가르침과 사랑에 감사드리며┃박승종 몰락한 지주의 아들┃서정선 이성근 교수님 퇴임 회고┃이재한 사랑의 교수님┃임성호 지역개발학 전공 수업을 개척(?)하신 이성근 교수님┃김문식 그립습니다, 그때가┃김철주 이성근 교수님과의 인연┃이경섭 이성근 교수님과의 추억 이야기┃김창환 허브 코헨의 협상론┃심성보 벚꽃 스타팅(Starting)┃서준우 교수님께 감사함을 전하며┃구창교 · 이명주 이성근 교수님 정년 축하문┃박문식 교수님께서 주신 교훈┃김현
이 글은 나의 인생 후반전의 지향가치인 귀전선린의 생활에서 자연스레 만난 따뜻하고 합리적이며, 그리고 선한 이웃들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귀전선린의 만남은 팔공산 전원생활에서 만난 따뜻한 두 이웃에 관한 글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바랬던 전원생활을 이런저런 이유로 하지 못하다가 정년 이 년을 앞두고 팔공산 자락 덕곡동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하여 삼 년을 보냈다. 이 기간에 따뜻한 두 이웃을 만나고 사귀었다. 한 사람은 이 동네의 토박이 김태돌 회장님(이하 존칭생략)이고 다른 한 사람은 대구에서 이사 온 재택근무를 하는 이동통신사업가 이우백 대표님(이하 존칭생략)이다.
우리 세 사람은 매일 아침 다섯 시 반에 만나 함께 산행을 하였고 가끔 동네 청소도 하였으며 내가 사는 집의 뒷모퉁이에 공동으로 닭장을 만들어 닭도 키워보았다. 또한 자유스런 식사모임과 차담시간도 자주 가졌다. 그야말로 성공을 이끄는 'DSC/Driven the success club'의 형님 동생으로 부르는 삼 형제이었다.
하나는 매일 이른 아침에 세 사람이 함께한 산행길의 소개이다. 아침 산행길에서 세 사람은 일상의 소소한 대화를 나누면서 걷는다. 어떨 때는 대화를 나누고 어떨 때는 말없이 걸었다. 대화 중에도 부부간 불평불만의 얘기도 나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게 기억난다. "새사람을 만나 새로 시작하여 하나부터 열까지 맞추어 나가는 수고와 지금의 사람과 안 맞지만 그냥 참고 참으며 힘들게 살아갈 수고와 비교하여 후자보다 전자가 쉬울 것 같으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라."고 말하였다. 그러면 두 사람 모두 전자보다 후자가 쉬울 거라고 말한다. 그런 사이에 우리는 산 중턱 목적지에 도착한다.
우리가 가는 산 중턱의 목적지에는 각자의 정해진 소나무와 바위가 있다. 이 결정에 두 사람은 내가 나이가 많다고 먼저 정하게 배려하였다. 각자의 소나무와 바위는 형님 먼저 동생 먼저 하면서 정해진 것이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각자의 정해진 소나무에서 등치기와 배치기를 십여 분 동안 한다. 그리고 각자의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같은 시간으로 명상을 하고 되돌아온다.
이른 아침에 우리는 꼬불꼬불한 산책 길을 걷다보면 좌우편의 밭에 이침 이슬을 머금은 먹음직한 채소와 과일을 눈요기하면서 걷는다. 봄날에는 싱싱한 채소와 봄 과일을 여름에는 여름 채소와 자두와 복승아를 가을에는 탐스러운 홍시를 보먼서 걷는다. 그럴 때면 나와 이 대표는 가끔 손에 잡히는 홍시를 따먹기도 한다. 그러면 김 회장은 "농민은 남의 밭에 자라는 채소와 과일에 절대로 손대지 않는 것이 관습"이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주의와 가르침을 준다. 농민에게는 농사가 가장 소중한 자산이고 우리가 무심결에 따먹는 홍시는 남의 물건을 훔치는 범죄행위가 되는 것이다.
