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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근 교수와의 인연을 그리며"
 

김원배 前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1977년 필자가 환경대학원을 마치고 당시 민관식 선생님이 운영하시던 「아세아정책연구원」에 근무하던 때다. 첫 인상은 역시 시골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 이 교수는 꾸밈없는 소박한 인간성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권태준 교수님께서 이 교수를 “인간 이성근”으로 부르시지 않았나 싶다. 어찌 보면 세상 인심이 점점 각박해지고 인격을 갖춘 사람이 드물어진 요즘, 인간답다는 것은 최소한의 예와 도를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본다.

「아세아정책연구원」 시절 월급날이 되면, 이 교수 및 홍갑선 박사와 더불어 젊은 혈기에 같이 술도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가끔은 당시 과제 책임자이셨고, 홍 박사나 이 교수, 그리고 필자의 연을 맺어주신 권태준 교수님 댁에까지 가서 밤늦도록 사모님께 폐를 끼친 기억은 아직도 뚜렷하다.

이후 이교수와 필자는 서로 다른 길을 갔지만, 마음 속에 끈은 여전히 이어져 필자가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근무 시 이 교수 내외의 방문을 맞아 함께 하와이에서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더 가깝게는 필자가 「국토연구원」에 근무할 당시 부부 동반으로 청도 운문사에 다녀 온 기억도 새롭다. 특히 이 교수의 권 교수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여, 권 교수님과 필자를 조금은 억지스럽게 경주 세미나에 초청하고 멋진 시간을 베푼 바 있다. 세미나 주제는 아마도 '황룡사 복원'과 관련한 것이 아닌가 싶은 데, 뒷풀이도 자못 기억에 남는다. 권 교수님, 이 교수, 그리고 필자 세 사람이 노래방에서 지낸 시간은 황룡사 복원보다는 ‘신라의 달밤’에 더 어울린 것 같다. 물론 그 때나 지금이나 불국사의 종은 울리지만, 이 교수나 필자나 듣는 가슴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다름을 다름 아니게 한결같이 받아들이고 계신 권태준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가르침은 아마도 이 교수나 필자 모두에게 남은 인생의 등불이 되리라 믿는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속에 같이 있음으로 해서, 해 기운 저녁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떠올린다. 학교를 떠난 이 교수에게 도연명(陶淵明)의 시 한 구절 보내고자 한다.

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가
멀리 남산을 보게 되었네
산 기운은 저물녘이 되어 아름다운데
나는 새들이 더불어 돌아간다

 

필자 소개

김원배 박사는 부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공학사)와 환경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 그리고 미국 하바드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위스콘신대학교에서 도시및지역계획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하와이대학교 동서문화센터 교수와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정년하였다. 정년 이후 중앙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다 정년퇴임과 함께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하고 있다.



*****
"그 때, 아정연 시대를 돌아보다"
 

박서호 한남대 도시 · 부동산학부 명예교수

 

“인간 이성근” 이 별명을 누가 붙였을까? 선생님께서
“인간 이성근은 말이야"하고 이렇게 소개하셨다.
우리는 ‘아정연’에서 만났다. ‘아정연’은 재단법인 중산육영회 부설 「아세아정책연구원」이다. 내가 아정연에 1978년 8월 8일에 들어가서 1979년 9월에 나왔다.

나의 아정연 시대. 나는 이 아정연 시대를 그리워한다. 아정연의 3층에 올라가면 복도 가운데 기둥에 이런 액자가 걸려있었다. “나는 5.16 때 무엇을 했나? 그 밑에는 고시를 공부한 시험과목이 적혀있었다.”  삶을 새롭게 보게 하는 글귀로 멋있게 여겼다.

나는 해군 중위로 제대하고 선생님을 찾아뵙고 몸을 맡길 때, 선생님께서 이끄시는 연구사업의 연구원보로 삼아주셨다. 이 자리는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난 홍갑선, 이양원 님의 뒤를 이은 자리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니는 인간 이성근과 한표환, 건국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니는 박종필님들은 이미 연구조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이성근씨’, ‘박서호씨’ 하고 지냈다.

이 연구사업은 ‘서울특별시의 주택 및 쓰레기 처리문제와 그 해결방안에 관한 연구’이었다.
이 연구사업에서 나와 연구조원들은 두 가지 일을 했다. 하나는 주거실태조사와 쓰레기 배출량 및 성분조사이다. 주거실태조사는 1978년 11월 1일부터 10일까지 50여 문항의 설문지를 가지고 가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하였다. 네 사람이 16개 지역을 나누어 아침에 나갔다가 낮 늦게 돌아왔다. 조사된 가구 수는 모두 1,268가구로 일반단독주택지역 821가구, 아파트지역 349가구, 불량주택지역 98가구이다. 이 날 조사하고 돌아온 늦은 낮에는 어울려, 저녁을 먹고, 2차로 술을 마시면서 하루의 무용담을 나누곤 하였다.

쓰레기 배출량 및 성분조사는 1978년 12월 8일과 9일에 8개 지역에서 아침에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소차량을 타고 쓰레기 수거 가구를 확인하고, 쓰레기 처분장인 구의동과 난지도에 가서 쓰레기 분리하는 넝마주이의 도움으로 성분별로 분류한 다음 그것의 무게를 쟀다. 난지도에서 쓰레기를 모아 두었는데 쓰레기를 고르는 포클레인이 와서 우리가 모아둔 것을 모르고 그냥 헤집으려고 하자 우리는 쓰레기 더미 위에 벌렁 누우면서 포클레인을 막았던 일이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날 우리는 쓰레기 성분별로 분리하고 무게를 재준 넝마주이들과 어울려 난지도 쓰레기 장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일주일에 한 차례씩은 선생님께서 우리를 데리고 청계천 철판 등심구이 집에서 등심과 손수 가져오신 오비(OB)에서 나온 마주앙 포도주로 우리를 고급스럽게 채워주셨다. 이 때 선생님께서 당신의 풍부한 양(洋)의 동서(東西), 시(時)의 고금(古 今)의 이야기를 하시기도 하시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스개와 함께 호탈하게 웃어가시면서 우리를 북돋우셨다.

선생님을 보내드리고 나면 2차는 우리끼리 간다. 선생님이 계실 때는 인간 이성근은 조용하고, 주로 내가 선생님의 맞장구를 친다. 그러다가 2차에 가면 이때 인간 이성근의 판이 벌어지면서 그의 아름다운 본색이 들어난다. 내가 말한 그의 본색이란 세 가지나 된다.

하나는 말투이다.
“인간 이성근에게는 영락없는 선생님의 말투가 나온다”는 것이다. 인간 이성근이가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과 얼마나 가깝게 여겼으면 그랬을까? 그가 대학원 생활을 쭉 이야기할 때면 선생님의 말투가 튀어나온다. 듣기 좋다. 대학원 공부이야기를 할 때는 선생님의 말투뿐 아니라 따지는 솜씨도 선생님의 안목으로 날카롭다. “어허 영락없는 선생님의 ‘애제자구나”라고 생각하곤 했다.

다른 하나는 입담이다.
그의 입에서 술자리 중간쯤 가면 취기가 오르니 더 젊은 날의 씩씩한 이야기 무용담이 나온다. 인생역전 같은 그리운 이야기들이 경상도 사투리로 술술 풀린다. 우리는 웃고 웃다가 어지간하면 자리를 뜬다.

하나 더 나온다. 막판에 인간 이성근의 ‘인간’이 나온다. 인간 이성근은 우리가 헤어질 때 나의 손을 잡고 “박형! 잘 가시오. 내일 봅시다!!!” 한다. 이때 그의 손은 따뜻하다. 겨울밤, 어두운 밤, 술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고 헤어질 때 그의 따뜻한 손으로 인간 이성근의 따스함이 나온다. 이렇게 1978년 가을, 그리고 겨울을 보냈다.
이래서 인간 이성근이 생각 날 때면 심호택 시인 쓴 ‘봉구’라는 시가 생각이 난다.

봉구

심호택

자네를 생각하면  
마음의 형제라는 게 있거니 싶다

중략

우리 착한 봉구!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봐라, 저 애는 성내는 법이 없느니라

부디 본받거라

그 쓸쓸하던 산야
찬바람 속에 우리들의 가오리연이 치솟던 생애의 절정이던
그 때를

(출처 : 심호택, 1992, 『하늘밥도둑』, 창비시선 109 ; 142-143쪽.)


‘봉구’라는 시의 ‘봉구’와 ‘인간 이성근’이가 닮은 것이 있어서라기보다 세 연의 글 때문이다.

