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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 권태준 교수님  추모사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2024. 5. 26 오전 5시 50분

이성근 영남대 명예교수  


우리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권태준 교수님,

언제까지나 저희들 곁에 계시면서 가르침과 사랑을 주실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나시다니 우리 모두에게는 너무나 큰 슬픔입니다.


교수님은  우리 모두의 큰 스승이셨습니다.

특별히 저에게 교수님은 세 가지 길을 터주신 스승이셨습니다. 하나는 학문의 길, 다른 하나는 교수의 길, 마지막 하나는 올바른 삶의 길입니다. 교수님은 저의 인생 여정에서 은인이시고 스승이시며 교수 직분의 롤 모델이셨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마음을 모아 교수님을 추모합니다.

무엇보다 교수님은 선비형 교육자이셨습니다.

교수님은 우리 모두가 본받고 싶어하는 스승이셨습니다. 또한 교수님은 마음으로부터 제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신 우리 모두의 선생님이셨습니다.


교수님은 학계에서 계획이론과 계획교육에 큰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는 계획이론의  업적입니다. 교수님은 계획분야의 대학자이셨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계획은 교수님의 계획이론에 기반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계획교육의 업적입니다.
교수님은 대한민국에 도시와 환경교육을 개척하시고 세워놓으신 진정한 전문가이시고 어른이셨습니다



교수님은 사회개혁에 기여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셨습니다.

교수님은 서울대에서 사회정의 연구실천 모임을 구성하시어 대표로 활동하셨고
경실련 공동대표를 지내셨으며
환경대학원에 이론· 실천 세미나를 설치하시어 매월 세미나를 통해 이론과 실천을 접목하는 지식 공유를 실천하셨습니다.


교수님은 미래를 보는 선견과 크게 보는 대견으로 반듯한 대한민국이 되는데 길잡이가 되어주셨습니다.

교수님은 대인이자 거인으로 일생을 사셨고 우리 모두에게 그렇게 기억될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수님,  

교수님이 남겨놓으신 일들은 이제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저희들이 이루도록 힘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수님,

이제 이 땅에서는 마지막 인사를 올립니다.

 
부디 천국에서 영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추모사에 대한 답글

ㆍ이 교수와 나에게는 많은 가르침과 추억을 남겨 주셨습니다. 권 교수님의 가르침을 이어받도록 하십시다./
김원배 박사 전 국토연구원, 미국 거주

ㆍ권태준 교수님은 한 학문분야의 틀을 만들어 주셨고, 이 사회의 갈 길을 보여주셨으며 몸소 이끌어 주셨습니다. 감사하고 아쉽고 섭섭한 마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올립니다./  
박영철 성결대 명예교수

ㆍ이 원장님, 권태준 교수님 추모사 때 왜 목이 메였는지 알겠네요. 제게도 권 교수님은 항상 경외스러운 분이셨지만 원장님께는 아주 특별하신 분이셨네요. 권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권 교수님의 영향은 앞으로도 마음 속에, 학문 속에, 현장의 실천 속에 녹여져 남아있을 겁니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전 국토교통부 장관

ㆍ이 선배님께, 이제 제주도로 돌아가셨겠지요. 이 선배님의 추모사는 저번에도 읽은 글이었지만 다시 읽어보아도 마음에 울림이 크네요.
저는 우리 아버지를 부친으로 모시고 어머니를 모친으로 모신 것과 함께 선생님을 지도교수로 모신 것이 저의 최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선생님의 영면으로 이 선배님과 한밤을 보낸 것도 나름 뜻깊은 추억이 된 듯 합니다./
권오혁 부경대  경제학과 교수  

ㆍ 추모의 글을 동문분들과 공유하겠습니다./
박인권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무부원장

ㆍ그러시군요. 은사님께서 생전에 교수님 글을 보셨을까요? 보셨더라면 더 좋겠는데요. 글을 바꾸고, 제목을 바꾸고..... 또 시기에 낸 것 등......역사 속에 작동하는 힘인 것 같습니다. 저는 권태준 교수님을 위해 천주교식 연령기도 한번 하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정숙 영남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명예교수회 편집위원장

문도(文道)와 인도(人道)를 행하신 교수님
하늘길(天道)로 향하시는 교수님




(2)
 "인생의 세 가지 길을 터주신 권태준 교수님"   
 
영남대 명예교수회 사제동행 특집 원고
2024. 5. 22 기고

이성근 명예교수(글로벌 인재대학)

 
옛말에 "사람은 태어나서 세 번의 뜻밖의 기회가 온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일생의 소중한 기회를 잡기도 하고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또한,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귀인을 만나 자신의 운명을 가르는 인연을 만들기도 하고, 또는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기회와 만남은 바로 서울대 환경대학원(이하 환대원) 권태준 교수님(이하 교수님)이다. 필자가 환대원을 졸업하고 영남대에서 교수 직분을 얻어 도시 및 지역계획학 석·박사 학위로 이 분야 전문가가 되고 계획이론을 주전공으로 평생 교육과 연구와 봉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교수님으로부터 비롯한 기회와 만남의 인연 덕분이다. 교수님은 나의 운명을 가른 은인이고 고교계명의 스승이며 교수 직분의 롤 모델이다. 학문의 길과 교수의 길, 그리고 교수 인생의 길을 터주신 진정한 스승 권태준 지도교수님과 나와의 인연을 소개한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권 교수님의 조교가 되고

나는 영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환대원에 입학하였다. 3월 입학식에서 교수님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당시 교수님은 학과장으로 우리에게 대학원 소개를 하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대학원은 심오한 학문 보다 신문을 가려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곳이라고 하였다. 나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었다. 대학 신입생의 오리엔테이션이면 몰라도 대학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그런 말을 들었으니 퍼뜩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학원에 입학한 나는 학부보다 뭔가 차별적인 지식을 함양하는 곳이 대학원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교수님의 첫 강의는 계획이론이었다. 계획이론은 도시 및 지역계획학 전공의 기초공통과목이었다. 이 과목은 행정학과의 기획론과 유사하여 나에게는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교수님의 강의는 이론강의로 학생들에게는 강의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우리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각자 필기한 강의노트를 돌려가면서 공부를 했다. 이때 나는 학생들의 강의 노트가 내용이 다르게 정리되어있는 것을 보고 학생들의 전공에 따라 강의내용을 받아들이는 수준이 다름을 알았다.

나는 대학원에 입학한 목적이 공부보다 행정고시(이하 행시)가 1차 목표이었고, 혹시 행시가 여의치 않을 경우를 대비한 2차 목표가 대학원이었다. 2차 목표를 충족하는 데는 지방대보다 서울대가 좋을 것 같아서 선택한 것이었다. 1학기 입학과 강의가 시작되자 교과목과 강의내용이 생소하고 매시간 출석을 부르고 과제가 주어지며 발표를 해야 했다. 또한 교재도 국내판이 없어 주로 원서를 읽어야 했다. 이때 학생들은 환대원을 환경고등학교라 불렀고 행대원을 행정고시학원이라 불렀다. 이는 행대원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시생이었고 환대원은 교육시스템이 고등학교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입학과 함께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행시를 위해서 휴학을 하느냐 아니면 대학원을 위해서 행시를 포기하느냐의 양 갈래에서 선택의 기로에 직면하였다. 결국 행시를 포기하고 대학원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다. 2학기가 시작되고 나는 뜻밖에 교수님의 조교로 일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교수님은 나에게 평생의 선생님이 된 것이다.

 
아세아정책연구원 프로젝트의 참여와 교수님의 배려

나는 아세아정책연구원(이하 아정원)에서 난생 처음으로 연구프로젝트의 참여와 교수님의 인간적 배려를 경험하였다. 교수님의 조교 일은 동대문에 위치한  아정원이었다. 아정원은 당시 국회부의장이던 민관식(이하 민 박사) 박사가 설립하였고 동대문을 지역구로 하고 있었다. 민 박사님은 박정희 정부에서 문교부 장관을 지냈다.

아정원에서 첫해 연구과제는 "서울시 도심기능에 관한 분석과 개편에 관한 연구"이었다. 나는 종로구와 중구에 대한 입지분석을 하였는데 주로 사무실 입지가 주였고 그 구체적인 사무실 업무기능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약 2주 동안 수작업으로 입지계수를 구하고 도면 위에 배치하였다. 이와는 별도로 "수도권 집중억제정책에 관한 연구"에도 일부 참여하였다.

이 년차 프로젝트는 캐나다 IDRC/국제개발연구소와 서울특별시로부터 지원을 받아 "개발도상국의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때 우리는 두 개의 세부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하나는 "불량 무허가 주거지 개량사업의 평가에 관한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용 고형 폐기물 처리 방안에 관한 연구"이었다. 나는 폐기물 처리 방안에 관한 연구를 맡았다,

교수님은 한 달에 한 번씩 연구 중간점검 회의와 식사 자리를 가졌고 이때  나를 '인간 이성근'이라고 부르곤 하였다. 그러면 김원배 박사는 "우리는 인간이 아닙니까?"하고 분위기를 띄우느라 묻기도 하였다. 그러면 교수님께서 "인간 이성근은 너희하고는 달라"라고 말씀하셨다. 아마 내가 시골뜨기 촌놈이라 기를 세워주기 위해 인간적 배려로  하신 말씀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쨌든 교수님께서 나에게 '인간 이성근'이라는 남다른 별명을 지어주셨다.

 
석사과정 졸업과 진로 모색

나는 석사과정을 마치면서 종합시험 최고점수 획득과 석사학위 우수논문상을 수상하였다. 대학원은 학위과정을 수료하면 논문을 작성하기 전에 종합시험을 치른다. 당시 환대원 석사과정 종합시험은 공통 한 과목과 전공 두 과목이었다. 나는 종합시험에서 응시자 가운데 최고점수를 받았다는 것을 당시 학과장이셨던 김형국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다.

나는 종합시험을 치른 후 논문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 교수님께 상의를 드렸다. 교수님께서는 "석사학위 논문 주제와 관련하여 석사과정은 논문의 프로세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을 하는 것이라면서 논문 주제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나에게 당시 수행하고 있던 "가정용 고형 폐기물의 효율적 처리 방안에 관한 연구"를 논문 주제로 추천하셨다. 그러나 당시에 농촌에서 쓰레기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은 시기였다. 따라서 나는 폐기물의 논문 주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교수님께 다시 상의하여 논문 주제를 "불량 주택지구 정책평가와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로 변경하여 논문을 작성하였다. 나는 논문심사 과정에서 우수 논문으로 선정되어 졸업식에서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후 나는 진로 문제를 고민하였다. 당초 대학원에 진학할 때 행시를 통해 공무원이 되는 것이 희망이었고 환대원에 진학하면서 꿈을 접었으나 다시 공무원에 미련이 생겼다. 그래서 교수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자네는 어머니가 혼자 계시니 모교인 영남대학에 추천해볼 테니 가능하면 학교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주셨다.

그 후 교수님은 영남대학 추천과 임용은 다음 해 3월이고 불확실하니 그동안 국토연구원에 잠시 근무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당시 국토연구원은 신설 연구원이라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었으나 단기간 근무한다는 사유로 첫날 출근하자마자 되돌아왔다. 그래서 교수님께 저간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그러면 아정원에서 유엔인구활동기금 (UNFPA)  프로그램을 운영하다가 내년에 영남대학에 기회를 찾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유엔인구활동기금 프로젝트를 맡아 매월 인구정책 세미나를 갖는 일을 하고 지냈다.