둘은 세 사람이 의기투합으로 함께한 동네 청소이다. 팔공산지역은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점이지대이다. 점이지대는 도시와 농촌의 성격이 혼재된 한계지역으로도 부른다. 과거는 농촌지역이었으나 현재는 도시지역화가 진행되는 지역이다. 이로 인해 팔공산지역은 농촌적 삶과 도시적 삶이 함께하고 있다.
팔공산 점이지대의 주민구성은 크게 원주민과 도시이주민이다. 원주민의 대부분은 고령자이다. 아직도 일부 원주민은 오랜 관습에 따라 생활쓰레기, 농업쓰레기, 농사용 쓰레기를 하천에 내다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직도 동네하천을 쓰레기처분장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였다.
도시이주민은 전원생활 목적의 이주민과 상업목적의 이주민으로 구분된다. 전원생활 목적의 이주민은 고령의 은퇴자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일부는 주거정비 폐기물의 도로변 무단투기, 차량으로 이동해서 인근 타지역에 투기, 울타리내 지향적 생활의식으로 마을 바깥에 무관심한 행태를 보여 마을공동체 규범에 동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상업목적의 일부 이주민은 상업용 폐기물의 소각, 오수의 하천방기의 환경행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들 외에 도시방문객과 도시근로자, 그리고 부동산 디벨로퍼의 환경의식도 문제이다. 일부 도시방문객과 도시근로자는 일반쓰레기를 자연과 도로에 무단으로 내버리는 비양심적 행태를 보인다. 일부 부동산 디벨로퍼는 건축물 폐기물의 분리수거 미흡과 도로변 무단투기 등의 행태를 나타낸다.
우리 세 사람이 아침 산행길에서 동네를 지나치다 보면 여러 보기 흉한 쓰레기를 보게 된다.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새마을 정신으로 동네청소도 가끔 하곤 하였다. 70년대의 새마을 운동의 3대 정신이 근면 자조 협동이고 우리는 작지만 자조 협동을 실천한 셈이 된다.
셋은 닭을 키우면서 알게 된 놀라운 경험이다. 내가 거처하는 집에 세 사람이 공동으로 닭장을 만들고 경산에서 양계업을 하는 제자에게 다섯 마리의 닭을 얻어와 키운 일이다. 처음 한동안은 하루에 네댓 개씩 알을 낳았으나 어느날 갑자기 알이 없어 이상하게 생각하여 들여다보니 알을 낳자마자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을 보았다. 어릴 때 기억으로 시골 닭은 자기앍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닭을 처분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닭을 잡아 회식한 일이 생각난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이 나한테 한 마리는 두어 보자 하여 그렇게 하였다. 나는 아침 산책길에 아카시아와 뽕나무 잎을 따와서 닭에게 먹이로 주기도 하였다. 닭은 내가 주는 먹이를 잘 쪼아 먹었다. 어느날 문득 이 닭의 알이 생각나 닭장 안을 두리번거렸으나 알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 모이통의 확인과 물을 갈아주기 위해 닭장 안에 들어갔다가 궁금하여 바닥에 깔아놓은 왕겨를 뒤집어보니 거기에 몇 개의 알이 보였다. 나는 남겨둔 한 마리의 닭이 자기가 낳은 알을 왕겨 밑에 숨겨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마 전 닭들이 자기들이 낳은 알을 먹어치우기에 회식하기로 결정하고 김 회장과 내가 닭장에 들어가 김 회장이 닭을 잡을 때 내가 무심코 "사람이든 짐승이든 주인에게 충성하지 않으면 골로 보내야 한다."고 농담조로 말하였는데 남은 한 마리의 닭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머리가 나쁜 사람을 '닭대가리'라고 비하하여 부르는데 이 일을 보고 궁금증이 생겨 자료를 검색하여 보니 닭의 지능이 일곱살 정도 아이의 지능과 비슷하다는 자료를 보았다.