“자네를 생각하면”
“우리 착한 봉구!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찬바람 속에 우리들의 가오리연이 치솟던 생애의 절정이던 그 때를“

위 시연에 이렇게 끼워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를 생각하면”
“인간 이성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찬바람 속에 우리들의 서울시 주택가와 구의동,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과 신당동, 청계천 돌던 생애의 절정이던 그 때를” 


필자 소개
박서호 교수는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지질학과(이학사)ㆍ도시계획학  석사ㆍ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한남대학교 도시 · 부동산학부 에서 평생 교수로 재직하였고, 지금은 명예교수이다. 정년후 목사로 목회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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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관계의 의미와 실천에 대한 논의"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인간이라는 단어는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을 조합하여 만들어졌다. 이는 곧 사람이 홀로 존재할 수 없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변과의 거리를 좁히고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관계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거나 때로는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 Survey)에서도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다섯 가지 요소 중 하나로 ‘관계’가 선정될 만큼, 관계는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글에서는 인간이 맺는 관계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신과의 관계, 둘째, 사람과의 관계, 셋째, 자연과의 관계이다. 각각의 관계가 인간의 삶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이를 어떻게 형성하고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첫째, 신과의 관계는 겸손의 가치이다.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다양한 종교를 신봉해 왔다. 어떤 이는 종교를 가지지 않기도 하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신과의 관계는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필자는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본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인간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존재이다. 따라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경외하는 마음과 겸손한 자세를 가진다. 겸손은 신앙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의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한 덕목이다. 교만은 관계를 망가뜨리는 요소이며,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겸손한 태도는 우리의 일상을 더욱 조화롭게 만든다. 신앙을 통해 겸손을 배우고 실천할 때, 우리의 인간관계 또한 긍정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둘째, 사람과의 관계는 존중과 배려의 실천이다.
인간관계는 가족, 친구, 이웃, 직장 동료, 그리고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까지 매우 다양하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먼저, 자신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절제와 조절이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갈등을 일으키기 쉽다. 내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건강한 인간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존중과 배려가 필수적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진정한 관계를 맺기 어렵고, 배려심이 부족하면 관계는 일방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사회성’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단순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을 지키고 공정과 상식을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는 결코 건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없으며, 조절과 절제하는 태도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필자 역시 때때로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해 무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관계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곧 바른 관계의 비결이다.

셋째, 자연과의 관계는 공존과 공생의 실천이다.
우리는 집, 지역사회, 국가, 나아가 지구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 각종 규범과 법률이 우리의 사회를 지탱하듯,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질서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자연과의 관계는 더욱 중요해졌다.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는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존과 공생의 가치가 필수적이다. 필자는 과거 대구경북연구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지구를 살리는 65+ 실천방법(2013)"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실천하려고  하였다. 이는 단순한 환경관리 활동이 아니라, 자연과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었다.

환경관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실천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사는 터전을 미래 세대에게 건강한 모습으로 물려주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


글을 마치며,

삶에서 관계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인간에게 관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신과의 관계에서는 겸손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존중과 배려가 필수적이며,
자신과의 관계에서는 조절과 절제의 태도가 필요하다.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공존과 공생을 실천해야 한다.

필자는 현재 고은층(고령층과 은퇴자)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시기에는 신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지며,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특히 부부 관계, 가족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가 핵심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오기도 하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관계는 언제든 회복할 수 있으며,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 고은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작은 실천이라도 꾸준히 이어나간다면, 후손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이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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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게 된 배경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에는 세 분의 글이 깊은 영향을 미쳤다.

첫째, 백도현 목사님의 글이다.
백 목사님은 “사람은 책이나 말로 배우기보다 인간관계를 통해 진정한 지혜를 배운다.”라고 말씀하셨다. 나 또한 교수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관계 속에서 배우고 성장해 왔다. 백 목사님과의 교류를 통해 신앙과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었으며, 이 글을 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둘째, 김원배 선배의 글이다.
김 선배는 과거를 회상하며, 필자가 “꾸밈없는 소박한 인간성을 갖춘 사람”이었다고 언급하였다. 김 선배는 권태준 교수님께서 나를 “인간 이성근”이라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오늘날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인간다운 인격을 갖춘 사람이 드물어지는 현실에서, ‘인간답다’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를 아는 것이라는 김 선배의 말이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이 글을 통해, 관계의 본질과 인간다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고자 했다.

셋째, 박서호 선배의 글이다.
박 선배는 나와의 마지막 만남을 회고하며, 헤어질 때마다 내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 “박 형! 잘 가시오. 내일 봅시다!”라고 인사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의 따뜻한 손길에서 ‘인간 이성근’의 온정을 느꼈다고 하였다. 이 말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인간관계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게 했다.

이러한 세 분의 말씀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관계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되었다. 관계는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우리 삶의 근본을 이루는 요소이며, 그 속에서 배움과 성장, 그리고 따뜻한 나눔이 이루어진다. 이 글은 바로 그러한 관계의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성찰을 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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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새로운 출발: 이성근 교수님의 은퇴를 축하하며"

백도현 굳윌교회 담임목사



신영(信咏) 이성근 교수님께서 영남대학교에서 38년간 교수로 헌신하시고, 이제 명예로운 은퇴를 맞이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교수님께서 뿌린 학문의 씨앗들이 한국 각지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흐뭇한 마음이 드실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임을 믿습니다. 오늘 이 순간이 있기까지 교수님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은퇴란 단순히 직임에서 물러나 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마치 자동차의 타이어를 교체하고 더 힘차게 달리는 ‘Retire’라는 의미처럼, 교수님께서는 이제 더욱 자유롭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교수님께서는 칼럼과 강연, 그리고 집필을 통해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하시며, 혼돈 속에서 질서를 정립하는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사역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계신 교수님을 제 인생에서 만나 함께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음은 저에게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더욱 감사드립니다.

은퇴 후의 삶은 단순한 직임의 연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더욱 충만하게 누릴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는 학문과 사역에 헌신하시느라 개인적, 가정적 삶을 많이 희생하셨습니다. 이제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시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값지게 여기며, 삶의 참된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교수님과 함께 읽고 싶은 시가 있습니다.

"지금 하십시오"

지금 하십시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낄지도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곁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거든 지금 웃어 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는 피고 마음이 설렐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작자 미상, 최효섭 목사 설교집에서 옮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맺어진 귀한 인연

벌써 교수님과 가족을 알게 된 지 35년이 되었군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며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85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계시던 시절, 교수님과 가족이 함께 샴페인 어바나 한인장로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한 가족이 된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변함없는 교제를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구 굳윌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며 신앙의 길을 동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순간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믿습니다.

사람은 책이나 말로 배우기보다 인간관계를 통해 진정한 지혜를 배운다고 합니다. 저는 교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귀한 배움을 얻었습니다.

첫째, 준비성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예배 시간에 성경 봉독이나 기도를 맡으시면 미리 정성스럽게 준비하시고, 여러 번 읽어 뜻을 정확히 전달하시려는 노력을 기울이십니다. 저는 이러한 모습에서 교수님께서 강의와 연구도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하셨을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관용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언제나 미소로 사람을 대하시고, 남을 좋게 평가하고, 이해하며 용서하는 넓은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예배 후 지역사회 문제에 대한 강연을 요청드렸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강연이 진행되려던 순간 한 교인이 이를 반대하며 방해하였고, 저는 매우 난처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습니다"라며 유연하게 받아들이셨고, 오히려 그 교인에게 다가가 미소로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관용이야말로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셋째, 메모의 습관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언제나 필기도구를 소지하시고, 중요한 내용을 꼼꼼히 기록하시는 습관을 가지고 계십니다. 특히 설교 시간에도 메모하시고, 이후 조용한 시간에 내용을 다시 확인하며 깊이 묵상하시는 모습을 보며, 교수님의 학문적 깊이가 이러한 철저한 기록과 성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사역을 위한 기도

현재 교수님께서는 순복음교회 신학교인 순총학원의 이사장직을 맡고 계십니다. 순복음교회가 신학교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교육부가 교수님을 관선 이사장으로 임명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교수님께서 이 역할을 잘 감당하셔서 순복음교회가 평화를 이루고, 신학교가 바른 길로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사역은 단순히 한 교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전체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님, 이성근 교수님께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이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성근 교수님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앞으로도 같은 순례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리타이어 후에도 더욱 힘차게 사역하시기를 바라며, 인생의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름답게 달려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동역자로서, 사랑과 존경을 담아


필자 소개
백도현 목사님은 경상북도 경주 출신으로, 계명대학교 철학과(문학사)를 졸업하셨습니다. 이후 제일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시다가, 신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아이오와주의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여 학위를 받은 후, 시카고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하셨으며, 미국 여러 대학 도시에서 한인교회 목회자로 헌신하셨습니다.