 
영남대 취직과 교수님의 자료보완

내가 대구집에 가는 길에 영남대 학생처장이고 학부 은사이신 행정학과 김종섭 교수님을 찾아가 뵈었더니 "권 교수님이 학교를 방문하여 나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하였다"고 하셨다. 나는 아마 조교 일에 대한 좋은 평가와 종합시험의 최고 성적,  그리고 우수논문상에 대한 얘기를 하셨을 것으로 짐작하였다. 나는 다음 해인 1980년 3월에 영남대 지역사회개발학과(이후 지역개발학과로 개칭) 전임강사 대우로 임용이 되었고 그로부터 38년 간 교수로 지내다 2018년 2월에 정년퇴직을 하였다.

나는 영남대에 임용되어 대구로 가기 전에 교수님께 인사차 찾아뵈었다. 교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나에게 교수 직분에 대한 조언을 주셨다. 첫째는 내가 계획이론에 관심이 있다고 말씀을 드리자 계획이론은 절차 및 방법론에 관한 이론으로 연구비를 지원받아야 하는 전공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계획이론은 직업으로서의 전공은 어려운 분야로 대부분 기피한다. 그러나 교수는 정해진 봉급을 받고 강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계획이론을 전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둘째는 교수 직분은 타직업과 비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타 직업과 비교하면 교수 직분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고 또한 타인과 비교하면 자신이 하는 일에 상대적 박탈감을 가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셋째는 교수는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해야 유능한 교수가 될 수 있다고 하셨다. 글은 논문연구를 위해서 필요하고 말은 강의와 정책 자문에 필요한 것이다.

또한 교수님께서는 내가 대구로 간다는 인사를 드리러 간 날에 '한국의 지역사회개발론' 자료정리를 부탁하셨다. 오래전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지원으로 "새마을운동의 사업평가에 관한 연구"를 서울대 행대원 김광웅 교수님과 공동연구를 진행했는데 출판 시점에 교육부의 제동으로 출판하지 못하고 있는 원고가 있다면서 지금은 출판이 가능하여 책을 출판하려니 기존 원고의 통계자료가 오래되어 최신자료로 바꾸는데 나에게 부탁을 하였다. 또한 지금은 '새마을운동' 보다는 '한국의 지역사회개발'로 책 제목을 변경하려고 하니 지역사회개발이론과 새마을운동 이전의 한국의 지역사회개발 사업에 대한 자료 보완을 부탁하셨다. 이날 나는 두 분이 작성한 오래된 200자 원고지 뭉치를 받아들고 댁을 나왔다.

그 이후 나는 책 내용의 보완구상과 자료가 일부 정리되는 대로 교수님 댁을 몇 차례 방문하여 지도를 받으면서 자료보완을 진행하였다. 마침 이 작업과정에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따른 대학휴교령으로 강의가 없어 이 일에 매진하여 교수님이 부탁한 자료를 정해진 시간에 정리할 수가 있었다. 이 책은 1981년에 권태준·김광웅 공저자로 하여 "한국의 지역사회개발"로 법문사에서 출판되었다.



'사회학습과정' 의 주례사

교수님이 경북대 보건대학원 설립기념 세미나에 서울대 권이혁 총장님과 함께 내려오셨다. 나는 그때 동대구역에서 교수님을 만나 저녁 시간을 가졌다. 그때 "한국의 지역사회개발" 책자가 출판되어 세미나 차 내려오시면서 책과 자료수집비도 챙겨 주셨다. 그 책 서문에는 "책의 출판과정에 자료수집과 논평에 이르기까지 영남대 이성근 교수가 수고했다"는 글도 나온다.


교수님과 나는 여러 얘기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통금시간이 다 되었다. 교수님께서 기분이 좋으셔서 호텔에 같이 가자 하시기에 함께 갔었다. 나는 교수님의 방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나와서 다른 방을 정했는데 잠이 오지 않아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대학 동기한테 불쑥 전화하여 "전에 나한테 중매한다 해놓고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이튿날 친구가 바로 전화를 하여 선을 보게 되었고 몇 차례 교제 끝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당시 집사람은 경북대 간호학과 전임강사였고 나는 영남대 전임강사 대우였다.


교수님께서는 결혼 전날 대구에 내려오셔서 주례를 서 주셨다. 지금 기억으로 주례사의 키워드가 '사회학습과정'이었다. 결혼생활은 하나의 사회학습과정이고 결혼하면서 부부가 한 권의 교과서를 선택하고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상호학습과정으로 임해야 성공한 결혼생활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교수님의 소중한 주례사 대로 살지 못하고 서로 따로 공부하고 살았다는 아쉬움과 함께 지금 상호학습과정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 국비 파견 해외연구 교수

전임강사 대우로 영남대학교에 내려온 지 이삼년이 지나고 서울대 환대원에 박사학위 과정이 개설되었다. 교수님은 환경대학원장으로 계시면서 나에게 박사과정이 개설되었다면서 입학을 권유했다. 나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다니다 미국 대학에 가도 무방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박사학위 과정 시험을 치뤘다. 당시 대학원 박사학위 과정이 초창기라 입학정원 5명에 25명이 응시하여 경쟁률이 5대 1이었고 다행히 합격하였다.

그러나 나는 대학원 입학시험 이전에 교육부(당시 문교부) 국비 해외파견교수로 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험 후 연말에 미국으로 출국하였다. 대학원 등록은 집사람이 대신하였고 등록과 함께 휴학을 신청하였다.

나는 미국에 유학을 가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하면서 토플시험도 몇 차례 치르던 중 마침 문교부 국비파견 해외연구교수에 대학의 추천을 받아 원서를 내어 외국어대에서 영어시험을 치르는 절차를 거쳐 최종 선발되었다. 나는 미국을 선호했기 때문에 당시 일리노이대 도시 및 지역계획학과에 한국인인 존 킴/김창호 교수님에게 연락을 드렸더니 마침 한국에 나와있다 하여 서울에서 만나 인사를 드렸다. 김 교수님께서 미국에 돌아가셔서 바로 초청장을 보내주어 수속을 밟고 '84년 12월 31일에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미국 일리노이대에 도착하여 만난 김창호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미국에 오기가 쉽지 않으므로 여기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주었다. 당시 나는 박사과정을 어디에서 하든 배움의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김 교수님의 강의는 물론이고 관심있는 강좌는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열심히 강의에 참석하였다.

그렇게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던 차에 우리 학과의 모 교수가 불미스러운 일로 학교를 퇴직하게 됨에 따라 학과에서는 나에게 귀국하라고 의견을 보내왔다. 당시 나는 영남대를 사직하고 그대로 미국에서 박사학위과정을 다닐 것인가 아니면 서울대 박사과정에 입학을 해 놓았기 때문에 귀국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였다. 그러나 미국까지 와서 한국인 교수에게 지도를 받는 것보다는 평소 존경하고 학덕 높은 권 교수님께 지도를 받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귀국하였다.

나는 귀국과 함께 대학원에 복학하여 박사과정을 시작하였다. 영남대에서 강의를 하고 프로젝트도 수행하면서 1박 2일로 서울대 박사과정 수업에 참여하였다. 한 이년이 지나자 몸에 무리가 와서 돌발성 이명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도 받았다.

마지막 학기에는  종합시험 세 과목을 치렀는데 시험방법이 특이하여 토요일 12시에 문제를 받아 익일 일요일 12시까지 제출하는 것이었다. 나는 시험 관련 자료를 두 보자기에 싸서 서울로 갔다. 학교에서 문제를 받음과 동시에 여관 찾느라 봉천동에서 사당동까지 가서 어렵게 구한 여관방에서 밤새도록 시험문제지에 답안을 쓰고 이튿날에 제출하였다. 종합시험은 다행히 합격을 하여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하게 되었다.
 

서울대 환대원 국내교류교수로 박사학위 취득

 나는 박사논문 연구를 위한 시간을 가지기 위해 문교부 국내교류교수로 서울대 환대원에 가게 되었다. 환대원에서는 국내교류교수 조건이 파견대학에서 한 과목 이상 강의를 맡아야 했기 때문에 학과장인 김형국 교수님께서 과목배정을 해주신 기억이 난다. 나는 서울대에서 한 학기를 지내고 한 학기는 대구로 내려와서 논문의 실증연구를 진행하였다.

국내교류교수로 파견 중에 교수님께서는 '이론과 실천 세미나'를 설치하여 매월 1회 토요일 오후에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나는 국내교류교수로 환대원에 근무하는 동안 세미나에 한번도 빠짐없이 참석하였고 여기에서 많은 배움의 기회를 가졌다.

나의 학위논문 주제는 "공동생산적 참여과정에 관한 연구"이었다. 교수님의 학위논문 주제가 "계획 주체와 객체의 상호적응과정에 관한 연구"이고, 나의 논문은 계획의 이해당사자가 공동생산자로 참여하는 논문이었다. 논문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중간중간에 교수님을 찾아뵙고 지도를 받아가면서 진행하였다.

논문의 이론적 연구가 마무리 되면서 나는 대구로 내려와 실증연구를 진행하였다. 당시 한국토지공사의 협조를 받아 택지개발사업지구 주민에 관한 설문조사와 조사결과를 분석하여 이론화하였다. 일 년 동안 논문연구에 매진하였다. 심사과정에서 몇몇 후배들과 토론과 수정을 거치면서 논문에 완성도를 높였다. 이때 낙성대에 있는 호암교수회관을 많이 이용하였다.

교수님은 논문심사 통과 후 학위논문을 전문서적으로 출판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출판하지  못하여 아쉬움이 크다. 만약 교수님의 말씀대로 출판하였다면 지금의 화두인 '협력적 계획이론'과 한국의 협력적 계획의 이론과 실제에 선도연구로 기여하였을 것이다. 나는 그 이후에 교수님이 주관하는 전공도서에 논문을 싣기도 하고 성곡학술재단의 연
구공모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논문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1973년 국전 대통령상을 수상하신 우죽 양진니 선생님이 주신 글

 
사제동행의 추억과 교수님의 ‘특별한 기대’

나는 영남대 교수로서 영남대에 근무하면서도 교수님을 잊은 적이 없고 늘 함께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문득 교수님의 은덕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교수님의 추천으로 영남대 교수가 되고 교수님의 가르침으로 학문적 성장을 이뤘으며 교수님의 제자로 유무형의 프리미엄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할 길이 별로 없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뜻밖에도 교수님을 모실 기회가 여럿 생겨났다.