그 이후 나는 닭을 키우면서 특별히 경험한 두가지의 일이 생각난다. 나는 집 마당에 이십여 평의 텃밭을 장만하여 다양한 채소를 친환경 농법으로 키웠다.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잡초뽑기와 채소관리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렁이와 채소벌레와 지네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이들을 잡아 닭에게 가져가 먹게 하였다. 여기에서 닭은 두 가지 특별한 행동을 보인다. 벌레와 지렁이를 던져주면 단번에 부리로 먹어치운다. 그러나 지네를 던져주면 단번에 먹지않는다. 처음에는 부리로 몇번 쪼아 기절시킨다. 잠시 다른 먹이를 먹다 지네가 다시 깨어나면 다시 부리로 쪼아 기절시킨다. 이런 행동을 몇 차례 반복한 후에 먹어치운다. 나는 닭의 이런 행동을 보고 몹시 궁금하게 생각하였다. 내가 키우는 닭은 양계이다. 양계는 부화업자가 알을 부화하여 몇 주 키운 병아리를 양계업자가 구입하여 양계장에 넣어 모이를 주고 양계는 알만 낳아 한번도 벌레와 지렁이, 그리고 지네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두고 닭의 유전자가 이유라고 생각하였다. 닭의 유전인자가 바로 먹어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경험이 아닌 유전인자가 그렇게 행동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최근 사람도 유전인자를 다루는 사례는 많다. 사람의 성격과 체질, 질병과 범죄, 지능과 수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전인자를 중요한 요인으로 하여 다루고 있다.
넷은 텃밭농사와 공생의 배려이다. 특별히 덕곡동 토박이 김 회장의 공생의 배려에 대한 소개이다. 나는 집마당 한 쪽에 텃밭을 만들고 여러 종류의 채소를 키웠다. 나름대로 친환경으로 채소를 키우다보니 벌레가 채소를 먹어 직접 벌레를 잡곤 하였다. 그 가운데 특별히 기억나는것이 배추벌레이다. 배추벌레 가운데 일반 달팽이 처럼 생긴 자그마한 배추달팽이가 있다. 나는 배추 잎 구멍이 뻥뻥 뚫려 있는 것을 보고 아침 산책길에 김 회장께 왜 그런지 물어보았다. 김 회장은 "배추달팽이는 아침 해 뜰 녁 배추에서 기어나와 배추를 갉아먹고 해 뜨면 배추에 숨어 하루를 지내고 다음날 아침 다시 기어나와서 배추를 갉아먹으며 살아간다."고 하였다. 나는 아침 산책길에서 돌아오면 곧바로 배추달팽이를 젓가락으로 잡아 조그만 병에 넣었다가 이를 닭장에서 키우는 닭에게 모이로 주었다.
어느 날 이를 본 김 회장이 나에게 "배추달팽이도 먹고 사람도 먹어야 되지 않느냐면서 힘들게 벌레를 잡는 것을 그만두라."고 하였다. 김 회장의 말은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배려의 자세에서 나온 말로 받아들여졌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람과 자연이 공생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구체적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게 사실이다. 나는 이 일로 배려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름대로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보았다. 당시 내가 팔공산 텃밭에서 배추달팽이를 잡을 때 그 달팽이는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최근 제주 한림의 텃밭에서 일하다 지나가는 뱀을 보고 사용하던 삽으로 흙을 떠서 던졌더니 그 뱀이 고개를 돌려 잠시 나를 보고 다시 가던 길을 가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 팔공산 텃밭의 배추달팽이와 제주 한림 텃밭의 뱀은 공히 나를 보고 "인간이 왜 저래?"하였을성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인간은 자연의 다양한 배려 속에서 성장하고 존재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배려 개념이 부족하고 배려심에 인색하다.