마이애미 한인교회를 마지막으로 미국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은퇴하신 후, 귀국하여 경상북도 예천군에 위치한 농촌교회에서 다시 목회 활동을 이어가셨습니다. 이후 대구로 나오셔서 대구굿윌선교회를 설립하여 섬기시다가, 병환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백도현 목사님의 믿음으로 걸어온 길과 사랑으로 남긴 흔적을 기리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한 사람의 삶이 그가 남긴 사랑과 헌신의 깊이로 기억된다면, 백 목사님은 참으로 빛나는 흔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백 목사님은 평생을 신앙과 사랑으로 살아오신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셨습니다.
이 글은 백 목사님이 믿음으로 걸어온 길과 사랑으로 남긴 흔적을 기리고자 쓴  글입니다.


하나는 오직 믿음으로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29)


군대에서도, 사역에서도, 모든 일에 하나님을 가장 먼저 찾으셨던 목사님이셨습니다.
사격장에서조차 "하나님께서 맞혀주실 줄 믿습니다"라며 기도하셨던 그분의 모습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참된 신앙인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둘은 변함없는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은 섬김으로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브리서 13:8)


백 목사님은 겉으로 꾸미지 않고,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한결같이 사역하셨습니다. 가식 없는 목회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신뢰를 주셨습니다.

셋은 포용하는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성도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겸손함으로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리와 화평의 판단을 베풀고" (스가랴 8:16)


성도들의 말을 수용하고, 기도의 인도를 집사들에게도 맡기시고,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겸허히 인정하는 포용적 참여적 목회를 실천하셨습니다. 한 번은 목사님께 나의 기도평을 물으니, "좋은 기도라며 목사가 하는 기도평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넷은 굿윌(Good Will)의 정신을 지닌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선한 뜻과 의지를 따라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9)

평생 선한 뜻과 의지로 목회하시고, 자신의 삶 또한 하나님께 드리셨던 분이셨습니다. 오직 선한 길을 걸으며, 성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남기셨습니다.

다섯은 동심을 간직한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순수한 믿음과 진실한 삶으로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태복음 18:4)


얼굴과 말과 행동은 진실되고 순수했습니다. 세상의 때에 물들지 않고, 어린아이 같은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목사님이셨습니다.

여섯은 배려를 실천한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성도를 먼저 생각한 사랑의 실천으로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4)


자동차 주차 하나에도 배려가 묻어나고, 성도들이 더 편안하게 예배드릴 수 있도록 작은 것까지도 신경 쓰셨던 섬김의 종이셨습니다.

일곱은 민주적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의 교회를 세우는 목회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는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데살로니가후서 1:3)

목회자의 권위보다 공동체의 조화를 중시하며, 성도와 집사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의 기도도 소중히 여기셨던 목사님이셨습니다.

여덟은 평생을 하나님께 드린 목회자로서의 길과 흔적입니다.
백 목사님은 쉼 없이 사역하다 하나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디모데후서 4:7)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역을 멈추지 않으셨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충성되게 달려가신 목사님이셨습니다.


백 목사님은 믿음과 사랑, 섬김과 겸손으로 한평생을 하나님께 바친 참된 목회자이셨습니다.

이제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며, 남겨진 우리에게 목사님의 발자취를 따를 귀한 본을 남기셨습니다.


용어 설명
1) 순전과 순진의 차이
순전은 온전하고 섞이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말이고, 순진은 마음이 꾸밈이 없고 순박한 성격을 뜻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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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이고 기획력이 강한 이성근 교수"

최용호 경북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이성근 교수는 한국의 지역발전과 지역경제 분야에서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이다.
나는 1980년대부터 30년 이상 그와 함께 연구하며 협력할 기회를 가졌다.

우리는 함께 「21세기 대구·경북의 지역발전」(1991), 「21세기 대구발전을 위한 전략적 과제」(1993) 등의 공동 연구를 수행했다.
또한 대구시와 경북도의 발전계획, 시·군의 장기 발전계획 수립에도 여러 차례 참여하며 지역발전에 기여했다. 전공 분야가 비슷했지만 학교가 달랐기에 협업할 기회가 더욱 많았다. 각종 위원회, 토론회, 세미나, 심포지엄, 포럼 등에서 우리는 자주 함께 발표하거나 토론에 나섰다. 대구뿐만 아니라 서울, 포항, 구미 등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열린 행사에도 함께 참여했으며, 자료 수집을 위해 일본 출장을 다녀온 적도 있었다. 당시 대구경북연구원의 이춘근 박사가 동행했고, 관서 지방에서는 이 교수의 제자인 윤칠석 박사(현 경북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장)가 안내를 맡아주어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 교수는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난 학자다.
영남대학교 지역개발학과 교수로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고, 그의 제자들은 대구·경북 지역의 주요 기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교수의 지역개발 이론과 비전은 실제 행정에 반영되었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이 다시 그의 연구로 피드백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창의적 기획력과 철저한 실행력이다.
어떤 과제가 주어지면 먼저 목표를 명확히 설정한 뒤, 관련된 제반 여건을 면밀히 분석하고 실현 가능한 방법과 단계를 구체화한다.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추진 전략을 수립하며, 창의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의 이러한 능력은 대구경북연구원 원장 재임 시 더욱 빛을 발했다. 당시 그는 연구원의 업무를 혁신하고,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는 데 집중했다. 또한 안민포럼의 상임대표로서 정책의 전문성, 균형성, 네트워크, 혁신성을 강조하며 국가와 지역의 정책 혁신을 선도했다.

그는 중앙정부의 지역개발 정책 수립과 집행, 평가 과정에도 깊이 관여한 학자다.
대통령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 (사)한국지역개발학회 회장, (사)대한지방자치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도 지방분권과 지역의 균형발전을 핵심 가치로 삼았다. 그는 항상 지역의 내발적 발전을 강조하며, 중앙의 논리가 아닌 지역의 논리에 충실한 정책을 지지해왔다.

이 교수가 어느새 정년을 맞았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여전히 활발한 연구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년 후에도 그의 연구가 더욱 왕성해지고,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지난 30여 년간 그와 함께 연구하고 협력했던 시간들은 매우 의미 있었으며, 진정 행복한 경험이었다.
그의 헌신과 열정이 앞으로도 지역발전의 새로운 길을 여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필자 소개
최용호 교수님은 경북 의성 출신으로, 경북사대부고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사를, 경북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와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셨다. 이후 언론사 논설위원과 대구은행(현 iM뱅크) 조사부를 거쳐 경북대학교 경제학과(경제통상학부) 교수로 평생 재직하셨다. 또한 (사)산학연구원을 설립하여 원장과 이사장을 역임하셨다.

"융합형 학자, 최용호 교수님을  그리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최 교수님을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교수님의 겸손하고도 온화한 태도에 먼저 감탄할 것이다.

그러나 교수님과 깊이 대화를 나눠 보면, 교수님은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읽고,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진정한 ‘융합형 학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교수님의 삶은 단순한 직업적 성공을 넘어 학문, 실무, 사회적 역할, 그리고 인간적인 품성을 모두 조화롭게 엮어낸 하나의 거대한 융합의 과정이었다.


학문적 융합으로 지식의 경계를 넘어선 학자이다

최 교수님의 학문적 여정은 단순히 한 분야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지식을 확장하고 융합하는 과정이었다. 정치학을 전공한 후 경제학과 지역경제학으로 연구 영역을 넓힌 교수님은, 사회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는 융합적 사고를 지닌 학자로 성장했다. 교수님에게 학문이란 단순한 연구 대상이 아니라,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였다.