첫 번째는 내가 주관하는 경북의제21추진협의회 경주행사에 기조 강연자로 교수님을 초청한 것이다. 그날 행사를 마치고 친한 후배 두 사람을 불러 교수님과 저녁 시간을 보내고 불국사 인근 코오롱 호텔에서 일박을 하였다. 두 번째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 상징 조형물의 설치를 위한 자문으로 김성경 사무처장의 부탁을 받아 교수님과 당시 국토연구원에 근무하던 김원배 박사를 초청하여 자문행사를 가진 일이다.  나는 김 처장의 영남대 행정학과 선배이자 박사과정의 지도교수이었다. 세  번째는 교수님의 부친이신 서울대 총장을 지낸 권 총장님께서 돌아가시고 얼마되지 않아 교수님 내외분을 자유스런 분위기로 경주에 초청한 일이다. 경주에 여장을 푼 후에 교수님과 사모님을 모시고 포항의 해변가 식당에서 식사한 기억이 새롭다. 특히 그날 사모님이 크게 기뻐하시는 것을 보고 나도 마음이 좋았다. 나는 그 옛날 학생시절에 저녁 늦게 교수님과 함께 댁을 방문하기도 하고 심지어 잠자기도 하는 등 시건머리 없는 행동으로 사모님께 수고를 많이 끼쳤었다. 네 번째는 내가 행대원 원장 재직 시 최고위 정책 리더과정(이하 최고위)에 교수님을 강사로 초청한 일이다.  특강을 마친 후 교수님을 모시고 식사와 함께 노래도 부르고 오랜만에 좋은 시간을 가졌다. 특히 현재 대구카톨릭대 학장으로 있는 서경규 교수에게 한 말씀이 생각난다. 당시 서 학장은 감정평가사이면서 내가 지도교수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다. 내가 서 교수를 소개 드렸더니 교수님께서 "내가 할배 교수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교수님과 오랜만에 좋은 시간을 가졌고 교수님도 좋은 기분을 가지셨다.

다음은 교수님께서 나에게 가진 특별한 기대이다. 언제인가 내가 서울에서 교수님을 만나 식사를 마치고 대구로 오는 도중에 교수님께서 전화를 하셔서 "이 교수 영남대 총장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는 교수님의 이런 말씀이 내가 대학의 경영역량도 가진 것으로 평가한 것과 나에 대한 인정감과 사랑의 말씀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교수님의 그런 말씀을 나의 마음속에 담아서인지 나는 정년 일 년을 앞두고 영남대 총장에 출마하였다. 직선이 아닌 간선이기에 열심히 경영계획서를 작성하여 발표를 하였으나 낙선하였다. 나는 영남대학의 경영계획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대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영남대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한국 사학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진 것은 성과라고 생각한다.

 
대구경북연구원(이하 대경연) 원장 재임기간의 자문

하나는 내가  학교를 휴직하고 이 년여 기간 동안 대경연 원장으로 일하면서 교수님과의 일을 기억한다. 나는 서울 출장길에 교수님을 모시고 서초동에서 식사한 일이다. 내가 차편으로 교수님 댁에 갔는데 사모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는 것을 보았다.

다른 하나는 연구원에서 경북도 의뢰로 "새마을국제화재단 설립 타당성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교수님의 자문을 받은 일이다. 연구진의 발표와 교수님과 두세 분의 자문 의견을 들은 후 마무리로 내가 요약정리를 하였다.

회의를 마치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교수님께서 나에게 요약정리를 잘했다는 칭찬의 말씀을 해주셨다. 내가 아는 교수님은 칭찬이 인색한 편이다. 나는 십여 년간 공부하면서 직접 칭찬받은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옛말에 "칭찬은 죽은 사람도 깨어나게 한다"는 말이 있다. 칭찬은 인색하기보다 넉넉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칭찬이 너무 지나쳐도 좋지 않다. 무엇이든 적당한 것이 좋을 듯 싶다.

 
정년 이후의 만남과 아쉬움

그렇게 교수님을 뵈온 이후 친하게 지내는 동문 몇 사람과 함께 교수님 내외분을 모시고 수차례 식사하는 시간을 더 가졌다. 교수님이 그린 그림 액자를 가져와 나에게 주셨다. 사모님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렸고 제자들에게 선물로 주셨다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오랫동안 만나는 기회를 기질 수 없었다.
 

교수님이 그려서 나에게 주신 그림


수년 전에는 사모님이 건강문제로 시술하셨다고 하셨다. 당시 교수님께서 많이 놀라셨을 것이다. 지금은 교수님이 건강문제로 병원에 계신다. 교수님의 쾌유를 간절히 빈다. 나도 나이를 들다 보니 군사부일체로 부모와 스승은 같다고 하나 아무래도 스승과 제자 관계보다는 부모와 자녀 관계가 더 편하고 오히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 필자도 정년을 하고 교수님과의 인연을 되돌아보니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서는 몇 가지 아쉬움을 정리해 본다.

하나는 교수직을 시작하면서 계획이론의 지속적 연구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으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다. 둘은 박사학위 논문으로 작성한 공동생산에 관한 이론을 전문서적으로 출판하라고 하였으나 실천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교수님은 필자에게 늘 관심과 사랑을 주셨다.

나에게 교수님은 세 가지 길을 터주신 진정한 스승이다. 하나는 학문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교수의 길이며 마지막 하나는  교수 인생의 길이다. 그리고 교수님은 나에게 '인간 이성근'이라 부르며 인간적  신뢰와 기대와 희망을 주셨다. 내가 평생 교수 직분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며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교수님의 지속적인 가르침과 사랑의 힘이었다고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나를 평한 말씀을 타인의 글로 대신한다.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 : 소중한 지인으로부터 읽는 이성근 교수의 회상록(2021)"에 박찬용 교수가 쓴 글에 교수님이 나를 평한 글을 소개한다. "권태준 원장님께서는 이 교수는 매우 성실하고 논리 정연한 학구파이며 굉장히 노력을 하는 사람이기에 학자로서 장래가 매우 촉망된다고 하셨습니다."

 
 
교수님 항상 감사합니다. 

 
"인생의 세 가지 길을 터주신 권태준 교수님"에 대한 답글  

선배님, 귀한 글 고맙습니다./   김수현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교수님, 귀한 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도 함께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인권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무부원장

교수님, 감사합니다. 권태준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깊이 느껴집니다./ 김두환 박사 LH 연구원

이 교수님 감사합니다. 이 내용을 저희 선후배님들과 공유하였습니다./
박세훈 박사 국토연구원

교수님!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과의 인연이 정말 특별하시네요. 슬픈 자리였지만 오랫만에 뵈어서 반가웠습니다./
김륜희 박사 LH 연구원

평생을 은사를 모시고 살 수 있다면 정말 '행운'이겠지요. 더구나 그 은사님께서 아직 '살아계시다면' 더욱 큰 행운이겠지요. 평생을 잊지 않고 사셨으니까 그런 관계가 이루어졌겠지만, 어쨌든 행운이구나 하는 생각이 짙게 듭니다. 그렇게 사회활동을 하도록 격려하셔서, 교수님께서 많은 활동을 하셨구나 싶습니다. 또 교수님의 결혼이야기도 재미있지만, 특히 '사회학습과정'이라는 주례사도 많이 기억됩니다./
김정숙 영남대 국사학과 명예교수, 명예교수회  편집위원장

"인생의 세 가지 길을 터주신 권태준 교수님"의 글을 경건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강의시간에 권태준 원장님 얘기도 자주하셨지요. 권 교수님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이구석 영남대 지역개발학과(79학번)/ 전 서울특별시청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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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전선린(歸田善隣)은 인간의 귀결은 신과 자연으로 돌아가고 평소 이웃과 가정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귀소본능이 있다. 나 또한 내 인생의 텃밭이었던 대학을 떠나 가정에 충실하고 자연과 신에 가까이할 때가 되었다.
이 글은 나의 인생 후반전의 지향가치인 귀전선린의 생활에서 자연스레 만난 따뜻하고 합리적이며, 그리고 선한 이웃들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귀전선린의 만남은 제주 서귀포의 자연에서  만난 배려의 마음씨를 지닌 선한 이웃에 관한 글이다.
배려는 남을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려고 마음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전통적인 공동체 사회에서 배려는 사회구성원들이 가지는 하나의 사회규범이었다. 현대의 공유와 협업사회에서도 배려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중요한 덕목이 된다. 배려는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이 사회를 지탱하는 기제가 된다.
배려는 대단히 추상적 개념이자 아주 구체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따라서 배려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나는 재작년 7월 중순부터 서귀포에서 지내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대구에 가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서귀포에서 지낸다. 나는 서귀포에서 새로운 선한 이웃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숲 해설사로 일하는 현 선생님(이하 존칭 생략)이고 다른 한 사람은 경기도에서 중등학교 교장과 교육장, 그리고 교육행정의 고위직을  지낸 김 선생님 (이하 존칭 생략) 이다. 벌써 이들과 지낸 기간이 이 년여에  가깝다.

현 선생과 김 선생과의 첫 만남은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이루어졌다.
현 선생의 만남은 내가 서귀포 생활에 필요한 여러 유익한 정보를 가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김 선생의 만남은 제주의 여러 다양한 자연을 섭렵하는데 안내자이자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이 글을 통해 두 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여기서는 내가 이 두 사람과 교류하면서 가진 특별한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배려의 마음씨가 체화된 현 선생에 대한 소개이다.

내가 경험한 현 선생의 배려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배려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 하는 공생의 배려이다.

하나는 현 선생의 인간적 유대감을 통한 사회적 배려에 대한 소개이다.
현 선생은 평생을 서귀포에서 산 토박이로 전형적인 서귀포인이다.  현 선생은 서귀포의 모두를 좋아한다. 특히 산과 바다, 그리고 문화를 좋아한다. 또한 사람을 좋아하고 여유를 즐길줄 아는 사람이다. 그냥 좋아만 하는 것이 아니고 서귀포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홍보한다.

현 선생은 숲과 나무를 볼 줄 알고 상황판단력이 빠른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래서 나에게 현 선생은 서귀포 생활의 멘토이다. 나뿐만 아니라 외지에서 온 사람들 가운데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서귀포 정착에 도움을 받은 이가  상당하다. 이와 같은 현 선생의 배려의 마음씨는 서귀포에 대한 애향심과 타고난 사회적 배려심에 기인한다. 현 선생이 인간적 유대감을 통해서 외지인의 서귀포 조기 정착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런 현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서귀포 홍보대사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과 자연의 공생적 배려에 대한 소개이다.
인간은 자연의 다양한 배려 속에서 성장하고 존재한다. 
현 선생은 산을 좋아하는 서귀포 토박이다. 우리 두 사람은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어 차와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하루는 현 선생이 "나이 들면 산에 가기 힘들 것에 대비하여 집에서 숲을 즐기기 위해 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고 하였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자기 집에 감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새들을 위해서 감을 따 먹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자신은 감을 사서 먹는다"고 하였다. 나 그 얘기를 듣고  궁금하여 이튿날 현선생 집을 방문하였다. 정말 도시 속에 자연처럼 다듬지 않은 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었고 감은 주렁주렁 달려있었으며 거기에 여러 종류의 새들이 와서 감을 먹거나 지저귀고 있었다. 나는 현 선생이야말로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삶을 실천하는 분이라고 생각하였다.
 

다음은 김 선생이 나에게 보여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배려심에 대한 소개이다. 역지사지는 "상대편의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는 사자성어이다.
 김 선생과 나는 서귀포 치유의  숲을 산행하다 우연히 만나고 인사를 나누면서 새로운 선한 만남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첫 만남에서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고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친하게 되었다. 우리는 평생 교직에 종사한 교육동업자이고 나보다 나이가 두 살 위이나 비슷한 연령대로 인생전반을 함께한 동반자이며, 그리고 조용하면서 조신하는 성격 또한 비슷하였다. 특히 우리는 가족이 가끔씩 서귀포로 오가는 싱글족으로 가정과 시간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제주의 자연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제주의 자연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김 선생은 이미 대부분 산행한 곳이고 나를 안내하고 배려하는 차원에서 산행한 것이었다.