이 글을 마치면서 팔공산 덕곡동 전원생활에서 만난 따뜻한 두 이웃을 다시 생각해 본다. 먼저 덕곡동 토박이 김 회장이다. 김 회장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은 "동생이 김 회장님"이고 그가 나에게 가장 즐겨 쓰는 말은 "언제 닭 한 마리 잡고 막걸리 한 잔 하자."이다. 그래서 나는 김 회장을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솔직한 이웃이라 부른다.
다음은 대구에서 이사 온 이 대표이다. 이 대표는 나에게 명절마다 빠짐없이 안부 전화를 한다. 나는 이를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표는 신의와 의리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최근 카톡으로 "지난달에 아들 내외가 저에게 손자를 안겨 주었습니다."라는 자신의 기쁨을 문자로 보내왔다. 이것 또한 나를 배려한 착한 마음씨다.
아울러 팔공산 전원생활의 네 가지 추억과 교훈을 소환해 본다.
1.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새사람을 만나 새로 시작하여 하나부터 열까지 맞추어 나가는 수고와 지금의 사람과 안 맞지만 그냥 참고 참으며 힘들게 살아갈 수고와 비교하여 후자보다 전자가 쉬울 것 같으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라"
"농민은 남의 밭에 자라는 채소와 과일에 절대로 손대지 않는 것이 관습이다."
2. 함께한 동네청소에서, "우리 국민들의 환경의식은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크다."
"우리는 작지만 새마을 정신의 '자조와 협동'을 실천한 셈이다."
3. 닭을 키우면서 알게 된 놀라운 경험에서 "닭도 사랑을 주면 되갚는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어떠해야 하는가?
"미물이든 사람이든 유전인자가 결정적이리만큼 중요하다." 나는 평생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르치는 일에 종사했다. 내가 평생 한 일이 부끄럽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든다.
4. 텃밭농사에서 김 회장은 "배추달팽이도 먹고 사람도 먹어야 되지 않느냐면서 힘들게 벌레를 잡는 것을 그만두라."고 하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름대로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팔공산 텃밭의 배추달팽이와 제주 한림 텃밭의 뱀은 공히 나를 보고 "인간이 왜 저래?"하였을성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귀전선린(歸田善隣)은 인간의 귀결은 신과 자연으로 돌아가고 평소 가정과 이웃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귀소본능이 있다. 나 또한 내 인생의 텃밭이었던 대학을 정년할 즈음 문득 가정에 충실하고 이웃을 두텁게 하며, 그리고 자연과 신에 가까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기에 나에게 운명 같은 두 가지 신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하나는 교육부 파견 순총학원 이사장의 소임을 맡게 되었다. 순총학원은 순복음 교단에서 설립한 학력인가 대학인 순복음총회신학교와 순복음대학원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법인이다. 그간 나는 학내외 여러 직책을 맡았지만 종교단체 직책은 처음이었다. 나는 삼 년 동안 이 직책을 맡으면서 내 인생의 말미에 신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어떤 보이지 않는 운명 같은 계시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하나님을 찾고 간구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나는 정년을 앞두고 정말 오랜만에 안식년을 가졌다. 이 기간 동안에 정년 이후의 내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 인생 후반전의 지향가치를 귀전선린으로 정하였다. 이는 소중한 가정과 따뜻한 이웃을 두텁게 하고 자연과 친하며 신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나의 다짐이다.