최 교수님은 실사구시의 자세로 이론과 현실의 융합을 실천한 학자이다.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시작하여 대구은행(현 iM뱅크) 조사부에서 경제분석을 수행하고, 대학에서 지역경제 강의를 이어간 교수님의 경력은 학문과 실무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교수님은 이론이 현실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신념 아래, 연구실에서 고민한 경제이론을 실제 지역경제 정책에 적용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최 교수님은 공간적 융합으로 지역문제 해결에 통찰력이 뛰어난 학자이다. 교수님은 농촌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성장하며, 농도적 생활을 두루 경험했다. 이러한 배경은 교수님에게 다양한 환경과 문화 속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교수님이 지역경제 발전을 연구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가치와 품성, 그리고  태도의 융합으로 수많은 성취를 이룬 학자이다

최 교수님의 가르침과 연구에는 항상 포용과 공존의 가치가 담겨 있었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를 융합하는 교수님은 단순한 학문적 연구를 넘어 실질적인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교수님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님은 품성의 융합으로 수많은 성취를 이룬 학자이다. 교수님은 많은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논문 지도와 심사를 맡을 때도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지식의 권위자가 아닌 동반자로서 함께 고민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교수님은  학자로서의 성취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품성까지도 균형을 이루며, 후학들에게 진정한 배움의 의미를 전하는 역할을 했다.

최 교수님은 태도의 융합으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균형잡힌 학자이다. 교수님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전통과 현대의 모순과 갈등을 조화롭고 균형되게 하나로 융합하여 엮어내는 능력이었다. 교수님은 학자로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하면서도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이러한 균형 잡힌 태도는 교수님이 다양한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소통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주었다.


사회적 융합으로 공익과 정의를 실천한 학자이다

최 교수님은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사회적 가치로 연결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교수님은 '(사) 산학연구원'을 창립하여 산업, 대학, 경영, 기술, 금융을 하나로 묶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학문이 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길을 개척했다. 또한, 이들 연구원을 통해 영·호남 교류와 지역 간 화합을 도모하며, 학자이자 실천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최 교수님은 젊은 시절부터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대구 2·28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며 공의와 신념을 실천한 교수님의 모습은 학문과 현실을 연결하는 학자로서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사회적 불의에 맞서되, 조화롭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교수님의 태도는 건강한 민주사회의 기반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평생학습으로 변화에 적응하는  학자이다

최 교수님은 정년 이전이나 이후에도 한결같이 배움을 멈추지 않는 학자이다. 이른 새벽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천을 산책하고, 경북대 어학당에서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였다. 정년 이후에도 동양 고전과 한학을 탐독하며 지적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고, 시대적 흐름을 읽는 통찰력을 키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글을 마치며,

최 교수님의 삶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가치와 경험을 융합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한 여정이었다. 교수님은 학문과 실무, 도시와 농촌, 전통과 현대, 개인과 공동체라는 서로 다른 요소들을 조화롭게 연결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융합형 학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교수님은 지식인이면서 실천가였고, 학자이면서도 교육자였으며, 이론과 현실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교수님의 삶과 철학은 후학들에게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진정한 의미의 융합을 실천하는 길을 제시하였다. 교수님의 발자취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비추는 하나의 등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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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근, 그와 나는 영원한 멘토이자 멘티다"

김관용 前 경상북도 지사
현 대한민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멘토(mentor)와 멘티(mentee)

‘멘토’라는 단어는 그리스 신화 속 오디세우스의 친구 멘토르(Mentor)에서 유래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여 20년간 귀향하지 못하는 동안, 멘토르는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보살피며 가르쳤다. 이로 인해 ‘멘토’는 ‘현명하고 성실한 조언자’ 또는 ‘스승’을 의미하게 되었고, ‘멘티’는 그러한 멘토에게 가르침이나 조언을 받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멘토와 멘티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도 하고, 조직 안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성근 교수와 나의 관계는 단순한 공식적 멘토와 멘티 관계가 아니었다. 우리는 지역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멘토이자 멘티가 되었다.

나는 25년간 지방자치 현장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이성근 교수는 더할 나위 없는 멘토였다. 현실 행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이론적 토대가 필요했는데, 그때마다 그의 조언과 제언은 큰 힘이 되었다. 동시에 나 역시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에 치우치지 않도록 돕는 멘토 역할을 했다.

그의 학문적 명성은 따로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특히 지역개발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학자다. 나는 그가 대학에 재직하던 시절부터 늘 그를 찾았다. 구미시장 재임 당시에는 시정자문을 맡겼고, 경상북도지사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제시한 조언들은 특히 지역균형발전과 새마을운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도권 집중이 가져오는 폐해를 누구보다 깊이 연구해 온 그는, 국토균형발전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또한 새마을운동의 가치를 확고히 신념으로 삼고, 그 영향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데 앞장섰다.


대구경북연구원의 수장으로서

2010년, 나는 그를 대구·경북 최고의 싱크탱크인 대구경북연구원 원장으로 영입했다. 당시 경상북도지사였던 나는 이사장 직을 맡고 있었기에, 대구시장을 설득해 그의 임명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의 높은 학문적 역량을 보다 가까이에서 활용하고 싶었고, 그 선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가 원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대구경북연구원은 내실을 더욱 단단히 다졌다. 연구 분위기가 달라졌고,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 성과를 냈다. 특히 그의 연구는 단순한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에 적용될 수 있도록 했다. 비록 연구원 내 노조 설립 등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지금도 그는 가장 열정적으로 일한 원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정치적 도전 속에서도 함께한 길

2017년 3월, 대한민국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그로 인해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나는 당시 자유한국당의 대선 경선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많은 사람이 만류했다. 승산이 뻔한 싸움인데 굳이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우려도 컸다. 그러나 이성근 교수는 달랐다. 그는 대구와 경북의 자존심을 지키고, 보수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내가 반드시 나서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경선 과정에서도 정책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국민의 마음을 온전히 얻지는 못했지만, 지방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켰고, 대구와 경북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조언은 매우 정확했고, 나 또한 후회 없는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함께한 길, 미래를 향한 디딤돌

이제 그는 현역에서 물러나 원로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우리의 인연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그와 나는 여러 면에서 닮았다. 내가 25년간 지방자치 현장을 지켜온 것처럼, 그는 학자로서 지역을 떠나지 않고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나는 자치분권과 국토균형발전을 행정가와 정치가로서 주창해 왔다면, 그는 이를 철저히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며 대한민국의 균형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한 시대를 같은 방향에서 바라보며, 같은 길을 걸어온 우리

우리가 함께 걸어온 발자취는 반드시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필자 소개
김관용 지사님은 영남대학교 경제학과(경제학사), 동대학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 금오공대ㆍ 계명대ㆍ 안동대 ㆍ몽고ㆍ인도네시아 등 대학에서 여러 분야의 명예 박사학위를 받으셨다.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1971)하여 민선 이전 까지 여러 중앙 부처에서 고위 공직자로 활동하셨다. 민선 출범과 함께 민선 구미시장(3선)과 경상북도 지사(3선), 그리고 대한민국 시 ㆍ도 지사협의회 회장을 역임하셨다. 지금은 대한민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맡고 계신다.



"김관용 지사님과의 인연을 돌아보며, 김 지사님의 리더십을 말하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나의 인생에서 김관용 지사님과 인연을 맺은 것은 크나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김 지사님은 나에게 어떤 사람인가? 김 지사님은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라는 "회상록"에서 나를 멘토이자 멘티의 관계로 덕담의 글을 써 주셨다. 그러나 나에게 김 지사님은 고교계명의 스승이자 나를 이끈 은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김 지사님은 어떤 사람인가?  목표성취형, 외유내강형, 그리고 사회후생형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여전히 국가 원로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김관용 지사님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글을 시작하며,

이 글은 김관용 지사님과의 인연을 돌아보며, 김 지사님의 리더십을 소개하고 있다.
글의 순서는 김 지사님의 경북도지사 선거 출마와 정책 자문의 인연, 도지사 당선 이후 도정 참여 기회 확대, 대구경북연구원의 원장 추천과 기회, 대선 출마와 정책학습 및 자문과 대선 자료집 작성,  그리고 6선의 24년간 지방 선출직으로 구미시장과 경북도지사를 지낸 김관용 지사님의 리더십이다.


먼저 김관용 지사님과의 인연에 대해 보자

인생을 살다 보면 우연한 기회로 만남이 이루어지고, 때로는 부탁을 하거나 받게 되는 일이 생긴다. 그 부탁이 성사되기도 하고, 불가피하게 실패할 때도 있지만, 이러한 일들은 결국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관용 지사님과의 인연도 그러했다.

김 지사님과의 첫 인연은 구미시장 재직 시절, 지방 혁신 평가 및 정책 자문을 통해 시작되었다. 몇 차례의 공식적인 만남이 이어지며 보통의 관계를 유지하던 중, 어느 날 김 지사님으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려고 합니다. 정책 자문을 부탁드립니다."

이 전화 한 통이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었다.