우리는 산행의 만남을
지속하면서 자연스레 몇 가지 룰을 가지게 되었다. 가능한 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승용차 사용시에는 서귀포 동쪽을 가면 김 선생의 차를 이용하고 서쪽을 가면 내 차를 이용하였다. 산행중의 간식은 각자 지참하고 식사비는 번갈아가면서 계산하였다.
이와 같은 산행을 반복하면서 김 선생의 몇 가지 품성을 알게 되었다. 한 번은 우리가 영실코스를 탐방하고 하산하는 길에 힘들게 걸어가는 등산객을 보고 김 선생이 차를 세워 태워주는 것이었다. 그 등산객은 김 선생에게 "오늘 선생님의 선행을 자기도 어느 누구에게 선한 일을 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이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고 우리의 국민수준이 이 정도로 성숙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등산객 또한 김 선생의 선행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언술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종종 김 선생과 함께 산행을 하면서 인품에서 묻어나는 인향을 느낀다. 이와 같은 김 선생의 선행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다음은 
한라산 백록담 탐방에서 나에 대한 김 선생의 따뜻한 역지사지의 배려이다.
는 한라산 백록담 탐방을 난생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 왕복 약 20킬로에 9시간여 산행을 하는 코스이다. 나는 마지막 백록담 정상 가까이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때 동행한 김 선생님이 나의 가방을 메고 인도해 주었다. 평소에는 가벼운 가방이지만 힘든 시기에는 그렇게도 가방이 무겁게 느껴졌다. 가방을 벗으니 훨씬 내 몸이 가벼웠다. 이튿날 아침 어제 일로 문득 송강 정철 선생의 시조가 생각났다.

이고진 저 넑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은 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러라커늘 짐을 조차 지실까

노인을 공경하고 존중하며 사는 전형적인 유교사상의 효를 강조하는 시조이다. 이튿날 김 선생을 만나 저녁식사하는 자리에서 감사의 마음으로 이 시조를 읊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배려 개념이 부족하고 배려심에 인색하다. 특히 나의 인생은 배려가 다른 무엇보다 부족하였다고 생각된다.
나는 평생의 교수직분에서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것이 봉사와 배려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정년 이후 지금은 의미있는 일 하나는 갖고 싶어 티스토리 블로그를 하고 있고 최근에 네이버 블로그 까지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글을 마치면서 지구촌의 일원인 인간에게 배려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유용한 덕목이자 윤리기준의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특별히 내가 지향하는 인생후반기의 귀전선린의 삶과 만남에서도 배려심은 더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참고
1. 배려는 공자 사상의 중심 개념인 인과 유관하다. "논어" '옹야편'에 '충서'가 나온다. '충'은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자신이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면 남도 이루어지도록 해주는 것을 말한다. '충'은 적극적이고 자기 기준으로 배려를 한다. '서'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뜻으로 소극적인 개념으로 관용에 해당한다.
2.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하라는 고사성어이다. 맹자의 '이루 하(離婁下)편'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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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해무변(學海無邊)은 ‘배움에는 바다와 같이 끝이 없다’는 의미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는 끝이 있을 수 없다. 학해무변은 당나라 때의 문필가 한유(韓愈·768~824)의  "증광현문(增廣賢文)"의 '권학문' 구절에 나오는 글로 탄허스님도 이를 자주 사용하였다. 또한 "글의 밭은 길이 있으니 근면함을 길로 삼는다(書田有路 勤爲徑)"도 나온다.
나는 이 말이 교수직분에 정확히 맞다고 생각한다. 특히 학해무변은 교수의 미션 가운데 연구에 해당한다. 교수의 연구활동은 논문발표, 정책연구, 저술, 학회활동 등이다.

나는 학해무변의 만남으로 대학생활에서 다양한 연구활동과 연구성과물을 내었다. 저서(개정판 포함) 41권, 논문 180편, 학술발표 71회, 프로젝트 81건, 기타논문(잡지포함) 83편, 언론기고 239회 등이다. 나는 「최신 지역경제론」(법문사, 2인 공저)의 저술로 「(사)한국지역개발학회」의 학술상(2008), 「성공전략과 협상」(영남대출판부, 5인 공저)으로 문화관광부 우수교양 도서로 선정(2003), 영남대 개교 60주년(2016) 우수연구상(저술 부문)을 수상하였다. 또한 「(사)한국지역개발학회」 30주년(2018) 기념행사에서 최우수학술상(학회지 논문편
수 부문)을 받았다. 그리고 제42회(2001) 경상북도 문화상(인문사회과학 부문)을 수상하였다.

이와 같은 나의 연구활동은 주로 동학의 교수들과 협동연구로 이루어졌다. 이는 나의 전공인 도시 및 지역계획학이 종합과학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나의 연구성과는 연구실에서 함께한 대학원생들의 헌신적인 도움에 기인한 바 크다.

한편 나는 교수 정년을 수년 앞두고 「대구경북연구원」 원장으로 일할 기회를 가졌다. 이 기간에 교수개인으로 수행하기 힘든 연구과제도 수행하는 경험을 하였다.
다른 한편 「(사)한국지역개발학회」와 「(사)대한지방자치학회」의 회장과 전공 관련 유관학회의 부회장으로도 활동하였다.

이와 같은 나의 학해무변의 만남은 지속되고 있다. 하나는 기 출판된 전공서적의 소진으로 개정판의 작업에 기존 저자에다 새로운 저자가 참가하는 신진과 중견 학자들과의 신선한 만남이다. 다른 하나는 정년 이전에 설립한 사단법인 한국지역균형연구원의 운영에 참여하는 오래된 동학들과의 따뜻한 만남이다. 마지막 하나는 정년 이후 새롭게 기획하는 출판작업에 참여하는 전문가들과의 여유로운 만남이다. 과거와는 달리 추진 열정과 동럭은  떨어지지만 이들 작업을 생각하고 준비하여 오래된 지인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이로부터 즐겁고 기쁘며 생활의 활력을 얻는다.
 
학해무변의 만남은  나와 연구 및 학회활동을 함께한 동학들이다. 여기서는 저술활동과 학술 및 정책연구, 연구원장 시절, 학회활동 등에서 함께한 분들의 글이다.

이 글을 마치면서 이들이 보내준 학해무변의 인연에 대한 제목을 소개하고 작지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30년간 함께한 협업의 동반자┃우동기 
이성근 형과의 추억┃최성연 
이성근 교수님과의 인연을 생각하면서┃이동신 
光陰如矢(광음여시)┃노광욱 
추억의 슬라이드를 담으며┃나주몽 
만남의 중요성을 알려준 존경하는 이성근 교수님께┃서정섭 
존경하는 이성근 교수님께┃이현국 
이모부이자 교수님의 인연┃오형은 
이성근 교수님과의 만남┃박상철 
전공학문과 인간적 교류┃안정근 
이성근 교수님과 함께한 36년의 세월┃박찬용 
소신과 원칙이 뚜렷한 학자┃이주석 
이성근 교수와의 인연┃이춘근 
진지하고 열정적인 학자┃오창균 
나무와 숲을 보는 정책전문가┃홍진기 
계획가로서의 롤모델┃최영은 
연구원 같은 원장님, 학생 같은 교수님의 열정을 생각하며┃임규채 
「대구경북연구원」 원장을 역임하셨던 이성근 교수님 퇴임에 즈음하여┃이문희 
항상 새로운 것을 준비하고 계획하던 원장님을 기억하며┃나중규 
이성근 교수님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드리며┃김용현 
내 기억 속의 이성근 원장님┃이정미 
이성근 교수님과의 인연(因緣)┃고병호 
따뜻한 영남의 선비┃임경수 


참고
1. 한유(韓愈·768~824)는 당나라 때의 문필가로  "증광현문(增廣賢文)"이란 글에서 유명한 '권학문' 구절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서전유로 근위경(書田有路 勤爲徑) 학해무변 고작주(學海無邊 苦作舟)"
'글의 밭은 길이 있으니 근면함으로 길을 삼고, 배움의 바다는 끝이 없으니 고행을 배로 삼는다.'
2. 탄허 스님은 모든 것을 품는 태평양으로 불렸고 학문의 세계는 끝이 없다는 학해무변'(學海無變)을 늘상 강조하였다. 1966년 동국역경원 개원식에서 탄허 스님은 "법당 100채를 짓는 것보다 스님들을 공부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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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2대 총선정국이고 여야 정치권에서는 지역과 비례 국회의원 후보자 선정의 막바지에 있다. 그간 여야정치권은 후보자 선정과정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우리 일반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홍보전화와 정치권과 언론의 수많은 여론조사로 일상에 지장이 있을 만큼 시달려왔다.

이번 4월 10일에 치러지는 총선에서는 지역구 국회의원 254 명, 비례대표 국회의원 46명을 선출한다. 국회의원 총선거와 더불어 2024년 재보궐선거도 동시에 치러질 예정이다.

우리 일반 유권자는 총선에서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하나는 지역대표의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비례대표의 선택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지역대표와 비례대표를 선택할 것인가?
필자는 지난번 글에서 지역국회의원 예비 후보자의 합리적 선택기준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번 글은 우리 일반 유권자가 지역대표와 비례대표의 선택을 포함한 정치권 전체의 선택을 위한 여덟 가지 경계해야 할 정치행태와 22대 총선의 선택기준에 대한 논의이다. 또한 이 글은 필자가 우리 정치권 전체에 바라는 정치선진화의 길이기도 하다.


이 글은 필자가 좋아하는 「서경」 대우모편에 나오는 '만초손 겸수익'의 한자성어를 차용하여 논의하고 있다. '만초손 겸수익’은 사물은 한껏 차면 자만심이 생기므로 손실을 초래하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는 의미이다. 「서경」은 고대 중국 제왕들의 정치에 관한 것을 기록한 유교경전이다. 이 한자성어는 오래전부터 나의 연구실 벽에 걸려있고, 가끔씩 나를 다스리는 차원에서 의미를 되새겨 보는 글귀이다.
 
첫째, 오만과 편견의 정치행태이다. 오만과 편견은 편향적 사고, 균형상실, 오만방자, 비호감, 편 가르기, 폐쇄 등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 우리의 정치권이 오만과 편견의 정치행태가 아닌지 세심하게 살펴볼 때이다. 우리 모두는 균형과 조화의 정치를 바란다. 이는 가치중립과 합목적성, 견제와 조정, 공감과 화합의 정치행태이다.
 
둘째, 교만의 정치행태이다. 교만은 타인에 대한 존경심이 없고 자기중심적이며 경청이 부족하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남의 눈치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만은 패망을 이끄는 선봉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의 정치권이 교만의 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눈여겨볼 때이다. 우리 모두는 상호존중과 배려의 정치를 바란다. 이는 대화와 설득, 타협과 양보의 정치행태이다.
 
셋째, 거만한 정치행태이다. 거만은 거드름, 힘의 과시, 상대방 무시, 편법과 궤변 등의 행태를 말한다. 거만은 붕괴의 지름길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의 정치권이 국민을 무시하는 거만한 정치행태가 아닌지 주의와 경종을 울릴 때이다. 우리 모두는 겸손과 상식의 정치를 바란다. 이는 국민여론에 민감하고 소수의견도 존중하는 부드럽고 친절한 정치행태이다.
 
넷째, 자만의 정치행태이다. 자만은 자신감에 넘쳐 편의적으로 해석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며 일방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행태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권이 자만심에 빠진 일방통행의 정치는 아닌지 정치인 스스로 성찰할 때이다. 우리 모두는 국가와 국민에게 품격있고 진정성을 보이는 정치를 바란다. 이는 소통과 협업,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 그리고 쌍방적이고 종합적 판단의 정치행태이다.
 