여기에서 나 자신과 가정중심의 지향은 건강제일과 가정우선, 그리고 내공충실로 정하였다. 이 가운데 제1은 건강제일이다. 어릴 때는 의지 정도가 성공의 결정요인이나 나이 들어서는 건강 여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건강이 따르지 못하면 불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건강은 공유가 불가능하다. 제2는 가정우선이다. 젊은 시절에는 가정을 그냥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가정의 가치와 소중함을 몰랐다. 자녀출산과 양육과정에 부부의 의논과 역할분담이 중요함을 이제사 깨닫게 되었다. 서양속담에 "세상에서 가정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가 있다. 제3은 내공충실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훈육의 습관은 대단히 중요한 성공요인이다. 정년 이후의 내공충실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느슨한 마음으로 편하게 하는 것이다. 정년 이후 지금의 나는 세 기준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은 나의 인생 후반전의 지향가치인 귀전선린의 생활에서 자연스레 만난 따뜻하고 합리적이며, 그리고 선한 이웃들에 대한 내용의 일부이다. 이번 글은 '제주 서귀포에서 만난 배려의 마음씨를 지닌 선한 이웃'에 이어 '대구집에 이웃한 합리적인 교수들과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소소익선(小小益善)의 만남'에 대한 글이다. 이 글의 제목에 굳이 합리적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은 나를 포함한 우리 교수직분의 종사자들은 특별히 일상에서 합리적이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교수 정년 이후의 환경변화에 대한 정보공유와 지속적인 만남의 룰 설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대구집에 이웃한 두 분의 합리적 교수 가운데 한 분은 금오공대 이 교수님(이하 존칭 생략)이고 다른 한 분은 영남대 권 교수님(이하 존칭 생략)이다. 우리 세 사람은 세 가지 공통점을 가졌다. 하나는 평생 교수직을 천직으로 삼아 일했고, 둘은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으며, 셋은 같은 헬쓰장에서 운동을 하였다. 지금 두 사람은 계속 그 곳에서 살고 있고 나만 이사하였으나 여전히 같은 헬쓰장에서 운동하고 있다. 우리 세 사람 가운데 내가 먼저 정년을 가졌고 두 사람은 이삼 년 늦게 정년을 맞았다. 따라서 우리 세 사람은 정년 이전에는 자연스레 만나기는 했으나 서로 다른 일정으로 정례적인 만남은 없었다. 그러나 정년 이후에는 일상의 시간 스케듈이 비슷하여 만나는 빈도가 많아지고 차와 식사를 함께 하면서 정례적인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먼저 내가 교수 정년 이후 맞이한 환경변화와 이에 적응한 정보공유의 소개이다.
나보다 정년을 늦게 맞은 두 교수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나에게 요즘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고 물었다. 먼저 나는 정년 이후 나의 일상의 변화와 적응에 대해 얘기했다. 정년과 함께 나에게 가장 현실로 부닥친 것이 연구실과 조교, 그리고 쾌적한 캠퍼스의 환경이 없어진 것이었다. 이들 세 가지는 우리 교수에게는 유뮤형의 프리미엄이자 크나큰 편익이었다. 정년과 함께 이들 프리미엄과 편익이 없어지니 크게 낭패를 보게 된 것이었다. 나는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정년 이후의 성공적인 삶이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두 분의 교수에게 내가 실제로 적응하고 있는 방안에 대해 설명하였다. 연구실은 집 근처에 작은 사무실을 임대하여 마련하였다. 조교의 도움을 대신하는 방안은 휴대폰으로 책쓰기ㆍ 글쓰기 배움에 도전하고 있다. 캠퍼스의 쾌적한 환경의 대체는 일주일에 하루를 '가족의 날'로 정하고 인근의 산과 공원을 찾아 걷기를 하고 있다. 코로나19에는 영남대 캠퍼스가 새삼 생각났다. 신입생 면접에서 영남대를 지원한 동기를 물었을 때 "캠퍼스가 좋아서"라고 대답하는 학생도 종종 있었다. 나는 대학의 소중한 여러 가치를 가정처럼 그냥 주어진 것으로 무의식 속에서 근무하였다. 정년에 이른 지금 생각해 보니 대학의 하나 하나가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고 하였다.