다음은
경북도지사 당선과 도정 참여의 기회이다

김 지사님은 당내 경선을 힘겹게 통과한 후, 본선에서는 비교적 무난하게 승리하며 경북도지사에 당선되었다. 이후 인수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나는 위원장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도지사 취임과 함께 '새경북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부위원장 겸 기획분과위원장을 맡았고, 도청 이전 추진위원을 비롯해 여러 도정 현안에 깊이 관여할 기회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도지사 정책자문관으로 활동하였다.


다음은 대구경북연구원장과 주요 연구사업, 그리고 대선 후보 경북 정책 자문단장의 에피소드이다

지방자치 시대가 개막되면서 전국 시·도는 지방연구원을 설립하고 운영하기 시작했다. 대구와 경북은 공동으로 대구경북연구원(이하 대경연)을 설립하여 지역개발 정책 연구의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했다.

마침 대경연 원장 자리가 비게 되었고, 김 지사님의 추천으로 연구원장에 취임하게 되었다.

연구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경북새마을세계화재단, 경북농민사관학교, 경북행복재단의 설립 타당성 연구 등을 수행하며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 지사님은 대경연의 연구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고, 지역발전과 연계된 여러 협의체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에게 발언 기회를 보장해 주셨다.

그러나 연구원장으로서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도 제기되었다. 김 지사님이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경북 정책자문단장을 맡도록 추천했고, 나 역시 이에 합류하며 자문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에서는 특정 정당 편향성을 문제 삼아 공개 질의서를 보내왔고, 지역 언론에서도 논란이 되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대선과 정책 자문, 그리고 다섯 번의 전화가 특히 기억된다

대경연 원장직을 마치고 학교로 복귀한 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가 발생하며 조기 대선이 치러지게 되었다.
그때 김 지사님은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 나는 정책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정책 학습과 자문을 수행했고, 대선 자료집 작성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서울 방송 토론이 있을 때마다 김 지사님과 전화로 의견을 나누며 정책 방향을 조율했다.

김 지사님과의 인연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다섯 번의 전화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나는 도지사 출마와 정책 자문의 요청이다.
둘은 대구경북연구원장직에 대한 의사 타진이다.
셋은 대선 출마와 정책 자문의 논의이다.
넷은 퇴임 후 사회적 역할과 활동 방향의 논의이다.
다섯은 대선 윤 후보 경북선대본부장 시절 정책 공약에 대한  전화이다.


이 다섯 번의 전화는 단순한 대화를 넘어, 김 지사님의 정치적 신념과 정책 철학을 공유하는 중요한 순간들이었다.


다음은 김관용 지사님의 리더십과 업적에 대한 소개이다

김 지사님은 24년간 구미시장 3선, 경북도지사 3선이라는 지방 정치의 역사를 써 내려왔다. 김 지사님의 리더십을 여덟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는 시장경제에 충실한 신산업 개척주의자이다.
해외 기업 유치로 지역경제 활력과 일자리 창출에 성과가 많았다. 이는 3선 구미시장의 경험에서 나온 소신이자 철학이 바탕이 되었다.

둘째는 점진적 사회개혁과 개선주의자이다.
대표적으로 영농후계자의 양성을 위한 농민사관학교의 설립과 운영에서 많은 성과를 내었다. 이는 농업과 농촌의 미래를 내다본 혜안의 정책사업이었다.

셋째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뢰하고 경청과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적 리더십이다.
특히 신도청 이전지 결정과 신도시 건설, 그리고 도청이전이었다. 도청유치를 희망하는 다수 지역의 이해를 큰 갈등없이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치밀한 정책설계와 가치중립적 입장을 견지한 것이 가능하게 하였다.

넷째는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용주의자이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와 동북아자치단체연합 등 전임 이의근 지사 시절의 도정을 계승 유지 발전하였다. 역대정부와 대부분의 지자체장들은 전임 정부와 지자체장들이 추진한 사업을 부정하고 깡그리 무시하였으나 김 지사님은 달랐다. 좋은 정책사업은 계승발전시키고 나쁜 정책사업은 수정보완하였다.

다섯째는 민선 6선 경험의 현장중심의 실사구시자이다.
구미시장 3선과 경북 도지사 3선 총 6선 24년의 지방적 리더십이다.
이는 새마을의 세계화재단과 경북 행복재단의 설립과 운영에서 알 수 있다. 전자는 경북도의 브랜드인 새마을 운동의 세계화사업이고, 후자는 국민행복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도민의 건강과 복지를 전담하는 정책사업이었다.

여섯째는 화합과 사회통합의 리더십이다.
경북 도청이전과 4대강 사업 등에서 분열과 갈등보다 대화와 타협, 그리고 합의형성을 통해 설득과 인내로 당초 목적을 성취하는 외유내강형의 리더쉽을 발휘하였다.

일곱째는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지향하는 글로컬 시대의 지도자이다.
외교와 안보, 그리고 세계화에도 적극적이었다. 특히 독도 영토분쟁, 신재생 에너지, 세계물포럼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여덟째는 조정과 협력에 강한 협업주의자이다.
대한민국 시ㆍ 도지사협의체의 운영과 같은 국가와 광역, 광역과 기초의 조정과 협력에 기여하였다.


새로운 길로 민주평통 수석 부의장에 취임하다

대선 이후, 김 지사님은 새로운 역할을 맡아 민주평통 수석 부의장으로 취임했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국운 융성과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 글을 마치며,
김관용 지사님의 민주평통 수석 부의장으로서의 성공적인 역할 수행과 건강한 삶을 기원한다. 김 지사님의 오랜 지방 정치 경험이 국가 발전과 국민 통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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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과 근면, 그리고 정직한 사람, 이성근 교수"

이문조 영남대 명예교수ㆍ 정치외교학과



이성근 교수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성실, 근면, 정직이다. 같은 대학에서 30년을 함께하며 느낀 그의 인상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나는 정년퇴직 후 13년이 지났고, 그도 지난해 정년을 맞이했다. 교수로서, 직장 선배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친구로서 함께한 시간 속에서 그는 언제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약속을 철저히 지키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었다. 자기 연구와 강의에 몰두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가진 지식을 활용해 지역사회와 정부의 자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관변 폴리페서가 아니었다. 공적인 활동에 참여하면서도 특정 이익집단의 영향에 휘둘리지 않았으며, 자신의 학문적 양심을 지켜왔다. 이러한 점이 내가 그를 더욱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의 언행은 언제나 일치했고, 만약 약속을 지키지 못할 상황이라면 반드시 미리 양해를 구하는 신사다운 면모를 보였다.

학자로서의 연구와 사회적 기여

이 교수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학문적 탐구를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왔다. 그의 전공 분야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도시와 지역개발, 지역경제와 사회발전, 지방재정과 공공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해외의 사례를 연구하고, 관계 학회 및 정부와 협력하며 세계 곳곳을 직접 탐방하는 등 학문과 실무를 함께 아우르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삶을 개척해왔다. 그는 언제나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한국에서 독보적인 학문적 경지를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가정과 신앙 속에서 쌓아온 가치관

이 교수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 중 하나는 신앙이다. 그는 정직하고 근면한 태도로 삶을 살아왔으며, 때때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참고 견디는 힘을 발휘했다. 이러한 인내와 용기는 신앙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는 가정적으로도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다. 그의 아내는 경북대학교 간호대학 학장을 역임한 학자로서, 부부는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해왔다. 또한, 매주 일요일 가족과 함께 교회에 가며 신앙을 기반으로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왔다.

새로운 도전과 백세 시대의 역할

정년을 맞이한 지금, 그는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 갈고닦은 능력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야말로 학자로서의 궁극적인 역할이 아닐까.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70세에 첫 책을 쓰기 시작해 90세까지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베르디가 80세에 오페라를 창작했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교수 역시 여전히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열려 있다.

나는 이 교수와 골프를 함께한 시절을 기억한다. 그는 빠르게 실력을 향상시켰지만, 연구와 업무로 인해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는 못했다. 이제는 건강도 관리하면서 백세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역할을 찾기를 바란다.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과 환경 문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식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대기오염, 수질오염,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연구와 정책적 대안이 필수적이다. 모든 사람이 조금씩 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이 모일 것이다.
호주는 아델라이드를 첨단 정보통신 신도시로 개발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 역시 생태환경과 도시개발을 조화롭게 이루어나가야 하며, 이 교수와 같은 학문적 전문성과 실무 경험을 갖춘 인재들이 이를 이끌어주기를 기대한다.