다섯째, 태만의 정치행태이다. 태만은 게으르고 나태하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핑계와 남의 탓으로 돌리고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초심을 잃고 원래대로 회귀하는 행태이다. 또한 불성실하고 무책임하다.
지금 우리의 정치권이 소명감과 책무성이 부족한 정치가 아닌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는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윤리적인 정치를 바란다. 이는 책무성과 소명의식, 과정충실과 결과성취의 정치행태이다.
 
여섯째, 방만의 정치행태이다. 방만은 낭비, 무절제, 포퓰리즘, 비효율성의 행태이다. 국가부채의 무관심과  재정불건전의 정부행태도 이에 속한다.
지금 우리의 정치권이 방만한 정치행태가 아닌지 국민의 모니터링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 모두는 적정과 효율, 그리고 건전한 정치를 바란다. 이는 절제와 절약, 재정건전성과 성과창출의 정치행태이다.
 
일곱째, 기만의 정치행태이다. 기만은 잘못에 대해 속이고 현상을 왜곡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행태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권이 국민과 여론을 기만하는 정치행태는 아닌지 감시체제를 강화해야 할 때이다. 우리 모두는 솔직하고 정직한 정치를 바란다. 이는 공정과 정의, 정상과 신뢰의 정치행태이다.
 
여덟째, 국민을 불안케 하는 정치행태이다. 불안은 위기와 위험, 불쾌와 불만족 등 부정적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이와 같은 심리적 상태는 상대방의 비판에 대해 수용력이 부족하고 반대편에 적대적이고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지금 우리의 정치권이 불안과 불만, 그리고 불쾌지수가 높지는 않은지 평가해 볼 때이다. 우리 모두는 안정과 만족, 그리고 국민행복의 정치를 바란다. 이는 위기와 위험보다는 안전, 불쾌보다는 호감, 불만보다는 만족, 갈등보다는 화합과 통합의 정치행태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우리 일반 유권자들은 '만초손 겸수익 즉, 겸손의 정치'를 바란다. 이는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대한민국과 국민행복수준을 높이는 길이고 우리가 희망하는 정치선진화의 길이 되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필자는 이번 총선에서 우리 유권자가 만초손 겸수익에 기반한  정치권 전체에 대한 조망/ 거시적 주사(macro scanning)와 개별 정치인에 대한 평가/ 미시적 주사(micro scanning)를 통해 선택하기를 바란다. 이는 혼합주사적(mixed scanning) 의사결정 접근방법이고 상황결정적 결정 (contextual decision ) 접근방법이기도 하다.

이 글을 마치면서 이번 22대 총선에서 우리 유권자가 주목하고 경계해야 할 여덟 가지 정치행태와 22대 총선의 선택기준을 요약한다.

첫째, 오만과 편견의 정치행태이다. 조화와 균형의 정치인을 선택하자.
둘째, 교만의 정치행태이다. 존중과 배려의 정치인을 선택하자.
셋째, 거만한 정치행태이다. 겸손과 상식의 정치인을 선택하자.
넷째, 자만의 정치행태이다. 소통과 공감, 그리고 협업하는 정치인을 선택하자.
다섯째, 태만의 정치행태이다. 성실하고 윤리적인 정치인을 선택하자.
여섯째, 방만의 정치행태이다. 적정과 효율, 그리고 공정의 정치인을 선택하자.
일곱째, 기만의 정치행태이다. 솔직하고 정직한 정치인을 선택하자.
여덟째, 국민을 불안케 하는 정치행태이다. 화합과 통합의 정치인을 선택하자.


(사)한국지역균형연구원, 2020. 11; 자유와 창의의 지역세상, 2021. 3; 이성근 교수의 인생사색3. 2023.8 에서 재수정
 
 

사진/ 이성근. 원앤온리 까페에서 바라본 산방산 . 2024. 3. 15
사진/ 이성근. 사진/ 이성근. 원앤온리 까페에서 바라본 산방산 . 2024. 3. 15
사진/ 이성근. 제주 올레 7코스(서귀포)에서 바라본 외돌개와 문섬 . 2024. 3. 15
사진/ 이성근. 제주 올레 7코스(서귀포)에서 바라본 문섬 . 2024.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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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학무실(勤學務實)은 배움에 부지런하고 맡은 일에 충실함을 의미한다.
이는 율곡 이이의 무실사상과 중봉 조헌의 무실정신과 의리정신에 기반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무실사상의 무(務)는 존재가치의 임무(mission)와 목표(goals)에 충실하는 책무성과 소명감이고, 실(實)은 진정성에 기반한 실천역량(practical competencies)과 실효성(efficacy)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또한 무실정신과 의리정신은 3정으로 1정은 정직성과 진정성이고, 2정은 소신과 신념이며, 3정은 희생과 헌신을  가리킨다.

또한 근학무실은 16세기와 17세기에 걸친 잉글랜드의 철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와 미국 하버드 대학교 교수이자 다중지능이론가인 하워드 가드너의  "미래 생산적인 인간이 가져야 할 다섯 가지 마인드 "가운데 하나인 '훈육의 마음(disciplined mind)'과 의미를 같이 한다.
 

나에게 근학무실의 만남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특수대학원인 환경대학원의 환경계획학과와 행정대학원의 지역개발학과에서 학위논문 지도교수로 함께한
논문지도 학생들과의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지방자치 이전의 내무부 시절 지방행정연수원에서 주관한 전국 시·도 논문발표대회인 지방행정연수대회의 경상북도 자문교수로 활동하면서 교류한 경북도청의 엘리트 공무원들과의 만남이다.


먼저 특수대학원 학위논문 지도학생들과의 만남을 보자.

우리나라의 대학원은 일반대학원, 특수대학원, 전문대학원 등으로 구분된다. 이들 대학원의 학업기간은 일반대학원이 4학기제이고 특수대학원은 5학기제이며 전문대학원은 6학기제이다. 특수대학원 가운데 교육대학원과 같은 계절제(여름과 겨울) 대학원은 6학기제로 운영된다.

대부분 대학원의 마지막 학기는 학위논문연구 학기가 된다. 대학원생들은 마지막 학기인 학위논문연구를 위해 그간의 재학기간과는 달리 지도교수와 지속적으로 만남을 갖는다. 이 기간에 학생들은 개인적 사정에 따라 지도교수와의 만남에 차이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특수대학원생들은 일반대학원의 학생들과 달리 직장을 가지고 학업을 이어간다. 또한 원생들은 논문연구 경험이 없어 힘든 마지막 학기를 보낸다. 일부 학생들은 논문연구가 힘들어 학위취득을 포기하고 수료로 과정을 마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학생들의 논문이 가끔  표절문제로 드러나 당사자인 학생은 물론이고 지도교수도 낭패를 보기도 한다.

그래서 현재 특수대학원은 마지막 학기의 학위논문연구 대신에 추가로 3 내지 6학점을 이수하면 학위를 취득하도록 하고 있다. 내가 주로 학위논문연구 지도를 할 당시에는 이런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지도교수와 학생들 공히 논문연구가 힘들었고 그만큼 애증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논문연구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이에 비례하여 서로 간에 성취감과 인간적 신뢰가 컷던 것도 사실이다.

나의 특수대학원 학위논문 지도학생들과의 만남은 환경대학원의 도시 및 지역계획학 전공과 행정대학원의 지역개발학 전공 학생들이다. 나는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에서 도시계획학 석사 37명과 석사과정 수료 4명을 지도하였다. 또한 행정대학원 지역개발학과에서 행정학 석사 59명과 석사과정 수료 5명을 지도하였다.

지금은  학위논문연구와 관련하여 제도개선이 되었으나 당시에는 학위논문연구가 필수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특수대학원생들은 대부분 직장을 가지고 수학한다. 따라서 직장생활을 하는 대학원생들이 가장 어려운 학기가 논문학기이었다.
나는 학위논문 지도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영남대학교 「이론과 실천연구회(약칭, 이실연)」를 만들어 선·후배 간 정보교류와 상호학습기회를 제공하였다.
이 연구회는 지금도 모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인간적이며 만나면 항상 즐겁다.


다음은 지방행정연수대회의 경상북도 자문교수로 교류한 경북도청의 엘리트 공무원들과의 만남에 대해 보자.

지방행정연수대회의 경상북도 자문교수는 1986년에 처음으로 참여하였고 이후 약 10년간 지속되었다. 지방행정연수원에서 논문주제가 주어지면 전국 16개 시·도가 연구단을 구성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단장은 내무국장이고 연구원은 고시출신 행정사무관 4~5명이며 간사는 지도계장이 맡았다. 연구기간은 수개월이 주어졌다.

내가 자문교수를 맡은 10년간 경상북도는 수상을 놓친 적이 없다. 당시 대부분의 고시출신 사무관들은 통과의례로 연수대회 연구원으로 참여하였다.
나는 이들과 논문연구와 함께 인간적 교류기회도 갖게 되었다. 나는 교수인생에서
연수대회 자문교수로 참여한 것이 자랑스러운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인생 여정 특히, 교수직의 인생 여정에서 근학무실의 만남은 여러 가치있는 만남 가운데 특별한 만남이었고, 지금도 이들과 보낸 논문연구 활동과 시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필자는 우리가 긴 여정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배움에 부지런하고 맡은 일에 충실함을 의미'하는
'근학무실(勤學務實)'의 마음을 가지면 성공하는 삶과 성취하는 하는 삶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따라서 근학무실의 마음은 긴 여정의 인생에서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이자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마치면서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라는 회상록의 근학무실(勤學務實) 편에 실린 영남 이실련  회원과 과거 도청 엘리트 공무원의 글 제목을 소개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특수대학원 논문지도학생들과의 만남
제 인생의 멘토┃신장하
理實硏과 논문지도┃안종록
이성근 교수님의 정년퇴임┃엄익주
나의 롤모델이신 교수님┃이상진
소중한 인연┃성병용
인생의 전환점에서 변화를 주신 분┃한규용
교수님 그동안 지도에  감사드립니다┃구용호
내 인생의 새로운 변화를 주신 교수님┃최병윤
영남의 젖줄 낙동강┃봉종기
이성근 교수님 정년퇴임을 생각하다┃이창형
이성근 교수님의 제2의 인생전환에 즈음하여┃심영회
이교수님과의 인연과 지속적 만남┃이재실
이성근 교수님과의 만남┃안영식
참 좋은 인연으로 삶이 행복합니다┃박동규
큰 소나무 교수님┃김판조
꽃피는 어느 봄날에요┃이성기
교수님의 정년을 축하드리면서┃정상오
인고의 석사논문┃최종걸
존경하는 교수님┃박순부
이성근 교수님께┃김석호
교수님과의 인연┃이주현
만학의 꿈을 꾸면서!┃허주열
人生은 學而時習之의 連續┃박동섭
골프약속┃김상걸
교수님의 정년퇴임을 축하드립니다┃정석윤
이성근 교수님의 회고록 출판 기념에 즈음하여┃금창애
나는 영남대학에 와서 자작나무와
우포늪의 사랑나무를 보았다┃윤순이
 
지방행정연수대회의 경상북도 자문교수로 교류한 경북도청의 엘리트 공무원들과의 만남
이성근 교수님과 나┃정송
지방행정연수대회를 함께한 이성근 교수님┃권영수
지방행정연수대회로 만난 인연┃정병윤
이성근 교수님을 추억함┃김재원
전국 지방행정연수대회 3연패를 함께 만들다┃김학홍
 
 

사진/ 이성근. 서귀포의 범섬 . 2024. 3. 11
사진/ 이성근. 서귀포 엉덩물 계곡의 유채꽃 . 2024. 3. 12

 

사진/ 이성근. 금능농장의 하귤 . 2024.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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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에서 끝은 곧 시작이다.
원에서 끝이 되면 새로운 시작이 되고,
원에서 끝이 오면 새로운 시작이 이어 온다.
원은 끝이 없고 새로운 시작만이 있을 뿐이다.
원은 끝과 시작이 이어서 달리는 동투레와 같다.