다음은 우리 세 사람이 지속적인 만남을 위해서 합의하여 만든 합리적 룰에 대한 소개이다. 우리 세 사람의 만남은 월 1회 산행과 편한 시간에 만나 차와 식사를 하는 것이었다. 만남의 룰은 기회균등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는 우리 세 사람이 공히 연금생활자이고 생활수준이 비슷하며 나이도 비슷하였기 때문이다. 월 1회 산행의 경우 일자는 서로 합의하여 정하고 장소와 차량과 간식과 식사 등 일체는 돌아가면서 순번제로 하였다. 부정기적으로 하는 차와 식사대는 번갈아가면서 부담하기로 하였다. 다만 본인 차례를 기억못해 한 번 더 내는 경우는 흔쾌히 받아주기로 하였다. 여기에서 예외로 인정하는 특별한 룰이 있다. 이는 우리 세 사람 간의 선약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우선하는 룰이다. 무엇보다 우리 세 사람은 개인차는 다소 있겠지만 그간의 교수직분에서 가정에 소홀하였기 때문이다.
이 모임이 몇 차례 진행되면서 동년배의 한 사람의 이웃이 참여하여 네 사람으로 만남을 가졌다. 새로이 참여한 사람은 영남대 행대원을 졸업한 허 회장님(이하 존칭 생략)이다. 그러나 이 모임은 내가 서귀포로 거처를 옮김에 따라 모임이 지속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대구집에 이웃한 합리적 교수들과의 만남은 내가 한 달에 한 번꼴로 대구가는 길에 제일로 생각하는 일이고, 우리는 번팅으로 차담을 나누는 기회를 갖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만나면 정해진 의제는 없어도 서로 얘기가 통하고 편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나는 이 만남이 나의 정년 이후의 인생길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소소익선(小小益善)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논어"의 '태백편'에 "선비는 도량이 넓고 의지가 굳지 않으면 안 되니, 임무는 막중하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仁)의 실현을 자기 임무로 삼았으니, 이 또한 막중하지 않은가? 죽은 뒤에야 그만둘 것이니, 이 또한 멀지 않은가?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나무위키
또한 증자는 "선비는 가히 넓고 굳세지 아니하지 못할지니, 임무는 무겁고 길은 머니라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하였다./ 나무위키
임중도원은 교직자에게 두 가지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 하나는 임중(任重)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도원(道遠)의 길이다. 임중의 길은 교직자에게 요구되는 독특한 자질을 키우고 투철한 사명감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도원의 길은 교직자에게 명확한 의지와 확고한 신념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교직자는 어떻게 임중도원의 길을 걸을 것인가? 교직자는 스스로 배움과 훈육에 힘써 자질 향상과 사명감으로 맡은바 교직에 성실한 자세로 책임을 다하는 근학무실(勤學務實)의 길을 가는 것이다.
한편 임중도원의 유사성어로 '일모도원(日暮途遠)'이 있다. 일모도원은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로 맡겨진 사명이 막중한데 이를 수행할 길이 멀다는 뜻이다. 즉, 할 일은 남았는데 날이 저물어 이루어내지 못함을 비유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모도원과 같은 상황에 놓일 경우 대체로 편법과 정법의 두 가지 접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전자는 '도행역시(倒行逆施)'라 하고, 후자는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 한다. 전자인 도행역시(倒行逆施)는 일모도원(日暮途遠)과 함께 사용된다. '일모도원 도행역시'는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이 멀어 이치에 어긋나지만 일을 거꾸로 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사마천의 "사기(史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에 나온다.
후자인 미생지신(尾生之信)은 우직하여 융통성이 없이 약속만을 굳게 지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중국 춘추 시대에 미생(尾生)이라는 자가 다리 밑에서 만나자고 한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홍수에도 피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익사하였다는 "사기"의 '소진전(蘇秦傳)'에서 유래한다.
이와 같은 일모도원과 같은 상황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고 교육계에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 경우 교직자는 교직의 특성상 일반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 그러면 교직자는 어떤 접근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필자의 생각은 도행역시와 미생지신의 두 가지 접근방법이 모두 선택가능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필자에게 하나를 선택하라면 미생지신을 선택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교직자에게 차별적으로 미생지신과 더불어 '우직지신(愚直之信)'의 길을 기대한다. 우직지신은 바로 보고 바르게 생각하며, 그리고 정직하고 꾸준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비록 어려운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성실하게 나아가는 태도를 가리킨다.