이교수의 정년 이후가 기대된다

"대붕(大鵬)은 한 번 지상에서 떠나면 하늘에서 6개월을 머문다"는 말이 있다. 이제 이 교수가 쌓아온 학문과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더욱 큰 도움을 주길 바란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젊은 세대가 살아갈 길을 닦아주는 것이야말로, 지식인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건강을 유지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발걸음을 계속해 주기를 기대한다.


필자 소개
이문조 교수님은 경북대 철학과(문학사), 서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정치학과(정치학 박사)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평생 교수를 지내셨고, 재직중에 정치행정대학장을 역임하셨다.  



"이문조 교수님을 기리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이문조 교수님께서는 학문과 교육, 그리고 인격적 품격을 겸비하신 학자로 평생을 살아오셨습니다.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경북대학교 철학과에서 문학사를 취득하셨으며, 이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를,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이러한 탄탄한 학문적 기반을 바탕으로 영남대학교에서 평생을 재직하시며 정치행정대학장 등을 역임하시며 학문과 후학 양성에 헌신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근대 한국의 명망가 집안 출신으로, 부친이신 이효상 국회의장님, 장인이신 코오롱그룹 창업자 이동찬 회장님, 그리고 형님이신 경북대학교 철학과 이문호 교수님과 대구 가톨릭 이문희 대주교님 등 가족 모두가 사회 각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해오셨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교수님께서는 자존감과 안정감을 바탕으로 균형 잡힌 사고를 가지셨으며,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 속에서도 신념에 따라 강인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저와 이 교수님은 같은 정치행정대학에 몸담으며 학문적, 인간적으로도 많은 교류를 나누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전공서적을 다독하는 습관이 있으셨고, 연구 중 궁금한 점이 생기면 저를 찾아 질문하시곤 했습니다. 저는 아는 바를 소상히 설명해 드렸고, 교수님께서는 이를 통해 저를 박학다식한 사람으로 보셨던 것 같습니다. 사람 간의 좋은 인연은 이런 작은 순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특히 정치외교학과 관련 문제로 제가 학장보로서 회의를 주재했을 때, 교수님께서는 제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로 회의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저를 합리주의자로 판단하셨던 것 같습니다. 반면, 다른 특별한 인연이 있는 교수님께서는 제 결정에 실망하며 서운함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교수님께서는 인간관계에서 항상 먼저 공사(公私)를 구분한 후, 상대방의 입장을 경청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셨으며, 그런 점에서 저와 성향이 닮아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 대학 총장 선거에 출마하셨을 때,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는 국책사업 선정 준비를 담당하는 본부 보직의 테크노파크 추진기획단장을 맡고 있어 선거에 개입하기 어려운 입장이었습니다. 이를 솔직히 말씀드리자 교수님께서는 제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 주셨고, 저를 나름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후 일부 사람들로부터  제가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고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후 저는 교수님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하였고 역시 교수님으로부터 골프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골프 연습장에서 교수님께 지도도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교수님께서는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친분을 바탕으로 사모님께서 대구에 오실 때면 제 가족과 함께 두 가족이 종종 식사 자리를 갖기도 했습니다.

정년퇴임 후 교수님께서는 그간 대리인에게 맡겨둔 두 개의 회사를 직접 경영하시다가, 어느날 제한테 이런 전화를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팔공산 사업장에서 지하수를 개발하려 하셨으나, 동화사 측에서 지하수맥이 끊길까 우려하며 반대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이에 과학적 접근을 통해 문제가 없다는 전문가 의견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듣고, 한국농어촌공사 경북본부의 지하수 담당자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이를 통해 해결 방안을 찾으셨고, 저의 도움에 깊이 감사해하셨습니다.

정년 이후 상당 기간 이렇게 직접 회사를 경영하시다가 자녀에게 경영을 맡기시고 서울로 거처를 옮기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지가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대구로 내려오셔서 미뤄둔 집필 활동을 시작하시고, 동료 교수님들과 가끔 골프를 하시며 지내신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러던 중, 교수님이 저에  대한 글을 써 주신 회상록을 전달해 드리려 저와 통화한 것이 마지막 대화가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이문조 교수님,
학자로서, 교육자로서, 그리고 인간적으로도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교수님의 깊은 지혜와 따뜻한 인품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삼가  이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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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삶을 함께한 동반자, 이성근 교수에게"

장태옥 영남대 명예교수ㆍ행정학과


이성근 교수가 정년을 맞이한다. 세월은 우리의 삶을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다. 이교수와 함께한 시간이 어느덧 반세기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를 떠올릴 때면 내 인생의 고향이 생각나고, 삶을 함께 걸어온 동반자로 느껴진다.

그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제자의 한 분이다. 그러나 제자라기보다 그는 나와 학문의 길을 같이 한 동업자다. 내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내가 어디에서 고민하고 침묵하는지를 알기 위해 내 안에 들어와 귀 기울였던 사람이다. 내가 내 소리를 잊고 흔들릴 때면, 그는 내 고유한 씨앗과 본업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곤 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누구의 충고도 귀에 들어오지 않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생의 어려움에 봉착하고 궁지에 몰릴 때면, 우리는 마치 주인 없는 이방인처럼 외로워지고 무기력해지곤 한다. 그런 순간마다 이교수는 포기하지 말고 맞서 싸우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든든한 친구였다. 그는 영남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한 동료들에게 꽉 찬 우정의 집을 만들어준 동반자였다.

이제 이교수는 인생의 중심에 서는 새로운 시간의 한가운데에 있다. 지금까지 이교수는 대학과 그 너머에서 끊임없이 일하며 바쁘게 살아왔다. 주위의 부러움을 받을 만한 덕망을 갖춘 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교수를 보며 공통적으로 느낀 삶의 미덕은 아마도 신중함과 융통성이 아닐까 싶다. 이교수는 언제나 활동적이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였으며, 성실하고 정직할 뿐만 아니라 과장된 행동을 삼가는 사람이었다. 완벽한 지혜와 품격을 갖추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에서도 공정한 관찰자로서 한 치의 오점도 남기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이교수는 자기 감정을 조절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지나칠 정도로 몰두하는 경향이 있었고, 하루하루를 시간에 쫓기듯 살아갔다. 그러나 이제 정년이라는 전환점 앞에 서 있다. 비록 정년이 이교수의 활동을 멈추게 하는 듯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잠시 숨을 고르고 휴식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으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이제는 외적인 성공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볼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이교수의 건강과 안정을 위해서라도 고독과 침묵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인생이란 누구나 정년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탐험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정년을 단순한 마무리가 아닌, 삶을 고요하게 정리하고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는 기회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제는 일만 하는 삶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열매를 맺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교수의 정년이 또 다른 시작이자 새로운 샘물이 되어, 더욱 빛나는 결실을 거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성근 교수, 정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필자 소개
장태옥 교수님은 영남대(법학사)와 서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 그리고 미국 Texas A&M 대학교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도시 및 지역계획학 박사)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행정학과에서  평생 교수로 재직하셨다. 재직 중에 환경대학원장과 행정대학원장을 역임하셨다.


"장태옥 교수님을 그리며"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장태옥 영남대학교 행정학과 명예교수님은 학문과 삶의 여러 방면에서 깊은 영향을 주신 선배 학자이자 존경할 만한 인격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필자는 같은 정치행정대학 내 이웃 학과에서 교육과 연구를 하면서, 도시 및 지역계획학을 전공한 후배 교수로서 교수님과 여러 인연을 쌓을 기회를 가졌습니다.

특히, 특수대학원인 환경대학원의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에서 교수님과 함께 강의하고 대학원생들의 논문을 지도하며 학문적 교류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연구실이 법정관 아래윗층에 위치했던 덕분에 자주 방문하여 차를 나누며 학문과 인생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학문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후배 교수들과 교류를 이어가셨습니다. 군부대 새벽 골프 모임의 고정 멤버인 3철(태철ㆍ성철ㆍ동철)로서도 함께하며, 즐겁고 활기찬 시간을 보내셨던 기억이 납니다. 또한, 경상북도 도시계획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자문위원회 활동에서도 함께하며 실무적 식견을 공유하고 토론하셨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장 교수님은 대구 사대부고를 졸업하고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만큼, 엘리트 의식이 강하시고 학문적 자부심이 높으셨습니다. 학문과 원칙에 있어 호불호가 분명하고 직설적인 성격이셨기에 젊은 교수들이 때로는 부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유부단함보다는 분명한 태도를 가지셨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따뜻한 인정과 감정을 표현하시기도 했습니다.