인생도 끝과 시작이 이어져 있다.
그래서 인생도 돌고 도는 동토레와 같다.
돌고 도는 동토레 인생은 나름의 나이테가 만들어진다.
잘 살은 인생은 고른 나이테가 만들어지고,
잘못 살은 인생은 삐투른 나이테가 만들어진다

인생의 나이테가 곧 연륜이 된다.
바른 연륜은 바르게 굴러간 인생이고,
삐투른 연륜은 허투루 굴러간 인생이다.
그래서 인생은 끝과 시작을 쉼 없이 굴러가는
동토레이고 나이테이며 연륜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시작이 반이다.  
겁내지  말고 미루지 말고 시작하자.
좋은 시작은 반을 끝낸 것과 같다.
좋은 시작은 준비를 잘하고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좋은 끝은 좋은 시작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사에 끝과 시작을 잘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끝과 시작을 잘하면
목적하는 바를 이루고 숭리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무엇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시작하자.


용어 해설
1. 원에서 끝은 곧 시작이다(In a circle, the end is the beginning).
"원에서 끝은 곧 시작이다." 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언이다.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35년 ~ 기원전 475년)는 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로 우리에게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망치'라는 책으로 유명하다. 이 책에는 30개의 명언이 담겨있고, 이들 가운데 하나가 원에서 끝은 곧 시작이다.

2. 시작이 반이다(Well begun is half done).
"시작은 반이고, 좋은 시작은  반을 끝낸 것과 같다." 이는 우리의 속담과 서양에도 공히 전해 내려온다. 서양에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명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고, 플라톤의 제자이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겁내지  말고 미루지 말고 시작하라는 의미이고, '좋은 시작은 반을 끝낸 것과 같다(Well begun is half done.)'는 말은 사전에 잘 준비하고 계획하여 시작하라는 의미이다. 어떤 일이든 시작이 중요하고, 시작이 성공적이면 그 일의 반은 이미 이루어진 것과 같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3.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Don't put off until tomorrow what you can do today).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의 명언으로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중 한 명이자 미국의 초대 정치인 중 한 명이고 미국 독립에서 중추이었다.
그는 계몽사상가 중 한 명으로서, 유럽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피뢰침, 다초점 렌즈 등을 발명하였다. 달러화 인물 중 대통령이 아닌 인물은 
알렉산더 해밀턴(10달러)과 벤저민 프랭클린(100달러) 두 명뿐이다/ 위키백과.

4. 동토레
동토레는 동테 또는 굴렁쇠를 먈하고 경상남도에서 사용되는 방언이다.
굴렁쇠는 어린아이 장난감의 하나로 쇠붙이나 대나무 따위로 만든 둥근 테로서, 굴렁대로 굴리며 논다.



사진/ 이성근. 안덕 군산오름에서. 2024. 1. 6

 

사진/ 이성근. 서귀포 칠십리 파크 골프장에서. 2024. 2. 16

사진/ 이성근. 한라산 둘레길 5코스에서. 2023. 5. 20



사진/ 이성근. 한림 금능농장에서. 2023.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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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나의 회상록인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2021. 3. 25)" 서문의 일부이다. 나는 대학에서  평생 교수로 몸담다 정년을 앞두고 나를 기념하는 일로 내가 평생 만났던 소중한 지인들의 글을 받아 나를 회상하기로 하였다.
인생은 다양한 정의가 가능하다. 나는 회상록을 준비하면서 문득 나의 인생을 '만남의 여정'으로 정의하였다. 따라서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의 회상록은 나와 지인과의 만남의 여정을 회상하는 책이고, 이 글은 나의 만남의 인생여정에 대한 소개이다.

회상록은 지난 일을 생각해 내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쓴 글이다. 이는 자신이 지난 일을 생각해 내어 쓴 글과 타인의 생각을 빌어 자신을 회상하는 글이 있다. 나는 정년을 앞두고 우선 후자를 선택해 나의 회상록을 만들기로 하였다. 스스로 쓰는 회상록은 정년 이후에 시간을 두고 만들기로 하였다.

인생여정은 생득적 지위와 성취적 지위라는 사회적 관계망에서 가지는 역할에 대한 제반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생득적 지위는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성씨와 가족관계와 같은 혈연과 출생지와 같은 지연 등이 해당한다. 이는 나와는 무관하게 주어지는 귀속적 지위이다. 성취적 지위는 개인의 노력으로 얻게 되는 학력과 직업, 지위, 평판, 품성 등이 해당한다. 이는 순전히 개인이 성취해서 얻게 되는 사회적 지위이다.
나의 회상록은 후자를 중심으로 엮은 것으로 대학 정년이라는 시간을 기준으로 정년 이전의 나의 사회적 삶을 돌아보기 위해 엮은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돌아보면 변화의 연속이었다. 또한 나의 삶은 사람중심의 관계 지향적이라기보다 일/ 과업 지향적이었다.
나는 변화의 삶과 일 지향적 사회활동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소중한 인연을 맺어왔다. 변화의 삶과 사회활동에서 내가 만난 많은 인연들 가운데 강하고 짧게 끝난 아쉬운 인연이 있는가 하면 길게 오랜 기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아름다운 인연도 많다.

최근 나는 나의 운명적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운명의 울타리 안에서 자유와 구속 속에서 나름대로 열정적으로 살아왔다. 나의 운명적 삶의 결정은 좋은 만남이라는 인연의 덕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다 나의 노력이 더해져서 삶의 궤적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인지정사(人之情事)는 각세부운(刻世浮雲)’이라 했던가?
소중한 만남도 인연이 되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였다. 또한 변화의 삶에서 만남이 지속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한편으로는 좋은 관계가 사소한 일로 나쁜 관계로 변해 서먹한 관계로 지낸 경우도 많았다.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의 회상록은 나의 좋은 만남과 소중한 인연을 맺은 221분의 지인들로부터 글을 받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나는 이 회상록에서 나의 만남의 인생여정을 여덟 갈래로  구분하였다.

하나는 고교계명(高敎啓明)의 만남이다. 고교계명은 높은 가르침과 바른 지혜를 의미한다. 인간의 일생은 성장과 발전이라는 변화의 연속이다. 나 또한 그 간의 삶을 되돌아보면 수 많은 변화의 연속과정이었다. 나는 그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많은 분들의 가르침과 도움을 받았다.

둘은 진덕수업(進德修業)의 만남이다. 진덕수업은 업을 닦고 덕을 향해 나아감을 의미한다. 대학에 나오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수신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진덕수업의 만남은 나와 함께 학교교육을 동문수학한 동기와 동문들이다. 나는 진덕수업의 과정에서 가능한 한 나보다 나은 동기들과 벗을 삼아 교류를 하려고 노력하였다.

셋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만남이다. 교학상장은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한다는 말이고 이와 유사하게 가르치는 것은 배움의 반이라는 효학반이 있고 나의 교수인생에 적합한 말이다. 여기에서 교학상장의 만남은 나의 평생 교수직에서 만난 학부생들과의 만남이다.

넷은 사제동행(師弟同行)의 만남이다. 사제동행은 스승과 제자가 함께 감을 의미한다. 이는 교육분야에서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말이다. 맹자는 '군자삼락'의 하나로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 하였다.
여기에서 사제동행의 만남은 일반대학원 지역개발학과 석·박사과정에서 내가 논문지도한 대학원생들의 만남이다.

다섯은 근학무실(勤學務實)의 만남이다. 근학무실은 배움에 부지런하고 맡은 일에 충실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율곡 이이의 '무실사상'과 중봉 조헌의 '무실정신'과 '의리정신'에 연관된다.
여기에서 근학무실의 만남은 특수대학원인 환경대학원의 환경계획학과와 행정대학원의 지역개발학과에서 논문지도교수로 함께한 대학원생들과의 만남이다.

여섯은 학해무변(學海無邊)의 만남이다. 학해무변은 배움에는 바다와 같이 끝이 없다는 의미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는 끝이 있을 수 없다. 이는 탄허스님이 자주 사용하였다.
여기에서 학해무변의 만남은 나와 연구 및 학회활동을 함께한 동학들의 만남이다.

일곱은 후생치용(厚生治用)의 만남이다. 후생치용은 경세치용에서 가져온 말이다. 경세치용은 유학의 한 주장에서 나온 말로 "학문은 현실세계에 이바지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은 "배움의 궁극
적 목표는 위기지학에서 위인지학에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후생치용의 만남은 대학의 보직과 외부의 전문자문 및 심의, 전문컨설팅, 안민포럼 등의 활동을 하면서 교류한 여러 전문가들과의 만남이다.

여덟은 귀전선린(歸田善隣)의 만남이다. 귀전선린은 인간의 귀결은 신과 자연으로 돌아가고 평소 이웃과 가정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귀소본능이 있다. 따라서 지금의 나는 정년 이후의 삶의 목표를 소확행(小確幸)과 귀전선린으로 정하고 가능한 한 이에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회상록에서 귀전선린의 만남은 내가 재직한 대학의 동료교수, 순총학원의 이사와 총장, 그리고 교직원, 가까운 이웃, 소중한 가족들로 정하고 이들로부터 나와의 만남과 인연의 글을 받아 실었다.

이 회상록을 발간하면서 나는 보통이상의 삶과 여한없는 대학교수 생활을 하였다는 생각을 하였다 . 이 모두가 인생여정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의 덕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인생여정을 만남의 여정으로 정의하였다.
이번 회상록에는 여러 사정으로 연락이 닿지 않아 글을 받지 못한 분들도 많다. 우선 이번 회상록에 귀한 글을 보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글을 받지 못했으나 소중한 인연을 맺은 많은 분께도 감사한 마음을 드린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 철학자 헤라 클레이토스의  명언인 "원(圓)에서 끝은 시작이다"라는 말을 다시 되새겨 본다.
이제 새로운 시작은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그리고 하고 싶은 의미 있는 일을
찾아 하려고 한다.
나와 소중한 인연을 맺은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빈다.

용어 해설: "인지정사(人之情事)는 각세부운(刻世浮雲)"
'인지정사(人之情事)'는 사람의 감정과 이들 간에 일어나는 일들을  의미하고, '각세부운(刻世浮雲)'은 세상을 떠도는 구름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람 간의 정리는 뜬구름과 같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표현은 중국 문학과 철학에서 사용되는 고전적인 어구로서 인간의 삶과 사랑, 운명 등의 이야기를 묘사하는 데에 자주 사용된다.