이 글을 마치면서 필자는 우리 교직자들이 임중도원(任重道遠)의 근학무실(勤學務實)과 우직지신(愚直之信)의 길로 걸어가기를 바란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개인에게 있어 타인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하다. 인간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기도 한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한 뜻으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란 말도 인간성장에는 환경과 사람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나의 그간의 삶을 되돌아보면, 나는 인덕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았다는 말이다. 물론 삶에 나쁜 인연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가능하면 좋은 인연을 만들고 이어가기를 지향하였다.
인간의 일생은 성장과 발전이라는 변화의 연속이다. 나 또한 그간의 삶을 되돌아보면 수 많은 변화의 연속과정이었다. 나는 그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많은 분들의 가르침과 도움을 받았다. 이를 높은 가르침과 바른 지혜를 뜻하는 '고교계명(高敎啓明)’으로 이름 지었다.
최근 나는 지금의 나를 이끈 가르침과 은인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먼저 부모님의 가르침이다. 아버지는 관용을, 어머님은 배려의 마음을 가르쳐주셨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크게 미치지 못하였고 오히려 관용과 배려의 마음이 부족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는 여러 교육과정에서 만난 여러 선생님들의 가르침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박사 교수님들은 도시 및 지역계획학이라는 전공분야의 지식과 학문하는 자세를 가르쳐 주셨다. 특히 지도교수이신 권태준 교수님의 가르침은 교육과 연구, 그리고 교수직 즉, 사도의 본이 되었다. 또한 김안제 교수님과 최상철 교수님은 후생치용과 따뜻함을, 김형국 교수님과 이정전 교수님에게서 글쓰기·책쓰기의 자세를 배웠다. 영남대 행정학과의 김종섭 교수님과 최재찬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교수님들은 행정학이라는 전공지식을, 영산농고의 최만갑 선생님은 역지사지의 포용심을 가르쳐 주셨다.
셋째는 초등학교의 윤상휴 교장 선생님은 내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을 터주신 분이다. 평소 근검절약을 실천하신 분으로 나 또한 일생 근검절약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넷째는 나의 아버지는 공직에 계시다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에 정미소를 사셨다. 내가 중2 학생일 때 우리 집 정미소에서 오랫동안 일한 안씨 아저씨가 "나보고 보통 애와 달라"라고 무심코 한 말 한마디를 우연하게 듣고 일생 나의 귓전에 울림으로 남았다. 그러나 나는 긍정의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그렇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진작에야 알았지만 그렇게 실천하지는 못했다.
다섯째는 내가 대학생일 때 경북대 영문학과 김성혁 교수님의 자택 거실에서 방학동안 저녁시간에 다이제스트 오픈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나는 초임 교수 시절에 영문학과 맥타카트 교수님으로부터 몇 사람과 함께 영어회화를 공부하였다. 이 때 인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타인에게 나누는 마음과 이를 평생 실천하는 삶을 보면서 나도 닮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2021년에 나온「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의 '고교계명(高敎啓明)'에서는 나에게 큰 가르침과 바른 삶의 지혜를 주신 분들의 글을 실었다. 여기서는 대학생활에서 가르침을 받은 몇 분의 교수님, 정책자문 활동에서 만난 경상북도 김관용 지사님, 그리고 신앙생활에서 만난 백도현 목사님의 글을 받아 실었다.
이 글을 마치면서 고교계명에 글을 보내주신 분들의 제목을 소개한다.
우리들 삶의 同伴者┃장태옥 성실과 근면, 그리고 정직한 사람┃이문조 창의적이고 기획력이 강한 이성근 교수┃최용호 그와 나는 영원한 멘토와 멘티이자 멘티와 멘토┃김관용 하나님의 은혜┃백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