특히 교수님은 학문적 열정 못지않게 가정적인 분이셨습니다. 부부 금슬이 좋으셔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셨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네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시며 각자의 분야에서 우수한 사회의 동량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깊은 애정을 쏟으셨습니다. 자녀들은 각기 훌륭한 길을 걸어갔고, 특히 손자손녀들이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셨습니다.

정년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셨습니다. 카톨릭 성당의 성서대학 학장으로 봉사하시며 신앙을 통해 또 다른 삶의 의미를 찾으셨습니다. 특별히, 필자와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시면서 직접 가꾸신 텃밭의 채소를 나누어 주시던 따뜻한 모습이 기억납니다.

현재 교수님은 세 자녀와 함께 서울에서 생활하며 여전히 활기찬 삶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교수님께 큰아들은 ‘존재 가치’이며, 두 딸과 작은아들은 ‘사용 가치’로서 노후를 조금 더 편하게 보내기 위해 서울로 이사하신 것 같습니다. 가끔 가족 자랑을 하시며 가족 간의 따뜻한 유대감을 표현하시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수님은 음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셔서 가끔 사모님과 함께 보양식을 드시며 미식의 즐거움을 누리셨습니다. 교수님의 건강을 세심하게 챙기는 사모님 덕분에 냉장고 문에는 건강 체크리스트가 걸려 있었으며, 한 번은 위급한 순간에 빠른 대처로 위기를 모면하신 일도 있었습니다.

먼 곳에서나마 교수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학문과 인생의 길을 함께했던 후배 교수로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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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기로에 선 대한민국,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지혜로운 선택을 바란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들어가며,

2024년 4월 10일에 치러진 제22대 국회가 개원 1년을 앞두고 있다. 그간 여소야대가 된 민주당은 탄핵소추를 추진했으며, 윤 대통령은 이에 대해 재의를 요구하며 대응해 왔다. 이로 인해 정국은 급변했고, 정치가 실종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가 해제되었으며, 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었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과 대법원의 야당 대표에 대한 재판 선고가 예정되어 있다.
이 두 판결은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과 국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에 따라 정치권과 국민의 태도 역시 크게 변화할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원칙과 상식에 기반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정치의 본질은 본래 무상한 것이다. 오늘의 권력자가 내일은 쇠락할 수 있으며, 정치적 부침 속에서 사람들의 태도 또한 변하기 마련이다. 이 글에서는 세상의 이치를 담고 있는 몇 가지 고사성어를 통해 이러한 현실을 되짚어보고, 우리가 원칙과 상식을 바탕으로 합리적 선택과 현명한 행동을 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정치와 세상의 무상함을 돌아본다

먼저, 영고성쇠(榮枯盛衰)는 인생과 사회의 번성과 쇠퇴가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뜻이다. 정치권에서도 한때 최고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인물이나 정당이 순식간에 몰락하는 사례를 숱하게 보아왔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되고, 권력를 잃은 자는 쉽게 잊혀지는 것이 정치의 현실이다. 이를 두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적확하다.

감탄고토(甘呑苦吐)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태도를 의미한다. 선거철마다 특정 정치인과 정당을 열렬히 지지하던 이들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등을 돌리는 모습은 우리 정치에서 낯설지 않게 보아왔다. 필자는 정년 이후 제자를 포함한 누구에게든 "스스로 자원 배분의 역량이 없다면,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세태염량(世態炎凉) 또한 권세가 있을 때는 아첨하고 따르지만, 힘을 잃으면 차갑게 외면하는 세상의 인심을 뜻한다.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는 수많은 사람이 그 주변을 맴돌지만, 힘을 잃고 나면 급속히 고립되는 것이 정치의 현실이다. 우리 대학 선배 교수님이 정년을 앞둔 나를 보며 "이 교수, 나이가 들면 한 해 한 해마다 연락하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게 되네'"라고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전거후공(前倨後恭)은 상대의 지위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권력이 없을 때는 거만하게 대하던 이들이, 힘을 가지면 다시 공손하게 대하는 모습 역시 흔히 볼 수 있다.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난다.


지금은 지혜로운 선택과 행동이 필요한 '싯점(時點)'이다

이러한 세상의 무상함 속에서도 우리는 유권자로서, 국민으로서 합리적인 선택과 현명한 행동을 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 이후 대한민국은 또다시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결국 국민의 몫이다. 우리는 특정한 정치 세력이나 권력자에 휘둘리기보다는 원칙과 상식, 그리고 관점(觀點)과 시점(視點)을 바탕으로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또한,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지혜로운 만남’이 중요하다. 세상의 무상함 속에서도 신뢰와 원칙을 지키는 관계를 맺고, 순간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긴 호흡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가치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지혜일 것이다.


글을 마치며,

지금 대한민국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 이후, 대한민국은 또 한 번 새로운 길로 접어들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정치의 무상함을 되새기면서도,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유권자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국 국민 하나하나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1) 22대 여소야대의 국회는개원 이후 총 18회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였으며, 이는 이전 21대 국회 전체 기간 동안 발의된 13건과 비교하여 크게 증가한 수치다./ daily.hankooki.com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22대 국회 개원 이후 총 31번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였다./ daily.hankooki.com
이러한 빈번한 탄핵소추안 발의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국회와 행정부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 우리는 긴 여정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觀點)과 시점(視點), 그리고 싯점(時點)에 대한 개념들을 잘 이해하고, 이들 세 가지 기준을 잘 활용해야 한다. 관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개인의 주관적 입장이고, 시점은 세상을 비춰보는 개인의 거울이며, 싯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 선택을 의미한다. 이들 개념들은 서로 관련성이 높으나 그 구체적 의미와 적용은 다르다./ https://lsk50.tistory.com/
5102/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觀點)과 시점(視點), 그리고 싯점(時點)의 세 가지 기준에 대한 논의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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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들어가며,

요즘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정치적 언어와 권력 집단의 행태를 보면, 국민의 피로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논란이 발생하면 무조건 부인하고, 둘러대거나 변명하거나 무반응으로 일관하며 조용해지길 기다린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법적 소송과 시간 끌기로 본질을 흐린다. 심지어 편향된 여론을 동원하고 지지층의 국민들을 빽과 권력으로 삼아  역전의 기회를 엿보는 모습까지 보인다. 우리는 이런 정치권과 권력 집단의 행태를 일불(一不), 이피(二避), 삼빽(삼권 三權)이라 부른다.

이러한 행태가 반복되면서 사회적 신뢰는 무너지고, 국민들은 점점 더 분열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그럼에도 양식있는 중도성향의 일반 국민들은 반전과 정상을 기대하면서도 여전히 반신반의 하고 있다. 또한 양식 있는 중도 성향의 일반 국민들은  냉소 속에서도 여전히 나라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동시에 품고 있다.

한편, 국제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격변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 협력을 강화하며 무력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미국은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우크라이나 문제마저 외면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무역 전쟁을 불사하며 치열한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미래 첨단 과학기술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도 더욱 격화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글로벌 질서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나갈 것인가?


국가 통치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기의 본질은 정치권과 권력 집단의 행태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의 대응 전략이 미흡하다는 점에 있다. 단순한 정치적 논쟁을 넘어, 이제는 5년 단임 대통령제의 4년 연임 대통령제와 인구중심 국회 의원정수 배분에서 지역대표제를 도입하여 국가균형발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헌법 개정을 포함한 근본적인 통치구조 개혁과 국정운영시스템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정치권의 신뢰 회복과 책임 정치의 확립이 시급하다

정치는 더 이상 권력 싸움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투명한 의사 결정, 책임 있는 행동, 그리고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정당과 정치인들이 단기적인 이익과 당리당략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의 장기적 발전과 국민 통합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국가적 전략과 비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한 대응이 아니라 능동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첨단 과학기술, 인공지능, 반도체, 우주 산업 등 미래 산업을 주도할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혁신이 요구된다. 또한, 외교 전략도 보다 현실적이고 국익 중심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을 고려하면서도, 보다 유연하고 실리적인 외교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사회적 신뢰 회복과 국민 통합이 필요하다

정치권의 갈등과 권력 싸움 속에서 국민들은 점점 더 분열되고 있다. 그러나 내부에서 갈등하고 분열된 사회는 외부의 도전에 대응할 동력을 잃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국민 통합을 위한 사회적 신뢰 회복에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정한 법 집행, 사회적 대타협, 그리고 세대와 계층 간의 연대가 절실하다.