사진/ 이성근. 서귀포 칠십리 시비공원의 매화와 한라산. 2024. 2. 17
사진/ 이성근. 제주 한림 금능농장에서. 2023. 9. 29
사진/ 이성근. 영남대 캠퍼스 정문과 저녁 노을. 2023. 12. 25
사진/ 현문헌. 서귀포 감귤농장에서 본 한라산 설경. 2024. 3. 1
사진/ 이성근. 서귀포 감귤농장에서 발견한 행운의 네 잎 클로버. 2023.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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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국가이다. 그러나 대의제로 국민/주민이 직접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한다. 우리가 직접 투표로 우리의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는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가 있다. 대통령 선거는 대선이고 국회의원 선거는 총선이라 부른다. 지방선거는 지방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선출한다.
금년 4월 10일은 22대 국회의원 300명을 선출하는 날이다. 따라서 여야 정치권과 정치인들은 분주하고, 우리는 이를 총선 정국이라 한다. 바야흐로 정치권과 정치인들에게는 정치 대목이다. 일반 국민들은 아직 정치 대목에 덜 민감한 편이다.
지금은 여야 정치권이 지역에 출마할 자당의 공천자를 선정하기 위한 여론조사를 진행하고 있고, 지역에 출마를 희망하는 후보자는 여론조사가 자신에게 우호적으로 나오기를 기대하고 분주하다.

이 글은 지난 총선을 앞두고 지역국회의원의 합리적 선택기준에 대한 논의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 글의 내용이 지금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일부 수정하여 공유하고자 한다.
지금은 여야 정당들이 공천자 선정과정의 일환으로 자당 공천 후보자들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고 있으나, 이들 중 누군가가 여야 정당의 공천자가 될 것이므로 동일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 글이 유권자들로 하여금 여야 정당의 공천자 선정을 위한 여론조사에 참여하는데 참고자료가 되기를 바란다.

얼마 남지 않은 지금의 21대 국회는 지난 문 정부에서는 여대야소 국회이었고, 지금의 윤 정부에서는 여소야대 국회이다.
따라서 그간 문 정부의 여대야소 국회와 윤 정부의 여소야대 국회에 대한 말이 많았고, 우리 유권자들은 이에 대한 장단점도 잘 아는 편이다. 금년에 새로이 구성되는 22대 국회는 윤석열 정부의 남은 임기 3년을 같이한다. 윤 정부의 입장에서는 국정동력에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된다. 여당은 국정의 든든한 지원을 위해서 다수의석이 절실하고, 야당은 집권여당의 견제를 위해서 다수의석을 주장한다. 군소정당은 양당정치의 청산을 위해 정치개혁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선거는 개인의 선호가 반영된 사회적 선택이다. 사회적 선택은 국가이익과 지역이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유권자 개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중요한 이유이다.
여기서는 유권자의 올바른 후보선택을 위한 거시적 판단기준과 미시적 판단기준에 대해 논의해 보기로 한다. 다양한 후보들 가운데 한 후보를 선택하는데는 숲과 나무로 구분하여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에 도움이 된다.
 
먼저 거시적 판단기준에 대해 논의해 보자.
첫째는 후보자의 균형적 역사인식이다.
이는 국가정체성과 대북한관, 그리고 다자 간 외교관계에 대한 인식을 포함한다.
둘째는 후보자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국가위기관리에 대한 상황인식이다.
우리는 미증유의 저출생과 고령화사회를 극복해야 한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의 대응으로 녹색성장사회로 이행해야 한다. 또한 저성장 기조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셋째는 후보자의 사회갈등에 대한 국민적 사회적 통합과 합의형성에 대한 태도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수많은 갈등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노동개혁과 연금개혁, 대학구조개혁 등이다. 최근에는 의대 정원으로 시끄럽다. 이들 과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데 국회의 조정과 입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후보자의 지방시대에 대한 입장이다. 지방시대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으로 구분된다. 이 두 개념은 상충적이기도 하고 상보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대 정부의 입장은 후자 쪽이고 필자 또한 그러하다.
그러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 30여년 이상의 지방자치 실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앙집권적이다. 후보자는 지방분권 촉진을 통한 국가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또한 국가균형발전과 사회공평에 대한 태도이다. 우리나라는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심하다. 또한 개인 간 소득불평등과 사회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다.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배려와 강도 높은 국가균형화 정책이 요구된다.
 
다음은 미시적 판단기준에 대해 토론해 보자. 이 기준은 국회의원의 자질과 역량에 관련된다.
첫째는 후보자의 정책형성과 문제해결 역량이다.
정치는 정책과 유사개념이다. 정책은 정치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입법화된다. 정책형성은 국회의원의 정책지향과 문제해결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국회의원은 특정분야 전문가이면서 가치중립적이고 정책균형적인 전문일반가가 되어야 한다. 유권자가 기대하는 정치/정책 전문가를 선택해야 한다.
둘째는 후보자의 지역대표성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국가의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다. 우리 지역국회의원은 지역대표로서의 성향이 중요하다. 선출된 지역대표는 각종 정책의 입법과정에서 지역사정이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책형성과 입법과정이 지역성에 기반한 귀납적 과정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셋째는 후보자의 소통과 조정협상 역량이다.
국회는 지역대표와 직능대표로 구성된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은 소통과 조정협상과정이라 할 수 있다. 국회의원의 제반 활동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정책조정을 통한 입법, 합리적 자원배분의 예산편성, 그리고 정부활동의 결과에 대한 감사활동이다. 이들 과정에서 소통과 조정협상 역량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는 국가와 지역의 장래를 위해 갖추어야 할 역량이다.
넷째는 후보자의 이념적 성향과 지향이다.
그간 우리 사회에 진보와 보수를 양축으로 이념적 논쟁이 뜨겁다. 이는 대북관계와 각종 정책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유권자는 후보자의 그간 활동과 가치지향을 과거와 현재를 세밀히 관조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는 후보자의 도덕적 지향이다.
우리 사회는 국회의원 개개인과 정당에 대한 정치불신이 크다. 이는 정치인의 소명의식과 사회적 책무성, 그리고 사회지도체계로서의 기능과 역할의 미흡이 원인이다. 자기이익이 아닌 지역이익과 국가이익에 우선하는 공익적 태도를 원한다.
 
주민이 곧 국민이다. 유권자는 국민을 우선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솔선수범하는 의원을 선택해야 한다. 이가 나와 우리, 지역과 국가를 위하는 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이번 22대 총선에서 유권자의 합리적 후보선택을 기대한다.
 
이성근. 대구일보 컬럼 및 자유와 창의의 지역세상(2021. 3. 15)에서 수정

 

 

사진/ 이성근. 서귀포 칠십리 시비공원에서. 2024. 2. 17

사진/ 이성근. 서귀포 강창학 파크 골프장에서. 2024. 2. 15

사진/ 이성근. 서귀포 강창학 파크 골프장에서. 2024. 2. 15

사진/ 이성근. 서귀포 칠십리 파크 골프장에서. 2024. 2. 12

사진/ 이성근. 서귀포 칠십리 파크 골프장에서. 2024.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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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초고령사회로 이행하고 있고, 그 속도가 엄청 빠르다. 초고령사회는 전체인구 가운데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음을 의미한다.
고령인구는 스스로 건강을 제1로 삼는다. 웰빙은 웰에이징과 웰다잉을 목표로 삼는다. 고령인구가 희망하는 웰에이징은 건강하게 사는 것이고, 웰다잉은 아프지 않고 요양병원에서 수명연장하지 않으며 정든 세상을 편하고 아름답게 떠나가는 것이다.

고령인구의 증가는 그만큼 고령인구의 정책수요가 커짐을 의미한다.
그러면 어떻게 고령인구가 희망하는 웰에이징과 웰다잉을
실현할 수 있는가?
필자는 고령인구의 건강수요에 부응하는 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글은 필자가 제주 서귀포 혁신도시 거주 이 년 차에 파크 골프에 입문한지 한 달여를 지나면서 강창학 파크 골프장과 칠십리 파크 골프장의 
경험에 기반하여  파크 골프의 의미와 특징, 그리고 파크 골프장의 확대에 대한 정책제언이다.


먼저 파크 골프에 대해 보자.
파크 골프는 나무로 된 채를 이용해 공을 잔디 위 홀에 넣는 운동이다. 파크(park)와 골프(golf)의 합성어로 공원처럼 쾌적한 자연환경에서 치는 골프이다.
파크 골프의 역사는 1984년 일본 홋카이도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일본뿐만 아니라 하와이, 호주, 중국, 미주 등에서도 인기 있는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골프를 조금 더 가볍게 느낄 수 있는 파크 골프에 대한 높은 관심과 함께  파크 골프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파크 골프의 기본적인 룰은 골프와 비슷하다. 티오프/출발에서 홀을 향해 볼을 치고 차례대로 코스를 돌게 된다.


다음은 파크 골프의 의미와 특징에 대해 보자.
필자가 강창학 파크 골프장과 칠십리 파크 골프장의 짧은 경험에 기반하여 정의한 파크 골프는
3친 3평 3자 운동이다. 즉 친화3,  평등3, 자유3 운동이다.


첫째, 파크 골프는 3친 운동이다.
파크 골프는 고령인구, 자연환경, 그리고 소소익선의 세 가지 친화적인 운동이다.

파크 골프의 1친은 고령층 친화 운동이다.
파크 골프는 온몸을 사용하는 전신활동이고 전신운동이다. 고령인구는 타세대와 달리 상대적으로 온몸을 사용하는 전신운동이 부족하다. 전신은 사지 또는 사대 육신으로 두 팔, 두 다리, 몸통, 머리통을 일컫는다.
따라서 파크 골프는 고령층의 전신운동에 적합하다.
파크 골프장에서 고령자가 삼삼오오 모여서 함께 놀이하는 모습을 보면 천국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미래의 우리 모습으로 연상된다. 

파크 골프의 2친은 자연환경 친화 운동이다.
파크 골프장은 공원부지와 고수/하천부지 등 한계토지에 조성되어 자연환경의 훼손이 적고 관리비용이 적게 든다. 파크 골프장은 골프장에 비해 작은 규모로 조성되고 파크 골퍼의 이용도가 높아 토지이용의 효율성이 높다. 또한 파크 골프장은 골프장과 달리 이용시설과 부대시설이 작아 저탄소 에너지 절약형이다.  
따라서 파크 골프장은 자연의 보존과 이용의 적정한 환경보전시설이고, 파크 골프는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자연환경 친화적인 운동이 된다. 

파크 골프의 3친은 작은 것이 아름다운 (small is beautiful)  소소익선 친화운동이다.
파크 골프는 크면 클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이 아니라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는 소소익선 운동이다. 소소익선은 3S로 부드럽고(soft) 짧고(short) 느린(slow) 것이 좋다는 의미이다.
파크 골프는 골프와 반대로 강한(strong) 것보다는 부드럽게 긴(long) 것보다는 짧게  빠른(fast) 것보다는 느린 것이 좋다. 물론 골프도 부드러워야 하나 파크 골프보다는 덜하다.
따라서 파크 골프는 소소익선의 3S 친화 운동이다.


둘째, 파크 골프는 3평 운동이다.
평등은 차별이 없이 고르고 한결같은 것을 말한다. 평등은 인간의 존엄, 권리, 인격, 가치, 행복의 추구 등에 있어 차별이 없이 같은 상태를 말한다.
파크 골프의 3 평등은 양성평등, 부부평등, 그리고 사회평등이다

파크 골프의 1평은 양성평등 운동이다.
기본적으로 남녀는 정신적 신체적 차이가 있다. 그래서 남녀는 유별하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남녀는 다르게 차별성이 주어진다.
골프는 남녀의 티셧 위치가 다르다. 그러나 파크 골프는 남녀가 티셧을 같은 위치에서 한다. 이는 파크 골프가 소소익선 운동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불리하기보다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크 골프는 양성평등 운동이고 남녀동행 운동이 된다.

파크 골프의 2평은 부부평등 운동이다.
전통적으로 부부는 역할이 달랐다.
남편은 바깥 양반이고,  아내는 안사람이었다. 일상 활동은 부부가 함께 하기보다는 따로 하였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부부의 지위와 역할의 경계가 없어졌다. 따라서 부부가 함께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옛날의 남편이 앞장서는 부창부수가 지금은 아내가 앞장서는 부창부수가 되었다.
이와같은 시대변화를 잘 반영한 것이 파크 골프이다.  
따라서 파크 골프는 부부평등  운동이고 부부동행 운동이다. 특히 건강한 고령층 부부는 더욱 그러하다.

파크 골프의 3평은 사회평등 운동이다.
파크 골프는 골프와 마찬가지로 4인이 한 팀이다. 골프는 4인의 팀원이 사전에 구성되고 현장에서 조인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파크 골프는 사전에 팀원이 구성되기는 하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조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조인하는 사람은 남녀와 연령과 파크 골프 경력과 직업과 사회적 지위는 무관하고 그대로 하나의 팀원이 된다.
파크 골프는 처음 만나 운동하면서 자연스레 좋은 이웃이 되고 이웃사촌이 된다.  우리는 이를 유연적 소우셜 믹스 즉 사회적 융합이라 부른다.
따라서 파크 골프는 좋은 이웃을 만들고 이웃사촌과  동행하는 운동이다.  파크 골프는 사회평등 운동이고 궁극적으로 사회통합 운동이 된다.


셋째, 파크 골프는 기술과 비용, 그리고 기회로부터 자유로운 3자 운동이다.
자유는 무엇으로부터 구속이나 구애를 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파크 골프는 기술과 비용과 기회 면에서 타운동, 특히 골프와 비교하여 자유로운 운동이다.

파크 골프의 1자는 기술로부터 자유로운 운동이다.
파크 골프는 운칠삼기 또는 운구일기 운동으로 불린다.  운칠삼기는 운이 칠이고 기술이 삼이며, 운구일기는 운이 구이고 기술이 일이라는 의미이다. 파크  골프는 실력보다 운이 많이 좌우한다는 말이 된다. 필자는 파크 골프에 입문한지 이 주만에 서귀포 강창학 파크 골프장 4번 홀과 7번 홀에서 홀인원을 두 번하였다. 이에 반해 자주하지는 못했지만 이십여 년 이력을 가진 골프에서는 한 번도 홀인원을 못하였다. 무엇보다  골프는 틈날 때마다 연습을 해야 하고 현장에서 잘 안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렇다고 파크 골프가 기술을 깡그리 무시하는 운동은 아니다. 파크 골프는 골프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연습없이 실전에 바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파크 골프는 기술로부터 자유로운 운동이다. 언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인생과 같은 운칠삼기 또는 운구일기의  운동이다.

파크 골프의 2자는 비용으로부터 자유로운 운동이다.
파크 골프와 골프의 비용비교는 골프채와 골프공 등 골프도구, 그린피라 불리는 골프장 사용료, 이동에 필요한 카터비, 골프운동을 도우는 캐디피, 이들 비용에 부과되는 세금, 식사비 등이다.  
파크 골프 도구는  골프채 1개와  골프공 1개가 기본이다. 이에 반해 골프도구는 채가 열 개를 넘고 채값도 고가이다.
나머지 항목에서 파크 골프는 비용이 거의 없는 편이다.
따라서 파크 골프는 비용으로부터 자유로운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파크 골프의 3자는 참여기회로부터 자유로운 운동이다.
파크 골프는 예약과 시간과 이용 횟수가 자유롭다. 일부 파크 골프장은 이용객이 많아 격일제로 제한하기도 하나 대부분의 파크 골프장은 자유롭고  제주는 더욱 자유롭다. 이에 반해 골프는 예약이 필수이다.
따라서 파크 골프는 누구나 언제든지 예약없이 도착한 순서대로 이용하는 기회균등한 운동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요약하고 정책제언으로 마치고자 한다.

먼저 이 글의 요약이다.
필자가 정의한 파크 골프는
3친 3평 3자 운동이다. 즉 친화3  평등3 자유3 운동이다.
첫째, 파크 골프는 3친 운동이다.
파크 골프는 고령층, 자연환경, 그리고 소소익선의 세 가지가 친화적인 운동이다.
둘째, 파크 골프는 3평 운동이다.
파크 골프의 3 평등은 양성평등, 부부 평등, 그리고 사회평등이다.
셋째, 파크 골프는 기술과 비용과 기회로부터 자유로운 3자 운동이다.

다음은 정책제언이다.
최근 고령인구의 대세는 파크 골프 이다. 급속한 초고령사회의 진행과 파크 골프 인구는 정비례 하고 있다. 최근 지자체에서 파크골프 수요 증가에 따라 파크 골프장 조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제주는 관광객 유치와 파크 골프를 연계시키려고 하고 있다.
중앙정부도 초고령사회의 정책대응 차원에서 고령인구를 위한 파크 골프장 조성에 정책적 관심과 재정지원을 바란다. 이는 고령인구의 건강복지로 여러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고 사회적 편익을 확대하는 좋은 정책이 될 것이다. 특히 고령인구의 입장에서는 파크 골프가 웰빙의 목표인 웰에이징과 웰다잉으로 가는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적 관심과 재정지원에 대한 기대가 한층 크다.


용어해설
초고령사회( super-aged Society)는 만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고령사회는 14% 이상이고, 고령화사회는 7% 이상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집계한 이래 70대 이상 인구가 20대 인구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가능인구와 초등학교 입학 예정 인구의 감소세가 지속되고, 노인 1인 세대가 다수를 차지하는 등 한국 사회의 초고령화와 인구구조의 기형적 현상이 통계숫자로 나타났다.


 

사진/ 이성근. 서귀포 강창학 파크 골프장에서. 2024. 2. 4

 

사진/ 이성근. 서귀포 강창학 파크 골프장에서. 2024. 1. 8
사진/ 이성근. 서귀포 강창학 파크 골프장에서. 2024. 1. 10
사진/ 이성근. 서귀포 칠십리 파크 골프장에서. 2024. 2. 11

 

사진/ 이성근. 서귀포 칠십리 파크 골프장에서. 2024.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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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교수인생 38년의 여정에서 여러 의미있는 만남의 하나가 일반대학원 지역개발학과 석·박사 논문지도 학생들과의 만남이다.  나는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라는 회상록에서 이를 사제동행(師弟同行)으로 이름을 정하고 이들로부터 글을 받아 실었다. 사제동행의 글은 논문지도 학생인 대학원생들이 논문지도 교수인 나와의 동행의 경험을 담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사제동행은 스승과 제자가 함께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스승과 제자가 한마음으로 연구하여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사제동행은 예나 지금이나 이상적인 교육모델이고 교육분야에서 통용되는 유효한 말이다.
맹자는 군자삼락의 하나로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 득천하영재이교육지 삼락야(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이라 했다.
나는 현대적 의미의 사제동행은 대학원의 논문지도 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고 함께한 모든 것이 나에게는 의미가 크다.

나의 교수인생 여정에서 사제동행은 80년대 중반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내가 재직한 학과는 80년대 중반에 대학원 석사과정이 개설되었고, 80년대 후반에 박사과정이 설치되었다. 당시에는 교육부가 대학원 석·박사 학위과정의 설립을 준칙주의에 입각하여 요건을 까다롭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재직기간 동안 일반대학원 행정학 박사 21명, 박사과정 수료 9명, 행정학 석사 21명, 석사과정 수료 4명을 지도하였다.
나와 동행한 대학원생들은 다양한 분야의 전공과 여러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공공의 가치를 지향하는 직업을 찾거나 이미 이들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나는 동행하는 대학원생들의 숫자가 많아짐에 따라, ‘영남대 지역개발연구회’라는 논문연구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였다. 지금은 이 연구회의 회원이 수십 명에 이른다.
특별한 것은 논문연구의 효율성과 지속성을 위해 매주 토요일 아침 7시부터 10시까지 나의 집 부근 조용한 커피숍에서 연구회 모임을 가졌다. 이른 아침에 연구회에 참여하는 것이 나를 포함해 모두가 힘든 시간이었지만 학위논문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고 보람되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글을 마치면서 "이성근 교수를 생각하다"라는 회상록의 사제동행(師弟同行) 편에 실린 글의 주제어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관률/ 학해무변의 의미를 실행하시는 교수님, 사제동행으로 제자를 성장시키는 교수님
김상곤/ 다양한 첫 경험의 기회를 주신 교수님, 첫 직장이자 평생 직장이 된 테크노파크
허재원/ 천생(天生) 교수이신 나의 지도교수님
안성조/ 인생의 길을 열어주신 스승
김규섭/ 그저 그런 인생에 전환점을 선물해주신 교수님
서준교/ 교수님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글귀는 원(圓)에서 끝은 시작이다
박성환/ 똑똑하면서 부지런까지 하면 ‘똑부형’
김성경/ 백옥처럼 소중하고 좋은 추억을 많이 간직
박의식/ 「최신지방재정론」(2010)과 「한국지방재정론」(2016)을 교수님과 함께 발간한 것은 큰 영광
김상동/ 주례가 너무 젊다, 수근 수근
서경규/ 연구활동의 독려와 배려로 얻은 교수 임용
정용/ 팔공산에서 이어지는 소중한 인연
변점출/ 올곧은 선비정신으로 학문탐구에 열정과 욕심이 많고 교수로서의 자긍심과 소명의식이 투철
김종수/ 갓바위로의 동행
심상운/ 매주 새벽시간의 논문지도
우성호/ 열의와 열정으로 지도해주신 교수님
손동식/ 매주 토요일 논문지도를 하면서 많은 석 · 박사 제자들을 배출하신 것은 당신의 특별한 철학과 열정이 아니었다면 불가능
김종현/ 지난 24년 교수님과의 만남으로 학문을 접하고 인생의 깊이가 더해진 것
송민석/ 공학, 중국, 그리고 Ph.D.
이원재/ 인생의 인내와 열매
임창규/ 팔공산에서의 추억, 그리고 배움
이종덕/ 주말 아침의 논문지도가 그립습니다
김탁수/ 학해무변
윤성현/ 지역개발학의 발전을 꿈꾸는 소년, 이성근
김덕현/ 지역개발 전문가가 되기를 꿈꾸는 오늘의 나는 교수님의 열정이 빚어낸 결과물
송은실/ 교수님의 가르침대로 늘 성실한 자세로 학습하며 나날이 발전되어 가는 인재가 되도록 최선
나선영/ 30대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던 나의 교수님!
장 레이팡(張瑞芳)/ 보고 싶은 교수님께

사진/ 이성근. 영남대 정문 전경. 2023. 12. 15 

사진/ 이성근. 영남대 정문 전경. 2023. 12. 15 

사진/ 이성근. 2024 신년 모임: 이게 진짜 순두부 식당에서 . 2024. 2. 24  

사진/ 이성근. 2024 신년 모임: 이게 진짜 순두부 식당에서 . 2024.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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