글을 마치며,
미래를 준비하는 대한민국의 길


지금 우리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정치적 혼란과 국제 질서의 변화 속에서 올바른 방향을 찾지 못한다면, 국가의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신뢰와 통합을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한다면, 이 난국을 기회로 바꿀 수 있다.

더 이상 정치권과 권력 집단의 일불(一不), 이피(二避), 삼빽(삼권 三權)의 정치행태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이제는 양식 있는 중도 성향의 일반 국민들이 정치권을 심판하고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할 싯점이다.
지금 대한민국호(號)는 책임 있는 정치, 실리적 외교, 그리고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적 투자와 혁신이 뒷받침될 때,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고 미래를 선도하는 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이 혼돈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지금이야말로 양식 있는 중도 성향의 일반 국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때다.
국가의 미래는 정치권이 아닌, 깨어 있는 국민들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다.

참고자료
1) 우리는 긴 여정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觀點)과 시점(視點), 그리고 싯점(時點)에 대한 개념들을 잘 이해하고, 이들 세 가지 기준을 잘 활용해야 한다. 관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개인의 주관적 입장이고, 시점은 세상을 비춰보는 개인의 거울이며, 싯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 선택을 의미한다. 이들 개념들은 서로 관련성이 높으나 그 구체적 의미와 적용은 다르다./ https://lsk50.tistory.com/
5102/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觀點)과 시점(視點), 그리고 싯점(時點)의 세 가지 기준에 대한 논의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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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하는 인생이 성공을 부른다"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시작이 반이고, 설마가 사람을 잡으며, 원에서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이는 필자가 평소에 갖고 있는 신념이다. 이 신념을 바탕으로 우리는 왜 계획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고,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은 요행을 바라기보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며, "원에서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은 세상이 순환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결국, 이러한 삶의 이치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계획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옛 속담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요행을 바라지 말고, 미리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가르침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환경결정주의(environmental determinism)로 자연환경이 인간의 삶을 지배했기에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했고, 건양다경(建陽多慶)과 입춘대길(立春大吉) 같은 길운을 기원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환경을 개조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인간이 계획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는 환경가능주의(environmental possibilism)가 대두되었다.

오늘날은 '계획의 시대'다. 최근 필자는 제주에서 몇몇 지인들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계획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던 중, 한 지인이 "제주에서는 오늘의 삶에 충실하면 되지, 미래를 미리 걱정하며 계획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필자는 웃으며 "제 전공이 계획인데요"라고 답했다. 지인의 말은 계획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반영한다. 즉, 계획을 세워도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운명에 따라 결정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평생을 계획 전문가로 살아왔기에, 계획의 실효성보다는 그 유용성에 무게를 둔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계획이란 행동에 앞서 이루어지는 사전 지적 작업 과정(pre - intellectual task process)으로, '계(計)'는 계산하고 '획(劃)'은 제한을 둔다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성공적인 계획을 위해서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과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하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이 두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기는 어렵기에 계획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이란 멀리 내다보는 예측력과 통제 가능한 능력의 범위 안에서 자신의 꿈과 소망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원하는 궁극적인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실현 가능한 수단인 '계획'이 반드시 필요하다. 계획은 단순히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계획하는 인생이 성공을 부르고, 우리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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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형 스크린 파크골프는 자연형 파크골프의 한계를 보완할 대안인가? 대백플라자 10층 마실 파크골프 체험을 중심으로"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전 대구경북연구원장
현 (사) 한국지역균형연구원 이사장/원장



파크골프는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며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대구는 인구 대비 파크골프 인구 비중과 파크골프장 수에서 전국 1위를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파크골프의 성지’라 불린다. 2023년 제1회 대통령배 전국 파크골프 대회가 대구 달성 위천 파크골프장에서 개최되었으며, 전국 최초의 실내형 스크린 파크골프 대회도 대구에서 열렸다.
최근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백플라자 10층에 전국 최초 실내형 스크린 파크골프 회사인 ‘마실 파크골프’가 문을 열었다. ‘마실’이라는 이름처럼 누구나 마실 가듯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하며, 대백플라자라는 친숙한 장소에 위치해 접근성이 뛰어나다. 최근 필자는 마실 파크골프를 직접 체험하며, 실내형 스크린 파크골프가 자연형 파크골프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자연형 파크골프의 현안 과제에 대해 보자.

현재 전국 대부분의 자연형 파크골프장은 여러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환경적 요인이다.
자연형 파크골프장은 기후 변화에 따라 휴장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3~4월 잔디 성장기와 우천·태풍·폭설 등의 악천후 시기에 휴장이 잦아 연속적인 운동이 어렵다.

둘은 시설적 요인이다.
대부분의 파크골프장은 기본적인 편의시설이 부족하다. 휴게실, 샤워시설, 식당, 카페 등이 없어 혹서기와 혹한기에 이용자들이 불편함을 겪는다.

셋은 운영적 요인이다.
대다수의 파크골프장은 주 1회 휴장하며, 이용자가 많아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문제가 있다. 또한 경기 진행 요원이 없어 안전사고 위험이 크고, 3인 이상의  팀 구성 요건이 있으며, 개인은 통반자로 참여한다.

넷은 수요적 요인이다.
파크골프 인구가 급증하는 반면, 시설 확충이 미흡해 일부 골프장은 홀짝제나 예약제를 운영하고 있다. 제주처럼 관광지에 위치한 파크골프장은 외부 이용자가 많아 지역 주민들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해결 노력은 미흡한 실정이다. 자연형 파크골프장의 확대는 장기적인 과제로 남아 있으며, 단기적인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


실내형 스크린 파크골프의 비교우위와 특징에 대해 보자.

실내형 스크린 파크골프는 자연형 파크골프가 가진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대백플라자 10층에 위치한 마실 파크골프를 중심으로 그 비교우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는 훈련성과 교육성이다.
마실 파크골프는 실내에서 체계적인 연습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스크린 시스템을 활용한 자세 교정과 스윙 분석 기능이 있어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맞춤형 훈련이 가능하다.

둘은 유연성이다.
다양한 난이도의 코스와 연습 모드를 제공해 이용자의 수준에 맞는 맞춤형 플레이가 가능하다.

셋은 안전성이다.
자연형 파크골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위험이 낮아 고령층과 신체적 약자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

넷은 이용 편의성이다.
실내 시설이므로 날씨나 계절 변화에 관계없이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야간에도 이용할 수 있어 시간 제약이 적다.

다섯은 친교성과 휴식 공간이다.
대백플라자 내 위치하여 운동과 함께 쇼핑, 식사 등을 즐길 수 있어 여가 활동과 사회적 교류가 용이하다.

여섯은 교통 접근성이다.
도시철도 3호선과 버스 정류장이 인근에 있어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하다.

일곱은 편의시설의 연계성이다.
대백플라자의 식당, 카페, 주차장 등 다양한 편의시설과 연계하여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여덟은 인근 지역과의 연계이다.
운동 전후로 신천의 수변 산책로 및 간이 체육시설을 활용할 수 있어 건강 증진에 효과적이다.


실내형 스크린 파크골프의 미래와 과제에 대해  보자.

마실 파크골프는 파크골프의 룰을 스크린으로 구현한 시스템으로, 첨단 비전 센서를 활용해 정밀한 플레이 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스윙 분석, 공의 속도 및 방향 측정, 실전 연습 모드 등을 지원하여 체계적인 연습이 가능하다.

필자는 마실 파크골프에서 스크린 파크골프와 미니 파크골프를 직접 체험하면서, 자연형 파크골프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물론 실내형 스크린 파크골프가 자연형 파크골프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부족한 인프라와 환경적 한계를 보완하는 ‘합리적 선태 대안’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글을 마치며,
지속 가능한 파크골프의 발전을 위해 제언하고자 한다.

파크골프는 기본적으로 자연 속에서 즐기는 스포츠이지만, 현실적으로 사계절 내내 자연에서 플레이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 고령층 파크골프 인구 증가와 시설 부족 문제를 고려할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최선(best)의 실현 가능(feasible)한  대안(alternatives) 설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연형 파크골프장의  확대이다.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공공 파크골프장을 확충해야 한다. 또한 기존 공공 골프장의 일부를 파크골프장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제주와 같은 관광지역은 관광객 전용 파크골프장을 별도로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은 실내형 스크린 파크골프의 활성화이다.
민간 주도로 실내형 파크골프 시설을 확대하는데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고령층을 위한 파크골프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은층이 주로 즐기는 파크골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건강과 친교, 여가를 함께하는 스포츠이다. 자연형과 실내형의 조화를 통해 보다 지속 가능하고 발전적인 파크골프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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